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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별(번개) 산행앨범

비계산 운무에 취하고, 꽃뱀 앞에서 멈추다.

작성자정진관|작성시간26.06.08|조회수149 목록 댓글 8

▪산행 일시 :2026년  06월 03일
▪산행 장소 / 코스 : (지산동 마을회관)-시루봉-비계산-마장재(말목재)-우두산- 
                         의상봉(왕복)-작은가야산-단지봉-남산제일봉-매화산-지산동 마을회관
▪소요 시간 : 9시간 44분(이동시간:8시간41분, 휴식시간 : 1시간02분)
▪도상거리 : 23km(총거리 24km)
▪평균속력 : 2.66km/Hr
▪참석 인원 : 주단장, 여성대장, 나
▪고도(고,저) : 1,132m,  292m
 
비계산 운해에 취하고, 꽃뱀 앞에서 멈추다.
 
갑자기 구미된 산행이고 따지고 들면 올 수 없는 형편이었지만 또한, 무리하면 안 될 것도 없는지라 그 덕에 잠을 설치고 참가하게 된다.
주단장 역시 잠이 충분치 않아 겨우겨우 5시를 넘겨 지산동 마을에 도착하고서는 잠시 눈 좀 붙이고 가 잖다. 약 25~30분가량 앉은 채로 꿀 같은 단잠을 자고, 느릿느릿 산행 준비를 마치고 출발하려는 순간 트럭운전을 하고 가던 사람이 차를 세우고 창문을 내리더니 등산하려고 하냐? 어느 산을 가려고 하냐? 하며 따지듯 묻는다.
아, 여기에 주차하면 안 되는구나. 하는 생각이 스친다.
추차 때문이라면 간단 명료하게 여기는 사유지라 안 되니 다른 데로 옮겨라 하면 되는데, 자꾸 어느산을 가려하는지를 묻는다.
그도 그럴 것이지, 지산마을에서 갈 수 있는 산이 없는데 배낭을 메고 까불고 있기 때문이다.
동네 뒷산 매화산과 남산제일봉은 이쪽 방면에서는 비탐구역이고 사람들이 다니지 않아 등산로가 제대로 나 있지 않고, 비계산이나, 우두산 역시 이쪽에서는 등로가 없고 반대편에 주 등산로가 있기 때문이다. 그나마 가장 가까운 비계산의 등산로도 3km 정도 도로를 따라 가야만 있는데  이른 새벽부터 갈 곳도 없는 곳에서 왜 이 사람들이 배낭을 메고 어느 산에 가려고 하나 궁금했던 모양이다.
보통 사람 같으면 그러거나 말거나 그냥 지나쳤을 텐데 젊은 시절 등산학교도 나오고 바위도 꽤 탓던 사람으로 이 동네 이장을 보는데 그냥 지나칠 수가 없었다고 한다.
그래서 우리는 무작정 온 게 아니라 이러이러한 산행계획이 있고, 산행을 마치고 차량회수가 수월한 이 곳에 주차 했노라 얘기했다. 그랬더니 그래도 차는 어느 어느 마을에 세우고 어떤 코스로 가라고 조언을 해 주며, 비계산 초입까지는 좀 먼데 갈 수 있나 하고 갸웃뚱 하시는 끝에 주단장이 들릴똥 말똥“이장님이 데려다 주시면 좋고요.” 라고 하는 것을 듣고는 흔쾌히 승낙하신다.
오늘도 일면식도 없고 만날 일도 없는 사람에게 신세를 졌다. 그냥 지나쳐도 뭐라고 할 사람 하나 없는데 걱정이 돼서 등산 정보를 알려주고, 배달의 도움까지 받았다.
뜻하지 않은 이른 새벽에 양늠 지갑을 주운 기분이다.
이런 분들 때문에 아직은 세상이 따듯 해지는 거 같다. 산행 와서 산행도 하기 전에 사람 사는 세상을 한 수 배우고 시작한다.
차에서 잔 시간을 만회했다.

등산로 입구의 이정표

 

