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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믿음의글]일곱 형제의 천국 가는 길

작성자꼬마인형|작성시간06.08.15|조회수254 목록 댓글 0

10월 중순, 기환이에게 자신의 소유인 그 집에 교회를 세우는 것이 좋겠다는 나의 생각을 전했다. 흔쾌히 승낙하며 필요한 대로 사용하라고 했다. 김현양과 강동은도 찬성했으며 영광군 금산에 사는 기환이 누나 김선자 씨도 교회가 세워지면 참 좋겠다고 했다. 그녀는 적극 찬성할 뿐 아니라 불쌍한 동생들을 생각해서 여섯 그루의 나무를 심겠다고 했다.
살인자로서 사형이 확정되었지만 수형 생활이 모범적이었고 계속 참회하며 열심히 전도하던 김현양이 갑자기 병이 나서 구치소 병동에 입원하게 되었다. 간염과 결핵이어서 장기간 치료가 필요하다는 것이었다. 그때가 7월 하순이었다.
교도소의 규칙상 사형수가 병이 나면 치료한 후에 형을 집행한다. 공범자가 병이 나면 다른 공범자도 집행이 연장되는 것이 관례였다. 그래서 당국은 지존파들의 형 집행 연기가 현실적으로 불가피해졌다.


그 여섯 아이들이 모범수로서 열심히 믿음 생활을 하니까 하나님께서 긍휼을 베푸셔서 그들의 생명을 연장시켜 주심을 믿고 매일 감사의 기도를 드렸다.
"하나님 아버지, 이제는 진짜 지존파가 된 여섯 아이들의 생명을 연장시켜 주시니 감사합니다. 성령충만하게 하셔서 같이 생활하는 감방 동료들을 섬기며 구치소 내의 믿지 않는 교도관들과 재소자들을 열심히 전도하도록 도와 주십시오. 우리 나라 교정사에 처음으로 큰 기적을 일으키셔서 하나님이 살아 역사하심을 나타내시며 영광 받으시기를 주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8월이 되었다. 러시아 선교 여행을 떠나면서 여섯 아이들에게 당부의 편지를 다시 써 보냈다.

너희들을 구원하여 주신 주님께 일천번제(예배)를 드려라. 매일 아침 저녁으로 예배를 드리고 열심히 전도하여라. 고재봉을 능가하는 전도자가 되어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라.


기도하며 앞으로 해야 할 일들을 계획했다. 첫째, 여섯 아이들이 세상을 떠날 때 지은 죄에 대한 속죄의 표시로 자신의 몸을 국민에게 바치도록 설득하여, 장기 기증 동의를 받아내는 일이었다. 그 후 그 가족들을 만나서 이해시키고 동의를 받아 환자 30명 이상을 살리는 일을 서둘러 해야 했다.
둘째, 가장 피해를 많은 입은 고(古)소윤오, 박미자 집사의 두 딸 은희와 은선 자매에게 우리 교회에서 장학금을 지급하고 있었는데, 두 자매에게 지존파를 그리스도의 사랑으로 용서하며 김기환의 협박 때문에 미성년자였을 때 불가항력으로 범죄 단체에 가담한 강문섭(21세), 백병옥(21세)에 대해서는 대통령에게 감형의 탄원서를 제출해 줄 것을 간청하는 것이었다.
셋째, 그 아이들의 범죄 아지트였던 아골 골짜기 영광군 불갑면 금계리 81번지 가옥을 공동 재산이었지만 등기 권리자 김기환으로부터 인수하여 교회를 세우기로 작정했다.


10월 중순, 기환이에게 자신의 소유인 그 집에 교회를 세우는 것이 좋겠다는 나의 생각을 전했다. 흔쾌히 승낙하며 필요한 대로 사용하라고 했다. 김현양과 강동은도 찬성했으며 영광군 금산에 사는 기환이 누나 김선자 씨도 교회가 세워지면 참 좋겠다고 했다. 그녀는 적극 찬성할 뿐 아니라 불쌍한 동생들을 생각해서 여섯 그루의 나무를 심겠다고 했다.

