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맞벌이 부부의삶

1932년, 영친왕

작성자한강자전거|작성시간26.06.16|조회수1,296 목록 댓글 13

https://youtu.be/fGs2DwQ3hCU?si=Oi6hs_joqjexvL8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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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답댓글 작성자슈 렉 | 작성시간 26.06.16 수돌예돌 아뇨, 해방 후 환국하고 나서요.
  • 답댓글 작성자수돌예돌 | 작성시간 26.06.16 슈 렉 해방 이후에는 임시정부가 존재하지 않았습니다. 대한민국 임시정부는 1919년 중국 상하이에서 통합 임정 형태로 설립(직전의 3개 임정을 통합)된 뒤, 우여곡절을 거쳐 1940년대에는 김구 주석 주도 하에 중국 충칭에서 활동하다가 해방 이후인 1945년 말에 임정 요인들이 <개인 자격>으로 귀국하면서 자연스럽게 해체됐습니다. (당시 미군정은 대한민국 임시정부를 '정부'로 인정하지 않았기에 국내에서는 더 이상 정부로 활동하지 못함)

    따라서 해방 이후에는 임시정부라는 게 존재하지 않고, 임시정부 세력은 대개 김구 중심으로 '한국독립당' 이라는 정당으로 활동하게 됩니다.
  • 답댓글 작성자슈 렉 | 작성시간 26.06.16 수돌예돌 개인자격으로 귀국했지만 하지 중장이 덕수궁에 사무실도 마련해 주고 임시정부라는 단어도 쓰게 허용해 주었어요. 한민당 측에서 엄청난 정치자금을 받아 한때 가장 큰 세력으로 활동했습니다. 임정세력이라고 생각하시면 될듯합니다.
  • 답댓글 작성자수돌예돌 | 작성시간 26.06.16 슈 렉 당시 미군정은 '한반도의 38도선 이남 지역에는 미군정 외의 정부는 없다' 라는 원칙을 지나칠 정도로 강경하게 고수했습니다.

    그래서 김구가 귀국할 때에도 김구는 <나와 내 동료는 개인자격으로 귀국하며, 귀국 이후에도 (임시)정부로서 기능하지 않을 것을 선언한다. 우리의 귀국 목적은 미군정에 협조하기 위함이다> 라는 비굴할 정도의 서한을 미군 사령관 측에게 보낸 뒤에나 겨우 귀국 허가를 받아낼 수 있을 정도였지요.

    첨부가 귀국 허가를 받아내려고 백범 김구가 중국의 미군 사령관 웨더마이어에게 보낸 편지입니다. 여기에는 다음 구절이 있지요.

    "I hereby undertake to assure you that I and my colleagues fully understand that we shall be allowed to enter as strictly private individuals and not in any official capacity. I futher have the honor to state that on entering Korea we do not expect to function, either collectively or
    댓글 첨부 이미지 이미지 확대
  • 답댓글 작성자수돌예돌 | 작성시간 26.06.16 슈 렉 individually, as a government or such body exercising civil and/or political power. Our aim shall be to cooperate with the U.S. Military Government in estabilishing order as will benefit the Korean people."

    이렇게 거의 비굴해 보일 정도로 항복 선언을 하다시피 하고 귀국한 김구에게 미군정이 '임시정부' 대접을 할 리는 당연히 없지요. 김구의 임시정부는 미국에 의해서 철저히 정부로서의 지위를 부정당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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