비계산 초입

짧으면 2m , 길면 3m


등산로 초입에 비계산 6.2km라고 되어 있다. 중간 중간 거리 표시가 되어 있으나 거리가 맞지 않는다. 비계산 정상까지는 약 3.2km가 정확하다.
산행 시작부터 된비알을 오른다. 잠시 오르다 보니 여대장이 보이지 않는다. 좋은 기회라 생각했다. 출력을 100% 내서 얼른 도망가서 쫓아오지 못하게 할 요량이었으나, 티코 100% 출력내면 뭐하나 제네시스 50% 출력만 내도 금방 잡히는 것을. . . .
젠장 1km지점인 시루봉 절반도 못 가서 잡히고 말았다. 이실직고하고 지금부터는 사이좋게 진행하기로 한다.
수도지맥인 산제치에서 올라오는 능선길을 만난다. 비계산에 근접했다는 얘기다.
숨가쁘게 산을 오르는 동안 어깨를 짓누르던 세속의 욕심들은 땀과 함께 흘러내리고,
정상에 닿았을 때 발 아래 펼쳐진 운해는 골치 아픈 속세를 말없이 덮어 버렸다.
구름속에 잠긴 저 세상은 한 폭의 수묵화가 되고, 그 위에 선 나는 가벼워진 마음으로 하늘과
가장 가까운 곳에 선다. 이 맛에 산에 온다.
그 풍경 앞에서는 그토록 움켜쥐려 했던 것들도 모두 부질없어 보이고, 각박한 세상살이에
옹졸해진 마음이 순간이나마 세상근심이 바람에 흩어진다.
이따가 다시 내려가면 말짱 도루묵 되겠지만 적어도 이 순간만큼은 내가 세상을 내려다보는
사람이었다. 많이 째려보고 간다.
내려가면 세상이 나를 또 째려보겠지만.

많이 째립니다.

 

비계산 정상



비계산 정상석은 두개나 된다. 하나는 합천에서 세운 거, 또 하나는 거창에서 세운 거.
아마 능선을 기준으로 좌측, Y자 출렁다리 쪽은 거창, 오른쪽 해인사 방향은 합천, 이렇게 되는 모양이다.
비계산 정상까지만 오르면 그 이후는 능선을 따라 가기 때문에 견딜 만하다.
오늘 가는 4개의 산중에서 우두산은 Y자 출렁다리와 항노화 힐링센터 때문에 사람들이 많이 찾는 거 같고, 비계산은 조금은 길게 타고 싶은 사람들이 비계-우두 연계산행을 하는 거 같고
남산제일봉도 해인사 쪽에서 많이 오르고
매화산은 가는 놈이 이상한 거 같다.
아니, 오늘 보니 셋이나 있는 걸 보니 꼭 그런 것 만도 아닌가 보다.
간밤의 비가 남은 건지 새벽이슬이 이파리에 맺힌 건지 발을 옮길 때마다 종아리와 허벅지를 통해 전해오는 차가움이 상쾌하고 시원하다. 옷은 젖어 오지만 싫지 않다.

산행중에 작고 앙증맞은 꽃을 하나 만난다. 아마 처음 보는 듯 하다.모양은 철쭉을 닮았는데 감꽃 보다도 작은 거 같다. 검색을 해보니 고산지대에서 서식하는“흰참꽃나무”라고 한다. 천고지의 이 일대가 살아가기가 좋은 모양이다.

흰참꽃나무


우두산에서 0.6KM 떨어진 곳에 의상봉이 있다. 바위풍경과 산세가 좋아
고견사->의상봉->우두산으로 이어지는 산행 코스이기도 하다.

계단에서도 딱 5계단
 

 

 

주단장이 꼭 왕복해야 한다 하기에 배낭을 놓고 간다. 힘은 들어도 갔다 올만 하다. 충분한 보상이 된다.
우두산에서 단지봉까지 약6KM인데, 중간지점인3km지점까지는 수도지맥 길이고, 예서 남산제일봉과 매화산으로 이어지는 매화분맥으로 분기된다. 이 길을 따라 남산제일봉으로 향한다.
길은 점점 드러워진다. 암릉이 나오고 험한 것은 충분히 이해하나, 죽은 나무들이 시위하는 것도 아니고 등로에 죽~ 드러누워 여간 성가신게 아니다. 그만큼 사람들의 발길이 뜸하다는 반증이다.
그럼에도 신기하게 잘 찾아간다. 암릉을 오르내릴 때면 여실이 들어나는 키 작은 사람의 비애.
바위가 높아 어디 잡을 데가 없는데 센스 없이 손도 안 잡아준다는 여대장의 고함이 뒤에서 날아온다. 놀라서 되돌아가 끌어올리기를 수차례. 산에서는 체력보다 눈치가 더 중요하다.

남산제일봉 정상에 감시 카메라와 초소가 있다. 감시가 심하고 걸리면 딱지를 끊는다고 하는데, 무작정 한번 디밀어 본다. 어휴 다행이다.
정상 인증을 하고 되돌아오는데 갈 때는 보지 못한 카메라가 초소 위에서 내려다 본다..
경고음도 방송한다는데 오늘은 꺼졌나 보다.
남산제일봉, 18km 지점이다. 매화산은 2km 떨어진 20km 지점이다.
길은 점점 드럽다 못해, 지저분해진다. 등로는 희미해져 가고, 잡목은 쓰러져 발목을 잡고, 그래도 간간히 “J3와 소백아님”의 시그널이 방향을 일러준다.


