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 권력의 상징인 봉황은 한반도 토종닭으로 마한의 꼬리 긴 닭토템이다
중국 최고의 지리서[산해경]에는 "해외동경(한국) 신조 봉황이 사해를 날면 평화가 온다."고 기록하고 있다
단군한국시대에 한반도지역을 중심영역으로 삼고 있던
마한에서 일어나 고구려.백제.신라의 국조가 모두 봉황이였다.
고구려 왕관에 봉황을 새겼고, 마한을 통합한 백제는 마한의 국조인
봉황을 국조로 그대로 삼았으며, 신라 역시 닭숲이라 하여 계림국이라 불렀다
만주지역을 떠나 아메리카로 지주해 간 인디언문화에서도 발견된다.
오리지날 한민족 마한의 풍속과 문화
후한서 동이열전(한전)| 馬韓人知田蠶 作緜布 出大栗如梨 有長尾雞 尾長五尺 邑落雜居 亦無城郭 作土室 形如冢 開戶在上 不知跪拜 無長幼男女之別 不貴金寶錦罽 不知騎乘牛馬 唯重瓔珠 以綴衣爲飾 及縣頸垂耳 大率皆魁頭露紒 魁頭猶科頭也 謂以髮縈繞成科結也 紒音計 布袍草履 【集解】惠棟曰 魏志云 足履草蹻蹋 其人壯勇 少年有築室作力者 輒以繩貫脊皮 縋以大木 嚾呼爲健 常以五月田竟祭鬼神 晝夜酒會 羣聚歌舞 舞輒數十人相隨蹋地爲節 【集解】惠棟曰 魏志云 踏地 低昂手足 相應節奏 有似鐸舞 十月農功畢 亦復如之 諸國邑各以一人主祭天神 號爲天君 又立蘇塗 魏志曰 諸國各有別邑 爲蘇塗 諸亡逃至其中 皆不還之 蘇塗之義 有似浮屠 建大木以縣鈴鼓 事鬼神 其南界近倭 亦有文身者
마한 사람들은 농사와 양잠을 할 줄을 알며, 길쌈하여 베를 짠다. 큰 밤이 산출되는데 그 크기가 배만큼 크며, 꼬리가 긴 닭이 있는데 꼬리의 길이는 5尺이나 된다. 邑落에 雜居하며 역시 城郭이 없다. 땅을 파서 움집을 만드니 그 모양이 마치 무덤같으며, 출입하는 문은 윗부분에 있다. 跪拜할 줄을 알지 못하며, 長幼의 차례와 男女의 분별없이 권위적이지 않고 자유하다.
金·보화·비단·모직물 등을 귀하게 여기지 않으며 牛·馬를 탈 줄을 모르고, 오직 구슬을 귀중히 여겨서 옷에 꿰메어 장식하기도 하고 목이나 귀에 달기도 한다. 그들은 대체로 머리를 틀어 묶고 상투를 드러내 놓으며, 베로 만든 도포를 입고 짚신을 신는다. 그 나라 사람들은 씩씩하고 勇敢하여 젊은이들 중 築室하는 데서 일하는 사람은 매번 밧줄로 등의 가죽을 꿰어 큰 나무를 매어 달고 소리를 지르는데 [이것을] 건장하다고 한다.
해마다 5월에는 농사일을 마치고 신에게 제사를 지내는데, 낮이나 밤이나 술자리를 베풀고 떼 지어 노래 부르며 춤춘다. 춤출 때에는 수십 명이 서로 줄을 서서 땅을 밟으며 장단을 맞춘다. 10월에 농사의 추수를 끝내고는 또 다시 이와 같이 한다.
여러 國邑에는 각각 한 사람이 天神의 제사를 주재하는데 [그 사람을] 天君이라 부른다. 또 蘇塗를 만들어 거기다가 큰 나무를 세우고서 방울과 북을 매달아 놓고 신을 섬긴다.
