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맞벌이 부부의삶

새해 첫날에는 절대 외출하지 않는다는 어느 교수

작성자호중유천|작성시간25.12.31|조회수2,667 목록 댓글 16

대부분의 사람은 새해 첫날을 특별한 날로 여겨 나름의 이벤트를 계획한다. 그중 신문에 빠짐없이 등장하는 장면은 산이나 바닷가에서 해돋이를 맞이하는 사람들의 모습이다. 1231일에 뜬 태양과 11일에 뜬 태양이 다를 리 없지만, 11일에 바라보는 태양은 왠지 모르게 신비로운 기운을 담고 있는 듯하고, 거기에 나의 소망을 투영하면 이루어질 확률이 높아질 듯하다.

 

하지만 세상에는 이런 이벤트와 정반대의 선택을 하는 사람도 있다. 아무 것도 하지 않는 것이다.

 

신교수는 새해 첫날이 되면 가급적 아무 것도 하지 않고 조용히 지낸다. 외출은 물론 하지 않고, 손님도 받지 않는다. 식사도 최대한 평소와 다름없는 소박한 찬으로 한다.

 

신교수의 행동에는 물론 이유가 있다. 오래 전 어느 해인가 새해 첫날 외출했다가 차 사고가 났다. 사고야 날 수도 있지만 해결 과정도 평소보다 오래 걸렸다. 휴일이라 보험사와 경찰이 처리하는 데 시간이 평소보다 오래 걸렸고, 상대방이 과실을 인정하지 않아 실랑이도 벌어졌다. 그동안 추위에 떨어야 했던 아이들은 울었다.

 

그해에는 어쩐지 좋지 않은 일들이 거듭 닥쳤다. 신청했던 연구비는 심사에서 탈락했고, 동료 교수와 불화가 생겼으며, 가족 중에 환자도 생겼다. 그럴 때마다 새해 첫날의 사고가 생각났다. 신년운세를 믿는 사람은 아니었지만, 새해 첫날에 벌어진 일이 계속 영향을 미치고 있는 것이 아닐까 하는 의심이 들었다.

 

그날 사고 이후 한동안 기분이 좋지 않은 것은 사실이었다. 그에 따라 당시 진행하던 연구도 약간 늦어졌다. 심사에 탈락한 것은 그만큼 준비가 부족했었기 때문일 것이다.

 

동료 교수와 사이가 틀어진 것도 사실 원인은 별 것 아닌데, 과민반응을 한 내 탓인지도 모른다. 회의에서 그 교수가 한 발언은 딱히 나를 두고 한 말은 아니었을 수도 있는데 나를 가리키는 것이라 지레짐작하고 언성을 높였다.

 

신교수는 결론을 내렸다. 새해 첫날은 아무 사건 사고 없이 지내는 것이 좋다. 새해 첫날 좋은 일이 생기면 한 해 운이 좋을 수도 있겠지만, 그건 장담할 수 없는 일이고, 그보다는 나쁜 일이 생길 가능성을 차단하는 것이 현실적인 선택이다.

 

그 후 새해 첫날이 되면 신교수의 집은 평소보다 더 조용해졌다. 음악도 티비 소리도 들리지 않았고 대화도 조용조용히 이루어졌다. 새해 인사를 오겠다는 제자들의 청을 거절하기를 거듭한 결과 이제는 인사 오겠다는 사람도 없었다.

 

신교수의 이런 방침에 가족의 반항이 전혀 없었던 것은 아니었다. 특히 아이들이 어렸을 때는 더했다. 방학을 맞아 놀러가고픈 욕구가 높아진 아이들은 어디든 가고 싶어했다. 특히 친구들이 가족과 함께 해돋이를 보러간다는 말을 듣고 꼭 하고 싶어했다. 새벽에 일어나 차를 타고 동해 바닷가에 가서 해돋이를 보다니, 얼마나 멋진가. 부인도 아이들의 소망을 들어주고 싶어했다.

 

그러나 새해 첫날을 조용히 무탈하게 보내는 것이 가족의 안위에 더 중요하다고 생각한 신교수의 고집을 꺾을 수는 없었다.

 

중학생이 되자 아이들도 새해 첫날의 외출은 포기했고, 대신 친구들과 어울리게 되었다. 신교수는 아이들도 자신의 방침을 따라주기 원했으나 그것까지 막을 수는 없었다.

 

신교수의 새해 첫날 원칙을 전해 들은 사람들은 대부분 과하다는 반응을 보였다. 일종의 미신이 아니냐는 반응도 있었다.

 

하지만 그런 원칙 때문인지 몰라도, 신교수는 좋지 않은 일이 생겨도 운을 탓하지 않고, 오직 자기 자신에게만 책임을 돌리게 되었다. 그리고 할 만큼 했는데도 잘 안 되었다면 더 이상 자책하지 않고 훌훌 털어버릴 줄도 알게 되었다.

 

어느 날 신교수와 대화 중에 그의 심경 변화에 대해 듣고 난 후, 나는 이런 생각이 들었다.

 

어쩌면 신교수는 외부 환경을 탓하곤 하던 자신을 다스리려고 일부러 과도한 원칙을 세운 것이 아닐까. 남들이 미신이라고 하건 말건 적어도 그 자신에게는 효과가 있었던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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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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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답댓글 작성자호중유천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 작성시간 25.12.31 비슷한 생각을 하는 분들이 의외로 많은가 봅니다.
    저도 요즘은 대체로 조용히 지내는 편입니다.
    새해 복 많이 받으십시오.
  • 작성자7월 익명 | 작성시간 25.12.31 미신을 믿진 않아도 징크스에 민감하기도 하죠
    뜻밖의 사고 사건에는 ‘운‘도 작용하기에 하면 안될 것 같으면 철저하게 지킬 것 같기도 해요

    良いお年をお迎え下さい
  • 답댓글 작성자호중유천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 작성시간 25.12.31 징크스는 한 번 의식하기 시작하면 자꾸 의식하게 되는 면이 있죠.
    새해 복 많이 받으십시오.
  • 작성자lovelife92 | 작성시간 26.01.01 호중유천님
    건강하시고 가내두루 평안하신 2026년 되시길 바래요
    좋은 글 써 주시고 맞게방에 있어 주셔서 감사 드립니다^^
  • 답댓글 작성자호중유천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 작성시간 26.01.01 새해 복 많이 받으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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