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에 선배 A의 하소연을 들었습니다.
어떤 부서의 부서장으로 있는 선배인데, 본인의 스트레스와 고충에 대해 부서 내 부하직원들이 공감해 주지 않는다는 내용이었지요. 그 A 선배의 말을 들은 뒤 A 선배 부서의 몇몇 선임 직원들을 불러 이야기를 해 보니까 대략 어떤 식으로 돌아가는지 상황이 이해가 되더군요.
A 선배가 담당하는 부서는 나름 핵심 부서 중 하나랄 수 있는 곳인데, 회사 역사상 가장 중요한 변혁의 한복판에 서 있는 상황입니다. 전례도 없는 새로운 변화에 적응하느라 이 선배는 노심조차 밤잠도 못 자 가면서 스트레스 받아 가며 일하지만, 직원들은 천하태평이지요. 부서장이 스트레스 받아 하든, 어려움에 몸부림치든 다들 상관하지 않는 분위기입니다.
여기까지만 보면 직원들이 일방적으로 부서장에게 공감해 주지 않는 것처럼 보이지만, 직원들도 할 말은 있더군요. 이미 그 부서장 자체가 공감능력이 부족했다는 겁니다. 부서장이 직원들 어려움에 공감해 주지 않는데, 왜 직원들이 부서장 어려움에 공감을 해 줘야 하느냐는 이야기입니다.
그 부서 내에서 각 직원들이 어떤 일에 대해 어렵다고 이야기를 할 때에 그 A 부서장은 '라떼는~' 식으로 대꾸하곤 했다고 하더군요.
부서원 : '요즘 이러저러해서 너무 힘들어요.'
부서장(A 선배) : '야야, 뭘 그 정도 갖고 그래? 나때는 말이야 그 정도는 명함도 못 내밀었어. 어땠는가 하면....'
A 선배 때가 더 힘들었다는 그 선배의 말은 맞을 겁니다. 하지만 저 상황에서는 적절한 말이 아니었지요. 저 대화는 부하직원이 힘들다고 하소연하는 대화자리인데, 그 자리에서 '나때는 더 힘들었다' 라고 되받아 버리면 그 부하는 그걸 어떻게 인식할까요? A 부서장 때에는 더 힘들었으니 부서장에게 힘들다는 소리 하지 말라는 소리로, 즉 <힘들다는 부하의 말을 막는 취지>로 알아들을 겁니다.
그런데 나중에 저 A 선배에게 왜 그렇게 말했느냐고 물어 보면, 딱히 부하가 힘들다는 말을 하지 말라는 취지는 아니었다고 합니다. 별 악의없이 자기 이야기만 신나서 했던 것 뿐인데, 어쨌든 결과적으로 부하의 어려움에 대해 공감은 하지 못한 셈이 된 거죠.
그런 상황이 반복되니까 직원들은 어려움이 생겨도 그 부서장(A 선배)에게 말을 하지 않는 분위기가 형성되었다고 합니다. 어짜피 말해 봐야 '나때는 더 힘들었다' 소리만 나올 뿐, 직원들의 고충에 공감도 안 해 주고 해결을 해 주지도 않을 것이라고 여기게 된 거죠.
거기에다가 이 A 선배가 은근히 고집과 꼰대 기질이 있어서 의사결정을 함에 있어서 한 번 꽂히면 직원들이 우려를 제기하거나 반대 의사를 표명해도 '늬들이 뭘 안다고 그래?' 라면서 밀어붙이는 일이 잦았던가 봅니다. 하지만 과거에 유능했던 직원 출신 부서장이라고 해서 현재에도 모든 현장 상황을 일일이 다 잘 알 리는 없겠지요. 이 선배가 과거 자신의 경험에 기반하여 밀어붙인 일들 중 상당 부분이 결국 잘못 되었거나, 직원들에게 부담을 주곤 했었는가 봅니다 그러니 직원들 입장에서는 이 A 선배가 <부하의 말을 들어주지도 않으면서 독단적으로 이상한 의사결정을 할 때가 많은 상사> 로 인식이 되어 버린 것 같더군요.
이런 상황이 지속되니 부하들은 결국 A 선배에 대한 기대를 접어버리고 그냥 이 선배가 지시할 때에만 지시하는 대로 생각없이 기계적으로 움직이는 식으로만 일하고 있더군요. 부하들이 스스로 생각하지 않고 부서장의 판단에만 기대어 기계적으로 행동하니 부서장에게 걸리는 과부하만 더 늘어났고 결국 이 선배만 더 힘들어져서 더 짜증이 늘어난 모양입니다.
부서원은 부서원대로 불만이지만, A 선배도 A 선배대로 불만입니다. 안 그래도 약간 권위주의 기질이 강한 A 선배라 부서원들이 부서장으로서 존경과 존중을 해 주기를 강하게 바라는 성격이면서도 공감능력이 부족해 부서원과의 대화와 소통이 원활하지 못하다 보니 평소에는 말을 많이 하지 않다가 (부서장에 대한 존경심을 충분하게 표현하지 않는) 부서원에 대한 불만이 쌓이면 한 번씩 욱하면서 히스테리 부리듯이 부서원들에게 불만을 터뜨리기도 했던 모양입니다.
이러니 관계만 서로 더 나빠질 수 밖에요.