한민족과 대한민국의 뿌리나라인 마한(마고한국)이 가장 크고 강성했다
후한서 동이열전(한전)| 韓有三種 一曰馬韓 二曰辰韓 三曰弁辰 【集解】王會汾曰 案晋梁二書 皆作弁韓 當從改 下云 弁辰在辰韓之南 弁辰亦弁韓之訛 惠棟曰 魏志作弁韓 馬韓在西 有五十四國 其北與樂浪 南與倭接 辰韓在東 十有二國 其北與濊貊接 弁辰在辰韓之南 亦十有二國 其南亦與倭接 凡七十八國 伯濟是其一國焉 大者萬餘戶 小者數千家 各在山海閒 地合方四千餘里 東西以海爲限 皆古之辰國也 馬韓最大 共立其種爲辰王 都目支國 盡王三韓之地 其諸國王先皆是馬韓種人焉
韓은 세 종족이 있으니, 하나는 馬韓, 둘째는 辰韓, 셋째는 弁辰이다. 馬韓은 서쪽에 있는데, 54國이 있으며, 그 북쪽은 樂浪, 남쪽은 倭와 接하여 있다. 진한은 동쪽에 있는데, 12國이 있으며, 그 북쪽은 濊貊과 接하여 있다. 弁辰은 辰韓의 남쪽에 있는데, 역시 12國이 있으며, 그 남쪽은 倭와 接해 있다. 모두 78개 나라이고 伯濟는 그 중의 한 나라이다. 큰 나라는 萬餘戶, 작은 나라는 數千家인데, 각기 산과 바다 사이에 있어서 전체 국토의 넓이가 사방 4천여리나 된다. 동쪽과 서쪽은 바다를 경계로 하니 모두 옛 辰國이다. 마한이 [韓族 중에서] 가장 강대하여 그 종족들이 함께 王을 세워 辰王으로 삼아 目支國에 도읍하여 전체 三韓 지역의 王으로 군림하는데, [三韓의] 諸國王의 선대는 모두 마한 종족의 사람이다.
백제(십제).신라(진한).가야(번한)는
모두 서남해 마한의 제후국에서 출발
[사료]
후한서 동이열전(한전)| 韓有三種 一曰馬韓 二曰辰韓 三曰弁辰 【集解】王會汾曰 案晋梁二書 皆作弁韓 當從改 下云 弁辰在辰韓之南 弁辰亦弁韓之訛 惠棟曰 魏志作弁韓 馬韓在西 有五十四國 其北與樂浪 南與倭接 辰韓在東 十有二國 其北與濊貊接 弁辰在辰韓之南 亦十有二國 其南亦與倭接 凡七十八國 伯濟是其一國焉 大者萬餘戶 小者數千家 各在山海閒 地合方四千餘里 東西以海爲限 皆古之辰國也 馬韓最大 共立其種爲辰王 都目支國 盡王三韓之地 其諸國王先皆是馬韓種人焉
韓은 세 종족이 있으니, 하나는 馬韓, 둘째는 辰韓, 셋째는 弁辰이다. 馬韓은 서쪽에 있는데, 54國이 있으며, 그 북쪽은 樂浪, 남쪽은 倭와 接하여 있다. 진한은 동쪽에 있는데, 12國이 있으며, 그 북쪽은 濊貊과 接하여 있다. 弁辰은 辰韓의 남쪽에 있는데, 역시 12國이 있으며, 그 남쪽은 倭와 接해 있다. 모두 78개 나라이고 伯濟는 그 중의 한 나라이다. 큰 나라는 萬餘戶, 작은 나라는 數千家인데, 각기 산과 바다 사이에 있어서 전체 국토의 넓이가 사방 4천여리나 된다. 동쪽과 서쪽은 바다를 경계로 하니 모두 옛 辰國이다. 마한이 [韓族 중에서] 가장 강대하여 그 종족들이 함께 王을 세워 辰王으로 삼아 目支國에 도읍하여 전체 三韓 지역의 王으로 군림하는데, [三韓의] 諸國王의 선대는 모두 마한 종족의 사람이다.
辰韓 耆老自言秦之亡人 避苦役 適韓國 馬韓割東界地與之 其名國爲邦 弓爲弧 賊爲寇 行酒爲行觴 相呼爲徒 【集解】先謙曰 魏志 爲上有皆字 有似秦語 故或名之爲秦韓 有城柵屋室 諸小別邑 各有渠帥 大者名臣智 次有儉側 次有樊秖 【集解】惠棟曰 魏志 作樊穢 次有殺奚 次有邑借 皆其官名 土地肥美 宜五穀 知蠶桑 作縑布 乘駕牛馬 嫁娶以禮 行者讓路 國出鐵濊倭馬韓並從市之 凡諸質易 【集解】先謙曰 官本 質作貿 皆以鐵爲貨 俗憙歌舞飮酒鼓瑟 兒生欲令其頭扁 皆押之以石 扁音補典反
辰韓은 그 노인들이 스스로 말하되, 秦나라에서 亡命한 사람들로 苦役을 피하여 韓國에 오자, 마한이 그들의 동쪽 지역을 분할하여 주었다 한다. 그들은 나라(國)를 邦이라 부르며, 弓은 孤라 하고, 賊은 寇라 하며, 行酒를 行觴이라 하고, 서로 부르는 것을 徒라 하여, 秦나라 말과 흡사하기 때문에 혹 秦韓이라고도 부른다.
