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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신학

골로새서(그레고리 K. 비일)

작성자코람데오|작성시간26.06.15|조회수215 목록 댓글 20

출처: 블로그(https://blog.naver.com/ysjtjt)

[그레고리 K. 비일의 성전 신학]
 
비일은 창세기 1:28의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라’는 명령이 신약 시대에 어떻게 영적·성전 신학적으로 성취되고 있는지 골 1:6, 10절을 통해서 탁월하게 논증을 펼친다. 바울과 초기 기독교(및 일부 쿰란 문헌)는 창 1:28의 명령을 영적 신인류의 번성, 즉 '하나님의 말씀'을 받아들여 영적으로 새롭게 태어난 자들(골 3:10)이 늘어나는 것, “하나님의 말씀이 흥왕하여 제자의 수가 많아지는” 것으로 재해석했다. 또한 골로새서 1:9의 "모든 신령한 지혜와 총명에 하나님의 뜻을 아는 것으로 채우게 하시고"라는 바울의 기도는 구약의 성막 기술자 브살렐에게 성령과 지혜를 부어주셨던 사건(출 31:3, 35:31)에 기초하고 있는 것으로, 하나님이 신자들을 성전을 세워가는 건축가이자 성전의 구성원으로 삼으셨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구분선 아래에서 구체적인 내용을 살펴보자.


골로새서 1:1-2의 인사에 이어 바울은 도입부의 전형적인 감사(3-8절)로 편지를 시작한다. 이 편지에서 구약성경에 대한 첫 번째 언급은 1:6, 10에 나온다. 구약 텍스트가 1:6에서는 감사의 내용으로, 1:10에서는 감사에 기초한 기도의 내용으로 언급된다.

창세기 1:28골로새서 1:6, 10
“생육하고[auxanō]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라⋯ 모든 생물을 다스리라.”“이 복음[진리의 말씀]이⋯온 천하에서도 열매를 맺어 자라는도다[auxanō]”(6절).
“모든 선한 일에 열매를 맺게 하시며⋯자라게[auxanō] 하시고”(10절).

몇몇 주석가들은 6절과 10절이 창세기 1:28(1:22도 마찬가지)을 언급한다는 점을 주목한 바 있다. 여기서는 히브리어 텍스트가 논의의 핵심인 것 같다. 왜냐하면 그리스어역 구약성경은 히브리어 “pārâ(“열매를 맺다”)를 “auxanō(“자라다”)로, “rābâ(“번성하다”)를 "plēthunō"(“번성하다”)로 번역하기 때문이다. 바울은 "pārâ"를 "karpophoreō"(“열매를 맺다”)로 번역함으로써 그리스어역 구약성경보다 좀 더 문자적 번역을 시도하는 것으로 보인다.
 
어쩌면 이런 언급이 골로새서 1장에 있다는 사실 자체가 의심스럽게 여겨질 수도 있다. 왜냐하면 창세기 1장은 “온 땅”에 인간이 번성하고 그들이 온 땅을 다스릴 것이라고 하는 반면에, 골로새서 1:6은 복음의 말씀이 “온 천하에서” “열매를 맺어 자랄” 것이라고 말하며, 1:10은 선한 일들을 “열매 맺는” 것으로, 그리스도인들이 하나님을 아는 것 안에서(즉, 하나님의 말씀 안에서) 자라는 것으로 설명하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골로새서 텍스트에는 창세기 1:28을 의도적으로 언급했을 것이라는 가정을 증명하는 언어학적 증거가 충분해 보인다. 그뿐 아니라 골로새서 1:10의 동일 어구 반복은 이전에 유사한 어구가 사용되었을 것임을 분명하게 보여주며, 바울이 창세기 1:28을 잘 알고 있었으리라는 추론까지도 가능하게 한다.
 
앞서 살핀 것처럼 심지어 창세기 1-3장에서도 이미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순종이야말로 창세기 1:26, 28의 과제를 성취함에 있어 결정적으로 중요한 의미를 가진다는 사실이 분명하게 드러난다(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불순종은 과제 수행을 실패로 이끈다: 창 2:16-17과 3:1-4에서는 있는 하나님의 말씀을 잘못 인용하거나 의도적으로 왜곡하는 세 가지 사례가 발견된다). 하나님의 명령을 수행한다는 것은 부분적으로 2:16-17의 그분의 말씀을 기억하고 신뢰함으로써 악한 뱀을 물리치고 그것을 지배하는 행동을 포함한다(2:16-17과 관련해서 2:15; 3:1a, 1b, 3에서 하나님이 “말씀하셨다”거나 “하나님의 말씀에”라는 표현이 강조됨에 주목하라). 그럼에도 결과적으로는 뱀이 거짓말로 아담과 하와를 속임으로써 두 사람을 지배하기에 이른다.
 
