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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해 오늘

Re:찰스 디킨스

작성자채광수|작성시간26.06.09|조회수7 목록 댓글 0

 

찰스 디킨스(Charles Dickens, 1812~1870)의 생애를 요약한다.

 

영국의 대표적인 소설가 찰스 디킨스는 어린 시절 아버지가 채무자 감옥에 갇히면서 구두약 공장에서 혹독한 노동을 경험했고, 이 비극적인 유년기는 그의 문학 세계를 관통하는 핵심 자양분이 되었다.

 

이후 기자로 활동하며 탁월한 관찰력을 기른 그는 데뷔작 ‘피크윅 문서’의 대성공을 시작으로 ‘올리버 트위스트’, ‘위대한 유산’ 등 수많은 걸작을 발표하며 당대 최고의 인기 작가 반열에 올랐다.

 

그는 특유의 날카로운 풍자와 생생한 묘사로 산업혁명기 영국 하층민의 비참한 삶과 사회적 불평등을 고발하는 데 평생을 바친 사실주의 문학의 거장이었다.

 

평생을 쉬지 않고 집필과 낭독회 등 왕성한 활동에 매진하던 그는 1870년 뇌출혈로 갑작스럽게 세상을 떠났으며, 문학적 공로를 인정받아 영국의 영웅들이 묻히는 웨스트민스터 사원에 안장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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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킨스는 ‘올리버 트위스트’에서 단순한 권선징악의 이야기를 넘어, 당대 영국 사회의 구조적 모순을 정면으로 다루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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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 영국은 가난을 구제한다는 명목으로 '신빈민법(New Poor Law, 1834년)'을 시행해 구빈원을 운영했다. 그러나 실상은 빈민들에게 최소한의 생존 조건만을 제공하며 강제 노동을 시키고 가족을 찢어놓는 감옥 같은 곳이었다. 디킨스는 올리버가 구빈원에서 겪는 굶주림과 학대를 생생하게 묘사하며, 국가의 제도가 가난한 이들을 어떻게 인간 이하로 취급하고 있는지를 신랄하게 비판했다.

 

당대 상류층은 가난한 하층민이나 범죄자는 태생적으로 도덕성이 결여되어 있다고 믿었다. 그러나 디킨스는 최악의 범죄 소굴에 던져진 올리버를 통해, "어떤 가혹한 환경 속에서도 오염되지 않는 순수한 인간성이 존재한다"는 것을 보여준다. 올리버는 범죄를 강요받는 상황에서도 타인을 해치지 않으려는 양심을 끝까지 지켜낸다.

 

화려하게 발전하던 19세기 런던의 이면에는 도둑질과 매춘으로 내몰린 아동들이 있었다. 페이긴의 소매치기 집단은 당시 런던 길거리에 방치되었던 수많은 고아들의 비참한 현실을 상징한다. 디킨스는 이 아이들을 무조건적인 악인으로 그리지 않고, 사회적 안전망이 부재한 상황에서 생존을 위해 범죄를 택할 수밖에 없었던 사회적 희생자로 바라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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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리버 트위스트’는 비정한 제도와 범죄의 늪 속에서도 꺾이지 않는 인간의 순수함을 증명하고, 차가운 사회일수록 인간적인 '친절'과 '연민'이 얼마나 구원적인 가치를 지니는지 역설한 수작이다.

 

 

찰스 디킨스의 화려한 대성공과 사회적 명성 뒤에는, 대중에게 잘 알려지지 않은 인간적인 고뇌와 파란만장한 비화들이 숨겨져 있다. 소설보다 더 소설 같았던 그의 삶를 재조명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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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킨스는 평생 부유하고 화려한 삶을 살았지만, 12세 때 구독약 공장(Warren's Blacking Warehouse)에서 하루 10시간씩 쥐가 들끓는 환경에서 일했던 기억을 죽을 때까지 수치스러워했다. 그는 이 과거를 철저히 비밀에 부쳤고, 심지어 아내와 자녀들에게도 말하지 않았다. 그의 아내조차 남편이 죽은 후에야 절친한 친구였던 존 포스터가 쓴 전기(Biography)를 보고 이 사실을 알았을 정도였다. 평생 하층민의 인권을 대변했던 거장이 정작 자신의 가장 아픈 상처는 누구에게도 들키고 싶지 않아 했던 역설적인 단면이다.

