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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토론방

정치가 종교를 대신하는 세상, 유시민과 김어준 대 이재명

작성자한리버|작성시간26.06.09|조회수523 목록 댓글 37

 

경상도 억양으로 안보와 경제를 외치는 목소리를 들을 때마다, 나는 오래전부터 신뢰를 거두었다. 틀린 말을 하기 때문이 아니다. 그 명분 뒤에 자리 잡은 실체가 보이기 때문이다.

그 실체란 이것이다. 수십 년 동안 국가 세금과 정책이라는 공적 자원을 사적 이익으로 전환하는 데 성공한 집단이, 그 구조가 흔들릴 때 안보와 경제라는 언어로 방어막을 치는 행동. 공익적 가치에 대한 합리적 대화가 애초에 불가능한 이유는, 그들에게 공익이란 처음부터 존재하지 않는 언어이기 때문이다. 그것은 수단이었다. 한 번도 목적이었던 적이 없다.

이것은 경상도 보수 진영만의 이야기가 아니다. 호남의 민주당 지지층도 다른 방식으로 같은 함정에 빠져 있다. 수십 년간의 지역 소외, 일자리의 부재, 고향을 등지고 서울로 떠나야 했던 역사가 만들어낸 집단 정체성이, 민주당에 대한 맹목적 지지라는 형태로 고착되었다. 그들이 문재인을 비판하는 목소리를 들을 때 느끼는 반응은 논리적 반박이 아니라 신성모독에 가까운 감정이다. 교주를 공격하는 이단자를 향한 분노. 그것이 옳고 그름의 판단 이전에 작동하는 1차 반응이다.

이 두 집단은 서로를 적으로 규정하면서, 실은 구조적으로 동형이다. 진영이 다를 뿐 작동 원리는 같다. 사실에 기반한 논리처럼 보이지만, 그 내면에는 공허함을 채우기 위한 가상의 신념이 핵심 동력으로 자리 잡고 있다. 끊임없는 자기 세뇌가 반복되면서 이성이 들어설 여지가 사라진다. 그들은 그냥 신도가 되어 있을 뿐이고, 그 신도의 시선이 그들의 정치 판단 기준이 되어버린다.

 

슘페터가 옳았다 — 그리고 그것이 비극이다

20세기 중반, 경제학자 조지프 슘페터는 민주주의에 대한 낭만적 환상을 정면으로 부정했다. 자본주의, 사회주의, 민주주의에서 슘페터는 이렇게 썼다. 민주주의란 국민이 정치에 참여하여 공동선을 실현하는 시스템이 아니다. 그것은 경쟁하는 엘리트 집단이 유권자의 표를 획득하기 위해 벌이는 경쟁 메커니즘에 불과하다.

더 냉혹한 진단은 경제학자 브라이언 캐플런에게서 나왔다. 그는 이성적 유권자의 신화에서 민주주의의 근본적 역설을 해부한다. 시장에서 비합리적 선택을 하는 소비자는 자신의 돈을 잃는다. 하지만 투표장에서 비합리적 선택을 하는 유권자는 자신의 손해를 직접 체감하지 못한다. 비용이 분산되고 결과가 지연되기 때문이다. 그래서 유권자는 합리적 무지 상태를 유지하거나, 더 나아가 의도적으로 비합리적 신념을 고집하는 것이 개인에게 오히려 효율적이 된다. 슬로건, 감정, 부족 정체성이 정책보다 강력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

나는 이것을 민주주의의 평균값 이론이라고 부른다.

어느 사회에서든, 민주주의 시스템이 출력하는 정치 서비스의 질은 그 사회 유권자들의 정치의식 평균값을 초과하지 못한다. 안동에서 평생 농사를 지은 선량한 농부, 신안의 작은 섬에서 자식을 키운 어부, 서울에서 유학을 마치고 교수가 된 지식인. 이들 모두가 각자의 이익과 감성과 편견을 가지고 투표장에 들어간다. 그 각각의 판단이 집산되어 나온 평균이, 지금 우리가 보고 있는 정치의 실체다.