周書卷49-列傳第41-百濟-04/01
◉<百濟>者, 其先蓋<馬韓>之屬國, <夫餘>之別種. 有<仇台>者, 始國於<帶方>. 故其地界東極<新羅>, 北接<高句麗>, 西南俱限大海. 東西四百五十里, 南北九百餘里. 治<固麻城>. 其外更有五方: 中方曰<古沙城>, 東方曰<得安城>, 南方曰<久知下城>, 西方曰<刀先城>, 北方曰<熊津城>.
'백제'의 그 선조는 대개 '마한'의 속국이고 '부여'의 별종이다. '구태'라는 자가 있어 나라를 '대방'에서 시작하였다. 고로 이땅의 경계는 동쪽에 '신라'가 있고, 북쪽은 '고구려'에 접하고, 서쪽과 남쪽은 함께 큰 바다를 경계로 한다. 동서로 사백오십리이고 남북은 구백여리이다. '고마성'에서 다스린다. 그 밖에는 오방이 있는데, 중방은 '고사성', 동방은 '득안성', 남방은 '구지하성', 서방은 '도선성', 북방은 '웅진성'이라 한다.
魏書卷100-列傳第88-百濟國-04/01
◉<百濟國>, 其先出自<夫餘>. 其國北去<高句麗>千餘里, 處<小海>之南. 其民土著, 地多下濕, 率皆山居. 有五穀, 其衣服飮食與<高句麗>同.
백제국은 그 선조가 부여에서 나왔다. 그 나라의 북쪽으로 고구려와 천여리가 떨어져 있고, 소해의 남쪽에 위치하였다. 그 백성들은 토착생활을 하는데, 지대가 대부분 낮고 습하여 모두 산에서 산다. 오곡이 생산되고, 의복과 음식물은 고구려와 같다.
梁書卷54-列傳第48-百濟-02/01
◉<百濟>者, 其先東夷有三<韓國>, 一曰<馬韓>, 二曰<辰韓>, 三曰<弁韓>. <弁韓>․<辰韓>各十二國, <馬韓>有五十四國. 大國萬餘家, 小國數千家, 總十餘萬戶, <百濟>卽其一也. 後漸强大, 兼諸小國. 其國本與<句驪>在<遼東>之東, <晉>世<句驪>旣略有<遼東>, <百濟>亦據有<遼西>․<晉平>二郡地矣, 自置<百濟郡>. <晉><太元>中, 王<須>, <義熙>中, 王<餘映>, <宋><元嘉>中, 王<餘毗>, 並遣獻生口. <餘毗>死, 立子<慶>. <慶>死, 子<牟都>立. <都>死, 立子<牟太>. <齊><永明>中, 除<太>都督<百濟>諸軍事․鎭東大將軍․<百濟王>. <天監>元年, 進<太>號征東將軍. 尋爲<高句驪>所破, 衰弱者累年, 遷居<南韓>地. <普通>二年, 王<餘隆>始復遣使奉表, 稱「累破<句驪>, 今始與通好」. 而<百濟>更爲强國. 其年, <高祖>詔曰:「行都督<百濟>諸軍事․鎭東大將軍<百濟王><餘隆>, 守藩海外, 遠脩貢職, 迺誠款到, 朕有嘉焉. 宜率舊章, 授茲榮命. 可使持節․都督<百濟>諸軍事․寧東大將軍․<百濟王>.」 五年, <隆>死, 詔復以其子<明>爲持節․督<百濟>諸軍事․綏東將軍․<百濟王>. 號所治城曰固麻, 謂邑曰檐魯, 如<中國>之言郡縣也.
백제는 그 시초가 동이의 삼한국인데, 하나는 마한이요, 다른 하나는 진한이요, 또 하나는 변한이었다. 변한과 진한은 각각 12국이 있었고, 마한은 54국이 있었다. 대국은 1만여가, 소국은 수천여가로서 모두 10여만호가 되었는데, 백제는 그 가운데 하나였다. 후에 점점 강하고 커져서 여러 작은 나라들을 합쳤다. 그 나라는 본래 고구구려와 더불어 요동의 동쪽에 있었는데, 진나라때에 이르러 고구려가 이미 요동을 경략하자, 백제 역시 요서, 진평 2군의 땅을 점거하여 스스로 백제군을 두었다.
