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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월19일(금) 스펄전의 아침묵상: 성령의 충만

작성자에이프릴|작성시간26.06.19|조회수80 목록 댓글 11

제목: 성령의 충만
요절: "저희가 다 성령의 충만을 받고 성령이 말하게 하심을 따라 다른 방언으로 말하기를 시작하니라"(행2:4)
 
성령으로 충만하게 되는 은혜는 아주 귀중한(풍성한) 축복입니다. 우리 영혼의 이 신성한(거룩한) 성령충만의 결과는 아무리 높이 평가해도 지나칠 수 없습니다. 생명, 위로, 빛, 순결, 능력, 평안, 그리고 다른 많은 소중한 축복들은 성령의 임재와 분리될 수 없습니다. (즉 성령의 임재 없이는 이 모든 은혜는 존재할 수 없습니다.) 거룩한 기름이신 성령은, 믿는 자의 머리에 기름을 부으시고, 또 그를 성도들의 제사장으로 성별하시고, 그가 그의 직분(제사장)을 바르게 수행할 수 있도록 하는 은혜를 주십니다. 진실로 순결케 할 수 있는 유일한 물인 성령께서는 죄의 능력으로부터 우리를 씻기시고, 우리 안에서 우리를 주님의 선하시고 기쁘신 뜻을 따라 행하도록 역사하시면서 우리를 성화(聖化)케 하십니다. 또 빛이신 성령은 먼저(처음에) 우리의 죄 중에서 길 잃은 우리의 처지(정황)를 보여 주셨습니다. 지금은 성령께서는 우리에게, 우리 안에서 주 예수님을 계시하시며 우리를 의의 길로 인도하십니다.
 
성령의 순결한 천국의 빛으로 밝혀진 우리는 더 이상 어둠이 아니고 주 안에 있는 빛입니다. 그리고 성령은 우리가 하나님께 산 제물로서 우리의 온 영혼들을 드릴 수 있도록 불 붙여 주시는 희생의 불이십니다.(역자주1) 하늘의 이슬이신 성령은 우리의 불모의 삶을 치우고 우리의 삶을 비옥하게 하십니다. 비둘기 같은 성령은 그 화평한 날개로 그의 교회와 믿는 자들(신자들)의 영혼을 살포시(안온하게) 덮으십니다. 위로자로서의 성령은 그의 사랑하는 자들의 평강을 해치는 염려와 의심들을 쫓아내십니다. 성령은 하나님이 택하신 자들 위에 강림하셔서 그들 안에서 같은 자녀의 영이 하나님을 아바 아버지라고 부르도록 역사하심으로서 그들이 자녀 됨을 증거해 주십니다. 바람으로서의 성령은 사람들에게 생명의 호흡(숨)을 가져옵니다. (즉 성령께서 생명을 주십니다) 성령은 임의대로(원하시는 대로) 불며 생명을 소생시키는 역사(작용)를 수행하고 있습니다. 그 역사(役事, the quickening operation)에 의하여 영적 창조물(피조물)(역자주2)에게 생명이 불어 넣어지고 지탱됩니다. 우리가 오늘은 물론 매일 그의 임재를 느낄 수 있도록 하나님께 기도하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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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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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장코뱅 | 작성시간 26.06.19 행2:4
    <호크마 주석>

