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수요모임에서 로마서 8장을 교제중 한 형제가 16절에 나와 있는
현재의 고난은 장차 나타날 영광과 비교할 수 없다고 했는데 여기서 말하는 현재의 고난은
오늘 우리의 삶에 있어서 어떻게 받아 들여야 하는지에 대하여 교제를 요청함으로 함께 나누는 시간을 갖게 되었습니다
인간 삶에 있어서 고난의 시작은 창세기 3장 17절에 “땅은 너로 말미암아 저주를 받고 너는 네 평생에 수고하여야 그 소산을 먹으리라” 는 말씀을 통하여 시작되었음을 알게 됩니다
그런데 이 저주의 말씀이 실상은 타락하고 범죄 한 아담의 후손인 인간들에게 있어서
또 다른 하나님의 은혜임을 알게 되는데 이는 인간이 아무리 애쓰고 수고하여도
결코 그들의 마음을 만족할 만한 것들을 얻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이는 마치 무지개를 잡으러 떠난 어느 소년의 삶처럼 저 들판 끝에 걸쳐 있는 거 같기에 열심히 들판을 가로질러 갔지만
어느새 무지개는 저 앞 동산위에 걸려 있고 다시 열심히 그 동산을 올랐지만 어느새 무지개는 저 앞개울 너머에 있고
다시 그 개울을 넘어 이제는 잡았다 하고 바라보지만 그 무지개는 산 중턱에 걸려 있고 힘들게 그 산 중턱에 올라갔지만
그 무지개는 보이지 않기에 이제 집으로 돌아가야지 하면서 자신을 바라볼 때 어느새 젊고 꿈이 많던 젊은이의 모습은 없고
흰 백발의 노인네로 변해버린 자기 모습을 보게 된다는 글처럼...
그렇기에 알렉산더 대왕은 유언하기를 자기의 관에 구멍을 내서 자기의 손을 다른 사람들이 볼 수 있게 밖으로 내 놓으라고
그 이유는 인생은 아무것도 가지고 갈 수 없음을 그의 백성들에게 보여줌으로 헛된 야망에 빠져 인생을 허비하지 않게 되기를 깨닫게 하기 위해서라는 말이 전해오기도 합니다
그럼에도 이런 하나님의 은혜를 알지 못한 채 여전히 자기만족을 위하여 살아가는 영혼들을 보게 됨은
사탄의 유혹과 능력이 얼마나 큰지를 알게 합니다
그 반면 그리스도인의 고난은 첫째는 그가 이 땅에 속한자가 아니기에 당하는 고난입니다
이는 레위기 11장에 보면 부정한 곤충을 말하면서
그 특징을 날개가 있으면서도 날지 않고 기어다니는 곤충을 언급하고 있는데 이는 거듭난 자임에도 불구하고
자기의 신분에 맞는 삶 즉 하늘에 속한자로서의 삶이 아니라 이 땅에 속한 자처럼 살아가는 자들을 언급하고 있습니다
이들은 구원을 받았기에 소망이 하늘에 있다고 말합니다 그리고 가끔은 그 소망을 따라 살기도 합니다
그러나 그의 삶은 믿음으로 살기 보다는 현실과 타협하며 현실에 안주 하는 삶
그러면서 완전히 세상에 동화 될 수 없기에 (왜냐하면 자신이 구원 받기 전 이 세상이 얼마나 타락하고 부폐하였으며 죄가 지배하는지를 경험하였기에...) 갈등하면서 마음에 고통을 느끼지만 그럼에도 세상에서 벗어나
믿음으로 살아가는 것에 대해서는 현실적으로 치러야 할 값 지불이 있기에 적당히 타협하며
그로 인하여 느껴지는 마음의 고통을 마치 자신이 거듭난 그리스도인이기에 이 세상에서 당하는 고난인양
스스로 위로를 삼으며 소망을 말하는 사람들입니다
그러나 이런 고난은 로마서 8장 16절에서 언급한 고난과 이에 따른 영광과는 아무 관계가 없는 고난입니다
성경에서 말하는 그리스도인의 고난은 현실과 타협하지 않고 자기가 이 땅에 속하지 않음을 알기에
오직 믿음으로 하늘에 속한 자의 삶을 살아가기에 당하는 고난입니다
이 고난의 본은 우리 주님께서 이 땅에 계실 때 우리에게 아주 잘 보여 주셨습니다
주님께서 공생애를 시작 하시면서 사탄에게 시험을 당하실 때 그 시험에 적당히 타협하셨더라면 사람들에게 멸시와 천대와
모욕을 당하시지도 그리고 십자가의 죽음도 경험하지 않으시고 사람들이 꿈꾸는 부귀영화를 누리시면서 사셨을 것입니다
또한 오병이어의 기적 후 많은 사람들이 주님에게 몰려와 주님을 왕으로 삼으려고 하였을 때
못이기는 척 왕이 되셨다면 아니면 빌라도의 재판정에서 당신의 죄 없으심을 강하게 주장 하셨더라면...
역시 주님은 큰 고난 없이 부귀영화와 사람들의 존경을 받으며 사셨을 것입니다
그러나 첫 사람 아담의 타락 후 아벨로 부터 시작하여 지금까지도 믿음으로 사는 자들은 여전히
이 세상으로부터 환영보다는 멸시와 천대와 시기와 함께 큰 고난과 연단과 시험 당함을 보게 됩니다
때로는 그 고난과 연단이 너무 힘들기에 포기하고 대충 이 세상과 타협하며 살고 싶은 마음이 들기도 하지만
눈에 보이지는 않지만 믿음으로 분명히 보게 되는 그 소망이 그들의 마음을 지키며
다시 그들의 어그러진 다리를 일으켜 세워 소망 가운데 나가게 함을 보게 됩니다
롬 8장 16절에 하나님께서 언급하신 영광은 바로 이런 자들을 위한 것입니다
청년의 때 교회에서 성탄행사중 교회 학생부에서 했던 성극이 기억이 납니다
오래전이라 그 내용은 거의 기억 속에서 사라졌지만 그럼에도 대충 기억하면
여러 종류의 십자가가 등장 하였는데 첫번쨰 등장한 십자가는 장식으로 자기를 꾸미고 치장하기 위하여
다음에 등장한 십자가는 이런 십자가를 비난하면서 장식용처럼 화려하지도 예쁘지도 않지만
그러나 옷 속에는 숨길만한 크기로 필요에 따라 내 놨다가 옷 속에 감추었다가 하는 십자가 였습니다
그 반면 마지막에 등장한 십자가는 결코 장식용처럼 화려하거나 예쁘지도 그렇다고 옷 속에 숨길 수 있을 만큼 작지도 않은 그야말로 누구나 다 볼 수 있는 사형을 선고 받은 죄인이 어깨에 메는 크기의 십자가였습니다
주님이 지신 십자가는 바로 이 십자가 였습니다
그렇기에 주님은 이 세상 사람들에게 온갖 모욕과 멸시와 천대를 받으셨습니다
오늘 주님이 우리에게 메고 따라 오라 하는 십자가도 바로 이 십자가입니다
결코 숨길 수 없고 감출 수 없고 꾸밀 수 없는 십자가
또한 이 세상 사람들에게 결코 환영 받지 못하는 십자가
이 십자가를 지고 그 고통을 느끼는 자들만이 “현재의 고난은 장차 나타날 영광과 족히 비교 할 수 없도다” 라는 말씀에 아멘! 아멘! 이라 외칠 수 있는 자들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