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맞벌이 부부의삶

이상하게 친일파에 포함되지 않는 사람들 : 고종의 자손들

작성자수돌예돌|작성시간26.05.15|조회수934 목록 댓글 11

아래에 영친왕의 아들 이구가 입었을 것으로 보이는 옷이 올라온 걸 보니 문득 친일파 관련 이야기가 떠올라서 몇 자 씁니다. 

 

흔히 친일파라는 말을 많이 쓰지만, 정부에서 공식적으로 정한 친일파는 「일제강점하 반민족행위 진상규명에 관한 특별법」에 따라 '친일반민족행위진상규명위원회'가 조사한 뒤 판정한 자들을 뜻합니다. 

 

그럼 대체 어떤 사람들이 친일파일까요? 위 법에 나오는 기준은 다음과 같습니다. 

제2조(정의) 이 법에서 “친일반민족행위”라 함은 일본제국주의의 국권침탈이 시작된 러ㆍ일전쟁 개전시부터 1945년 8월 15일까지 행한 다음 각호의 어느 하나에 해당하는 행위를 말한다. <개정 2012. 10. 22.>
1. 국권을 지키기 위하여 일본제국주의와 싸우는 부대를 공격하거나 공격을 명령한 행위
2. 국권을 회복하기 위하여 투쟁하는 단체 또는 개인을 강제해산시키거나 감금ㆍ폭행하는 등의 방법으로 그 단체 또는 개인의 활동을 방해한 행위
3. 독립운동 또는 항일운동에 참여한 자 및 그 가족을 살상ㆍ처형ㆍ학대 또는 체포하거나 이를 지시 또는 명령한 행위
4. 독립운동을 방해할 목적으로 조직된 단체의 장 또는 간부로서 그 단체의 의사결정을 중심적으로 수행하거나 그 활동을 주도한 행위
5. 밀정행위로 독립운동이나 항일운동을 저해한 행위
6. 을사조약ㆍ한일합병조약 등 국권을 침해한 조약을 체결 또는 조인하거나 이를 모의한 행위
7. 일제로부터 작위를 받거나 이를 계승한 행위. 다만, 이에 해당하는 사람이라 하더라도 작위를 거부ㆍ반납하거나 후에 독립운동에 적극 참여한 사람 등으로 제3조에 따른 친일반민족행위진상규명위원회가 결정한 사람은 예외로 한다.
8. 일본제국의회의 귀족원의원 또는 중의원으로 활동한 행위
9. 조선총독부 중추원 부의장ㆍ고문 또는 참의로 활동한 행위
10. 일본제국주의 군대의 소위(少尉) 이상의 장교로서 침략전쟁에 적극 협력한 행위
11. 학병ㆍ지원병ㆍ징병 또는 징용을 전국적 차원에서 주도적으로 선전(宣傳) 또는 선동하거나 강요한 행위
12. 일본군을 위안할 목적으로 주도적으로 부녀자를 강제동원한 행위
13. 사회ㆍ문화 기관이나 단체를 통하여 일본제국주의의 내선융화 또는 황민화운동을 적극 주도함으로써 일본제국주의의 식민통치 및 침략전쟁에 적극 협력한 행위
14. 일본제국주의의 전쟁수행을 돕기 위하여 군수품 제조업체를 운영하거나 대통령령이 정하는 규모 이상의 금품을 헌납한 행위
15. 판사ㆍ검사 또는 사법관리로서 무고한 우리민족 구성원을 감금ㆍ고문ㆍ학대하는 등 탄압에 적극 앞장선 행위
16. 고등문관 이상의 관리, 헌병 또는 경찰로서 무고한 우리민족 구성원을 감금ㆍ고문ㆍ학대하는 등 탄압에 적극 앞장선 행위
17. 일본제국주의의 통치기구의 주요 외곽단체의 장 또는 간부로서 일본제국주의의식민통치 및 침략전쟁에 적극 협력한 행위
18. 동양척식회사 또는 식산은행 등의 중앙 및 지방조직 간부로서 우리민족의 재산을 수탈하기 위한 의사결정을 중심적으로 수행하거나 그 집행을 주도한 행위
19. 일본제국주의의 식민통치와 침략전쟁에 협력하여 포상 또는 훈공을 받은 자로서 일본제국주의에 현저히 협력한 행위
20. 일본제국주의와 일본인에 의한 민족문화의 파괴ㆍ말살과 문화유산의 훼손ㆍ반출에 적극 협력한 행위

 

자, 그런데 이 기준에 의하면 친일파로 분류되어 마땅한 자인데도 친일파로 절대로 분류되지 않는 자들이 있습니다. 그게 누구일까요? 