이 기준으로 과거와 현재를 보면, 왜 그런 일들이 벌어졌는지 이해하기가 훨씬 쉬워진다. 미래까지도 어렴풋이 보이기 시작한다. 내가 1년 전에 내란에 준하는 극단적 위기를 예고한 것도 이 논리에서 나왔다. 내란은 우연한 교통사고가 아니다. 비판적 이성 없이 광신도처럼 행동하는 다수의 평균 의식이 만들어낸 필연적 귀결이다. 예외가 아니라 운명이다.

 

가스라이팅의 구조 — 공허함을 먹고 사는 권력

정치적 신도 현상의 핵심에는 언제나 공허함이 있다. 현대 산업 사회가 공동체를 해체하고, 의미의 원천이 되었던 종교와 지역 공동체가 약화된 자리에 남겨진 거대한 심리적 공백. 정치는 그 공백을 채우는 대체 종교로 작동한다.

한국 정치에서 이 구조를 가장 정교하게 활용한 인물 중 하나가 김어준이다. 그의 실체를 직시하는 것이 중요하다.

그는 민주화 운동을 한 적이 없다. 약자를 위해 자신의 이익을 희생한 기록이 없다. 광장에서 최루탄을 맞은 역사도, 감옥에서 고문을 견딘 역사도 없다. 그런데 수백만 명이 그를 민주 진영의 상징으로 인식한다. 어떻게 이것이 가능한가?

메커니즘은 단순하지만 효과적이다. 그는 실제 민주화의 역사를 살아온 인물들, 이해찬이나 정청래 같은 이들을 자신의 플랫폼에 초대한다. 그리고 그들과 동격의 위치에서 대화를 나누며 중간에 의도적으로 난처한 질문이나 금기의 언어를 던진다. 그 순간 시청자들의 눈에 포착되는 것은, 이 사람이 저 거칠고 험한 정치 역정을 걸어온 사람과 동급으로 대화를 나눈다는 인상이다. 그 인상이 누적되면서 김어준은 셀럽들의 상징성을 흡수하여 자신의 권위로 내면화한다. 마치 나쁜 역할을 맡은 배우를 길에서 만나 때리는 어르신의 심리처럼, 사람들은 플랫폼이 만들어낸 이미지와 실체를 구분하지 못한다.

더 중요한 것은, 그가 노무현의 죽음이라는 민주 진영 최대의 상처를 자신의 권위로 흡수하는 데 성공했다는 점이다. 노무현 정신의 상속인이라는 이미지. 그것은 논리로 만들어진 것이 아니라 반복된 가스라이팅으로 주조된 것이다. 그리고 그 이미지가 일단 완성되고 나면, 그 플랫폼이 행사하는 정치적 영향력에 의문을 제기하는 것 자체가 노무현을 배신하는 행위처럼 느껴지게 된다. 이것이 바로 가스라이팅 권력의 핵심이다.

그 결과 그는 실질적인 권력자가 되었다. 민주당의 공천 과정에 영향력을 행사하고, 지지층의 분노와 열정을 원하는 방향으로 동원할 수 있는 위치. 이것은 정의에서 나온 권력이 아니다. 공허함을 매일 채워주는 대가로 얻어낸 권력이다.

보수 진영도 다르지 않다. 태극기와 성조기를 함께 흔드는 집회, 유튜브의 극우 채널들이 노령 세대의 고독과 불안을 먹고 자라는 방식. 진영은 다르지만 작동 원리는 동일하다. 가스라이팅의 내용이 다를 뿐, 가스라이팅이라는 형식은 공유한다.

나는 왜 이재명을 9년 전부터 지지했는가

이 지점에서 나의 입장을 분명히 해야 한다. 나는 이재명의 신도가 아니다.

