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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총리 주은래(周恩來) - "만주와 요하는 고대부터 원래 한국의 영토다."

작성자흐르는 강물처럼|작성시간17.06.17|조회수584 목록 댓글 5


[밝은 앞날 되시기를][꿈은 이루어진다][꿈은 미래의 현실이다]


백두산 천지

[ 영원히 살 것처럼 계획하고, 하루 살다 죽을 것처럼 실천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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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은래(周恩來) 총리는 중국인들에게 모택동보다 더 존경받는다는 인물이죠.

그가 생전에 북한학자들과 만나서 "만주와 요하는 고대부터 원래 한국의 영토다. 이것은 역사적 사실이다."라고 얘기한 것에 대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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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 펌 - 발췌 ]


[이기환의 흔적의 역사]


'만리장성 왜곡' 저우언라이가 통곡할 일


2012.06.13.

경향신문







중국의 '영원한 총리'로 존경받는 저우언라이.

중국의 역사왜곡을 반성하고 왜곡된 역사를 바로잡아야 한다고 역설했다.

 

그는 "다민족 국가라는 대가정을 강대한 사회주의 국가로 발전시켜야 한다"며 "각 민족들은 완벽한 평등을 누리고 그 어떤 차별을 받아서도 안된다"고 강조했다.

"중국은 국토가 넓고 역사가 유구한 나라다. 고대에는 완전한 통일을 이루지 못하고 민족 간 싸움이 끊이지 않았다.

전체적으로 따지면 한족이 다른 민족을 침범했던 경우가 훨씬 많았다.~신중국은 각 민족들이 우애있게 협력하는 대가정이 되어야 한다."


저우언라이는 이미 55년 전에 중국이 다른 민족을 자주 침범했음을 인정한 것이다.

그러면서 그는 "지방 민족주의도 경계해야 하지만 대한족주의도 반대한다"며 "중국 내 각 민족의 공생없이는 발전할 수 없다"고 못박았다.



■'통큰 결단' 내린 저우언라이





중국이 엿가락처럼 늘린 만리장성.

수많은 부여, 고구려, 발해성을 장성으로 둔갑시켰다.



1962년 말부터 북한의 최용건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장이 저우언라이 총리에게 줄기차게 간청했다.

"중국 동북지방에서 고고조사 및 발굴을 통해 우리의 역사를 분명히 하고 고조선의 발원지를 찾고 싶습니다."


(퍼온이주 : 고조선의 수도(아사달)는 지금의 북한 평양에서 시작하였으니 고조선의 발원지는 지금의 북한땅.

그런데 고조선 문화가 만주에서도 많이 번성하였기 때문에 만주의 고대사 연구 중요.) 




조·중 합동발굴대는 1963년 8월부터 65년 8월까지 2년에 걸쳐 중국 동북지방의 고구려·발해유적을 대대적으로 조사한다.

조·중의 합의는 재미있었다.

유물 2점이 나오면 하나씩 나눠갖고, 한 점만 나오면 북한이 가져가서 연구하도록 했으니까.





■"중국은 대국 쇼비니즘 관점에서 역사를 왜곡됐다."

 

1963년 6월28일, 저우언라이 총리는 북한의 조선과학원 대표단을 만난 자리에서 매우 중요한 발언록을 남긴다.('외사공작통보')

이 발언록은 지난 2004년 8월 중국 유학중이던 설훈 국회의원이 입수 공개했다.

번역본이 A4용지로 5장이나 되는 저우언라이의 발언을 보면 깜짝깜짝 놀란다.


"두 나라 역사학의 일부 기록은 진실에 그다지 부합되지 않는다.

이것은 중국역사학자나 많은 사람들이 대국주의, 대국 쇼비니즘의 관점에서 역사를 서술한 것이 주요 원인이다."


일단 '조선'을 서술한 중국 역사책과 역사관이 '대중화(大中華)'의 관점에서 왜곡되고 과장됐음을 인정한 것이다.


"조선민족은 조선반도와 동북대륙에 오랫동안 거기에 살아왔다. 랴오허(遼河), 쑹화강(松花江) 유역에는 모두 조선민족의 발자취가 남아 있다."