나는 그 곳에 교회 설립의 필요성을 당회에 보고하고 그 곳에 가서 사역할 사명감이 투철한 교역자를 물색하면서 영세 교회 김충열 목사님을 만나 뵙고 지존파들이 회개하고 예수님을 구주로, 주님으로 영접하였으며 매일 참회하면서 열심히 전도하고 있는 사실을 설명 드렸다. 김 목사님께서는 나의 제안에 동의하시고는 강문섭과 백병옥의 감형을 위해 은희와 은선 자매를 불러 이해시키며, 대통령에게 탄원서 제출하는 일에 협조하겠다고 약속해 주었다. 고등 법원에서 현영이와 문섭이를 변호했던 국선 변호인 박연철 변호사도 협조하기로 하여 10월 30일 탄원서를 작성했다. 문섭이와 병옥 두 아이가 감형되면 신학 공부를 시켜 교도소 전도에 평생을 헌신케 하려 했다.
11월 첫 주에 구명 탄원서를 제출하고, 전남 영광군에 가서 김기환, 강동은, 문상록의 가족과 부안에 가서 백병옥의 부모를 만나 설득하여 사전에 장기 헌납 동의를 받아 서울 구치소와 협의할 계획이었다. 우리 교회의 전도 폭발 17기와 마리아회, 금요 철야 예배에 기도 부탁을 했다. 그런데 말로만 듣던 청천벽력의 날이 오고야 말았다.


글 : 이재명 객원기자

 


어머니 죄송합니다. 먼저 가는 불효자를 용서하십시오. 피해자와 그분들의 가족과 모든 분들께 사죄 드립니다. 보살펴 주신 분들에게 감사 드리며 집은 교회 설립하는 데, 시신은 의과 대학에 실습용으로 기증하겠습니다.
1995년 11월 2일 목요일이었다. 지존파 6명과 함께 사형수 15명의 형이 집행되었다. 이상하게도 나는 며칠 전부터 혼란한 꿈을 꾸느라 밤마다 몹시 괴로웠었다. 형 집행에 대한 예고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11월 1일 집행 정보를 입수하고서 내 귀를 의심했으나 사실이었다. 계획한 일이 수포로 돌아가기 때문에 기가 막혔다. 게으름을 피운 건가 싶기도 하고 내 정신이 아니었다.
“하나님 아버지. 제가 게으름을 피웠습니다. 그러나 조금만 더 연장하여 주셨으면 더 큰 영광을 받으셨을 터인데 너무 하십니다.”
주님께 항의를 해보았지만 그게 다 무슨 소용인가. 사형 집행 당일인 악몽의 목요일 하루 종일 아이들의 사형당하는 모습이 자꾸만 연상되어 머리가 아프고 마음을 걷잡을 수가 없었다. 옆에 있던 교인들은 왜 그러느냐고 물었다. 기밀이 누설되기 때문에 이야기도 할 수 없었다. 정 집사님이 사다 준 신경 안정제를 먹고 조금 안정이 되었다.
오후 3시경 신문사로부터 집행 소식을 알려 주는 전화가 계속 왔다. 심정이 어떠냐고 물어 왔지만 할 말이 없다는 말로 일관했다.


저녁에 집행 소식이 왔다. 그들 모두 구원의 확신을 가지고 의연하게 집행에 응했으며 한 사람 한 사람 경건하게 예배를 드리고 나서 다시 피해자와 그 가족들에게 사죄하고, 좋아하는 찬송을 한 장씩 부른 후 주님께 의탁하는 기도를 드리고서 목에 건 줄이 숨을 끊는 순간 비명도 지르지 않고 큰소리로 “할렐루야”하며 모두 기쁨으로 세상을 떠났다. 서울 구치소 생긴 이래 사형 집행 시 처음으로 큰 은혜가 넘쳐 감동의 도가니가 되었으며 하나님께서 영광 받으시는 거대한 한 편의 드라마였다는 소식을 전해 듣고 감사의 기도를 드렸다. 나는 그 아이들의 집행 사실을 당회에 보고하면서 우리 교회에서 그들의 장례를 치러 줄 것을 요청했다. 당회에서 승낙이 났으며 장로님들과 루디아 회원들이 발인 예배 참석을 준비하였다.
밤중에 기환 군의 누나 김선자 씨가 울먹이는 목소리로 전화를 했다.
“기환이의 시신을 인도해 가라는 전보를 받았습니다. 이 선생님 어떻게 하죠?”
강문섭의 누나와 고모로부터 같은 내용의 전화가 왔다. 나는 이렇게 말했다.
“그들이 세상에서 짧게 살았지만 우리보다 먼저 천국에 가서 영생 복락 누리며 삽니다. 슬퍼하지 마세요.”
그 말밖에는 달리 위로할 말이 없었다. 장례는 우리 교회에서 합동으로 할 예정이니 다음날 아침 8시에 구치소에서 만나자고 약속하였다.


