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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인]]6월 7일 축일 맞으신 성인

작성자엘리사랑|작성시간26.06.08|조회수5 목록 댓글 0

 

♡6월 7일 오늘의 성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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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 고트샬크(Gottschalk) 
 
축일 6월 7일  
 
벤드족(Wends)의 왕자로 태어난 성 고트샬크는 
부친이 그리스도교 색슨인들로부터 살해당하였을 때
자신의 그리스도교 신앙을 포기하고, 덴마크의 
카누투스(Canutus) 군에 입대하였고,
 잉글랜드(England) 침공에 가담하였다. 
그 후 그는 자신의 신앙을 되찾았고 수도원을 세웠다.
그러나 그는 애석하게도 살해당하였는데, 
그의 그리스도교 신앙을 반대하던 자들의 
소행이었으므로, 학자들 간에는 순교자로 
공경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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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 로베르토(Robert) 
 
축일 6월 7일  
 
영국 잉글랜드(England) 요크셔(Yorkshire)의 
가르그레이브 출신인 성 로베르투스(Robertus, 
또는 로베르토)는 사제로 서품된 후 휘트비(Whitby)에서 
베네딕토 회원이 되었다. 그 후 그와 요크의 성 마리아 
수도원에서 온 일단의 수도자들이 더욱 엄격한 규칙을 
따르기 위하여 스켈데일(Skeldale)로 이주하여, 
1132년에 시토회의 규칙을 따르는 수도원을 세웠다. 
이 수도원은 회원들의 성덕과 학문으로 유명해졌는데, 
1138년에 성 로베르투스는 12명의 수도자들과 
뉴민스터로 가서 또 다른 수도원을 세우고 원장이 
되었다. 그는 시편 주해서를 비롯한 여러 권의 책을 
저술하였는데, 그가 묻힌 뉴민스터 수도원은 
순례자들이 즐겨 찾는 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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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 리카리온(Lycarion) 
 
축일 6월 7일  
 
이집트의 순교자인 성 리카리온에 대해 
알려진 다른 내용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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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 메리아독(Meriadoc) 
 
축일 6월 7일  

성 메리아독에 대한 개인 기록은 거의 없고
 다만 성인에게 봉헌된 성당이 감보른의 
콘월(Cornwall)에 있다. 
그리고 그에 대한 간단한 이야기는 그 지방의 
어느 사제가 수집하여 “메리아색크의 생애”를 
꾸며 놓은 것이다. 여기서 이 책을 인용하지 
못하는 것은 역사성이 희박하기 때문이다. 
다만 성인의 존재나 위대성에 대해서는 아무도 
부인할 수 없을 것이다. 
메리아색크(Meriasek)로도 불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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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 바오로(Paul) 
 
축일 6월 7일  
 
테살로니카(Thessalonica) 출신인 성 바오로(Paulus)는
소년 시절부터 알렉산데르(Alexander) 주교의 비서로 
일하다가 콘스탄티노플 교회의 부제로 봉사하였다. 
그의 스승이 서거했을 때 성 바오로는 스승의 후임자로
선정되었다. 그러나 콘스탄티우스 황제는 
아리우스파(Arianism) 주교들만의 회의를 소집하여 
바오로를 단죄하고 추방해버렸다. 

이때 그는 서방으로 가서 피난처를 구하고 복귀할 
기회를 찾았으나 그런 기회가 오지 않았다. 
주민들은 그들의 주교를 잃은 보복으로 아리우스파의
장군 헤르모네스의 집을 불태우고 살해하는 등 
폭동이 연이어 일어났다. 
이 사건으로 그는 또다시 아르메니아(Armenia)의
쿠쿠수스(Kukusus)로 유배를 갔는데, 그곳의 지하 
감방에서 6일 밤낮을 굶기는 형벌을 받고 목이 졸려 
순교하였다.
 


 자료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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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 베드로(Petrus), 

성 발라본수스 또는  발라본소(Wallabonsus) 

성 사비니아누스(Sabinianus), 

성 비스트레문두스(Wistremundus), 

성 하벤티우스(Habentius)

성 예레미야(Jeremias)
 
축일 6월 7일  
 
성 베드로(Petrus), 성 발라본수스(또는 발라본소), 
성 사비니아누스(Sabinianus), 
성 비스트레문두스(Wistremundus), 
성 하벤티우스(Habentius)와 성 예레미야(Jeremias)는 
에스파냐의 코르도바에서 무어족의 왕인 
아브탈 라흐만 2세(Abd ar-Rahman II)에 의해 
순교하였다. 성 베드로는 사제였고, 
성 발라본수스는 부제 그리고 나머지 네 명의 순교자들은
수도승이었다. 
성 예레미야는 타바노스(Tabanos) 부근에 수도원을 
설립한 노인으로 채찍에 맞아 순교하였고, 
나머지는 참수되거나 화형에 처해져 순교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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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 불플라지오(Vulflagius) 
 
축일 6월 7일  
 
젊어서 결혼했던 성 불플라기우스(또는 불플라지오)는
아베빌의 뤼 마을에서 살았다. 
그는 아내와 세 딸과 함께 모범적인 가정을 꾸미고 
있었는데, 그 마을의 사제가 급사한 사건으로 인하여
그는 주민들로부터 사목자로 선출되었다. 
그러므로 아내의 동의를 얻은 그는 일정한 수업을 
받고서 성 리카리우스(Richarius)로부터 사제로 
서품되었다. 그 후 그는 아내와의 관계를 깨끗이 
청산하였다. 

