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3년에 나는 예수가 인도에서 살았다고 가정하는 이론을 접하게 되었는데 그것은 실로 예기치 않은 우연한 기회였다. 그때 나로서는 그 문제에 대하여 매우 회의적이면서도 다소 마음이 흔들렸기 때문에 그 기회에 예수의 실제 생애를 탐사해 보기로 했다.
그러나 곧 나는 학술적으로 밝힐 만한 자료나 예수의 역사적 사실성을 입증할 만한 근거가 없다는 난관에 부딪히게 되었다.
이 사람은 정말 누구인가? 어디에서 왔으며 어디로 갔는가? 왜 그는 동시대인들의 눈에 그토록 이상하고도 신비롭게 비쳤는가? 그리고 그가 정말 원했던 것은 무엇인가?
탐사를 진행해 가면서 마침내 인도에 이르렀을 때 그곳에서 나는 (인도에서의 예수)라는 주제를 심도 있게 연구해 온 사람들과 친분을 나누게 되었으며, 그들로부터 많은 격려와 값진 후원은 물론 놀랄 만한 정보도 얻게 되었다.
이 책을 출판하는 형식에 있어서 나는 이 책의 간결하고도 논리적인 내용을 이해하는 데 방해받지 않도록, 그리고 세세한 내용들이 소흘하게 넘어가지 않도록, 너무 학술적인 형식으로 기술하지 않으려 했으므로 많은 내용이 대담하게 보이거나 어떤 것들은 있을 법하지 않게 보일지도 모른다.
아뭍든 이 책은 여러 관련분야에 있어서 보다 넓은 지평을 열어 줄 것이다. 사실 이 연구작업은 어느 한 사람이 혼자서 추진하기에는 너무 벅찬 일이다. 모든 불합리한 주장들을 밝히는 일이나 거기에 상반되는 것들을 입증한다는 것은 기존교회에 대한 도전을 의미한다.
많은 교회들이 이러한 도전에 대하여 어떻게 반응하느냐 하는 것은 매우 흥미로운 일이 될 것이다.
기독교인들의 종교관을 손상시키거나 일반 독자들의 순수한 믿음을 깨뜨리고자 하는 것이 나의 목표나 의도는 아니다. 그리스도 메시지의 영원하고도 중심적인 진리, 그것을 밝혀 주는길을 다시 한번 찾아 보는 것은 말할 것도 없이 중요한 일이다.
그런데 그 메시지는 종교적인 권위를 남용하는 다분히 세속화된 기관의 야심에 의하여 우리가 아는 것 이상으로 흔들려 왔다. 그러므로 이 책은 새로운 믿음의 선포가 아니다. 다만 이시도는 참으로 영적이고 종교적인 과거의 자료를 바탕으로 새로운 미래로 향하는 길을 열기 위한 하나의 시도라고 하겠다.
내가 허풍을 떨고 있다고 생각하지 말라.
그대 일어나 반론을 펴라 !
전(全)교회의 역사는
오류와 권세의 뒤범벅이니.
요한 몰프강 폰 괴테
1983년 3월
프라이 부르크에서
홀거 케르스텐
◇영문판에 덧붙여
인도에서의 예수의 생애의 영역판을 완성시키는 데 2년 이상이 걸렸다. 지금도 독일에서는 이 책의 7판이 나오고 있다. 이 번역은 요즘의 지식에 맞게 여러 번 개정되었다.
나는 영국 독자에게 나의 필치가 약간 껄끄럽다는 소리를 들어왔다. 나는 설명을 명확하게 하기 위해, 그리고 그 사실들을 가볍게 보지않도록 하기 위해 의도적으로 흔하지 않은 솔직함을 가지고 썼다. 나는 영국에서도 탁월하게 인내심이 있고 편견이 없는독자들을 발견하게 되리라고 확신한다.