이인수 집사님과 함께 서울 구치소에 도착하였다. 초겨울 아침의 기온이 꽤 추운데도 가족들은 건물 안에 들어오지도 못하고 바깥 주차장에 초라한 행색으로 웅크리고 서서 울고 있었다. 나와 이 집사님은 유족들을 만나 위로하고 장례 절차를 협의했는데 유족들은 교회에서 합동으로 장례를 치러 주기를 원했다. 나는 전도 폭발 본부의 이창호 목사님과 루디아 선교의 정관교 목사님, 「우리지」편집 위원 민지영 권사님에게 전화를 드려 즉시 서울 구치소로 오시도록 요청하였다.
이 목사님과 권사님이 오셨고 교도관 신우회 회장님에게 교회에서 장례를 치르겠다는 이야기를 전했더니 교무과와 의논해 보아야 한다고 했다. 잠시 후 회신이 왔다. “구치소 측 얘기로는 한 교회가 장례를 치르게 할 수는 없답니다. 종교 위원회에서 하도록 조치하겠다고 합니다.”


가족들이 쓰고 남은 영치금과 유품을 인수하는데 강동은의 것을 살펴보았다. 내가 보낸 편지와 성경, 「세계 기도 정보」책이 깨끗하게 보관되어 있었다.
집행 전날, 교도관 신우 회원들에게 나는 간절히 부탁했다.
“지존파들이 예수 그리스도의 제자로 거듭나서 열심히 전도하는 것에 감명을 받아 신우 회원들이 그들의 생명 연장을 위해 기도하며 물심 양면으로 도와 주신 것에 감사드립니다. 아무리 믿음이 견고하고 담대하더라도 사형장으로 끌려갈 때 믿음이 약해지며 흔들릴 것입니다. 신우 회원님들이 그 아이들의 마지막 가는 길을 인도해 주시기를 부탁합니다.”
회원들은 교도관들도 마다하는 일을 자원하여 이 세상 떠나는 그들을 인도하며 확신을 심어 주었다. 또한 예배를 드리며 형 집행이 끝날 때까지 쉬지 않고 온종일 찬송을 부른 그들의 시신을 안치소에 고이 운반하였다. 천사도 흠모하는 귀한 일을 했던 것이다.
3888번 기환이가 예배를 드린 후 남긴 어록을 보았다. 그는 그날 첫 번째로 형이 집행되었으며 그때 나이 31세였다.


어머니 죄송합니다. 먼저 가는 불효자를 용서하십시오. 피해자와 그분들의 가족과 모든 분들께 사죄 드립니다. 보살펴 주신 분들에게 감사 드리며 집은 교회 설립하는 데, 시신은 의과 대학에 실습용으로 기증하겠습니다.

1471번 김현양은 예배를 드리고 좋아하는 405장 찬송을 부르고 울먹이며 “하나님 감사합니다. 할렐루야.” 성호를 외치며 갔다. 집행 현장에 벗어 놓은 흰 운동화에 볼펜으로 성구 두 구절이 적혀 있었다. “오늘 네가 나와 함께 낙원에 있으리라”는 누가복음 23장 43절 말씀과 “내일 일을 너희가 알지 못하는도다 너희 생명이 무엇이뇨 너희는 잠깐 보이다가 없어지는 안개니라”는 야고보서 4:14 말씀이었다. 보고 있던 사람들이 모두 놀랐다. 이 아이는 예견을 하고 집행 보름 전부터 몸과 마음을 깨끗이 해야겠다며 금식했고 신발에 성경 말씀을 적어 두고 준비했던 것이다. 신우 회원들은 “오, 하나님 감사합니다! 준비시켜 데려가시는군요”하고 고백했다. 현양이는 모든 교도관들로부터 사랑을 받았던 터라 믿지 않는 교도관들이 집행 소식을 듣고는 현양이를 보러 달려왔다. 현양이는 나에게 전해 달라며 감방 동료에게 두 권의 책과 마지막 편지를 남겼는데 그 중 한 권은 내가 넣어 준 「현대인의 성경」이었다.


1273번 강동은이 복도에 대기 중이었다. 한 신우 회원이 동은이에게 뛰어가 물었다.
“동은아 두렵니?”
“아뇨.”
그리고는 하얀 이를 드러내며 해맑게 웃었다.
“이재명 선생님이 너를 무척 보고 싶어하셨는데….”
“빚 많이 지고 갑니다. 안부 전해 주세요. 천국에서는 제가 잘해 드릴 겁니다. 주님 이 죄인이 주님 품에 안기기를 원합니다. 이 죄인을 받아 주시옵소서.”
마지막 순간에 하늘을 우러러보며 “하나님! 할렐루야”를 얼마나 큰소리로 외치는지 집행관들 입에서 “확실한 놈이야”라는 말이 절로 나왔다.