그는 성지순례를 마치고 돌아오던 길에 
자신이 다른 이들을 사목한다는 것이 부당하다는 생각이 
들어 은수자로서의 삶을 살기로 결심하였다. 
가끔씩 그에게는 은둔소를 떠나야 한다는 유혹이 
되살아나곤 했으나 끝까지 유혹을 이겨내는 지혜와 
용기를 얻었다. 그는 643년경에 운명했고, 
유해는 몽트레유-쉬르-메르에 안장되었다. 
울피(Wulphy)로도 불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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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녀 안나(성 바르톨로메오의)(Anne of St. Bartholomew) 
 
축일 6월 7일  
 
성 바르톨로메우스(Bartholomaeus)의 안나(Anna)는
에스파냐 아빌라의 성녀 테레사(Teresa of Avila)가
위대한 하느님의 종이라고 칭찬하였던 그녀의 
특별한 동료였다. 안나는 아빌라에서 4마일 떨어진 
알멘드랄(Almendral)에서 농사짓던 
페르디난도 가르시아(Ferdinand Garcia)와 
마리아 만자나(Maria Manzanas)의 딸이다. 20세까지 
그녀는 양치기로 일하다가 아빌라의 성 요셉 수도원에
입회 허가를 받아 카르멜회 수녀가 되었다. 

성녀 테레사는 마지막 7년 동안 늘 안나를 곁에 두고 
모든 여행도 함께 하였고, 카르멜의 개혁 사업에 
있어서도 안나 만큼 성녀를 협력한 인물이 없었다고 한다.
수차례에 걸쳐 안나는 검은 수건을 써야한다고 했으나 
그 때마다 거절하여 늘 평수녀로 살았다. 
성녀 테레사가 마지막 숨을 쉰 곳도 안나의 품속에서였다.
그 후 6년 동안 안나는 아빌라에서 조용히 살았다. 

그때 프랑스에서 맨발의 카르멜 수녀원 설립을 종용하자,
테레사의 후임자인 예수의 안나 수녀는 
성 바르톨로메오의 안나 수녀를 포함하여 5명의 수녀를 
파견하였다. 그 후 안나는 퐁투아즈(Pontoise) 수녀원의
원장, 그 다음에는 투르(Tours)의 원장이 되었다. 
또 네덜란드에 카르멜 수도원을 세웠을 때 안나는 
몬스로 갔으며, 1612년에는 벨기에 안트베르펜
(Antwerpen)에 수녀원을 설립하였다. 
1612년에 안나가 사망하자 2천 명의 주민들이 시신에 달린
묵주에 친구하러 줄을 설 정도로 그녀에 대한 공경은 
놀랄 만큼 빨리 일어났다. 1917년 5월 6일 교황 
베네딕투스 15세(Benedictus XV)에 의해 시복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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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 안토니오 마리아 지아넬리(Anthony Mary Gianelli) 
 
축일 6월 7일  

이탈리아 제노바(Genova) 교외 체레토(Cerreto)에서 
태어난 성 안토니우스 마리아 지아넬리
(Antonius Maria Gianelli, 또는 안토니오)는 
그곳에서 수학한 뒤에 사제로 서품되었는데, 
이때 특별한 관면을 받았다고 한다. 
왜냐하면 사제 서품의 법적 연령에 미달하였기 때문이다.
그 후 그는 사목 활동과 교육 사업에 투신하다가 
선교 활동에도 헌신하였는데, 그의 설교는 뛰어났고 
또 고해신부로 널리 알려지게 되었다. 

그는 성 알폰수스 리구오리(Alfonsus Liguori)의 
선교회를 세웠고, 또 마리아 수녀회
(Sisters of Our Lady of the Garden)를 세워 
가난한 어린이들을 교육하고 병자를 돌보게 하였는데, 
미국과 아시아에서 크게 성장하였다. 
1838년 그는 보비오의 주교로 임명되었고, 
1951년 10월 21일 교황 비오 12세(Pius XII) 의해 
시성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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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 콜만노(Colman) 
 
축일 6월 7일  
 
성 콜만누스(Colmannus, 또는 콜만노)는 북아일랜드 
드러모어의 초대주교이며, 514년경에 그곳에 수도원을 
세웠다. 오엔구스(Oengus)는 그를 ‘위대한 아르테의 후손
이었다고 하지만 자세한 그의 생애는 알 길이 없다. 
다만 달리아다(Dalriada)에서 태어나 마히(Mahee) 
섬에서 교육을 받고 성 아일베(Ailbe)의 제자로서 
성장한 듯 보인다. 그의 친구 중에는 
성 마카니시우스(Macanisius)가 있고, 가장 뛰어난 
제자는 모빌(Moville)의 성 핀니안(Finnian)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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