 

바로 고종의 직계인 조선 왕족들입니다. (조선 왕족이라도 고종 직계가 아닌 자들은 친일파로 분류되었습니다. 가령.... 고종은 흥선대원군의 둘째 아들인데, 고종의 형(흥선대원군의 장남)인 이재면과 그 아들인 이준용(흥선대원군의 장손)은 친일파로 분류되었습니다. 왜냐하면 이들은 고종의 직계가 아니라서 처벌해도 괜찮다고 다들 여긴 거죠.)

 

하지만 고종의 직계 후손들은 친일파로 분류되지 않았습니다.

 

고종의 직계 자손들은 조선의 왕족답게 자존심을 지켜 가면서 일제에 비협조적으로 나왔기에 친일파로 분류되지 않은 것일까요? 고종의 가장 대표적인 직계 자손이라 할 <영친왕>이 일제시대에 어떤 삶을 살았는지 살펴 보겠습니다. 

 

<영친왕의 삶>

- 1907. 11살에 이토 히로부미에 의해 일본으로 강제 유학 감. 이후 일본인으로 길러짐
- 1910. 한일합방과 함께 일본 왕실의 왕공족인 왕세제 작위를 받음
- 1917. 일본육군사관학교 졸업(29기)  → 참고로 3년 선배인 지청천(일본 육사 26기)은 독립운동에 헌신
- 1926년 4월: 순종 사망 후 순종이 갖고 있던 일본 왕공족 작위인 '이왕(李王)'을 계승
                      (이 '이왕'이라는 작위는 일왕이 황제를 자칭하면서 조선 최고위 왕족에게 부여한 <일본의 왕작>입니다.)
- 1927년 ~ 1928년: 일본 황족 자격으로 유럽 순방 진행.
- 1935~1937.  일본군 보병 제59연대장 → 일본 육군의 청년 장교들이 일으킨 쿠데타(2.26 사건) 당시에 진압군을 이끌고 도쿄로 진입(직접 교전 치르진 않음)
- 1937. 일본 육군사관학교 교관 : 일본제국을 위해 헌신할 육사 생도들을 양성
- 1938. 일본 육군 소장 진급.
- 1939. 일본 황실 경호부대인 근위보병 제2여단장
- 1940. 일본 육군 중장 진급. → 당시 일본군에는 '준장'이 없고 중장의 보직 범위가 넓었기에 이 시기 일본군 중장은 현 한국군의 소장 ~ 대장급과 비슷할 수도 있음
- 1940. 일본 육군 제4사단장(오사카), 일본으로부터 훈1등 욱일동화대수장(勲一等旭日桐花大綬章)이라는 훈장 수여받음
- 1941. 일본 육군 제51사단 사단장(만주 → 중국 남부 광둥성 지역) → 중일전쟁 참전. 잠시 만주에서 관동군에 소속되어 훈련했다가 중국 남부로 이동
- 1942년경. 일본으로부터 공급 금치훈장(功級 金鵄勲章)이라는 훈장 수여받음
- 1943. ~ 1945. 일본 본토 방공 임무를 담당하는 제1항공군 사령관 역임(일왕 직할부대)
- 1945.(일본 패망 직전)  일본 육군 군사참의관(지휘관 보직 벗어나 일본군 자문관이 된 셈)

 

어떻습니까? 이 정도면 친일파에서 빼 줘야 할 정도로 일본에 적극적으로 저향했거나, 적어도 일본에 비협조적으로 산 인물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 같나요?

 

아니지요. 그 반대입니다. 이 정도면 한국인 중에서는 최상위급 전범(전쟁범죄자)에 가깝다고 평해도 모자라지 않을 지경일 겁니다. 위에 언급한 법조문 중 7호, 10호, 19호에 바로 걸리는 게 보일 정도입니다. 일본의 작위도 받았고, 소위 이상의 계급을 가진 군인으로서 일제의 침략전쟁에 협조도 하였으며, 일제에 적극 협력해서 훈장까지 받았으니까요.

