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월 17일 오늘의 성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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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 군둘포(Gundulphus)
축일 6월 17일
성 군둘푸스(또는 군둘포)에 대해서는
그다지 알려지지 않았다. 그는 프랑스 지방의
주교였고 부르주에서 선종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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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 넥탄(Nectan)
축일 6월 17일
윌리암 위르체스트의 기록에 의하면,
성 넥탄은 웨일스(Wales)의 왕 브리찬의 24명의
자녀 가운데 맏이로 태어났다.
그는 아마도 데번(Devon)과 콘월(Cornwall)에
성당을 세운 분인 듯하다. 성 넥탄은 어떤 지역을
개척하기 위하여 숲을 정찰하던 중, 일단의 강도들에
의하여 처단되었다. 그분에 대한 기록은 위의 내용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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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 니칸데르(Nicander)
성 마르키아누스(Marcianus)
축일 6월 17일
성 니칸데르와 성 마르키아누스(Marcianus)는
로마군의 군인이었으나 그리스도교를 박해하는
칙서가 하달될 때 스스로 제대해 버렸다.
그런데 이 사실 자체가 범법 행위로 간주되어
지방장관인 막시무스에게 끌려가서 이방신전에
희생물을 바치라는 명을 받았다.
니칸데르는 그 명령의 부당성을 역설했고,
같은 자리에 있던 그의 아내인 다리아 역시
남편을 옹호하였다.
이때 막시무스는 다리아에게 물었다.
“그대의 남편을 죽음으로 몰고 가려는가?”
“저는 남편의 죽음을 원치 않습니다. 다만 그분은
하느님만 믿고 있으니 영원히 죽지 않을 것을
말한 것뿐입니다.” 하고 대답하였다.
마르치아노 역시 조금도 흔들리지 않았다.
마침내 이 두 분은 참수형을 받고 순교하니,
다리아는 “편안한 마음으로 받아들이세요.” 하고
그들을 격려하였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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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녀 데레사(Teresa)
축일 6월 17일
포르투갈 왕 산초 1세의 장녀이며,
성녀 마팔다와 성녀 산치아의 언니인
성녀 테레사(Teresia, 데레사)는 레온(Leun)의 왕
알폰소 9세(Alfonso IX)와 결혼하였다.
이들 부부는 여러 자녀를 두었으나, 사촌간의
결혼이었으므로 혼인 자체가 무효혼인으로
선언됨에 따라 그녀는 포르투갈로 돌아왔다.
그 후 그녀는 자신의 영지인 로르바요에 베네딕토
수녀원을 세웠고, 시토회 규칙을 따르며 지냈는데,
한 때 그곳의 수녀 수가 300명을 헤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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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 라이네리오(Raynerius)
축일 6월 17일
성 라이네리우스(Rainerius, 또는 라이네리오)는
이탈리아 피사의 좋은 집안에서 태어났으나
어려서는 다소 경박한 짓들을 일삼았다.
그러나 그의 삼촌의 영향 때문에 산 비토 수도원의
뛰어난 수도자인 알베르투스 레카페코레와
알게 됨으로써 비로소 자신의 잘못을 뉘우치고
새로운 사람이 되었다. 그는 자신의 죄스런 삶을
뉘우치려는 뜻에서 먹기를 거부한 채 3일 동안이나
눈물만 흘렸는데, 그 이후부터 맹인이 되었다.
그의 어머니가 날마다 주님께 기도한 결과,
마침내 하느님께서 기적을 베푸시어 영혼과 함께
육신의 눈을 밝혀 주셨다.
이때부터 그는 팔레스티나(Palestina)로 가서
살았는데, 타보르 산에서 그는 십자가를 그음으로써
맹수를 쫓은 적이 있고, 또 빵을 많게 하여
가난한 사람들에게 나누어 주게 한 기적도 행하였다.
피사로 돌아온 그는 계속하여 엄격한 생활을 하다가
성 비토 수도원에서 운명하였다.
그는 기적의 성수로 치유의 은사를 베풀었으므로
‘데 아콰’라는 별명을 얻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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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 마누엘(Manuel)
성 사벨(Sabel)
성 이스마엘(Ismael)
축일 6월 17일
성 마누엘과 성 사벨(Sabel) 그리고
성 이스마엘(Ismael)은 칼케돈(Chalcedon)에서
배교자 율리아누스 황제와 평화를 협상하기 위해
페르시아에서 파견되어 온 특사들이었다.