    저희가 다 성령의 충만함을 받고 - 성령의 충만함은 성령 세례와는 다른 것이다. 성령의 충만은 여러 번 되풀이 될 수 있어서 구원의 때 뿐 아니라 그 후에도 계속 일어날 수 있다(4 : 8, 31 ; 6 : 3,5 ; 9 : 17 ; 13 : 9,52). 그러나 성령의 세례는 구원의 순간에 모든 믿는 자들에게 단회적(one for all)으로 일어난다. 그러면 성령의 충만이란 무엇을 의미하는가? 바울의 경우 그의 서신에서 성령의 충만에 대해 꼭 한 번만(엡5 : 18) 언급하고 있다. 심지어 그가 성령에 대해서 심층적으로 다루는, 이른 바 성령 장이라고 할 수 있는 롬8장 에서도 성령 충만에 대해서는 말하고 있지 않다. 이것은 특이한 현상이라 할 수 있는데 바울은 오히려 성령의 인도나 지배(롬8 : 5, 9, 11, 14 참조)에 대해서 말하고 있을 뿐이다. 따라서 그는 성령의 인도나 지배를 받는 상태를 성령의 충만으로 말하고 있는 것이 틀림없다. 그러므로 성령의 충만이란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이미 내주하신 성령(롬 8 : 9 ; 고전12: 3)의 지배와 인도함을 받는 어떤 상태를 말하는 것이지
  • 답댓글 작성자장코뱅 | 작성시간 26.06.19 공간적으로 성령이 채워지거나 다시 들어오는 것을 의미하지 않는다.
    성령이 말하게 하심을 따라 다른 방언으로 말하기를 시작하니라 - 하나님은 바벨탑의 사건을 통해서 사람들의 언어를 혼잡케 하셔서 그들을 흩어버리셨다(창11 : 1-9). 제자들이 성령을 따라 다른 방언으로 말하게 된 이 사건은 혼잡케 되었던 언어가 다시 회복된 것으로서 새 시대의 도래를 예고하고 있다. 이것은 또한 주님의 부활의 소식이 우주적 로 확산(擴散)될 것을 암시한다. 그런데 메이어(Meyer)외에 많은 비평학자들은 오순절 체험이 비역사적이라고 주장하면서 본절과 같은 이적을 저자가 미화시킨 것으로 주장한다(Bauer, Schnekenburger. De Wette). 이러한 주장은 근본적으로 본서의 역사성을 부정하고 누가의 의도적 편집에 의한 것으로 았던 편견에서 비롯되었다. 이 견해를 따르게 되면 결국 본서가 바울이라는 인물을 부각시키고 미화시키기 위한 전기biography)에 불과하며 결코 영감받은 책이 될 수 없게 된다. 따라서 비평주의자들의 견해는 이런 면에서 배격되어야 한다. 한편 이 구절에서 성령의 세례를 말하지 않고 오히려 성령의 충만을 말하지만
  • 답댓글 작성자장코뱅 | 작성시간 26.06.19 이미 1 : 5에서 성령의 세례를 예언했고 또 11 : 15, 16에서는 성령 세례가 오순절에 일어났다고 회고하고 있다. 따라서 본 구절은 오순절에 성령 세례와 성령 충만의 사건이 거의 동시적으로 발생했음을 암시한다. 우리는 이 사건이 교회가 세워지기 위한 처음의 특수한 상황임을 잊어서는 안 될 것이다. 제자들에게 성령세례의 증거는 방언이었다. 그들은 성령을 받고 자신들이 아직 배운 바가 없는 언어로 말하기 시작했고, 다른 여러 지방에서 온 사람들은 그것을 이해했다. 이것들은 성령이 그의 경륜에 찬 사역을 이루시기 위하여 강림한 증거들일 뿐 일반적이며 영속적인 은사는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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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노베 | 작성시간 26.06.19 성령으로 충만하게 되는 은혜는 우리 영혼에 생명과 위로, 순결과 능력을 부어주시는 가장 귀하고 풍성한 축복이며, 거룩한 기름이자 물로서 우리를 죄에서 씻기시고 주님의 기쁘신 뜻을 따라 살아가도록 성화시켜 주심을 믿습니다.

    천국의 빛이신 성령께서 죄로 어두워진 우리 마음에 예수 그리스도를 밝히 계시하여 의의 길로 인도하시고, 하늘의 불과 이슬이 되어 메마른 삶을 비옥하게 하사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산 제물로 우리 자신을 온전히 드리게 하심에 감사합니다.

    비둘기 같은 화평함과 위로자로 찾아오셔서 영혼의 모든 염려와 의심을 몰아내시고 하나님을 아바 아버지라 부르는 자녀의 권세를 누리게 하시니, 오늘도 생명의 호흡이신 성령님의 강력한 임재를 매 순간 느끼며 동행하는 복된 하루가 되기를 소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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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답댓글 작성자에이프릴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 작성시간 26.06.19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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