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창동에 있는 20세기 서단의 거목인 일중의 집 보현재에 다녀왔습니다.
서예가 김충현의 예업을 기리기 위해 노년기를 보냈던 가옥에 마련된 전시 공간입니다.
김충현 선생은 조선시대 청렴과 절의로 명망 높던 청음 김상헌의 14대 문벌가의 후손으로 선조들과 견주어 끊임없이 자신을 성찰하고 그 기풍을 이어가는 것은 매우 중요한 덕목이었다고 합니다.
일제강점기 ‘우리 글씨 쓰는 법’ 저술을 시작으로 평생 동안 쉼없이 서예 교재를 편찬하고, 해방 후부터 수많은 독립지사, 호국선열들의 비문을 써냈다고 하네요
평창동 한 주택가 골목을 쭉 올라가면 보현봉이 우뚝 솟아있고 북악산 능선이 이어진 곳에 위치해 있는 곳으로 예약제로만 운영되는 곳입니다.
경사가 꽤 있어서 자차로 방문하는 것이 편합니다.
도착해서 열려 있는 대문 사이로 들어갔습니다.
마치 일반 가정집에 초대 받아 간 것 같은 느낌이었습니다.
오른쪽 앞마당으로 가는 길에는 석재와 벽돌을 조화시킨 전통식 담장이 눈에 띄었는데
계절에 따라 매화, 백일홍, 들국화, 사철나무를 볼 수 있는 마당을 보니 노년의 이곳에서 보낸 삶이 얼마나 충만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마당을 둘러본 후 들어가봅니다.
신발을 벗고 들어가면 입장료 1만원을 결제 후 직원분이 티켓, 브로셔, 엽서를 나눠주고 자유롭게 1,2층을 둘러볼 수 있는 시간을 주세요.
관람 후 1층으로 다시 내려오면 원하는 곳에 앉아서 간단한 다과를 즐길 수 있도록 준비해주시더라고요
단 이곳에 머물 수 있는 시간은 딱 1시간입니다.
1만원의 돈으로 짧은 시간이었지만 아주 만족스러웠네요
입구에서 오른쪽에 정면으로 보이는 곳이에요
김충현 선생은 1995년부터 2006년 타계하기전까지 이곳에 머물렀다고 해요
1997년 병환이 심해져 절필 했기 때문에 보현재에서 작품을 제작한 기간은 그리 길지 않지만 곳곳에 자연을 사랑한 정취가 배어 있습니다.
중앙에서 오른쪽에 위치한 방이에요
반대편에서도 찍어봤습니다.
저절로 붓글씨가 써질 것 같은 모습입니다.
악필인 저는 글씨를 똑바로 잘 쓰는 사람들이 너무 부럽습니다.
사계절의 변화를 뚜렷하게 즐길 수 있을 것 같은 또 다른 공간이에요
이 방이 맘에 들어서 관람 후 이곳에서 차를 즐겼네요
우롱차와 강정을 내다주셨어요
방석에 앉았을 때 정면으로 보이는 방이에요
오른쪽 창가 사이로 정원이 살짝 보입니다
우롱차 마시면서 밖 풍경을 바라봤어요
파릇파릇 자연의 힘이 느껴졌어요
차 마시기 전 제가 있던 공간의 맞은편 방을 먼저 둘러봤어요
세월의 멋을 품은 가구과와 격자창 너머 푸른 풍경이 어우러지는 방이었어요
<사진 속 글자>
불화이열: 마음에는 불이 없어도 (스스로) 불처럼 뜨거워지고
불빙이한:얼음이 없어도 (스스로) 얼음처럼 차가워지네.
외부의 물리적인 불(火)이나 얼음(氷) 자극이 없더라도, 사람의 마음과 성정이 지닌 깊은 사유와 도덕적 본성에 의해 스스로 뜨겁게 끓어오르기도 하고 얼음처럼 냉철하게 가라앉기도 한다는 뜻입니다. 내면을 다스리는 선비들의 엄격한 심성 수양의 경지를 비유적으로 표현한 문구입니다.
1층 관람 후 2층으로 올라가봤습니다
정갈하고 독특한 서체가 적힌 병풍이 제일 먼저 눈에 들어왔어요
대형 10폭 한글 병풍은 김충현 선생의 대표작 중 하나로, 한글 고체(판본체)의 대가다운 압도적인 필력을 보여주는 작품입니다.
현대적인 캘리그래피의 원류가 되는 서체로, 자음과 모음이 사각형의 틀 안에서 곧고 단단하게 균형을 이루며 끝 획을 길게 빼는 일중 선생만의 독창적인 서풍이 특징입니다.
오른쪽에는 큰 창문이 인상적이었습니다.
큰 창밖으로 산세, 소나무 등이 내다보이고요
이 작품은 자연의 장엄함과 계절의 변화를 노래한 7언 한시입니다. 오른쪽에서 왼쪽 방향으로 세로쓰기로 읽습니다.
한 쌍으로 이루어진 이 작품은 내용을 우측에서 좌측으로 자연스럽게 이어지게 배치하여 공간의 균형감을 줍니다. 두 액자의 글자 크기와 줄 간격이 완벽하게 대칭을 이루어, 보는 이에게 시각적인 편안함과 함께 마치 한 편의 산수화를 글로 읽는 듯한 깊은 울림을 줍니다.
