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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혜원스님] 방일하지 않는 것이 수행의 근본

작성자쪽빛마루|작성시간14.05.22|조회수20 목록 댓글 0

방일하지 않는 것이 수행의 근본

 

 

부처님 신통은 ‘절제와 선정’ 작용

평정 삼매로 연기 원리 깨우친 것



선정을 사유수(思惟修), 념수(念修), 정려(靜慮)라고도 했다. 마음을 집중하여 동요하지 않게 하는 ‘삼매(samadhi)’의 의미이다. 또 달리 ‘기악(棄惡)’, ‘공덕총림(功德叢林)’이 있다. 전자는 모든 악을 버린다는 것이고 후자는 여러 덕이 모아진다는 것이다. 즉 선은 모든 악을 버리면서 덕을 쌓아가는 공덕이 있다는 뜻에서다.

종밀은 〈도서〉에서, 선나(禪那)를 ‘정혜’라고 했다. 선의 근원은 불성에 있고 이를 닦는 것이 정이며 이를 깨달은 것이 혜라는 것. 결국 선은 마음을 집중 통일하여 고요히 명상하는 것에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불교에서의 ‘이미 깨달은 자(本覺)’인 점에서 그 삼매는 ‘진여삼매’라고도 할 수 있는 그 삼매에서 ‘심즉불(心卽佛)’을 각증(覺證)한다는 뜻에서 정혜라고 했다. 종밀의 이러한 선사상은 바로 간화선의 근원적인 원리가 된다. 나중에 설명되겠지만 ‘심즉불’은 불설이며 이를 체험하는 것을 ‘마음의 본성을 돈오하는 것’이라 한다.

성도 전, 보리수 아래서의 선정을 대승경전에서는 해인삼매, 등지왕삼매, 무량의처삼매, 부동삼매 등으로 묘사한다. 일체의 감성적인 망념과도 대결이 끝난 선정의 최후의 단계, ‘대각자’ 부처님이 되신 것이다. ‘부처님’이라는 말은 고대 인도 우빠니샤뜨에서나 자이나교에서도 사용했는데 단지 ‘오로지 진리만을 구하기 위해 수행하는 자, 혹은 실천하고 있는 자’로서의 의미였던 것 같다. 단순히 진리를 깨달은 자로서의 부처님 시대가 지남에 따라 찬탄의 대상이 되어 보통사람과는 다른 위대한 분으로서 존경과 숭배의 대상이 된다.

불교의 명상 즉 선이 요가의 수행보다 뛰어난 것은 확실하다. 그렇다면 부처님의 명상은 어떤 특색을 가졌을까? 이는 중국선을 알고 그 특징을 이해하는데 필요할 것이다. 부처님이 그의 제자들에게 수행의 방법을 가르칠 때 언제나 자제(自制)와 명상에 의한 평안이었다. 이 평안은 정(定) 삼매의 최고 상태이다. ‘방일하지 않는 것’ 그래서 항상 마음의 평정 삼매를 지속하는 것이 수행이고 선이었다. 방일하지 않는 것은 부처님의 유언이었지만 불교의 선수행의 근본인 것이다. 불교의 원리인 사제나 연기설도 이러한 선에서 깨우친 진리다. 또한 사선(四禪)의 선정의 힘으로 붓다는 ‘삼명(三明)’을 얻는다. 삼명은 타심통(타인의 마음을 아는 힘), 숙명통(전세의 숙명을 하는 힘), 누진통(미혹한 근원을 해소하고 더 이상 세간에 태어나는 원인이 없는 것을 아는 힘) 등이다(沙門果經).

신통은, 인도 초기불교에서 수행의 대강(大綱)을 계(절제), 정(선정), 혜(깨달음)로 정리한 것 중 ‘혜’에 해당한다. 혜는 절제와 선정으로 이루어진 우주실상의 영감이며 극히 구체적 실천적인 능력이었다. 초기불교에서는 이러한 경향이 강했다. 붓다의 상수제자 중 사리불 목건련은 붓다의 선정을 통한 신통력을 보고 귀의한 것이며, 가섭을 비롯한 앙굴리마라까지 저마다 깊은 선정을 통해 아라한이 된 것이다.

이처럼 부처님의 지견(知見)은 니르바나(열반)의 작용이다. 나중에 대승불교의 대표적인 교리 개요서인 〈대지도론〉에서는 이를 두고 ‘부처님의 신통은 중생에 대한 자비심이고 희유한 일들을 보여 중생의 마음을 청정하게 하는 것’이라고 했다. 부처님 말씀에 의심 없이 마음을 기울이고 감춤이 절대 없이 모든 것을 보인 부처님 모습에 감흥의 마음으로 귀의한 것이 초기교단의 제자들이었다.

- 혜원 스님 / 동국대 선학과 교수


[불교신문 2202호/ 2월11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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