전승에 의하면 율리아누스 황제는 그들이
그리스도인임을 알고는 모두 참수하였다.
후에 테오도시우스 황제가 그들을 기념하기 위해
성당을 봉헌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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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 몬타노(Montanus)
축일 6월 17일
군인 신자였던 성 몬타누스(또는 몬타노)는
이탈리아 연안의 폰자(Ponza) 섬으로 이송되어
목 주위에 무거운 돌을 매달고 바다에 던져져
순교하였다. 그곳의 그리스도인들이 그의 시신을
발견해서 가에타에 안장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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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 파트리키우스(Patricius),
콜룸바(Columba),
몰링(Moling)
축일 6월 17일
지랄도 캄브렌시느는 성 파트리키우스(Patricius),
콜룸바(Columba), 몰링 그리고 브로칸을 아일랜드의
4대 예언자라고 손꼽는다.
몰링은 웩스퍼드 지방의 킨셀라그 태생으로
렌스터(Leinster)의 왕손이었다.
그는 글렌달르그에서 수도자가 된 후 아캅 카인이급에
수도원을 세웠는데, 여기서 그의 영적 지혜와 표양이
유명하여 ‘테크몰링’으로 높은 공경을 받기
시작한 것으로 보인다.
한때 그는 속이 텅 빈 그루터기 속에서 살았는데,
찾아오는 손님이 없을 때에는 거의 매일 단식하며
기도생활만 한 것으로 유명하다.
그 후 그는 성 아이다누스(Aidanus)를 계승하여
페른스(Ferns)의 주교가 되었으나, 몇 년 후에
스스로 사임하고 자신의 옛 생활로 되돌아갔다.
몰린구스(Molingus)로도 불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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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 베드로(Peter)
축일 6월 17일
베드로(Petrus)는 25세 때에 부친이 다스리던
피사 공화국의 궁중을 떠나 몬테벨로의 움브리아
(Umbria) 은둔소로 들어갔다. 여기서 그는 주로
인근 마을에서 애긍을 청하면서 회개생활을
시작하였다. 1380년 그는 12명의 동료들과 더불어
기도소와 움막을 지었고, 성 히에로니무스(Hieronymus)를
수호성인으로 모심과 아울러 그의 규칙을 채택하여
‘성 히에로니무스 은수자회’ 혹은
‘성 히에로니무스의 가난한 형제회’를 설립하였다.
그의 수도자들은 연중 네 번의 사순절을 지내고,
매주 월요일과 수요일 그리고 금요일마다 단식하였다.
1393년 그의 부친과 형제들이 살해당하여 공화국이
위태롭게 되었을 때, 그를 지도자로 모시려는 신하들
때문에 한동안 유혹에 빠졌으나, 복녀 클라라 감마코르타
(Clara Gambacorta)의 표양을 따라 그는 살인자들을
완전히 용서하였다. 1421년 그의 수도회는
교황 마르티누스 5세(Martinus V)에 의하여 승인되었다.
그는 80세의 나이로 베네치아(Venezia)에서 운명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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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 베사리온(Bessarion)
축일 6월 17일
성 베사리온은 이집트 출신으로 이상한 부르심을 들은 후
사막으로 들어가 성 안토니우스(Antonius)의 제자가
되었다가, 그 후 다시 성 마카리우스(Macarius)의
제자로서 생을 마감한 인물이다.
그는 마치 새들이 지붕 이쪽저쪽으로 날아다니며
살듯이 그렇게 산 인물로 기억되고 있다.
그는 철저한 침묵과 단식으로 지냈는데, 한번은 40일간
음식을 전혀 입에 대지 않고 지내면서, 찔레 밭 속에서
산 적이 있다고 한다. 그는 지독한 가뭄이 계속되자
비를 내리게 한 적이 수차례 있고, 나일 강을 걸어서
건넜으며, 악마를 물리쳤다는 기록이 남아 있다.
대다수의 사막의 교부들처럼 성 베사리온도 수를
누렸는데 모세(Moyses), 여호수아(Iosue), 엘리아(Elias)
그리고 세례자 요한(Joannes Baptistae)에
비길 수 있다고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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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 보툴포(Botulf)
축일 6월 17일
성 보툴푸스(Botulphus, 또는 보툴포)는
중세 영국에서 가장 널리 알려진 성인이었으나,
그의 행적은 거의 알려진 것이 없다.