1429번 상록이는 천주교 예식을 하였다. 처음 복음을 전하였을 때 불교 신자라며 거부하다가 주님을 영접하여 교회에서 세례를 받으려 했는데 지연되어 천주교에서 영세를 받았기 때문이었다. 1431번 강문섭은 유난히 겁이 많고 어깨가 들썩거려 신우 회원들이 양 옆에서 그의 어깨에 손을 얹고 기도했다.
“주여, 이 어린 종에게 은총을 내리소서!”
마지막 예식이 끝나고 확신이 없는 겁먹은 얼굴이라 한 회원이 그의 귀에 대고 말했다.
“다섯 명이 앞서가서 네게 손을 내밀고 기다리고 있다. 예수님께서 마중 나오신다. 하늘 문이 열려있다.”
‘탕’하는 순간 벽력 같은 소리로 “오 하나님 할렐루야”를 외치며 그는 갔다. (3편으로 계속)


글 : 이재명 객원기자


너희들이 가기 전에 좀더 많은 사랑을 주지 못해 미안하다. 이 세상에서는 심판을 받았지만 이 세상을 떠나는 마지막 순간에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며 먼저 천국에 들어가 복락을 누리누나. 이제 너희들은 외로운 갈대가 아니다. 주님 곁에서 가족들과 피해자 가족들과 가난한 이웃과 이 나라에 복 내려 주시기를 기도하여라.
강문섭과 백병옥은 21세였다. 김기환, 김현양, 강동은, 문상록은 1,2심 재판에서 나이 어린 동생들을 살려 달라고 호소했었다.
1423번 백병옥은 말수가 적었는데 방언의 은사까지 받아 그 동안 방방 뛰며 전도하던 애였다. 찬송을 부른 후 “할렐루야”를 외치며 갔다. 「성도들의 안식」이란 책을 넣어 달랬는데 늦게 도착하는 바람에 못 읽고 갔다.
병옥이는 성령이 충만하여 집행 장에 있는 모든 관계자들에게 10분 동안 전도하고 간절히 기도하였다. 그리고 떠났다.
“저는 예수님을 믿기 때문에 지금 천국에 들어갑니다. 여기 계시는 분들 중에 예수 안 믿는 분들은 예수님 믿고 구원받으세요. 주님, 저를 받아 주시옵소서. 할렐루야!”


그 악독하던 온보현과 박한상에게도 영치금과 물품을 넣어 주고 편지를 보냈으나 전혀 응답이 없었다. 지존파를 존경한다며 양민 35명을 죽여 세상에서 최고 악당이 되겠다던 1659번 온보현도 함께 집행을 당하게 되었다. 앞의 사람을 집행하다 줄 세 가닥 중 하나가 끊어져 줄을 교체하는 관계로 20여 분 더 연장되는 특혜를 누렸다.
한 교도관 신우 회원이 속으로 ‘이때다, 온본현에게 복음을 전하자. 성령님 도와 주세요.’하며 중간 지점의 대기실로 뛰어갔다. 일곱 여덟 명의 교도관들에게 둘러싸여 초조하게 기다리고 있는 그에게 다들 “보현 씨”하며 위로하고 있었는데 달려간 회원이 성령이 충만하여 큰소리로 외쳤다.
“야! 온보현 정신차려! 내 말 잘 들어. 너는 35년 간 살다 가지만 네 죄를 회개하고 예수님을 믿으면 죄 사함 받고 영생을 선물로 받아 천국에 들어가 영원한 복락을 두리며 산다. 기회는 지금뿐이다.”
집중적으로 복음을 전했던 것이다. 그 순간 그가 고백했다.
“저는 죽어 마땅한 죄인입니다.”
죄인임을 참회하고 예수님을 영접했다. 마지막 순간 기이한 일이 일어났다. 종교란에 아무 표시가 없는 사형수는 구치소장이 즉시 집행 명령을 하는데 어찌된 일인지 관례를 깨고서 “온보현 씨, 어떤 종교 의식을 원하십니까?”하고 물었다. 그러자 그는 “기독교 예식을 원합니다.”라고 대답했다. 목사님의 기도와 사죄와 구원의 확신에 대한 물음에 가늘게 “예”라고 대답하고 힘있게 부르는 찬송가를 들으며 “하나님 용서하십시오, 할렐루야”외치며 갔다.
그렇게 하여 온보현에 대한 전도 특공 작전은 1년 만에 성공리에 끝났다. 내가 복음을 전하지 못하였으나 기도가 응답되어 훈련생 정 집사가 복음을 훌륭히 전하여 결신했다. 목을 매는 줄이 끊어지며 기다린 20분이 마지막 축복의 전(殿)이 될 줄 몰랐다. 하나님께서는 택한 백성을 구원하시기 위해 기이한 방법을 사용하셨다.