창세기 1:28의 “생육하고 번성한다”라는 것은 아담과 하와의 후손이 늘어남을 의미한다. 후손들도 하나님의 영화로운 형상을 반영하는 자들로서, 온 땅을 그분의 영광으로 가득 채우는 목표를 가지고 널리 퍼지는 선구자 역할을 해야 했다. 이것은 아담과 하와의 자녀 양육에서 본질적인 부분이 하나님의 말씀—부모 자신이 기억하고 전승해야 하는—을 통한 영적인 교육임을 암시한다.
 
바울은 성경에 있는 구속사 이야기의 가장 중요한 흐름 중 하나 안으로 들어간다. 제3장에서 살핀 것처럼 사실상 창세기 1:28의 명령은 구약성경 전체에서(주로 약속의 형태로) 되풀이된다. 예를 들어 창세기 9:1, 6-7; 12:2; 17:2, 6, 8; 22:17-18; 26:3, 4, 24; 28:3-4; 35:11-12; 47:27; 출애굽기 1:7; 레위기 26:9; 시편 107:38; 이사야 51:2; 예레미야 3:16; 23:3; 에스겔 36:10-11, 29-30 등에서 그렇다. 이 텍스트들 중 대부분은 “생육과 번성”이라는 실질적인 이중 용어를 포함한다(대상 29:10-12도 참조).
 
족장들에게 주어진 명령의 반복 속에서 “땅의 모든 족속”이 아브라함의 “씨”로 말미암아 “복을 얻을 것”이라는 언급은 하나님의 형상을 간직한 갱신된 인류 공동체를 가리키는데, 이 공동체는 똑같이 그분의 형상을 반영하는 새로운 후손들로 “땅을 가득 채우는” 역할을 한다. 그리하여 이 새로운 개종자들은 하나님의 영화로운 임재의 “복을 받으며” 계속해서 번성하는 그분 나라의 구성원이 되어 첫 번째 아담이 빼앗겼던 통치를 회복하기에 이른다. 따라서 창세기 1:28의 “정복과 다스림”은 땅 위에 번성했지만 거듭나지 못한 사람들의 마음속에 있는 악의 영향력을 영적으로 극복하는 행동을 포함한다. 창세기 1:28의 본래적인 명령에서 신체적으로 새롭게 태어난 자녀들의 “생육과 번성” 개념은, 옛 생활 방식을 버리고 영적으로 새롭게 태어나 하나님의 영화로운 임재의 형상을 반영함과 동시에 창세기 1:26-28의 명령의 확산에 참여하게 된 사람들을 내포한다(유사한 개념이 골 1장에도 표현됨).
 
“생육과 번성”의 이런 사용법은 예수 그리스도를 “종말론적인 마지막 아담”으로 보는 개념을 기본적으로 전제한다. 예수 그리스도는 처음에 “보이지 아니하는 하나님의 (참된) 형상”으로 오셨고(골 1:15), 그 사명을 최초로 완수하심으로써 마침내 그의 백성으로 하여금 하나님의 명령에 순종하기 위해 계속해서 그의 발자취를 따를 수 있도록 하셨다(참조. 계 14:4).
 
앞서 우리가 골로새서 1장에서 살핀 것처럼 창세기 1:28에 대한 이런 해석은, 특히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강조점과 관련해서 초기 유대교나 후기 유대교에서 분명하게 받아들여진 적이 없었다. 유대교 주석가들이 창세기 1:28을 인간의 번성함과 관련해서만 “문자적으로” 이해했는데, 이를 보여주는 많은 사례가 있다(예. 희년서 6:5; 10:4; 32:17b-19; 시빌의 신탁 1:55-58, 272-274; 에녹1서 67:1-3; 89:49; 에스드라2서 3:12-14a; 집회서 44:21; 이삭의 유언 3:7-8; Barnabas 2:34).
 