나는 문재인을 일찍부터 비판했다. 그것은 그가 민주당 소속이어서가 아니라, 대기업에 연줄로 입사한 뒤 무능과 무기력으로 자리만 지키는 직원처럼 보였기 때문이다. 부동산 폭등에 대한 대책의 부재, 집행 의지의 결여. 나는 그것을 지지층의 분노를 두려워하는 리더의 실패로 읽었다. 이낙연은 출세론자였다. 조국은 서울대 법대를 나온 인재가 민정수석 자리에서 보여준 것이 너무나 초라했다. 서민 의식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특권 의식. 국민에게 좋은 정치 서비스를 제공할 능력과 자격이 없어 보였다.

당시 조국이 검찰 수사를 받고 있었기 때문에 민주당 지지자들은 그를 비판하는 나를 반대편의 앞잡이로 몰아붙였다. 나는 검찰 권력의 문제를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고 그것을 비판해왔다. 하지만 검찰이 나쁘다는 사실이 조국이 유능하다는 증거가 되지는 않는다. 그 두 가지는 별개의 문제다. 사람들은 그 구분을 하지 못했다. 편이 갈리면 논리는 사라진다.

반면 이재명은 달랐다. 그는 성과를 냈다. 성남시장 시절부터 경기도지사를 거치면서 그가 보여준 것은 말이 아니라 실행이었다. 복지와 경제를 동시에 끌어올리는 행정 능력, 거대한 반대 세력 앞에서도 공약을 이행하는 집행력. 나는 그를 완벽한 존재로 숭배하지 않는다. 그가 잘못하는 부분은 지금도 비판한다. 하지만 모든 정치인 중에서 실질적 성과를 낼 수 있는 압도적 실력자라는 판단은 지금도 변하지 않는다.

물론 나도 인간이기 때문에 편협한 신념에서 완전히 자유롭지 않다. 하지만 적어도 이성적 판단, 객관적 사실, 편중되지 않은 시각을 유지하려는 의지는 내 안에 있다. 그 중심을 잃지 않으려는 탄력성.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렇지 않다. 상대방의 허물에는 확대경을 들이대면서 자신의 허물은 외면한다. 그들은 그렇게 진화해왔다. 가스라이팅에 길들여진 것이다.

유시민의 ABC론과 평택 보궐선거의 비극

이재명 정부가 출범하기 전부터 나는 한 가지를 예고했다. 이재명과 김어준·유시민 등 친문 세력이 충돌할 것이라고. 당시 대부분의 사람들은 말도 안 되는 소리로 들었을 것이다. 같은 민주당 아닌가. 그들이 왜 싸우나.

 

평택 보궐선거는 이 갈라치기가 실제 선거를 어떻게 파괴하는지를 보여주는 교과서가 되었다. 선거 막판에 유시민이 등장했다. 그리고 김용남을 민주당의 자격이 없는 인물로 인식하게 만들고, 조국을 민주당 정신의 진정한 구현자처럼 띄웠다. 앞서가던 김용남의 표가 분산되었고, 어부지리로 국민의힘이 당선되는 비극적 결과가 나왔다.

아무도 사과하지 않았다. 그것이 더 심각한 문제다.

이재명 대통령이 눈을 뜨고 볼 수 없는 것은 바로 이 장면이다. 선거를 이기기 위해 싸워야 할 세력이 오히려 내부에서 선거판을 교란하고, 그 결과로 국민의힘이 어부지리 당선을 가져가는 상황. 그것도 단순한 전술 실패가 아니라, 자신들의 플랫폼 권력을 유지하기 위한 의도적인 행위로 읽힐 수밖에 없는 패턴이 반복되고 있다는 점에서.

 

이재명 대 김어준 — 예고된 충돌

권력 구조를 보면 충돌은 처음부터 예정되어 있었다.