그의 형인 성 아둘푸스(Adulphus)와 함께 그는
수도자가 되었는데, 654년에 이카노흐에 수도원을
세웠으며 흔히 그를 링컨셔(Lincolnshire)의
보스톤에 결부시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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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 아둘푸스(Adulphus)
축일 : 6월 17일
토리니의 원장 폴카드의 기록에 따르면,
아둘포는 보뚤프와 형제지간인데,
색손의 귀족 자제로서 독일로 유학을 갔다가
수도자가 된 것이다. 아둘포는 우트렉트이거나
아니면 마에스트릭트의 주교가 된듯하지만,
분명치는 못하다. 그후 성 아둘포는
남부 앵글 왕 에텔문드의 요청으로
이칸호라는 곳에 수도원을 짓고
선교활동을 전개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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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 아비토(Avitus)
축일 6월 17일
프랑스 투르(Tours)의 성 그레고리우스
(Gregorius, 11월 17일)에 따르면 성 아비투스
(또는 아비토)는 페르슈(Perche) 옛 관구를 설정했던
프랑스의 원장이며, 오를레앙(Orleans)에 안장되어
있고 큰 공경을 받았다고 한다.
성 그레고리우스는 그의 이름으로 봉헌된 성당을
방문했으며, 그분의 기적적인 권능으로 일어난
기적들이 수없이 많았음을 인정해야 한다고 하였다.
처음에 성 아비투스는 오를레앙 근교 미시 수도원에
평수사로 입회하였다. 그는 사실 배우지도 못했고
또 너무 단순했기 때문에 성 막시미누스(Maximinus)
외에는 그를 인정하는 사람들이 하나도 없었다.
성 막시미누스는 그의 높은 성덕을 일찍이 알아보았으며,
그를 지하 보관실 책임자로 임명하였다.
그러나 그는 그 후 수도원을 떠나 은둔소로 돌아갔다.
성 막시미누스가 서거한 후에야 비로소
성 아비투스의 높은 덕을 알게 된 수도자들은 그를
찾아 원장으로 모셨다. 하는 수 없이 그는
미시 수도원에 얼마간 머물렀지만 결국은 도망하여
페르슈의 은수자로서 숨은 생활만을 즐겼다.
국왕 클로테르는 성 아비투스와 동료 은수자들을
위하여 성당과 수도원을 세웠는데, 이것이 지금의
샤토됭(Chateaudun)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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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 안티디오(Antidius)
축일 6월 17일
성 안티디우스(또는 안티디오)는
성 프로니누스(Froninus)의 제자로 스승을 계승하여
프랑스 브장송의 주교가 되었다.
그는 게르만의 무리나 이방인 침입자들에 의해
살해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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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 알베르토(Albert)
축일 6월 17일
1845년 8월 20일 폴란드 이고알로미아(Igoalomia)의
부유한 귀족 가문에서 태어난 성 알베르투스
(Albertus Chmielowski, 또는 알베르토)는 가족 소유의
부동산 관리를 위해 농업을 공부하였다.
젊어서부터 정치에 관여했고, 17세 때에는 폭도들과
싸우다가 다리를 잃었다. 크라쿠프에서 그는
인기 있고 잘 알려진 형편이 좋은 예술가였다.
정치와 예술에 대한 그의 관심은 주변 사람들의
고통에 대해 예민한 인식을 갖게 해주었다.
온화하고 열정적인 영혼의 소유자였던 그는
도움이 필요한 이들을 돕는 것에 대한 소명을 느꼈다.
그는 몇 년간의 반성을 통해 이 원의가 하느님께서
봉사에로 부르시는 성소라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그래서 그는 작은 형제회 제3회에 들어가
알베르투스라는 이름을 받았다. 예술을 그만둔 그는
크라쿠프에서 극빈자들을 위한 삶을 시작했다.
1887년 그는 설립자의 이름을 따서 알베르토회 또는
그들의 거친 회색 의상으로 인해 회색 형제회로도
알려진 가난한 이들의 종인 작은 형제회 제3회를
설립하였다.
그리고 1891년에 여자 제3회(회색 자매회)를 설립했다.
그들은 가난한 이들과 집이 없는 이들을 위해
음식과 쉼터를 제공하였다.