지난 1963년 조선과학원 대표단을 만난 자리에서 언급한 저우언라이 총리의

발언록.

지난 2004년 설훈 의원이 입수 공개했다.

중국이 대국쇼비니즘의 관점에서 역사왜곡을 일삼아왔다는 내용과 그 구체적인 사례까지 제시했다.



저우언라이 총리는 그 증거까지 내민다.

"랴오허와 쑹화강, 두만강 유역에서 발굴된 문물 비문 등에서 증명되고 있고, 수많은 조선문헌에도 그 흔적이 남아있다.

~징보호(鏡泊湖) 부근에 대진(발해)의 유적이 남아있고, 또한 진의 수도(발해 수도 상경용천부)였다. 여기서 출토된 문물이 증명하는 것은 거기도 조선의 지파였다는 사실이다."



■"발해=고구려의 지파"

 

지금 중국학계의 관점에서 보면 정말 기가 찰 노릇이다.

지금 이 순간 '발해는 중국의 지방정권'이라고 끈질기게 주장하는 판인데….

아니 중국에서 '전당해모(全黨楷模)' 즉 '공산당 전체의 모범'으로 추앙받고 있는 저우언라이 총리가 이미 49년전에 '발해=고조선(고구려)의 지파'라고 했으니 말이다.



사실 < 구당서 > 를 보면 "발해말갈의 (시조) 대조영은 본래 고구려 별종"이라고 했다.


이를 강력하게 뒷받침할 사료는 당대 사람인 신라 최치원이 쓴 글( < 여예부배상서찬장·與禮部裴尙書瓚狀 > )에서 나온다.

"고구려의 미친 바람이 잠잠해진 뒤 잔여세력이 느닷없이 나타나 남은 찌꺼기를 거두어 모아~느닷없이 나타났으니 옛날의 고구려가 지금의 발해로 바뀌었다."(최치원)

최치원이 당나라 예부상서에게 쓴 편지이다.

'발해를 욕하는' 내용이지만 발해가 고구려를 이어받았음을 적나라하게 기록해 둔 것이다.

당대의 기록이므로 후대에 쓴 역사책 보다 훨씬 신뢰할 만 하다.

저우언라이 총리는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릴 수 없었던 것이다.


(퍼온이 주 : 최치원公이 중국에 보낸 글들 중에는 한국을 비판하는 듯 하면서 사실은 한국 역사를 바르게 밝히는 내용들이 있습니다.

   이는 아마도 그냥 한국역사를 제대로 밝히면 중국이 반발할 것 같으므로  

일부러 스스로 비판하는 형식으로 그런 글을 쓴 것 같습니다.

물론 목적은 한국역사를 진실되게 중국인들에게 주장하는 것이었겠죠.)

  


저우언라이는 중국의 역사왜곡을 인정했을 뿐 아니라 "사과해야 한다"고 했다.

"우리는 당신들의 땅을 밀어붙여 작게 하고, 우리들이 살고 있는 땅이 커진 것에 대해 조상을 대신해서 당신들에게 사과해야 한다."


그는 더 나아가 "투먼강, 압록강 서쪽은 역사이래 중국땅이었다든가, 심지어는 고대부터 조선은 중국의 속국이었다고 하는 것인 황당한 이야기"라고 했다.

이는 만주 일대와 랴오허 유역은 결코 한족의 땅이 아니었음을 인정한 것이다.



■공동발굴·공동조사의 정신

 

그러면서 저우언라이 총리는 "역사학자들의 붓 끝에서 나온 오류를 바로 잡아야 한다"면서 "조·중 관계사를 공동으로 연구해서 우리의 잘못을 지적해주기 바란다"고 했다.



그러나 저우 총리의 바람은 실현되지 않았다.

2년간에 걸친 공동조사를 막 끝낸 1966년부터 문화대혁명의 광풍이 불어닥친 것이다.

모든 학술조사는 중단됐으며 수정주의자, 주자파로 낙인 찍힌 지식분자들은 줄줄이 숙청됐다.


그러는 사이 북한은 발굴보고서를 공동조사단의 이름으로 발간해버린다.(1966년 7월)

그것도 모자라 일본판으로도 펴낸다.



