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1월, 조국 조국혁신당 대표는 당대표 수락 연설을 통해 토지공개념 도입을 최우선 과제로 내세우면서 이렇게 말했다.
"지금 부동산 시장은 다주택자의 이기심, 투기꾼의 탐욕, 정당과 국회의원의 선거 득표 전략, 민간 기업의 이해득실이 얽힌 복마전이다. 토지공개념은 '부동산 공화국', '강남 불패 신화'를 해체하기 위한 근본적 처방이다."
해당 문장에서 내가 눈여겨본 것은 바로 빨갛게 칠해진 부분이다.
복마전이란 무엇인가. "음모나 나쁜 짓이 끊임없이 꾸며지는 장소"를 가리키는 말이다. 즉, 조국 대표는 다주택자의 이기심과 투기꾼의 탐욕이 지금 부동산 시장을 엉망으로 만든 "악의 근원"으로 보고 있다는 이야기다.
그러나 현상을 적확(的確)하게 파악하기 위해서는 주관의 개입을 최대한 배제하고 숫자로 이야기하는 게 옳다. 그런 관점에서 조국 대표의 현상 인식에 대해서는 아쉬움을 금할 길 없다.
정말 최근 수년간의 부동산 시장은 다주택자의 이기심과 투기꾼의 탐욕이 만들어낸 시장이라고 보는가.
전국 부동산 시장에서 2016~19년 기간에 3주택 이상 가구는 14만 9천여 가구 늘어난 반면, 매매지수 상승률(KB부동산 기준)은 연 평균 +1.4% 수준으로 매우 완만한 상승 곡선을 그렸다. 그러나 다주택자 규제 강화로 2020~24년 기간에 3주택 이상 가구가 3만 1천여 가구 감소하자 매매지수 상승률은 +4.2% 수준으로 정확히 3배가 상승했다.
2020~2024년 기간에 3주택 이상 가구가 3만 1천여 가구 감소했는데 서울에서만 1만 6천여 가구 감소했다. 전국 3주택 이상 가구 감소폭의 절반 이상이 서울에서만 일어난 것이다. 그런데 최근 5년간 서울 부동산의 상승폭은 주지하는 대로다.
자, 최근 5년간 서울 부동산은 상당한 수준으로 급등했는데 3주택 이상 가구는 오히려 감소했다. 과연 최근 수년간의 부동산 시장은 다주택자의 이기심과 투기꾼의 탐욕이 만들어낸 시장이 맞는가.
다주택자 규제가 여전한 상황에서 최근 부동산 시장은 실수요 시장으로 재편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다주택자가 되기 쉽지 않은 상황이란 의미다. 그렇다면 최근 부동산을 매수하는 이들은 주로 무주택자 또는 1주택자의 갈아타기가 대부분일 거란 판단이 가능하다. 과연 이들을 투기꾼으로 매도하고, 이들의 탐욕이 최근의 부동산 시장을 만들어낸 악의 근원이라고 평가할 수 있는가.
돌이켜보면 다주택자를 부동산 시장에서 악의 근원으로 간주한 것은 그 역사가 깊다. 문재인 정부 초대 국토교통부 장관이었던 김현미 씨는 2017년 6월 취임사에서 집값의 상승 이유를 "다주택자들의 투기" 때문이라고 명확히 적시하면서 다주택자들에 대한 적개감을 가감없이 드러냈다.
김현미 장관이 내세운 근거는 2016년 5월 대비 2017년 5월 서울 주택 거래 현황에서 5주택 이상 보유자 매수 건수가 강남4구에서 무려 +53%가 증가했으며, 용산ㆍ성동ㆍ은평ㆍ마포도 크게 늘었다는 점이었다.
이 내용만 보면 당시 서울 집값의 상승은 5주택 이상 보유자의 주택 매집 때문으로 보인다. 그런데 이를 "거래 증가율"이 아닌 "거래 건수"로 보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당시 강남4구에서 5주택 이상 보유자의 매수 건수가 +53% 늘어난건 맞지만 거래 건수로는 64건에서 98건으로 늘어났을 뿐이며, 이는 전체 거래량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3%에 불과한 수준이었다. 3주택 이상 보유자의 매수 건수로 범위를 넓혀봐도 197건에서 292건으로 늘어났는데 이 역시 전체 거래량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7%에 불과했다. 반면, 무주택자와 1주택자의 매수 건수는 3,261건으로 전체 거래량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84%에 달했다.
2017년 5월 서울 집값 상승의 이유는 거래 비중이 3%에 불과한 5주택 이상 보유자 때문이었을까, 거래 비중이 84%에 달하는 무주택자와 1주택 보유자 때문이었을까.
"숫자로 현실을 왜곡하지 맙시다. 현장과 괴리된 통계는 불신만 키웁니다. 또한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기회를 박탈하는 위험천만한 일이기도 합니다"
김현미 장관의 취임사 말미에 나오는 문구가 공허하게 들리는 이유다.
민주당 정부가 들어설 때마다 집값(특히 서울)이 폭등하는 것은 우연의 일치가 아니다. 다주택자 규제 강화를 통해 '똘똘한 한 채' 현상 및 양극화를 심화시킨 것.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다.
그럼에도 아직도 부동산 시장 비정상화의 이유를 "다주택자" 탓으로 돌리는 것은 너무 진부한 레파토리가 아닌가. 적어도 부동산에 있어서는 왜 이명박 정부때 양극화가 완화되었고 박근혜 정부때도 완화된 양극화 수준이 유지되었는지 살펴보는 성찰이 필요하다. 국민을 위해 필요한 정책이라면 상대방에게도 눈과 귀를 열고 배움의 자세를 갖는 것이 국정을 운영하는 자들이 가질 자세가 아닌가.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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답댓글 작성자비실이22 작성시간 26.01.05 ㅎ..ㅎ 제가 5년전에 그말을 믿었던 바보 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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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항상 감사하면서 살자 작성시간 26.01.05 국회의원 정부 고위직들 강남4구에 집 못사게 하면 집값 훅 떨어질듯 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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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하늘을봐 작성시간 26.01.05 이렇게 숫자로 얘기해줘도 정치에 사로잡혀 현실을 제대로 못보고 무작정 세금만 올리자는 사람들 여기에 많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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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yawara10 작성시간 26.01.07 잘 읽었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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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잉명으로 할까요? 작성시간 26.01.15 잘못알고 계신게 만약 윤석렬 정부가 지금도 그대로 유지되고 있어도 강남집값은 폭등했습니다.
(윤석렬 정부가 시작되자마자 집값 살리기 위한 각종 규제를 철폐했으니까요. 그리고 그 효과는 엄청난 무거운 쇠공이 굴러가듯 한번 시작하면 관성이 붙어서 상당기간 오래 지속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