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인자로서 사형이 확정되었지만 수형 생활이 모범적이었고 계속 참회하며 열심히 전도하던 김현양이 갑자기 병이 나서 구치소 병동에 입원하게 되었다. 간염과 결핵이어서 장기간 치료가 필요하다는 것이었다. 그때가 7월 하순이었다. 교도소의 규칙상 사형수가 병이 나면 치료한 후에 형을 집행한다. 공범자가 병이 나면 다른 공범자도 집행이 연장되는 것이 관례였다. 그래서 당국은 지존파들의 형 집행 연기가 현실적으로 불가피해졌다.
그 여섯 아이들이 모범수로서 열심히 믿음 생활을 하니까 하나님께서 긍휼을 베푸셔서 그들의 생명을 연장시켜 주심을 믿고 매일 감사의 기도를 드렸다. "하나님 아버지, 이제는 진짜 지존파가 된 여섯 아이들의 생명을 연장시켜 주시니 감사합니다. 성령충만하게 하셔서 같이 생활하는 감방 동료들을 섬기며 구치소 내의 믿지 않는 교도관들과 재소자들을 열심히 전도하도록 도와 주십시오. 우리 나라 교정사에 처음으로 큰 기적을 일으키셔서 하나님이 살아 역사하심을 나타내시며 영광 받으시기를 주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8월이 되었다. 러시아 선교 여행을 떠나면서 여섯 아이들에게 당부의 편지를 다시 써 보냈다.
너희들을 구원하여 주신 주님께 일천번제(예배)를 드려라. 매일 아침 저녁으로 예배를 드리고 열심히 전도하여라. 고재봉을 능가하는 전도자가 되어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라.
기도하며 앞으로 해야 할 일들을 계획했다. 첫째, 여섯 아이들이 세상을 떠날 때 지은 죄에 대한 속죄의 표시로 자신의 몸을 국민에게 바치도록 설득하여, 장기 기증 동의를 받아내는 일이었다. 그 후 그 가족들을 만나서 이해시키고 동의를 받아 환자 30명 이상을 살리는 일을 서둘러 해야 했다. 둘째, 가장 피해를 많은 입은 고(古)소윤오, 박미자 집사의 두 딸 은희와 은선 자매에게 우리 교회에서 장학금을 지급하고 있었는데, 두 자매에게 지존파를 그리스도의 사랑으로 용서하며 김기환의 협박 때문에 미성년자였을 때 불가항력으로 범죄 단체에 가담한 강문섭(21세), 백병옥(21세)에 대해서는 대통령에게 감형의 탄원서를 제출해 줄 것을 간청하는 것이었다. 셋째, 그 아이들의 범죄 아지트였던 아골 골짜기 영광군 불갑면 금계리 81번지 가옥을 공동 재산이었지만 등기 권리자 김기환으로부터 인수하여 교회를 세우기로 작정했다.
10월 중순, 기환이에게 자신의 소유인 그 집에 교회를 세우는 것이 좋겠다는 나의 생각을 전했다. 흔쾌히 승낙하며 필요한 대로 사용하라고 했다. 김현양과 강동은도 찬성했으며 영광군 금산에 사는 기환이 누나 김선자 씨도 교회가 세워지면 참 좋겠다고 했다. 그녀는 적극 찬성할 뿐 아니라 불쌍한 동생들을 생각해서 여섯 그루의 나무를 심겠다고 했다.
나는 그 곳에 교회 설립의 필요성을 당회에 보고하고 그 곳에 가서 사역할 사명감이 투철한 교역자를 물색하면서 영세 교회 김충열 목사님을 만나 뵙고 지존파들이 회개하고 예수님을 구주로, 주님으로 영접하였으며 매일 참회하면서 열심히 전도하고 있는 사실을 설명 드렸다. 김 목사님께서는 나의 제안에 동의하시고는 강문섭과 백병옥의 감형을 위해 은희와 은선 자매를 불러 이해시키며, 대통령에게 탄원서 제출하는 일에 협조하겠다고 약속해 주었다. 고등 법원에서 현영이와 문섭이를 변호했던 국선 변호인 박연철 변호사도 협조하기로 하여 10월 30일 탄원서를 작성했다. 문섭이와 병옥 두 아이가 감형되면 신학 공부를 시켜 교도소 전도에 평생을 헌신케 하려 했다. 11월 첫 주에 구명 탄원서를 제출하고, 전남 영광군에 가서 김기환, 강동은, 문상록의 가족과 부안에 가서 백병옥의 부모를 만나 설득하여 사전에 장기 헌납 동의를 받아 서울 구치소와 협의할 계획이었다. 우리 교회의 전도 폭발 17기와 마리아회, 금요 철야 예배에 기도 부탁을 했다. 그런데 말로만 듣던 청천벽력의 날이 오고야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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