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밝은 앞날 되시기를][꿈은 이루어진다][꿈은 미래의 현실이다]
[영원히 살 것처럼 계획하고, 하루 살다 죽을 것처럼 실천하라.]
[ 이상 없는 현실은 무의미하고 현실 없는 이상은 존재할 수 없다.]
------------------------------------------
석관묘 주요 분포지
[석관묘(돌로 관을 만든 묘)]의 주요분포지는 위와 같다.
석관묘, 고인돌, 선돌은 고대 한민족의 상징이고 따라서 그 주요분포지가 일치한다.
고조선 상징검인 [비파형 동검]의 분포도 이와 일치한다.
8천년전의 지구기온은 현재와 비슷했다.
당시는 남한 지역이 고대한국의 중심지.
그런데 지구기온이 차차 올라가서
6천~5천년전에 최고조에 이른다.
지구기온 상승에 따라 고대한국 중심지는 대동강, 압록강으로 올라간다.
후에 다시 지구기온이 차차 내려가면서
지금 한국의 수도는 한강에 있다.
[원조 고대한국문명 ] 즉 [마 문명] <- 관련글
고대에 문명이 북으로 전파되면서 마한, 진한, 변한의 [삼한]이 생겨난다.
원조 [진한]이 압록강을 중심으로 존재했다는 것은
발해가 처음에는 자신들의 나라이름을 [고려]라고 부르다가
나중에는 대진국(大震國)이라 부른 것을 보아도 알 수 있다.
대진국(大震國)이라는 이름은 [위대한 진한]을 뜻한다.
즉 발해는 처음에는 자신들의 나라이름을 고구려를 뜻하는 고려로 불렀고
나중에는 고조선의 진한을 뜻하는 대진국(大震國)으로 바꾼 것.
고구려가 고조선의 부활을 추구했기 때문.
이는 백제, 신라도 마찬가지.
[ 발해는 스스로를 고려(고구려)라 불렀다.] <- 관련글
|
|
[세형동검 (細形銅劍) - 한국식 동검]
위 검은 흔히 [한국식 동검]이라 불리는 [세형동검]
대개 한반도 중부 남부에서 발견되기 때문에 [한국식 동검]이라 불린다.
[한국식 청동검(세형동검)의 조립식 구조 - 대구 출토 청동검의 예]
[조립된 세형동검(한국식 동검)의 한 예]
평안남도 성천군 백원리 9호 고인돌 무덤에서 발굴된 세형동검이
3천4백년전 것으로 드러나면서 세형동검은 더더욱 한국고유의 검으로 확인되었다.
세형동검은 청천강 이남에서 주로 발견된다.
세형동검 영역은 [남방식 고인돌] 영역과 일치한다.
[남방식 고인돌]이란 관이 땅 속에 있는 고인돌을 말한다.
세계고고학계에서 한국이 고인돌의 나라로 유명하듯이
한국에는 세계고인돌의 반 이상이 있고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고인돌도 한국에 있고 (전남 화순 - 8천년전 것)
[남방식 고인돌] 역시 한국고유의 것.



비파형동검은 한반도와 만주 전역 에서 발견된다.
이는 한민족 전체가 단군임금을 지도자로 추대한 것을 보여준다 하겠다.
비파형동검은 고조선 임금(중앙정부)으로부터 지역(지방정부) 지도자에게 하사되는 신검. (지도자의 상징 검.)
ㅇ 마한 - 세형동검과 남방식 고인돌 주요존재지
ㅇ 진한 - 비파형동검과 북방식 고인돌 주요존재지
ㅇ고조선연방 - 포괄적 [ 세형동검+ 비파형동검] 지역
후대에 고구려,백제,신라는 말 즉 언어가 같았다.
부여,고구려,백제,신라 모두 같은 말 썼다. <- 관련글(누르세요)
이를 보아도 마한과 진한은 원래 같은 민족이었고
단군왕검을 지도자로 추대하여 고조선연방(통일)을 이루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
|
( 차차 중국에 합병된다.)
고대 중국인들은 변한(弁韓)을 변진(弁辰)이라 많이 불렀다.
즉 변한(弁韓)은 진한(辰韓)의 일부로 생각했다.
진한(辰韓)사람들이 중국동부로 건너가서 된것이 변한(弁韓)이기 때문.
중국 고대책인 [산해경(山海經)]에 보면
고조선에 대한 기록이 나온다.
" 동해의 안쪽, 북해의 주변에 나라가 있으니 조선(朝鮮)이라 한다.
하늘이 지극히 아끼는 그 사람들은 물가에 살고 사람을 존중하고 사랑한다."