 

디킨스는 대중에게 따뜻한 가족적 가치를 집필하는 작가로 사랑받았지만, 실제 그의 가정생활은 그리 아름답지 못했다. 45세의 나이에 그는 18세의 젊은 여배우 엘런 터넌(Ellen Ternan)과 열렬한 사랑에 빠지게 된다. 이로 인해 20년 넘게 살며 10명의 아이를 낳아준 아내 캐서린과 별거하게 되는데, 이 과정에서 디킨스는 자신의 명성을 지키기 위해 신문에 "아내의 정신에 문제가 있어 어쩔 수 없이 갈라선다"는 요지의 이기적인 성명서를 발표하여 아내에게 큰 상처를 남겼다. 이후 그는 사망할 때까지 엘런 터넌과의 관계를 철저히 비밀에 부치며 이중생활을 이어갔다.

 

1865년 6월 9일, 디킨스는 엘런 터넌과 그녀의 어머니와 함께 기차를 타고 가다가 영국의 Staplehurst 지역에서 끔찍한 열차 추락 사고를 당하게 된다. 그가 탄 객차는 간신히 다리 위에 걸려 추락을 면했지만, 다른 객차들은 강으로 떨어져 수많은 사상자가 발생했다. 디킨스는 공포에 질린 상황에서도 침착하게 객차 창문을 통해 탈출한 뒤, 가방에 든 브랜디와 물을 가지고 부상자들을 찾아다니며 구조 활동을 펼쳤다. 심지어 피를 흘리며 죽어가는 승객들의 마지막 순간을 지키기도 했다. 구조가 어느 정도 마무리되자, 그는 위험을 무릅쓰고 다시 부서진 객차 안으로 기어 들어가 자신이 집필 중이던 소설 ‘우리 서로의 친구(Our Mutual Friend)’의 친필 원고를 찾아 나오는 예술가적인 집념을 보이기도 했다. 이 사고는 그에게 극심한 정신적 충격(PTSD)을 남겼고, 정확히 이 사고가 일어난 지 5년 뒤 같은 날짜인 1870년 6월 9일에그는 세상을 떠나게 된다.

 

디킨스는 단순한 작가를 넘어 천재적인 '퍼포머(Performer)'였다. 그는 대중 앞에서 자신의 소설을 생생하게 연기하며 읽어주는 공연 형태의 '낭독회'를 자주 열었다. 목소리를 변조해가며 수십 명의 등장인물을 혼자 연기했는데, ‘올리버 트위스트’에서 빌 사이크스가 낸시를 살해하는 장면을 낭독할 때면 극장의 여성 관객들이 무더기로 기절할 만큼 에너지가 엄청났다. 의사들은 그의 맥박이 최고조에 달해 위험하다고 만류했지만, 디킨스는 대중의 환호와 교감에 중독되어 있었다. 쇠약해진 몸을 이끌고 미국과 영국 전역을 도는 무리한 낭독 투어를 강행한 것이 결국 그의 수명을 단축시키는 결정적 원인이 되었다.

 

"내게는 쉬는 것이 다른 어떤 일을 하는 것보다 훨씬 더 고통스럽다."

— 찰스 디킨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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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나 마음속 한구석에 유년 시절의 결핍과 불안을 안고 살았던 디킨스는, 그 불안을 잠재우기 위해 평생을 워커홀릭으로 살며 자신을 불태웠던 뜨겁고도 쓸쓸한 거장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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