■저우언라이가 중국을 사랑한 방식


저우 총리의 글을 새삼 들춰볼 때마다 해박한 지식과 탁월한 견해, 시공을 꿰뚫은 통찰력에 절로 감탄사가 나온다.

하기야 헨리 키신저는 "저우언라이는 '철학에 능통하고 역사에 통찰하고 분석하는 능력이 뛰어난 걸출한 위인'이라 하지 않았던가.

세상이 바뀌고 정세가 바뀌었다지만 저우언라이는 여전히 중국인의 사랑을 받고 있다.

저우언라이는 기본적으로 중국을 끔찍히 사랑한 중화주의자였다.

그는 국공내전 시기 뉴욕타임스 기자로부터 "중국인과 공산당원이라는 신분 가운데 더 중요한 것은 무엇이냐"는 질문을 받았다.

그의 대답은 분명했다. '중국인이라는 신분'이었다.

이렇게 중국을 사랑했고, 중국을 위해 헌신했던 저우언라이였지만 한족 중심의 대국주의만큼은 철저하게 반성하고 바로잡으려 했다.

그것이 저우언라이가 중국을 사랑한 방식이었다.



< 저우언라이 총리의 중국·조선관계 대화 전문 >

(한·중 역사 관계부문만)

 

금년(1963년) 6월28일 주은래 총리는 조선과학원 대표단 접견시 중국과 조선 관계에 대해 다음과 같이 언급했다.


현재의 중조관계는 매우 밀접하며 역사적으로도 그러했는데 다음의 세 시기로 나누어볼 수 있다.

제1시기는 중조양국과 두 민족의 역사적 관계이다.

제2시기는 중국과 조선이 모두 동시에 제국주의 침략을 당했을 때이며,

조선이 일본의 식민지가 되고 중국은 부분적인 일본의 식민지를 포함해 제국주의의 반식민지가 됐을 때이다.

이 시기의 중국과 조선은 혁명적 관계였다.

제3시기는 바로 현재인데, 우리 모두는 사회주의 국가이며 형제당-형제국가의 관계이다.




제1시기는 역사기록 이래로 발굴된 문물에 의해 증명된다.

두 나라, 두 민족 관계는 제국주의 침략으로 중지될 때까지 3, 4천년 이상 매우 긴 시간이었다.

이러한 역사연대에 대한 두 나라 역사학의 일부 기록은 진실에 그다지 부합되지 않는다.

이것은 중국역사학자나 많은 사람들이 대국주의, 대국쇼비니즘의 관점에서 역사를 서술한 것이 주요원인이다.

그리하여 많은 문제들이 불공정하게 쓰여졌다.

먼저 양국민족의 발전에 대한 과거 중국 일부 학자들의 관점은 그다지 정확한 것은 아니었고 그다지 실제에 부합하지 않았다.


조선민족은 조선반도와 동북대륙에 오랫동안 거기서 살아왔다.

요하(遼河), 송화강(松花江)유역에는 모두 조선민족의 발자취가 남아있다.

이것은 요하와 송화강 유역, 도문강(圖們江)유역에서 발굴된 문물, 비문 등에서 증명되고 있으며 수많은 조선문헌에도 그 흔적이 남아있다.

조선족이 거기서 오랫동안 살아왔다는 것은 모두 증명할 수가 있다.


경백호 부근은 발해(渤海)의 유적이 남아있고, 또한 발해의 수도였다.

여기서 출토된 문물이 증명하는 것은 거기도 역시 조선족의 한 지파(支派)였다는 사실이다.

이 나라는 역사적으로 상당히 오랫동안 존재했다.


따라서 조선족이 조선반도에서 살았을 뿐만 아니라 동시에 요하, 송화강 유역에서도 오랫동안 살았다는 것이 증명된다.


 도문강, 요하, 송화강 유역에서 거주한 것은 분명한 사실이며 역사기록과 출토된 문물이 이미 증명하고 있다.






민족의 역사발전을 연구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출토된 문물에서 증거를 찾는 것이다.


당연히 이렇게 긴 역사문제에 대해서는 역시 문자로 기록된 역사자료도 연구해야 한다.