매화산 하산길에 바로 뒤에 오던 여대장이 비명을 지르며 오지도 못하고 팔짝팔짝 뛴다. 위험물을 발견했으면 멀리 도망을 가야지 도망도 못 가고 왜 그 자리에서 뛰는지 모르겠다. 이유를 물어보니 뱀이 있다는데 나는 도무지 보이질 않는다. 손가락으로 방향을 가르켜 한참만에 똬리를 틀고 있는 뱜을 찾았다. 유혈목이 이였다. 화려해서 일명 꽃뱀이다.
전체적으로 푸른바탕에 검은 가로점이 있고, 목주변이 붉은색과 노랑색이 섞인 화려한 무늬가 특징이다. 과거에는 독이 없는 것으로 알려졌으나 근래는 독사로 분류한다. 다만 독니가 위턱 뒷부분에 있어 덜 위험하다고 볼 수 있다.
옛날 시골에서는 이 율목이에 물리면 독이 없다고 병원도 가지 않았다.
뱀이 얼마나 놀랬을까? 등산화에 밟혔으면 즉사인데 사람보다 뱀이 더 놀란 것 같았다.
뱀도 한참을 그렇게 진정을 한 뒤, 유유히 사라진 뒤에야 우리도 진행할 수 있었다.
 
사람이 다니지 않은 하산길 3km가 여간 지루하게 느껴지는 게 아니다. 오를 때는 산이 높아 힘들고, 내릴 때는 길이 험해 힘들고, 마지막에는 빨리 끝났으면 좋겠다는 생각뿐이다. 매화산을 지나 지산동 마을이 가까워질수록 발걸음은 무거워지고 입은 점점 말이 없어진다.
그래도 끝은 온다.
아침에 출발했던 마을회관이 보이고, 차가 보이는 순간 긴장이 풀린다. 비계산, 우두산, 의상봉, 작은가야산, 단지봉, 남산제일봉, 매화산까지. 이름만 들어도 제법 묵직한 산들을 한 줄로 엮어 돌아 나온 셈이다.
힘들었던 기억은 이상하게도 주차장에 도착하는 순간부터 조금씩 미화되기 시작한다.산은 그대로였고 우리는 잠시 다녀왔을 뿐인데, 돌아설 때는 또 언제 이런 코스를 가 보겠냐는 말이 자연스럽게 나온다. 역시 산꾼들은 기억력보다 망각력이 더 좋은 종족인 모양이다.
 
에필로그
오늘 산행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은 비계산의 운해도, 우두산의 암릉도, 남산제일봉의 아찔한 풍경도 아니다.
새벽부터 처음 보는 등산객들을 걱정해 차를 세우고 말을 걸어 준 이장님이다.
요즘 세상은 점점 각자도생이라 하지만, 아직은 낯선 사람에게 선뜻 손을 내미는 사람들이 있다. 어디로 가느냐고 묻고, 길을 알려주고, 급기야 등산로 초입까지 태워다 주는 수고까지 마다하지 않았다.
덕분에 우리는 편하게 산행을 시작했고, 덕분에 하루 종일 기분 좋게 걸을 수 있었다.
산은 풍경을 보여주지만, 사람은 온기를 남긴다.
비계산의 운해는 언젠가 흐려질 것이고, 남산제일봉의 조망도 시간이 지나면 희미해 지겠지만, 새벽 공기 속에서 만난 그 따뜻한 호의는 오래 기억에 남을 것 같다.
오늘도 산에서 길만 배우고 온 것이 아니라 사람 사는 세상도 조금 배우고 왔다.
그리고 좋은 풍경 하나, 좋은 사람 하나를 마음속에 담아 왔다.
 
 
 

하산길도

뱜 출연 후에는 아예 잡혀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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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댓글 리스트
  • 답댓글 작성자정진관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 작성시간 26.06.10 여대장
    합천 미아 만들려고 했는데
    능력이 안 되서 . . . .
    사이좋게 지내기루.
  • 작성자거북이1 | 작성시간 26.06.09 좋은 분을 만나고 오셨군요
    고생하셨습니다.
  • 답댓글 작성자정진관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 작성시간 26.06.10 그러게요.
    뜻하지 않게 귀인을 만나
    수월했습니다.
    감사합니다.
  • 작성자산나그네 | 작성시간 26.06.09 우리
    고문님 산행기 도 잘쓰시고
    산행시력도 최고이시고
    정말 멋지십니다
  • 답댓글 작성자정진관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 작성시간 26.06.10 광대장 칭찬에 어깨가 으쓱해 집니다.
    그렇게 봐 주시니 고맙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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