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구려를 떠난 소서노와 비류.온조는 서쪽으로 바다로 이어진 진조선과 번조선의 경계지역인 대릉하 하류지역에서 10년간 해상무역을 하여 부를 축적하고 사방 500리 땅을 차지하고 어하라(비류백제)를 세운 후 사랑했었던 남편이자 고구려 태왕이였던 주몽(해상해)에게 편지를 보내 고구려의 제후국이 되겠다 했습니다.
이 때 온조를 따르는 추종자들이 마한이 쇠퇴한다는 소문을 듣고 온조에게 마한지역으로 가서 나라를 세우고자 제안하니 온조가 좋다고하며 배를 만들어서 온조와 10명의 충신들과 가문이 배를 타고 마한지역인 한반도 한강지역에 도읍을 하였습니다. 처음에는 한강이북 방학동지역에 하북위례성을 쌓고 도읍하였으나 낙랑국의 용병들인 말갈족의 침략으로 인하여 한강이남에 도읍하니 하남위례성인데,[삼국사기/백제본기/온조왕 편]에 기록된 위치와 관련하여
"북으로는 한수(한강)가 병풍치고 있고 서쪽으로는 바다로 막혀 있고 동쪽으로 높은 산으로 막혀 있고 남으로는 비옥한 토지가 있는" 지역과 가장 부합한 하남시 춘궁동지역이 문헌과 고고학 사료를 결합한 오순제 교수님의 연구결과처럼 하남 위례성입니다.
그러나,일제 식민사관에 기반한 강단사학의 기득권집단은 고대부터 침수지역으로 도저히 왕이 거주하는 왕성이 될 수 없는 풍납토성을 하남위례성이라고 단정하고 국민에게 세뇌시키고 있습니다. 서해로 이어지는 한강변에 쌓은 풍납토성은 왕궁의 주춧돌들은 발견되지 않고 제사지내는 사당유적과 동진의 유물들이 발견된 점으로 보아 백제 해상무역의 중심기지였다고 할 수 있습니다.
기득권세력의 문제가 그래서 개방적이지 못한 배타성과 폐쇄성으로 진실을 가리우고 우물안 개구리들처럼 자신들만의 거짓된 인식론에 갇혀 사는 인간들인 것입니다.
소서노와 비류가 죽은 후 비류백제인 어하라 백성들이 모두 온조백제로 이주하여 온조세력이 커진 것이고 한반도 서남부지역인 마한을 병합한 후 수군을 통하여 열도를 담로지역으로 삼았고, 요서로 진출하여 백제치소 진평군을 설치하여 차이나동해안지역을 담로지역으로 삼는 기반을 다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