다만 이러한 자료를 연구하려면 중국과 조선 두나라 동지들이 반드시 하나의 공통된 관점을 세워야 한다.

이 관점이란 바로 당시 중국이 항상 봉건대국의 태도로 당신들을 무시 모욕하면서 당신들을 침략할 때가 많았다는 것이다.

중국역사학자들은 반드시 이런 사실을 인정해야 한다.

어떤 때는 고대사를 왜곡했고, 심지어 여러분들의 머리위에 조선족은 '기자자손(箕子之后)'이라는 말을 억지로 덧씌우고, 평양에서 그 유적을 찾아 증명하려는 무리한 시도를 하기도 했다.

이것은 역사왜곡이다. 어떻게 이렇게 될 수가 있단 말인가?



만주족통치자는 당신들을 계속 동쪽으로 밀어냈고 결국 압록강, 도문강 동쪽까지 밀리게 되었다.


 어떤 일에 대해서는 우리가 책임질 일이 아니고 조상들의 몫이다. 그렇지만 당연히 이런 현상은 인정해야만 한다.

이렇게 된 이상 우리는 당신들의 땅을 밀어부쳐 작게 만들고 우리들이 살고 있는 땅이 커진 것에 대해 조상을 대신해서 당신들에게 사과해야 한다.

그래서 반드시 역사의 진실성을 회복해야 한다. 역사를 왜곡할 수는 없다.


도문강, 압록강 서쪽은 역사이래 중국땅이었다거나, 심지어 고대부터 조선은 중국의 속국이었다고 말하는 것은 황당한 이야기다.

우리를 이런 것들을 바로 시정해야 한다.

그래서 나는 중국 문화와 역사를 이해하는 여러분들 과학원 분들이 중국-조선관계사 문제에 대해서 공동으로 연구하면서 우리의 잘못을 지적해 주기를 바라고 있다.

왜냐하면 우리들 자신이 읽을 때는 종종 부주의하거나 무시하고 넘어가기 때문에,

여러분들이 읽었던 여러 서적을 그대로 접수하는 것은 절대 좋은 일이 아니고, 책속에서 문제를 발견하는 것이 바로 좋은 일이 되는 것이다.


그래서 해야할 일이 두 가지가 있다.

하나는 고고학자들이 문물과 비석같은 유물을 발굴하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서적과 역사를 연구하는 것이다.

바로 이렇게 하는 것이 우리들 2000~3000년에 걸친 관계를 제 위치에 올려놓은 것이 될 것이다.


(퍼온이주 : 물론 한국과 중국은 2~3천년 이상 전에도 관계가 있었는데 

 2~3천년전부터 중국이 강해지면서 한국을 압박했다는 뜻으로 보입니다.

주은래총리가 지금도 중국인들에게 숭상받는 것은  

스스로 진실되게 하고자 노력을 해서 그런 것 같습니다.) 


http://v.media.daum.net/v/20120613120209235



감사합니다.


[ 영원(永遠)에 합당(合當)한 삶을 살아야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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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활하는 한국혼(韓國魂)

 

[홍익인간]의 정신은 [사해동포주의]라 할 수 있을 것입니다.

다른민족, 다른나라 사람이라고 해서 공연히 배타하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일 것입니다.

 

 

다이나믹 코리아, 게이트웨이 투 더 월드

[밝은 앞날][꿈은 이루어진다][꿈은 미래의 현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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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댓글 리스트
  • 작성자아라비안 | 작성시간 17.06.18 ()()()
  • 작성자mBABO | 작성시간 17.06.18 그분은 훌륭하신 분 이내요 ~~
  • 작성자한울님 | 작성시간 17.06.20 김일성이가 6.25전쟁 때문에 포기하고 백두산도 짤라서 넘겨줬지요
  • 작성자푸르메 | 작성시간 17.06.22 중국인이지만 정말 존경스러운 인물입니다.
  • 작성자하늘호수 | 작성시간 17.07.08 양식있는 학자중 서량지박사는 우리나라 한갑수( 한글학회 이사장)한테 우리식으로 큰절을 했다죠~
    역사왜곡에 대해서 사과한다면서 ~~고대사는 한국의 역사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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