김어준의 실질적 권력은 두 기반에서 나온다. 첫째는 민주당 공천 과정에 대한 영향력이다. 어떤 인물을 띄우고 어떤 인물을 버리느냐에 대해 그는 수십만 명의 지지층을 실질적으로 동원할 수 있다. 둘째는 갈라치기 프레임이다. 진짜 민주당과 가짜 민주당을 구분하는 기준을 그가 설정하는 구조. 이것은 이재명에게 통제 불가능한 권력 중심이 당내에 존재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재명의 관점에서 이 구조는 두 가지 문제를 동시에 만든다. 하나는 정치적 위협이다. 자신이 통제하지 못하는 권력이 당을 흔들 수 있다. 다른 하나는 정책적 장애다. 갈라치기는 당의 외연 확장을 막고 국정 운영을 위한 광범위한 연합 형성을 방해한다.

대통령 담화에서 이재명이 말한 것의 핵심은 이것이다. 우리는 새로운 그릇이 되어야 한다. 과거에 쓴소리를 한 사람이라도 포용하고 통합하는 길로 가야 하는데, 왜 민주당은 반대로 가는가. 왜 새로 들어온 사람의 과거 흠을 잡아 내치는가. 김용남 같은 인물을 포용하지 못하고 끝까지 조국을 띄워 결국 국민의힘에 의석을 헌납한 그 패턴이 반복되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김민석을 총리에서 당 대표로 보내려는 행보, 해외 출장에서 당 대표를 공항 영접에서 배제하는 메시지. 이것들은 우연이 아니다. 이재명은 지금 당내 권력 지형을 재편하려는 시도를 하고 있다. 얼마나 긴박했으면 이토록 대놓고 시그널을 보내겠는가.

문제는 김어준이 단순히 물러날 인물이 아니라는 것이다. 그는 수백만의 지지층과 당내 인맥, 그리고 노무현 정신 상속인이라는 이미지 자산을 가진 실질적 권력자다. 8월 전당대회는 이 충돌이 가시화될 분기점이 될 것이다. 과연 그가 굴복할 것인지, 아니면 어떤 강력한 반격을 펼칠 것인지. 그것은 지금 한국 정치의 가장 흥미롭고 가장 위험한 관전 포인트다.

 

이재명 이후 — 반복될 비극을 직시하며

마지막으로 나는 불편한 미래를 말해야 한다. 아무도 듣고 싶어 하지 않는 이야기를. 하지만 이것을 쓰는 것은 누군가를 설득하기 위해서가 아니다. 1년 뒤, 5년 뒤, 다시 이 글을 꺼내 확인하기 위해서다.

이재명 정부가 성과를 낼수록, 역설적으로 다음 선거에서 위기가 커진다.

이유는 간단하다. 좋은 정부가 만들어낸 안정은 그 정부를 지지할 동기를 희석시킨다. 위기감에서 나오는 결집 에너지는 평화 속에서 분산된다. 이재명의 유능함이 만들어낸 안정이 당연한 배경이 되어버릴 때, 사람들은 굳이 투표장에 가야 할 이유를 잃는다. 반면 반대 세력은 더 강하게 결집한다. 부동산 이익을 지키려는 집단, 기득권 체제의 복원을 원하는 세력, 불안과 분노를 먹고 자라는 극우 청년 세력. 이들은 위기감을 연료로 삼는 조직이기 때문에 오히려 이재명 정부의 성과가 클수록 반사적 결집이 강해진다.

이것은 복지 국가 연구에서 수십 년간 반복 확인된 패턴이다. 스웨덴에서도, 독일에서도, 영국에서도 비슷한 역설이 관찰되었다. 좋은 정부의 성공이 그 정부를 무너뜨리는 토양을 만든다.

한국의 정치 의식 수준이 그 아래에 있는 한, 이 사이클은 반복된다. 다음 국민의힘 정권은 계엄령이나 내란 수준의 극단까지 가지 않더라도, 지금의 40대·50대·60대가 받아들이기 어려운 수준의 퇴행을 보여줄 가능성이 높다. 경상도 기득권, 부동산 이익 집단, 극우화된 젊은 세력이 결합한 권력은 더 이상 합리적 설득을 하지 않을 것이며, 국민은 권력이 휘두르는 폭력의 실체를 목격하게 될 것이다. 그리고 그 퇴행은 또 한 번 위기와 결집을 만들어낼 것이다.