#梁書卷54-列傳第48-百濟-02/02
◉其國有二十二檐魯, 皆以子弟宗族分據之. 其人形長, 衣服淨潔. 其國近<倭>, 頗有文身者. 今言語服章略與<高驪>同, 行不張拱, 拜不申足則異. 呼帽曰冠, 襦曰複衫, 袴曰褌. 其言參諸夏, 亦<秦>․<韓>之遺俗云. <中大通>六年, <大同>七年, 累遣使獻方物; 幷請《涅盤》等經義․《毛詩》博士, 幷工匠․畫師等, 敕並給之. <太淸>三年, 不知京師寇賊, 猶遣使貢獻; 旣至, 見城闕荒毁, 並號慟涕泣. <侯景>怒, 囚執之, 及<景>平, 方得還國.
그 나라에는 22담로가 있는데, 모두 왕의 자제와 종족에게 나누어 거주하게 햇다. 백제인은 키가 크며 의복이 청결하다. 그 나라 가까이에 왜가 있어서, 문신한 사람들도 꽤 있다. 지금의 언어와 복장은 고구려와 거의 같지만, 걸을 때 두 팔을 벌리지 않는 것과 절할 때 한 쪽 다리를 펴지 않는 것은 다르다. 모자를 관이라 부르고, 저고리를 복삼, 바지를 곤이라 한다.
#周書卷49-列傳第41-百濟-04/02
◉王姓<夫餘>氏, 號於羅瑕, 民呼爲鞬吉支, 夏言竝王也. 妻號於陸, 夏言妃也. 官有十六品. 左平五人, 一品; 達率三十人, 二品; 恩率三品; 德率四品; 扞率五品; 柰率六品. 六品已上, 冠飾銀華. 將德七品, 紫帶; 施德八品, 皂帶; 固德九品, 赤帶; (李)[季]德十品, 靑帶; 對德十一品, 文督十二品, 皆黃帶; 武督十三品, 佐軍十四品, 振武十五品, 克虞十六品, 皆白帶. 自恩率以下, 官無常員, 各有部司, 分掌衆務. 內官有前內部․穀部․肉部․內掠部․外掠部․馬部․刀部․功德部․藥部․木部․法部․後官部. 外官有司軍部․司徒部․司空部․司寇部․點口部․客部․外舍部․綢部․日官部․都市部. 都下有萬家, 分爲五部, 曰上部․前部․中部․下部․後部, 統兵五百人. 五方各有方領一人, 以達率爲之; 郡將三人, 以德率爲之. 方統兵一千二百人以下, 七百人以上. 城之內外民庶及餘小城, 咸分(肄)[隸]焉.
왕의 성은 부여씨로 어하라 라 부르며, 백성들은 건길지 라고 부르는 이는 중국 말로 모두 왕이라는 뜻이다. 왕의 아내는 어륙이라 호칭하니, 왕비라는 뜻이다. 벼슬은 16품계가 있다. 좌평은 5명으로 1품, 달솔은 30명으로 2품, 은솔은 3품, 덕솔은 4품, 한솔은 5품, 내솔은 6품이다. 6품 이상은 관을 은화로 장식하였다.
장덕은 7품으로 자주색 띠를 두르고, 시덕은 8품으로 검은 색 띠를, 고덕은 9품으로 적색 띠를, 계덕은 10품으로 청색 띠를 각각 둘렀다. 11품 대덕과 12품 문덕은 모두 황색 띠를 두르고, 13품 무덕과 14품 좌군, 15품 진무, 16품 극려는 모두 백색 띠를 둘렀다.
은솔 이하는 일정한 정원이 없고 각기 부서가 있어서 여러 가지 사무를 나누어 관장하였다.
내관으로 전내부, 곡부, 육부, 내략부, 외략부, 마부, 도부, 공덕부, 약부, 목부, 법부, 후관부가 있고, 외관으로는 사군부, 사도부, 사공부, 사구부, 점구부, 객부, 외사부, 조부, 일관부, 도시부가 있다.
도성에는 1만호가 거주하며 5부로 나누었는데, 상부, 전부, 중부, 하부, 후부로서 거느린 군사는 5백명이다.
오방에는 각기 방령 1인을 두어 달솔로 임명하고, 군에는 장수 3인이 있으니 덕솔로 임명하였다.
방에서 거느리는 군사는 1천 2백명 이하 7백명 이상이었다. 도성 내외의 백성들과 기타 작은 성들이 모두 여기에 예속되었다.