그날 오전 7시 30분부터 오후 3시 30분까지 그 긴 시간을 신우 회원들은 찬송가 188장 “만세 반석 열리니 내가 들어갑니다”를 목터져라 부르며 자원 봉사를 했다.
집행 당한 15명의 형제 중에 10명이 기독교, 4명이 천주교, 1명이 불교였다. 장례에 참석하러 온 사람들은 구치소 명적과 교도관의 안내를 받아 장례 식장으로 갔다.


15척 하얀 담을 네 귀퉁이에 망루가 높이 보였다. 왼편의 긴 담을 돌아 북쪽 뒷문의 쪽문이 열리며 “김기환 가족 들어오세요.”하는 소리가 들렸다. 누나 소녀 씨와 형 경환 씨가 관 속의 얼굴을 보고 나와 통곡을 했다. 관 속에 누워 있는 모두의 얼굴이 편안히 잠자고 있는 것 같다고 했다. 대춧 빛 관 위에 놓인 갱지에는 사자(死者)들의 이름이 표시되었으며 가족들은 그 앞에 차례로 인도되었다. 나는 준비한 국화를 가족들에게 나누어 주며 관 위에 얹게 했다. 땅 바닥에 깔린 헌 담요 위에 각목을 듬성듬성 놓고 그 위에 관을 일렬로 놓았다.
가족을 비롯해 많은 사람들이 발인 예배에 참석했다. 사형 집행 예배를 주관했던 구치소 종교 위원장 문장식 목사님이 예배를 인도하셨다. 세상을 떠나가는 그 형제들의 구원의 확신에 찬 마지막 모습을 한 사람씩 한 사람씩 상세하게 소개하여 예배가 은혜로운 전도의 현장이 되었다. 그토록 감격스러운 발인 예배는 처음이었다. 가족의 애도 속에 기환이의 시신은 병원에 기증되었다. 상록이는 천주교로, 현양이와 동은이, 병옥이는 기독교 예식으로 발인 예배를 드리고 오열 속에 화장터로 영구차들이 쓸쓸히 떠나갔다.


이제는 그 아이들이 가고 없기 때문에 편지를 쓸 필요도 없고 영치금도 책도 옷도 넣지 않아도 된다. 그 동안 비가 오나 눈이 오나 이인수 집사님과 함께 구치소를 50회나 다녀왔다. 집사님의 깊은 믿음과 사랑의 수고에 감사 드린다.
그들의 양육을 위해 결연을 맺은 목사님과 성도님들이 베푼 사랑과 수고가 참으로 많았고, 신우 회원들의 영혼 사랑의 실천은 참사랑이었으며 눈물겹도록 나를 감동케 했다. 돌아오는 길에 나는 차 안에서 사랑의 하나님 아버지께 함께 수고한 모든 사람들에게 큰 축복 내려 주시기를 간절히 기도했다.
국가가 살인범에 대하여 사형을 집행하는 것은 보복일분 응징의 효과는 미약하다. 시대의 변화에 따라 사형 제도를 폐지하고 종신형으로 바꿔 평생 동안 처절한 속죄와 함께 피해자에게 보상 의무를 치르게 하는 새로운 법 제도가 마련되어야 한다는 생각도 해본다.


너희들이 가기 전에 좀더 많은 사랑을 주지 못해 미안하다. 이 세상에서는 심판을 받았지만 이 세상을 떠나는 마지막 순간에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며 먼저 천국에 들어가 복락을 누리누나.
이제 너희들은 외로운 갈대가 아니다. 주님 곁에서 가족들과 피해자 가족들과 가난한 이웃과 이 나라에 복 내려 주시기를 기도하여라.
복음의 빛이 찬란하게 비칠 것이며 복음의 능력이 불갑산을 진도시킬 것이다. (끝)


글 : 이재명 객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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