어쨌든 주교(더칩 DHrtdm의데이빗 젠킨스 fr frv Dav펴 J.nkins)가 그리스도의 육체적인 부활에 대한 전통적인 기독교인의 견해와 관련된 그의 개인적인의문점들에 대해 그의 부활절 메시지에서 설교할 만큼 용기가 있다는 것이 이 나라에서는 가능하다 (데일리 텔리그라프 Daiiy Telegraph, 1981년 3월 30일子).
1986년 9월 H K
개요
과학과 기술의 득세는 우리 세계의 급격한 세속화 및 종교의 침체와 더불어 이루어졌다. 합리주의에 대한 예찬과 인간 존재의 모든 양상을 설명하고자 하는 노력은 신비롭고 종교적이며, 정서적인 삶, 심지어는 (휴머니티) 자체에 까지 막대한 손실을초래했다.
기존교회의 행동은 종교와 과학, 신앙과 지식 사이의 간극을 넓히는 원인을 조성하는 데 적지 않은 역할을 했다.
세속 세계에서 그들의 영향력을 상실하는 것을 우려해서 기존 교회들은 전혀 경험적 지식에 토대를 두지 않은 그들의 권위를 내세웠다. 이것은 단지 권위의 영역에서 보다 큰 차별에 대한 요구를 심화시켰다.
사실 과학적 사고와 종교적 신앙 사이에서 비롯되는 분열은 현대인을 극복하기 힘든 양분상태로 몰아 세웠다.
그리스도의 메시지의 진실에 의구심을 품는 사람들이 점점 불어나면서, 기독교인들의 신앙이 점점 논쟁거리로 되면서 영감은 차차 그 모습을 잃게 되었다.
심지어 중앙집권 체제까지 교회의 전통 속에 닻을 내렸다. 하나님, 그리스도, 교회,그리고 계시 같은 것들이 신학자들과 평신도 사이에 다같이 격렬한 논쟁의 대상이 되었다.
교회의 가장 중심적이고 기본적인 가르침들이 교회 자체의 엘리트들과 행정가들 사이에서 조차 순수한 진리로서 더이상 받아 들여지지 못하게 되었을 때, 전통적인 기독교 정신의 몰락이 멀지 않다고 하겠다. 텅빈 예배석이 말해 주는 교훈은 매우 분명하다.
1979년에 집계된 통계에 의하면 서독 시민 가운데 3분의 1만이 기존교회의 교리에 순종한다고 한다.
반면에 교회에소속하지 않고도 기독교인이 될 수 있는가 하는 질문에는 77%가 긍정적으로 답했다.
질문을 받은 사람들이 어느 집단에 속하든지 간에 그리스도가 하나님이 보낸 (하느님의 사자)라는 것을 대다수가 믿지 않았다.
그것은 기존의 공공 교회들이 기독교 정신 분야의 발전에 대하여 그들의 교구민들에게 알리는 것을소흘히 해 왔으며, 종교에 대한 역사적이고 비판적힌 접근에 있어서 그들의 합의를 이끌어내는 데 실패했기 때문이다.
기존교회들은 계속해서 문자 그대로의 해석을 고집해 왔고, 성경 해석에 있어서 교리를 담고 있는 문자에 지나치게 집착해 왔기 때문에 들은 기독교정신의쇠퇴를 가속 시켰다고 할 수 있다. 심지어 그들의 성향에 있어서 전혀 비종교적이거나 반 기독교적인 경향을 갖지 않은 사람들 사이에서 조차 같은 결과를 빛었다.
오늘날 기독교 정신이라고 하는 것은 예수가 널리 펴고자 했던 사상이나 그의 가르침과는 거의 관련이 없다시피 하다.
그것은 원래의 사상과는 아주 다른 것으로 차라리 (바울주의Paulinism)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오늘날 많은 교회의 교리라는것이 그리스도의 메시지와는 본질적로 거리가 멀다.
그것들은 사실 본래는 그리스도와는 전혀 사고방식이 달랐던 바울의 유산이다.