 

그런데 이런 영친왕은 친일파로 분류된 적이 없습니다. 이유는 간단합니다. 영친왕이 <고종의 직계>라서 그렇습니다. 

 

그러면 고종의 직계 후손들은 대체 왜 친일파로 분류되지 않은 걸까요? 

 

말은 깁니다만, 간단하게 요약하자면 고종과 그 직계는 (국왕이 곧 국가이므로) 조선이라는 재산과 권력을 빼앗긴 <피해자>일 뿐이라는 논리에서입니다. 피해자가 이후에 일본에 좀 협조적으로 살았기로서니 피해자를 가해자로 분류할 수는 없다는 기적의 논리가 성립한 겁니다. 

 

물론 이런 말을 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어릴 때에 일본으로 끌려가서 일본이 시키는 대로 저리 산 것인데 불쌍하지 않느냐고요. 네, 11살에 일본에 끌려간 건 불쌍합니다만, 성인 이후에 일본군 장교와 장성으로서 적극적으로 일제에 협력한 것도 과연 타의에 의한 것이고 불쌍하다고만 봐야 할까요? 

 

그런 너무 편향된 기준일 겁니다. 

 

과거에 친일파에 대해 좀 알아보았던 때가 있었는데, 우리나라의 전통적인 <임금님에겐 책임 돌리기 없음> 관행이 친일파 판정에까지 영향을 미치는 것 같아서 좀 불편했지요. 오늘 영친왕의 아들 것으로 보이는 옷 유물을 보다 보니 옛날 생각이 좀 나서 끄적여 봤습니다. 

 

 

+덧) 아래 사진은 영친왕의 사진들입니다.

(출처 : KBS 역사스페셜(2011.5.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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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댓글 리스트
  • 작성자살쫙쫙↘돈쑥쑥↗ | 작성시간 26.05.15 조선 역대왕의 외모가 설마 저렇지는 않았겠죠? 친일은 물론이고 외모도 지극히 실망이네요. 세자 저하에 대한 로망이 완전히 바스라지네요 ㅠㅠ
  • 답댓글 작성자수돌예돌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 작성시간 26.05.15 어허, 무엄하십니다. 어디 감히 용안을 얼평하십니까!!!! (버럭)

    첨부한 사진은 대한제국의 고종황제(왼쪽, 더 키 작은 남자), 순종황제(오른쪽)의 용안입니다. 비교해 보면 영친왕과 붕어빵임을 알 수 있으니 이것이 바로 조선 왕실의 위엄있는 전통적 용안이랄 수 있겠습니다.

    이 분들이 바로 법 위에 올라선 대한제국의 초 강력한(?) 전제군주(고종은 스스로를 '전제군주' 라고 자칭했고, 입헌군주제 도입하려는 모든 시도를 박멸함. 예컨대 보부상을 용역깡패처럼 동원해서는 독립협회가 입헌군주제와 국민의 기본권 보장 및 의회 도입을 시도했다고 의심하여 몽둥이로 두들겨 해산시켰다거나....) 황제폐하님들이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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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답댓글 작성자살쫙쫙↘돈쑥쑥↗ | 작성시간 26.05.15 수돌예돌 저하는 변우석인데 에휴~
  • 작성자호중유천 | 작성시간 26.05.15 역사를 어느 정도 알아야 하기는 하지만
    조선의 왕들에 대해서는, 특히 고종에 대해서는 별로 자세히 알고 싶지 않은 것이 솔직한 심정입니다.
    이미 아는 폐해만으로도 충분하니까.
    그 후손들이야 이미 일본인이 되었으니 더욱 알고 싶지 않고.

    물론 역사학을 공부하는 사람들은 철저히 알아야겠죠.
  • 작성자thinking flexibility | 작성시간 26.05.15 조선말 고종,명성황후 등이
    백성들에게 한짓을 보면
    진짜 눈물나죠
    백성 때려잡으려고
    외세를 끌어들여 ㅜ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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