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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해 오늘

Re: 아소카 왕

작성자채광수|작성시간26.06.23|조회수2 목록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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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소카 왕(Ashoka, BC 304~BC 232, 재위 BC 273~232년경)의 삶에 대해 요약한다.

 

아소카 왕은 기원전 3세기 인도 마우리아 왕조의 제3대 황제로, 강력한 군사력을 통해 인도 아륙 대부분을 정복하며 영토를 크게 확장했다.

 

그러나 수많은 희생자를 낸 칼링가 전쟁의 참상을 목격한 후 깊은 회한을 느끼고 잔혹한 정복 전쟁을 완전히 중단했다.

 

이후 불교로 개종하여 평화와 비폭력, 자비를 바탕으로 한 정치 철학인 '다르마(법, Dhamma)'를 선포하고 이를 제국 전역의 바위와 기둥에 새겨 널리 알렸다.

 

그는 인도 전역에 불탑을 건립하고 해외에 포교사를 파견하는 등 불교를 세계적인 종교로 성장시키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한 성왕(聖王)으로 칭송받고 있다.

 

칼링가 전쟁(기원전 261년경)은 인도 역사상 가장 참혹했던 전쟁이자, 아소카 왕의 인생과 고대 아시아 역사의 흐름을 완전히 바꾼 일대 사건이었다. 이 전쟁이 왜 일어났고, 왜 그토록 비극적이었으며, 아소카 왕에게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 정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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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 칼링가(현재의 인도 오디샤주 지역)는 마우리아 제국 세력권 아래에 편입되지 않은 독립 왕국이었다. 아소카 왕이 이곳을 공격한 이유는 크게 두 가지였다. 칼링가는 동부 해안의 요충지로, 남인도 및 동남아시아와의 해상·해상 무역로를 장악하고 있었다. 마우리아 제국이 완전한 통일을 이루고 무역 이익을 독점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정복해야 하는 땅이었다. 아소카의 할아버지인 찬드라굽타 마우리아 시절부터 칼링가 정복을 시도했으나 실패했다. 아소카 왕은 강력한 중앙집권체제를 완성하기 위해 마지막 남은 독립국을 굴복시키고자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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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기록에 따르면 칼링가 전쟁으로 인해 10만 명 이상이 전사하고, 15만 명 이상이 포로로 잡혔으며, 전쟁의 여파(기근과 전염병)로 수십만 명이 사망했다. 칼링가는 거대한 마우리아 제국군에 맞서 군인뿐만 아니라 온 나라의 백성들이 무기를 들고 결사 항전을 벌였다. 당시 아소카 왕은 '찬다소카(Chandashoka, 잔혹한 아소카)'라고 불릴 만큼 무자비한 정복자였다. 그는 저항하는 칼링가를 완전히 짓밟기 위해 제국의 압도적인 군사력을 쏟아부어 대규모 학살을 감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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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은 아소카 왕의 승리로 끝났지만, 승리 직후 그가 목격한 전장의 모습은 비극 그 자체였다. 피로 물든 다야(Daya) 강과 널려 있는 시체들, 가족을 잃고 울부짖는 사람들을 보며 아소카 왕은 깊은 정신적 충격과 회한에 빠졌다.

 

"내가 무엇을 한 것인가? 이것이 승리란 말인가, 아니면 패배란 말인가?"

 

이 사건을 계기로 아소카 왕은 완전히 다른 사람으로 거듭나게 된다. 그는 향후 모든 영토 확장 전쟁을 영구히 중단하겠다고 선언했다. 칼링가 전쟁의 참상을 참회하며 불교에 귀의했다. 이후 칼과 방패 대신 자비, 평화, 비폭력, 도덕성을 뜻하는 '다르마(Dharma, 법)'에 의한 통치를 펼치기 시작했다. 그는 자신의 참회록과 평화의 메시지를 제국 전역의 거대한 바위와 기둥(석주)에 새겨 백성들에게 알렸다.

 

결국 칼링가 전쟁은 한 잔혹한 정복자를 성왕(聖王)으로 변화시킨 계기였으며, 변방의 지방 종교에 불과했던 불교가 아시아 전역, 나아가 세계적인 종교로 전파되는 결정적인 도화선이 된 역사적 사건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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