#周書卷49-列傳第41-百濟-04/03
◉其衣服, 男子畧同於<高麗>. 若朝拜祭祀, 其冠兩廂加翅, 戎事則不. 拜謁之禮, 以兩手據地爲敬. 婦人衣(以)[似]袍, 而袖微大. 在室者, 編髮盤於首, 後垂一道爲飾; 出嫁者, 乃分爲兩道焉. 兵有弓箭刀矟. 俗重騎射, 兼愛墳史. 其秀異者, 頗解屬文. 又解陰陽五行. 用<宋>《元嘉曆》, 以建寅月爲歲首. 亦解醫藥卜筮占相之術. 有投壺․樗蒲等雜戱, 然尤尙奕棊. 僧尼寺塔甚多, 而無道士. 賦稅以布絹絲麻及米等, 量歲豐儉, 差等輸之. 其刑罰: 反叛․退軍及殺人者, 斬; 盜者, 流, 其贓兩倍徵之; 婦人犯姦者, 沒入夫家爲婢. 婚娶之禮, 畧同華俗. 父母及夫死者, 三年治服; 餘親, 則葬訖除之. 土田下濕, 氣候溫暖. 五穀雜果菜蔬及酒醴餚饌藥品之屬, 多同於內地. 唯無駝驢騾羊鵝鴨等. 其王以四仲之月, 祭天及五帝之神. 又每歲四祠其始祖<仇台>之廟.
그들의 의복이 남자는 대략 고구려와 동일하였다. 조회나 제사 지낼 때에는 관의 양쪽 곁에 새의 깃을 달았으나, 군사에는 그렇지 않았다. 절하고 뵙는 예는 두 손을 땅에 짚어 공경을 나타냈다. 부인 의복은 도포 같으면서 소매가 약간 컸다. 시집가지 않는 여자는 편발로 머리 위에 또아리를 틀고 뒤로 한 가닥을 늘어뜨리는 것으로 꾸밈을 삼았고, 시집간 사람은 이를 두 가닥으로 늘어뜨렸다.
병기로는 활, 화살, 칼, 창이 있다. 그들의 습속은 말타고 활쏘기를 숭상하고 아울러 경전과 사서를 애독하니, 뛰어난 사람은 제법 문장을 엮을 줄도 알았다. 또한 음양, 오행도 이해하였다. [끝]
부여족 백제는 부여왕 구태(백제 고이왕)가 대방에서 나라를 세워
마한의 제후국이였던 한강지역의 온조 십제를 통합한 해양국가이다
부여왕 구태는 고구려에 대적하여 고구려 태조왕 때는 마한과 함께
한군현을 회복하려고 2만의 기마군을 동원하였으나, 한나라와 연합한
부여왕자 구태에게 격퇴당하기도 하였다. 한나라가 망하고 삼국시대가
개막되어 위나라 유주자사 관구검에 의해서 고구려가 침략당할 때
요동지역도 정벌당하게 되는데, 이 때 후한의 요동태수인 공손강이
대방고토인 황해도 지역으로 이주하여 대방국을 세우고 왕이라
칭하게 된다. 이 때 공손강의 매형이 되는 부여왕 구태가 100가를
거느리고 대방으로 이주하게 된다. 백가제해에서 백제라는 국호가
나온 배경이기도 하다. 따라서 백제의 개국시조는 부여왕 구태이고,
백제왕 계보에서는 중앙집권국가를 실현한 고이(고리)왕이다.
온조는 어머니가 부여의 동명성왕이 할아버지인 소서노 공주로서
동부여에서 망명하여 부여왕이 되어 국호를 고리로 바꾼 고추모에
반대하는 부여의 동명왕 고두막 세력이 북쪽으로 이주하여 길림에서
부여를 세웠고, 그 부여왕이였던 구태가 백제를 세운 것이다.
한반도와 중국지역에서 벌어진 고구려와 백제의 치열한 전쟁은
그러한 부여 정통성을 놓고 벌인 전쟁이였다. 그러나,
고추모가 부여시조인 해모수의 직계손자이고, 한나라의 침략때
의병 5천명을 모아 물리치고 민심을 얻어 부여 단군천왕에 즉위한
고두막의 부여왕에 즉위한 인물이 고추모니 부여의 국통이나
황통 역시 고구려가 계승한 것이 된다. 그래서 광개토태왕비에
백제(부여인 온조.구태 나라)와 신라(부여인 박혁거세 나라)가 오래부터
고구려(부여)의 신민이였다고 기록한 역사적 배경이 되는 것이다.
- 동방의인 코리아 대한(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