그럼에도 골로새서에서 발견되는 창세기 1:28에 대한 해석은 유대교에 약간의 전례가 있고 초기 기독교의 다른 곳에서도 입증된다는 점—특히 창세기 1:28의 언어를 창세기 2장의 동산 묘사(자주 성장 개념을 포함하는)와 결합시키는 방식을 통해서—를 주목한다면 한층 적절하게 보인다. 일부 유대교 문헌은 창세기 1:28의 “생육”이 구체적으로 하나님의 “말씀”(골 1:5-6)이나 새로워진 “지식”(골 1:10)의 증가임을 확증한다는 점에서 골로새서와 매우 유사하게 보인다. 종말의 때에는 “땅 위에 있는 민족들의 지식이 늘어날 것”이요, “성도들”은 불멸의 “생명”을 소유함과 아울러 “의의 옷을 입을” 것이다(레위의 유언 18:9-10, 14). 특히 놀라운 것은 쿰란 문서(4Q158 [1-2단편])가 하나님이 야곱에게 주신 “복”(창 32:29b)을 이렇게 해석한다는 사실이다. “야[웨]께서 너에게 많은 자녀를 주시고 너를 [번성케 하시기률] 원하노라⋯[그가 너를 지]식과 깨달음으로 [가득 채워주시기를 원하노라]”(골 1:9-10을 주목하라: “너희로 하여금 모든 신령한 지혜와 총명에 하나님의 뜻을 아는 것으로 채우게 하시고⋯하나님을 아는 것에 자라게 하시고”; 쿰란의 「찬양 두루마리」의 한 텍스트[1QH 6.12-19와 8.20-22]도 이와 관련됨; 4Q433a [1-2단편]; 4Q418 [81단편=4Q423 8+24?]도 마찬가지; 초기 기독교 문헌에 대해서는 Barnabas 6:11-19을 보라).
 
사도행전은 네 차례에 걸쳐서 창세기 1:28을 언급하며, 골로새서 1:6-10이나 초기 유대교처럼 “말씀”에 초점을 맞춘 해석의 경향과 함께 나중에 창세기와 다른 부분에서 반복되는 명령과 약속을 한꺼번에 언급하는 것 같다. “하나님의 말씀이 점점 왕성하여 예루살렘에 있는 제자의 수가 더 심히 많아지고 허다한 제사장의 무리도 이 도에 복종하니라”(행 6:7); “하나님의 말씀은 흥왕하여 더하더라”(행 12:24); “이와 같이 주의 말씀이 힘이 있어 흥왕하여 세력을 얻으니라”(행 19:20).
 
이 세 구절이 반복되는 약속과 명령을 염두에 두고 있을 가능성이 높다는 점은, 사도행전 7:17이 사실상 출애굽기 1:7, 20의 되풀이되는 명령들 중 하나를 인용한다는 점을 주목함으로써 명백하게 확인된다(Pao 2000: 167-169을 보라). “번성하여 많아졌다”라는 두 개의 동사는 창세기 1:28에 나오는 동사와 동일하다(70인경; plēthunō 대신 icthuō를 사용하는 19:20의 “세력을 얻으니라”는 예외; 비록 출 1:20에는 icthuō가 쓰이고, 출 1:7에는 접두사가 붙은 형태가 쓰이지만). 실제적으로 이 구절들은 골로새서 1:6과 의미가 같다. 이 텍스트들은 모두 후손에 관한 문자적인 명령이 새로운 시대에는 하나님의 말씀을 받아들이는 새로운 신자의 수가 늘어날 뿐만 아니라 전반적으로 신자의 수가 불어날 것임을 뜻하는 명령으로 이해되어야 한다고 본다. 또한 앞서 살핀 것처럼 골로새서 1:10의 의미도 매우 유사하다.
 
놀라운 것은 그리스도가 골로새서 1:15(“보이지 아니하는 하나님의 형상”)에서 종말론적인 아담과 동일시되는가 하면, 3:10에서는 그리스도를 믿는 자들도 “새 사람을 입은” 자로, “…자기를 창조하신 이[하나님]의 형상을 따라 지식에까지 새롭게 하심을 입은” 자로 묘사된다는 점이다. 이런 동일시는 마지막 아담 및 그의 사명과 동일시되는 1:6, 10의 신자들에게 창세기 1:28의 명령을 적용하는 바울의 해석 원리가 무엇인지를 잘 보여준다. 이보다 훨씬 더 놀라운 것은 골로새서 1:9이다. “이로써 우리도 듣던 날부터 너희를 위하여 기도하기를 그치지 아니하고 구하노니 너희로 하여금 모든 신령한 지혜와 총명에 하나님의 뜻을 아는 것으로 채우게 하시고.” 마지막 구절은 부분적으로 출애굽기 31:3(35:31도 사실상 동일함)에 기초한다. “하나님의 영[pneuma]을 그에게 충만하게 하여 지혜[sophia]와 총명[synesis]과 지식[epistēmē]과 여러 가지 재주로.” 출애굽기 텍스트는 성막 건축의 능력에 대해서 묘사하고 있다. 이 텍스트의 언급은 창세기 1:28의 두 가지 언급과 놀랍도록 일치한다. 왜냐하면 이 책을 관통하는 우리 주장은 하나님의 성전이 확장되어가면서 창세기 1:28이 성취된다는 것이기 때문이다. 사실상 창세기 1:28을 언급하는 사도행전 6:7도 동일한 개념을 표현하는 듯하다. 사도들의 “말씀” 전파를 돕는 과제를 수행해야 하는 사람들, 곧 “성령과 지혜가 충만한”(출 31:3; 35:31에서 가져옴; 사 11:2도 참조) 사람들에 관한 사도행전 6:3의 언급도 마찬가지이다. 스데반은 이런 사람들 중 하나였다(6:10을 보라). 이 모든 것은 그리스도가 성전을 무너뜨리시고 새로운 성전을 위한 길을 열 것이라는 스데반의 답변에 어울리는 도입부다(행 6:13-7:60; 여기 대해서는 제6장의 논의를 보라).
 
