앨런 튜링(Alan Turing, 1912~1954)의 생애를 요약한다.
앨런 튜링은 컴퓨터 과학과 인공지능의 이론적 기초를 다진 천재 수학자이자 암호학자였다.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영국 군사정보기관에서 독일군의 암호 체계인 '에니그마'를 해독하는 데 결정적인 기여를 하며 수많은 인명을 구했다.
전쟁 후에는 '튜링 기계' 개념을 발전시키며 현대식 디지털 컴퓨터의 모태를 마련했고, 기계의 지능을 평가하는 '튜링 테스트'를 제안했다.
그러나 당시 영국 법상 범죄로 취급되던 동성애 혐의로 기소되어 비극적인 화학적 거세 처벌을 받았고, 얼마 지나지 않은 1954년 41세의 젊은 나이에 생을 마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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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대한 업적의 이면에 가려진 앨런 튜링의 삶은 고독하면서도 기이했고, 한편으로는 깊은 슬픔을 간직하고 있었다. 그의 인간적인 면모와 비극적인 말년, 그리고 사후의 이야기를 몇 가지로 나누어 소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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튜링이 소년 시절 과학과 수학에 비정상적일 정도로 몰두하게 된 계기에는 가슴 아픈 사연이 있다. 학창 시절, 그는 자신의 천재성을 유일하게 이해해 주던 동급생 크리스토퍼 모콤(Christopher Morcom)을 깊이 연모했다.
그러나 모콤은 결핵으로 18세라는 어린 나이에 갑작스럽게 세상을 떠나고 말았다. 큰 충격을 받은 튜링은 "인간의 영혼과 정신은 육체가 죽은 뒤에도 어디로 가는가?", "인간의 마음을 기계로 구현할 수 있는가?"라는 의문을 품기 시작했다. 이 슬픔과 질문이 훗날 그를 '인공지능(AI)' 연구로 이끈 정신적 뿌리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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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차 세계대전 당시 암호 해독 기지였던 블레치클리 파크에서 튜링은 소문난 괴짜였다. 심한 꽃가루 알레르기가 있던 그는 봄이 되면 방독면을 쓴 채 자전거를 타고 출퇴근했다. 자전거 체인이 주기적으로 빠지는 결함이 있자, 고치는 대신 페달을 밟은 횟수를 머릿속으로 계산하여 체인이 빠지기 직전에 내려서 손으로 체인을 조정하곤 했다. 자신의 전용 머그잔을 누가 가져갈까 봐 라디에이터 파이프에 자물쇠로 묶어두고 사용하기도 했다. 그는 타인의 시선에 아랑곳하지 않고 자신만의 논리와 세계에 몰입하는 순수한 사색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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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2년, 튜링은 집에 도둑이 들어 경찰에 신고했다가, 조사 과정에서 당시 영국에서 불법이었던 '동성애 성향'이 밝혀지며 기소되었다. 법원은 그에게 감옥에 가거나, 여성 호르몬을 투여하는 '화학적 거세'를 받으라는 잔인한 선택지를 던졌다. 튜링은 연구를 계속하기 위해 호르몬 투여를 선택했다. 그러나 1년간의 강제적인 약물 투여는 그의 신체를 변화시켰고, 정신을 황폐하게 만들었으며, 평생 자부심을 가졌던 명석한 두뇌마저 흐려지게 했다. 결국 1954년, 그는 침대에서 숨진 채 발견되었다. 곁에는 청산가리를 주입한 뒤 한 입 베어 문 사과가 놓여 있었습니다.
한때 애플(Apple)의 한 입 베어 문 사과 로고가 비운의 천재 튜링을 추모하기 위해 만들어졌다는 설이 널리 퍼졌으나, 로고 디자이너와 스티브 잡스는 이를 부인했다. 그러나 이 아름다운 루머가 여전히 전해질 만큼 인류는 그에게 큰 마음의 빚을 느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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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을 승리로 이끌고 현대 컴퓨터의 초석을 놓은 영웅이었지만, 그의 업적은 군사 기밀이라는 이유로 오랫동안 세상에 공개되지 못했다. 그는 그저 '범죄자'로 잊히는 듯했다. 시간이 흘러 정보가 공개되면서 학계와 시민사회의 복권 요구가 빗발쳤고, 마침내 영국 정부와 왕실이 움직였다. 2009년, 고든 브라운 영국 총리가 튜링에게 가해진 끔찍한 처우에 대해 공식 사과했다. 2013년, 엘리자베스 2세 여왕이 사후 사면령을 내리며 그를 공식 복권시켰다. 2017년, 과거 동성애 혐의로 처벌받았던 수만 명의 남성들을 일괄 사면하는 법안이 발효되었는데, 이 법의 이름이 바로 '튜링 법(Turing's Law)'이었다.
국가와 인류를 구하고도 시대의 편견에 갇혀 고독하게 스러져간 튜링의 삶은, "인간다움이란 무엇인가"라는 깊은 울림을 전해준다. 어쩔 수 없이 시대를 앞서갔던 한 천재의 쓸쓸한 뒷모습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