우리가 인지하듯이 소위 기독교정신이라는 것은 바울주의가 공인종교로서 받아 들여졌을 때 발달했던 것이다. 개신교 신학자인 만프레트 메츠거 (ManfredMezger)는 그 문제에관하여 에밀 브루너 (EmiIBrunner)의 말을 인용한다.
에밀 브루너는 교회를 일종의 오해라고 했다. 간청에 의해 교해지고, 자유로운 결합으로 성직이 구성되었다. 그것은 모든 점에서, 그리고 전적으로 우리가 의도했던 것과는 상반된다고 할 수도 있다.
확실히, 현존하는 여러 기구들에 대한 정당성과 합법성을 조사하는 일은 허용할 만 하다고 하겠다 !
교회에 다니는 기독교인들이 사로 잡혀 지는 믿음, 의무, 복종의 불확실한 조목들의 증식으로부터 냉정하게 돌아서는 것이 거의 불가능하다는 것을 아는 것은 어떨까?
아무것도 모른 채 단지 기존교회의 영향 아래에서만 성장해 온 우리는 이제까지 오랫동안 그렇다고 인정되어 온 것들은 당연히 옳아야 한다고 생각하게 된다.
어떤 사람이 황량한 지평선 위에 사랑과 선의, 그리고 희망으로 가득 찬 메시지를 가지고 나타났다. 인류는 그 메시지로무엇을 어떻게 했는가?
그것을 문서와 장황한 말, 권력과 사업으로 바꾸어 버렸다 ! 예수는 그의 이름으로 행해진 그 모든 행위들을 원했을까?
대담한 젊은 예수가 처음으로 교회의 관료주의, 율법, 상징적 지도자들, 강직성, 성직과 교리해석 문제를 둘러싼 분쟁, 유일한 권위에 대한 요구, 예배의식, 우상숭배와 파벌주의 등등으로 가득 찬 교회의 세력으로부터 인류를 구하려고 애쓴 이래로 2,000년이라는 세월이 흘렀다.
예수는 하나님과 인류 사이의 직접적인 교통을 원했고 어떠한 종교적 권력에도 연연해 하지 않았다.
그러나 예수의 음성은 더 이상 본래 그대로 우리에게 이르지 않는다. 예수의 음성은 특권을 지닌 전문가와 전문적인 집단의조정을 통해서만 전달되는 것이다. 예수는 관리되고, 거래되고, 성문화되고, (책으로 엮어져) 왔다. 진실하고 살아 있는 믿음이 작용하고 있다.
신학자인 하인쯔 짜아른트 (Heinz Zahrnt)는 말한다.
나는 신학자의 길을 걸머오면서 필은 상처를 입었다. 하나님을 부정하는 무신론자들이나 불경스럽지만 매우 인간적인 대중 주의론자틀이 아니라 교리주의자들,
즉 문자 그데로의 가치를 따르는 것이 하나님에 이르는 유일한 길이라고 논란에 의해서 나는 굴욕감과 모욕감과 불명예스러움을 느끼게 된다.
나는 가장 치명적인 곳에 상처를 입었는데, 그곳은 바로 내 삶을 이끌어 온 하나님에 대한 믿음이다.
종교적인 경험의 가치에 대한 확신은 지적 능력의 발달에 비래하여 감소하는 경향을 보인다. 이성적이고 증명할 수 있는 능력에 대한 믿음의 현실에 대처하는 수단으로서 자신을 비추는 신앙의 자리를 차지해 온 것이다.
현대 사회에서는 <성장>과정 동안 종교적인 감정을 비(非) 이성의 범주는 영역이므로 비 현실적인 것으 간주되어 버린다. 논리적인사고와 행동만이 현실만을 걱정하는 것이다.
교육수준이 향상될수록초월적인 것들은 감소할 뿐 아니라 살아 있는 경험의 영역에서 배제된다.
이러한 현상의 주된 요인으로는 하느님의 개념에 대한 잘못된 해석을 들 수 있다. 성스러움은 유토피아 처럼 먼 곳에 있는 것이 아니라 우리들 개개인 안에 있다.