또한 골로새서 1:19은 그리스도를 마지막 때의 성전으로 부른다.

시편 67(68):16-17(70인경)골로새서 1:19
“하나님은 기꺼이[eudokeō] 그곳[en autō(시온)]에 거하셨으며[katoikoō]…여호와께서는 거룩한 곳에…[거기에] 영원히 계시리로다.”“아버지께서는 기꺼이[eudokeō] 모든 충만으로 그[예수] 안에[en autō] 거하게[katoikoō] 하시고”(또는 “그는 기꺼이 그 안에 모든 충만이 거하게 하시고”).

바울은 하나님이 이스라엘의 성전 안에 거하신다는 시편 기자의 설명을 이제는 그분이 자신의 아들 안에 거하신다는 개념에 적용한다. 바울이 말하는 그의 아들은 하나님의 임재가 충만하게 머무는 마지막 날의 성전을 가리키는 표현임이 분명하다.
 
이렇게 보면 신자들을 9절의 성전 건축과 동일시하는 견해가 한층 이해하기 쉬워진다(그들은 성전의 기초이신 그리스도 위에 세워짐). 창세기 1:28을 성도들에 의한 하나님 말씀의 확장을 포함하는 개념으로 이해했던 초기 유대교의 언급 중 일부도 쿰란 성도들을 확장되는 성전과 비교한 바 있다!(4Q158 [1-2단편] 7-8; 1QH 6.12-19과 8.20-22; 4q433a [1-2단편]; 4Q418, 81단편 = 4Q423 8 +24?; Barnabas 6:11-19도 마찬가지) 이렇게 바울과 쿰란은 공통적으로 창세기 1:28을 비슷한 방식으로 성전과 관련시켜 해석했다.
 
그레고리 K. 비일, 강성열 역, 『성전 신학』(새물결플러스, 2014), pp. 354-36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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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댓글 리스트
  • 답댓글 작성자에이프릴 | 작성시간 26.06.15 네, 알겠습니다.
  • 작성자에이프릴 | 작성시간 26.06.15 구약 창세기에서 아담에게 선포하셨던 '생육하고 번성하라'는 문화명령이 신약 시대에 이르러 복음의 말씀을 통해 영적 신인류가 늘어나는 구속사적 사건으로 성취됨을 깨닫고 깊은 영적 전율을 느낍니다

    구약의 성막 기술자 브살렐에게 성령과 지혜를 충만하게 부어주셨던 것처럼 우리에게도 신령한 지혜와 총명을 가득 채워주사,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이 거룩한 성전을 지어가는 신실한 영적 건축가로 서기를 결단합니다

    오늘도 참된 성전이자 아담이신 그리스도 예수와 연합되어 하나님을 아는 지식 안에서 날마다 새롭게 자라나게 하시고, 우리가 머무는 일상의 자리마다 주님의 영광을 가득 채우는 복된 하루를 기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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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답댓글 작성자노베 | 작성시간 26.06.15 아멘!
  • 작성자노베 | 작성시간 26.06.15 하나님이 이스라엘 성막에 거하신다는 구약의 약속이 이제는 그분의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 안에 모든 충만으로 거하시는 종말론적 성전의 성취로 이어짐을 보며 깊은 구속사적 감동을 느끼게 됩니다

    성전의 견고한 기초석이 되신 그리스도 위에 우리 신자들을 영적 건축가이자 성전 구성원으로 함께 세워가신다는 신비로운 연합의 원리를 깨닫고, 교회의 거룩함과 영광스러움을 다시금 마음에 새기게 됩니다

    초기 유대교 쿰란 문헌의 배경 속에서도 드러나듯 창세기 1:28의 문화명령이 결국 성도들을 통한 하나님 말씀의 확장과 성전의 확산으로 귀결됨을 믿으며, 오늘도 우리가 딛는 삶의 자리마다 삼위일체 하나님의 영화로운 임재를 가득 채워가길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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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답댓글 작성자천이다 | 작성시간 26.06.15 아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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