우리가 지금 경험하고 있는 것들, 내란, 극단적 진영 대립, 미디어 권력의 신격화, 공약보다 감정에 의존하는 투표 행태. 이것들은 우연한 사고가 아니다. 이것은 우리 사회의 정치의식 평균값이 만들어낸 필연적 출력값이다.

이 평균값이 올라가지 않는 한, 비극은 반복될 것이다. 그리고 평균값을 올리는 일은 한 명의 유능한 대통령이나 한 번의 선거로 이루어지지 않는다. 그것은 세대 단위의 교육과 경험이 축적되어야 하는 장기 프로젝트다.

나는 그것이 내 생애 안에 완성될 것이라고 기대하지 않는다. 이 글은 예언이 아니다. 한 시민의 오랜 관찰과 고민의 기록이다. 다만 이 글이, 그 긴 과정에서 한 사람이 눈을 뜨고 있었다는 증거로 남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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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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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답댓글 작성자100 in 10 | 작성시간 26.06.10 100 in 10 일본이라는 공적을 잡고자 국민당과 공산당이 협력했는데
    소수였던 공산당이 열심히 텃밭을 갈아 민심을 얻어서
    국민당은 대만 섬으로 쫓겨났지요
  • 답댓글 작성자풀토끼 | 작성시간 26.06.10 100 in 10 친문도 이미 갈라져서
    골수 문파였던 이낙연 계는 돌아오지 못할 강을 건넜고
    남은 분들은 다 각자 이재명을 위해서 노력했고
    그 중엔 윤석열을 두고 문파에게 욕먹은 분들도 많거든요.
    문조털래유도 이재명 지지로 문파에 욕 많이 먹었어요.
    그래서 누가 누구인지 혼란하긴 합니다.
    어쨌든 화합하지 못하면
    국힘으로 다시 기회가 가겠죠.

    근데 뉴이재명은 손가혁이 맞는지도 모르겠어요.
    중도 보수와 일부 친이재명 인사
    이언주 같은 사람들 포함된 것 같아요.
  • 답댓글 작성자100 in 10 | 작성시간 26.06.10 풀토끼 난 정치인의 말은 안믿어요
    그냥 과거 행적을 보는거죠
    말은 쉬어도 행동은 어려운거거든요

    그래서 가장 존경하는게 노무현입니다
    본인의 기득권을 한번도 아니고 여러번 버리고
    정말 나라를 위한 행보를 했으닌깐요
    그걸로 판단은 된거에요

    같은 기준으로 문재인의 과거와 대통령의 공적을 난 존중합니다
    문파안에는 많은 기회주의자가 있다고 생각하지만
    일단 문재인은 지지합니다
    신이 아니라 그가 해온 행동의 보상입니다

    이재명은 글쎄요 그의 과거 행적은 내가 볼때
    단지 공적들의 악마화 한것만은 아닌것 같다 생각합니다

    전부터 난 반 이재명이라서 일단 이재명은 색안경끼고 봅니다

    이재명이 욕심부리면 국힘에게 기회가 가겠지요
    정말 자신이 국가를 위한다면
    자신의 세력 욕심은 버려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 답댓글 작성자100 in 10 | 작성시간 26.06.10 풀토끼 유시민은 적어도 필요한 시기에 이재명을 확실하게 지원사격해 주었습니다. 그땐 역시 유시민 지금은 노욕에 물든 유시민
  • 답댓글 작성자풀토끼 | 작성시간 26.06.10 100 in 10 어쨌든 이재명을 지켜주고 있는 건 뉴이재명이 아니라 오히려 문조털래유라는 겁니다.
    문재인 때 대선후보들 다 날리고
    혼자 남은 이낙연이 문재인 지켜주는 걸 본 적이 없네요.
    민주당 기존 세력 한 명 한 명 뒤에 수많은 지지자가 있다는 걸 잊고 욕심부리면
    문재인 시즌2가 되는 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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