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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면 여행의 글쓰기

내가 세상에서 두 번째로 싫어하는 것_이윤정

작성자CindyLee|작성시간20.10.19|조회수126 목록 댓글 0

“애는 있나?”
“아니요. 없어요.”
“뭐? 애를 안 낳았어?”
알아들었지만 다시 묻는 것은 내가 세 번째로 싫어하는 것이다.
“네.”
“아이고 참네, 왜?”
왜라는 의문사는 자기 자신에게는 매우 중대한 단어지만 남에게 사용할 때는 조심해야 다고 생각한다.
“서로 안 낳기로 했어요.”
“아이고 이래 좋은 세상에 아를 안 낳는다고?”
“지금은 좋은 세상이예요?”
“코로나 때문에 지금은 아니래도 이렇게 실컷 먹고, 잘 사는데 아를 안 낳아? 그러니까 우리나라에 인구가 모자라서 외국 여자들을 데리고 와서 결혼시키고, 일할 사람이 없어 외국사람들 일 시키지.”
좁은 사고를 하고 있으면서도 알아차리지 못하고 큰소리 치는 사람과 실랑이를 벌이지 않기로 한다. 대꾸는 ‘네’, ‘아니요’ 단답형으로 한다. 꼰대 발언은 내가 이 세상에서 두번째로 싫어하는 것이다. 계속 자기 할 말을 한다. 저번에 만나서 이야기했던 것들, 며칠 전에 전화해서 말했던 것들을 다시 이야기 한다. 반응이 없으면 수시로 ‘안 그렇나?’ 하고 대답을 요구한다. 이분과 이야기하는 자체가 고통이다.

이분은 아빠의 친구분이다. 10년 전쯤 울산에 살던 나를 만나 선을 주선하셨다. 소개받으러 나온 남자는 어디 교수라는데 외모가 아저씨 분위기가 났고, 대화도 통하지 않았다. 아빠 친구는 소개받는 남자가 어느 대학의 교수고, 집이 어디에 몇 평짜리가 있고, 나는 몸만 들어오면 된다고 강조했다. 다행히 나는 5년 전에 천생연분을 만났다.
며칠 전에 아빠 친구가 10년 전 내 명함을 보게 되었다며 전화를 했다. 아빠 친구가 계시던 곳이 북구였는데 내가 하필 강의한다고 모라동에 있었다. 그렇게 급하게 만나게 되었다. 아빠 친구분은 고향 사람을 만난다는 마음에 아내와 아들과 함께 차를 끌고 왔다. 대구뽈찜에 소주를 곁들이면서 그동안 있었던 일, 우리 아버지가 돌아가셨다는 걸 나중에야 알게 된 사연, 젊었을 때 우리 아버지랑 있었던 일들을 이야기했다. 나도 아빠에 대한 다른 면을 들으면서 즐거운 시간을 가졌다.
딱 거기까지였다. 그렇게 헤어져야했다. 하지만 아빠 친구와 아들은 노래방을 가자고 강요했다. 멀찍이서 아빠 친구 아내 분이 손으로 엑스표시를 보냈다.
“니 보는 게 너 아빠 보는 거 아니라! 그자? 고향사람 만나는 게 얼마나 좋노?”
“오늘은 그만 헤어지고 다음에 고향 친구가 하는 식당에 같이 가요.”
그렇게 말한 게 화근이었다. 아빠 친구는 이틀에 한 번씩 전화를 걸어왔다. '지금 고향 사람이랑 같이 있는데 나올 수 있나?', '지금 고향 사람 중에 니 또래인데 창원에서 교수하는 사람이 있는데 소개시켜 줄테니 같이 가볼래?', ' 지금 너네 집 근처에 볼일 보러 왔는데 저녁 사줄테니 나온나.' 이런 돌발적인 전화들이었다. 거절을 하면 끈질기게 설득을 했다. 거절하는 이유를 조목조목 묻는다. 오늘은 내 고향 친구가 운영하는 식당에 가자고 전화가 왔는데 강의 준비하느라 도저히 시간이 안 난다고 발뺌을 하고 나서 나눈 대화가 이 글 맨 앞의 내용이다.

아빠 친구가 건 전화는 언제 끊길지 모른다. 나는 핑계를 대고 먼저 끊을 수 있는 줏대가 없다. 쓸데없이 통화를 오래 하는 것은 내가 세상에서 가장 싫어하는 것이다. 가끔 여러 교육과정에서 만난 지인한테서 전화가 오면 겁이 난다. 이 사람은 정말 말이 많은데……. 말이 많은 사람과 앉아 있으면 골치가 아프다. 그런 사람들은 꼭 운전할 때 전화를 한다. 내가 무슨 심심풀이 땅콩이나 되는 것처럼. 이 전화를 받았다가는 1시간이 후딱 지나갈 텐데. 지금은 안 받고, 나중에 내가 걸더라도 통화가 길어질 텐데……. 걱정이 태산이 된다.

오늘은 내가 세상에서 싫어하는 첫 번째 두 번째 세 번째 것들을 실컷 겪고 나서 1시간 가량 멍을 때렸다. 아빠 친구는 꼰대 발언을 계속 했고, 내 대답을 제대로 경청하지 않고 똑같은 질문을 해댔다. 멍 때리면서 생각해봤다. 내가 우리 조카들한테 이렇게 하고 있는 건 아닌지. 조카들이 나와 통화하고 나서 지금 나 같은 심정에 빠지는 건 아닌지. 걔들에게 나는 꼰대 발언 하는 주제에 오랫동안 통화하는 이모가 아닌지. 대답을 들어 놓고선 다시 물어보곤 하지 않는지.

아빠 친구에게서 내 모습을 봤기 때문에 고통스러운 건 아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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