그리고 그것은 우리의 삶이 무한자(無限者)와 조화를 잘 이루도록 생기를 불어넣어 주며 유한한 존재인 우리를 영원한 존재의 일부로서 인식케 해준다.
몇백 년 동안 서구인들은 자기 자신을 하나님으로부터 분리된 존재로서 생각하는 것을 배워 왔다. 그러나 이 개화된 20세기의 서구인들에게는 대부분의 고대인들이 생각한 하나님과 삶의 의미에 대한 의문점에 대하여 납득할 만한 대답을 하기 위한 확신이 부족한 것 같다.
전세계를 통하여 새로운 영적 중심들이 나타났는데, 이 새로운 영적 중심들은 고지식한 교회 관료주의가 답할 수 없는 문제들에 대답을 주고자 시도해 왔다. 이 일종의 혼합주의적인 미래의 세계종교는 상승세에 있다.
그것은 완전한 자아실현과 종교적 계몽을 위한 연구. 개개인의 존재들을 우주의 구성물로 하는 신비한 모든 것을 포함한 비전을 향해 움직이고 있는데, 그것은 관조, 자아성찰, 그리고 명상을 통해 이루어질 수 있는 것이다.
그러한 종교의 내면화에 대한 결정적인 힘은 동양에서, 특히인도에서 비롯되었다. 인류는 (다시 동양화한다 - 동양으로 향한다)라는 말의 문자 그대로의 의미처럼 동양으로 돌아가야 한다. 동양은 우리의 가장 깊은 내적 경험의 근원이며 원천이다.
우리는 신에 대한 믿음의 마지막 종말을 생각할 필요도 없고, 영적이고 종교적인 타락을 두려워할 필요도 없다. 사실 우리는 영혼의 씨앗이 싹튼다는 희망과 우리에게 지금까지 기약만 되어 온 초월적인 내적 세계의 삶을 사후 세계에서는 영위하게 되리라는 희망을 가질 수 있다.
종교의 전반적인 몰락을 생각할 필요는 없다. 그러나 이에 반하여 신비한 자각의 개화가 우리에게 비밀스럽게 주어져 있다. 이것은 엘리트나 (선택받은) 사람들 만의 것이 아니라 세계종교의 초교파적인 배경을 모두포용하는 데 있다.
이 종교는 그들의 목표를 피상적이고 침체적인 세계에 두는 것이 아닐 뿐 더러 외관에 과다한 가치를 부여하지도 않을 것이다. 그러나 심원한 영적 자각과 초월적인 가치들로의 전환에 중점을 둘 것이다. 그것이야말로 (악()으로부터 구원)될 수 있는 진정한 길이리라.
진리를 깨달으면
모든 악들은 사라지리라
참으로 깨달은 자는 의연하며
문명의 구름을 걷어 버린다.
구름 한 점 없는 하늘에 태양이 빛나듯이.
- 붓다 -
인도에서의 예수의 생애
흘거 케르스텐은 1951년 동독의 막데부르크에서 태어났다. 그는 1962년에가족과 함께 서독으로 이주했다. 73년과 74년에는 동양으로의 첫번째 여행을 떠나 터키, 이란 아프가니스탄 등지를 여행 했다. 1974~79년까지 그는 퐁교교육 교사가 되기 위해 프라이부르.핀에 있는 개신교 계통의 한 신학대학에서 공부를 했다.
그후에 비밀에 싸인 예수의 생애에 대한 과학적 조사를하기위해 인도에 몇 개월 동안 머물렀으며, 1982년까지 프라이부르크 근처의 직억 학교에서 종교교육 교사로 있었다. 그 이후로는(새로운 시대 (New Age) )를 위한 각종신문에 자유 기고가로 일했다. 그의 여행의 행선지는 대부분 동양이었다. 저자의 사무실은 현재, 프라이 부르크에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