글자 하나하나가 마치 정사각형의 틀 안에 꽉 짜인 듯이 단단하고 대칭적인 구조를 이룹니다.
훈민정음 창제부터 한글 서예의 특징과 내력, 그리고 자신의 글씨에 대한 소회를 정갈한 한글 서체로 적어 내려간 글
제이목석거상량문
이 작품은 조선 후기 최고의 추사체 완성작으로 꼽히는 김정희의 <상량문>으로, 건물을 지을 때 들보를 올리며 액운을 막고 복을 비는 글입니다.
전체적으로 자형이 아주 묵직하고 가로로 넓적한 김충현 선생 특유의 국한문 혼용 고체 풍모가 돋보이며, 글자 하나하나를 마치 돌에 새기듯 단단하고 중후한 필치로 완성한 수작입니다.
이전의 대형 글씨 작품과 달리, 이 작품은 세밀하고 정교한 필치로 문장가들의 서예 이론이나 인물평을 기록한 문인 서예의 진수를 보여주는 유물입니다
이 시기 김충현 선생은 대형 기념비나 공공 건축물의 현판을 쓰는 국가적인 대가였음에도 불구하고, 집안에서는 손녀의 첫돌상에 올릴 자모판(반절)을 직접 써주는 등 서예를 삶과 가족의 행복을 축원하는 순수한 수단으로 소박하게 사용했습니다
또 다른 공간으로 들어가 봅니다
‘여운공락’
운치를 나누며 함께 즐긴다
잔글씨에서 드러나는 붓의 경직된 움직임과 일중실이라는 오자에서 병마의 흔적을 살필 수 있습니다
삼연 시
정묘년 소서 무렵에 쓴 작품으로 거친 밭을 개간하고 시골에서 농사를 지으며 밥을 배불리 먹는 향촌 삶의 유유자적함과 고단함을 담은 한시구절
묵향연중
중후하고 힘 있는 예서체 필치를 감상할 수 있는 대표적인 서예 작품
'먹의 깊은 향기와 그 서화(書畫)의 인연이 겹겹이 두텁게 쌓여 간다'는 뜻입니다. 서예가로서 평생을 먹과 함께 살아온 거장의 삶과 자부심이 그대로 녹아 있는 문구입니다.
석지실
거대한 돌은 문처럼 서 있고
산봉우리와 갓 같은 바위 모양은 그 자체로 풍류를 이루네.
비단 천 필을 놓은 듯 하천이 가까이 흐르고,
한 줄기 강물은 오래된 고목을 마주하네.
바람을 가르는 걸작과도 같은 풍경,
구름이 개니 길못이 새롭구나.
가을 팔월 달 밝은 밤에,
강모퉁이에 배 떠나보냄이 어찌 아니좋을쏘냐.
명대연경
이 작품은 고대 중국의 한자 서체인 전서체(특히 소전체)로 쓰인 서예 액자입니다. 올바른 몸가짐과 학문의 길에 대한 옛 성현의 가르침을 담고 있습니다.글씨는 오른쪽에서 왼쪽 방향으로, 위에서 아래로 세로로 읽습니다.
인감도장이나 고대 비석에서 주로 볼 수 있는 서체입니다.
전각과 인출본
평생에 걸쳐 다양한 서예 교재를 저술했다고 하네요
월인천강지곡 영인본
일중 선생은 이 작품에서 한글 자모를 현대적인 타이포그래피나 고대 전서의 조형 공간처럼 재배치하여, 자음과 모음을 분리하거나 독특한 결합 방식으로 구성하는 고도의 예술적 실험을 시도했습니다.
나무판에 글씨를 음각(안으로 파냄)으로 조각한 뒤, 청색 계열의 물감을 채워 넣어 입체감을 살린 현판 형태입니다. 자연스러운 나무의 질감과 오랜 세월의 흔적이 묻어나는 멋스러운 서예 서각 작품입니다.
갈수록 옛것을이 좋아지는걸 보니 나이를 먹어간다는 거겠죠^^
1시간이었지만 뜻깊고 힐링되는 귀한 경험이었어요
댓글 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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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시간 26.08.22 차를 드셨다는 방 맞은 편에 문갑..그 위에 수석, 난, 쬐그만 수석?, 함, 원형자기가 나란히 배열되어 있는 것이...서로 관련 없는 사물임에도 묘하게 어울립니다. 왼쪽의 농도 기품 있고, 또 그 왼쪽의 액자에 뜨거울 열, 차가울 한..고체자인지 작가의 창작글자인지는 모르겠지만 그림처럼 보여서 매우 인상적입니다.
덕분에 눈이 즐거웠습니다. 감사합니다 ^^ -
답댓글 작성시간 26.08.23 한자의 가장 고대 서체인 전서체라고 하네요
그중에서도 일중 김충현 선생이 고대 중국 주나라 시대의 석고문이나 진나라 시대의 소전 같은 고전 필법을 깊이 연구하여, 자신만의 단단하고 기품 있는 필치로 재해석해 낸 '일중체 전서'로 볼 수 있다고 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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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시간 26.08.23 집 전체에 묵향이 배어있는 것 같군요.
아파트에서 벗어나 저런 집에 살고 싶기도 합니다. -
답댓글 작성시간 26.08.23 저도 둘러보면서 아파트가 아닌 저런 집에 살고 싶다는 생각이 똑같이 들더라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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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시간 26.08.23 감사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