그러다가 최근에는 그 부서 내의 업무분장과 관련해서 또 트러블이 발생했습니다. 이 A 선배(부서장)가 정한 업무분장에 대해 부서장급 회의에서 협업관계의 타 부서의 B 부서장이 반대의사를 표명했고(A 부서장 생각대로 업무분장을 하면 B 부서장의 부서가 일하기 힘들어진다는 이유입니다.), 그에 대해 부서장급 회의에 참석한 다른 부서장들도 B 부서장 의견에 동조하면서, 회의를 주재한 A 선배의 상위 부서장이 A 선배에게 B 부서장 의견대로 업무분장을 하라고 지시했던가 봅니다. 당연히 A 선배 부서 속 직원들은 불만을 가질 뿐 아니라 A 선배의 리더십에도 의구심을 갖게 되었지요. <부서장끼리 의견충돌이 날 때에 다른 부서장에게 지고 돌아오는 부서장>으로 인식된 겁니다.
어쩌다보니 선배 A의 부서 사람들과 두루 잘 아는 편이 되어서, 부서장인 선배 A의 하소연도 듣고, 그 부서의 선임들의 하소연도 들어보게 된 셈인데 제 개인적인 생각은 모두에게 잘못이 있기는 해도 기본적으로는 부서장인 A 선배의 잘못이 있다는 생각입니다. 거기에서부터 시작된 것이 악순환으로 이어져 결국 부서 관리가 총체적으로 엉망이 되어 버린 느낌이더군요.
하지만 A 선배에게 그런 이야기는 하지 않을 생각입니다. 가만 생각해 보면 그 선배는 예전부터 그래 왔습니다. 공감 능력이 부족한 A 선배의 특징이라는 게 이미 오래 전부터 지속되어 온 그 선배의 특성이지요. 그런 것이 누군가가 말 한 마디 한다고 바뀔 리도 없고, 굳이 누군가가 자신의 단점을 지적해 줄 것을 A 선배가 바랄 리도 없을 겁니다. A 선배가 제게 말을 할 때에는 그저 본인의 어려움에 대한 공감을 원하는 것뿐일 테니, 그냥 공감만 해 주면서 함께 그 선배 부하직원들 욕만 해 주고 말 생각입니다.
그 선배의 예를 보면 후배나 부하 등 젊은 사람의 말을 들을 때에 나이 든 사람이 '라떼는~' 을 시전하는 것이 얼마나 공감능력 없는 짓인지를 돌이켜 보게 됩니다. 그 선배 뿐만은 아닙니다. 나이 든 사람 중에 공감능력이 부족한 사람을 종종 보게 됩니다. 노인이신 분들은 물론이고, 퇴직한 선배들이나, 퇴직이 얼마 남지 않은 재직 중 선배들 중에도 그런 사람들이 많이 보입니다. 남의 어려움에 공감을 하기는커녕, 어려운 경험을 서로 자랑이라도 하려는 듯 '라떼는', '나도 라떼는'을 서로 시전하는 사람들이 드물지 않습니다.
그런데 그게 비단 남들의 이야기일 뿐일까요? 어쩌면 제 이야기일 수도 있지 않을까요? 요즘엔 저도 후배들에게 '라떼는' 이야기를 할 때가 늘어나는 것 같습니다. 그런데 저 선배의 예를 제3자 입장에서 보게 되니, 적어도 나보다 젊거나 어린 사람이 고충을 이야기할 때에는 라떼는 소리는 쉽게 하진 말아야겠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내가 더 힘들었던 건 힘들었던 것이고, 당장 힘들다는 사람에게는 우선 위로부터 해 주는 게 우선이겠지요. 힘들다고 위로해 달라는 사람에게 '내가 더 힘들었으니 네가 힘든 건 별 것도아니다. 그러니 나부터 위로해 달라'는 식으로 오해할 법할 말을 하는 건 공감능력이 없어도 보통 없는 게 아니라는 생각이 듭니다.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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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현재파 작성시간 26.05.01 오늘 공휴일인데 일 합니다.ㅜㅜ
윗사람일수록 이해한다 수고했다 고생했다 고맙다 내지 믿어보겠다 힘써보겠다 도와주겠다 라는 말을 달고 사는 게 현명한거죠.
그런 말이 내 권위를 깍는것도 아니고 결국엔 믿음직한 결과로 돌아온다는 걸 알아야 하는데...그 부서장님은 아둔한거죠. -
작성자한강자전거 작성시간 26.05.01 정답이 있는 삶, 답정너
일에서 삶에서 남자가 더 그런 경향이 강한거 같습니다. 혹시 자녀에게까지 무관심할까 아니면 답정너일까 궁금하네요.
그냥 묵묵히 듣고 있는게 어쩌면 제일 힘든 것일지도 모르겠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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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굿라이프^^ 작성시간 26.05.01 저도 이렇게 중간에 낀 경우라 말을 해줘야하나? 고민 중이었는데 수돌예돌님 글 읽고 해답을 얻었네요.
저도 그냥 듣기만 해야겠네요.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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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낭만할매 작성시간 26.05.01 다읽고 나니 가슴이 답답합니다 우리집 에도 똑같은 닝간이
.. ㅠㅠ 공감 뇌세포가 죽었는지 원래도 거의 없었던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