성 알베르투스는 우리 시대의 가장 큰 재앙은 불쌍한
형제자매들의 고통을 경감시키기 위해 노력하지
않는 것이라고 역설하였다. 그는 ‘가진 이’들이
‘가지지 못한 이’들을 무시하고 그들로부터 떨어져
지내며 다른 사람들이 그들을 보살피도록 방치했다고
비판하였다. 훗날
교황 요한 바오로 2세(Joannes Paulus II)가 된
카롤 보이티야(Karol Wojtyla)는 1949년에
성 알베르투스에 관한 유명한 연극의 대본을 썼는데
1997년에 ‘우리 하느님의 형제’라는 제목으로
영화화되었다.
1916년 12월 25일 폴란드의 크라쿠프에서 사망한 그는
1983년 6월 22일 교황 요한 바오로 2세에 의해
크라쿠프에서 복자품을 받았고, 이어 1989년 11월 12일
같은 교황에 의해 로마 성 베드로(Petrus) 광장에서
시성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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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 이사우루스(Isaurus)
성 인노켄티우스(Innocentius),
성 펠릭스(Felix),
성 예레미야(Jeremias)
성 페레그리누스(Peregrinus)
축일 6월 17일
성 이사우루스(Isaurus) 부제,
성 인노켄티우스(Innocentius), 성 펠릭스(Felix),
성 예레미야(Jeremias)와 성 페레그리누스
(Peregrinus)는 아테네 사람들로서 박해를 피해
마케도니아(Macedonia)의 아폴로니아(Apollonia)에
있는 한 동굴에 피신해 있다가 발각되어 모두
참수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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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 헤르베오(Herveus)
축일 6월 17일
성 헤르베우스(또는 헤르베오)는 프랑스 북서부
브르타뉴 전역에서 공경을 받는 성인이지만
그의 생애에 대해서는 거의 알려진 것이 없다.
그는 영국 음유시인의 아들인데 태중 소경으로 태어났다.
그래서 그의 부모는 아들의 이름을 쓰라림 또는
비통을 뜻하는 헤르베우스로 지었다.
그는 젊어서 은수생활을 시작한 뒤로 플루빈(Plouvien)
수도원의 원장으로 있다가 운명하였다.
그 후부터 그의 이름은 영국의 일반적인 이름 가운데
하나가 되었다. 하비(Harvey) 또는
헤르베(Herve)로도 불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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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 히메리오(Himerius)
축일 6월 17일
성 히메리우스(또는 히메리오)는 이탈리아 남부
칼라브리아(Calabria) 지방에서 태어났다.
그가 움브리아(Umbria) 지방 아멜리아(Amelia)의
주교로 임명되었을 때 그는 수도자였다.
그는 먼저 자신에게 그리고 다른 사람에게도
매우 엄격한 사람으로 묘사되고 있다.
그는 560년 아멜리아에서 선종하였다.
995년 그의 유해가 크레모나로 이장되어 그곳의
주요 수호성인으로서 공경을 받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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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 히파시오(Hypatius)
축일 6월 17일
성 히파티우스(또는 히파시오)는 소아시아 중서부
지방의 옛 지명인 프리지아(Phrygia)에서 태어나
학자인 아버지로부터 교육을 받았다.
그러나 그 자신은 공부보다는 은수자 생활을
더 원했기 때문에 19세 때 부친으로부터 모진 매를
맞은 뒤로 집을 나와서 수도자가 되려고 방랑생활을
시작하였다. 그는 목동 노릇을 하며 기회를 기다렸다.
하루는 어느 사제가 시편을 노래하는 그를 보고
전직 군인 출신의 요나(Jonas)라는 은수자와
만나게 해주었다.
그 후 그는 부친과 화해하고 본격적으로 은수생활을
하였다. 그는 고대 소아시아 북서부 비티니아(Bithynia)
지방의 콘스탄티노플(Constantinople)과 칼케돈
(Chalcedon)으로 가서 옛 수도원을 부흥시켰고,
네스토리우스(Nestorius) 이단에 대항하여
정통교리 고수를 위하여 혼신의 노력을 기울였다.
그는 ‘그리스도의 학자’라는 별명을 들으면서
활동하였고, 특히 그의 기적과 예언은 수많은
사람들을 그리스도께 인도하는 계기가 되었다.
그는 80세의 일기로 선종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