[東海之內 北海之隅 有國 名曰 朝鮮 天毒 其人 水居 偎人愛之]
(여기서 [북해]란 [발해] 즉 [서해 위 바다]를 말한다.)
후대에 약 2천1백년전 한사군 때 변한 사람들이 한반도로 많이 들어온다.
(보강) 한사군은 한반도에 없었다. <- 관련글(누르시면 열립니다)
평양에서 [낙랑 유물]이 발견되는 것도 그 이유로 본다. 변한의 한 지역이었던 [낙랑]사람들이 선조의 고향인 한반도로 되돌아와서 대동강유역에서도 살고 현 함흥으로 추정되는 지역을 중심으로 [최씨 낙랑국]도 세운다. - 호동왕자와 낙랑공주
낙랑은 [고조선 연방]의 한나라였고 발해만 북부에 존재했으며
한4군 설치 때문에 다시 한반도로 돌아온 것으로 본다.
그런데 그보다 1백년전
진시황 때 한반도로 들어왔다는 진한(辰韓)인들의 기록이 있다.
-----------------------------------------------
" 진한(辰韓)은 마한(馬韓)의 동쪽에 있다.
그곳의 노인들이 세대를 넘어 전하기를
'옛날 진역(秦役 : 만리장성 만들기에 동원 추정)을 피해 망명(亡命)하여
자연스레 차츰 한국(韓國)에 왔다.' 한다.
마한(馬韓)은 그 동쪽 땅을 떼어내 주었다."
[辰韓在馬韓之東, 其耆老傳世, 自言古之亡人避秦役來適韓國 馬韓割其東界地與之]
- 출처: 삼국지 위서 오환선비동이전 (三國志 魏書 烏丸鮮卑東夷傳 韓(辰韓))
(이 삼국지는 소설 삼국지가 아니라 역사책 삼국지.
소설삼국지는 이 역사책 삼국지를 바탕으로 쓰여진 것.)
그런데 위 기록에서
[진한(변한)인들이 자연스레 차츰 한국(韓國:마한)에 왔다.(來適韓國)]
[마한(馬韓)은 그 동쪽 땅을 떼어내 주었다.(馬韓割其東界地與之)]
라 했듯이
전쟁도 없이 그냥 받아들여서 땅까지 떼어준 것.
즉 마한과 진한은 서로 [아주 가까운 사이 (사실상 하나의 나라 - 고조선 연방)]였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런데 위 기록에 나오는 진한(辰韓)은 압록강 유역에 존재했던 [원조 진한]이 아니라
놀랍게도 멀리 중국 북서부 [함양 ( 서안(장안)의 서부)]에서 온 사람들로 보인다.
|
(북경대 출판 중국 고대사 교학참고지도집상의 "진장성(秦長城)" - 송준희님 제공) |
위 지도의 중국 북서부 "진장성(秦長城)"이 바로 진시황이 쌓았다는 장성.
지금의 만리장성은 진시황보다 1천수백년 후대인 명나라때 중국 북부의 여러 성들을 연결해서 만든 것.
게다가 위 그림의 만리장성의 동쪽 부분은 사기다.
명나라때 완성된 만리장성은 그 동쪽 끝이 위 지도와 같이
발해만 북부 산해관(山海關)에서 끝난다.
산해관의 끝은 바다로 들어가 있다.
산해관(山海關)의 비밀 <- 관련글
위의 [함양]이라는 곳은 서안(장안) 옆에 있는데 진시황이 수도로 삼은 곳.
[진장성(秦長城)]은 중국 서북부의 호전적인 민족으로부터
진시황이 자신의 수도를 보호하기 위해서 세운 것.
그런데 [함양]은 그 전에 이미 고대 한국인들이 건너가서 수많은 피라미드를 세운 곳.
그래서 진시황 당시에도 많은 고대한국인들이 살고 있었을 것이다.
위 사진들처럼 함양과 서안(장안)에는 피라미드들 고대한국인들이 건너가서 만든
피라미드들이 많다. - 중국당국은 흙으로 만든 중국황제릉이라고 우기고 있다.
그런데 구글어스도 [피라미드]라고 설명하고 있다.
놀랍게도 이집트 대피라미드보다 밑면적이 더 큰 것도 있다.
[피라미드의 전파]
고대한국 피라미드가 홍산, 서안(장안), 함양으로 전파되다. <- 관련글
피라미드의 원조는 황해평원에 있다고 보고
한강유역 -> 대동강 유역 -> 압록강 유역 -> 중국 등으로 전파됐다고 본다.
성황당(聖皇堂)의 원조는 고대한국 피라미드 <- 관련글
[진한, 변한인들의 이동]
진시황 당시 중국의 함양에 살던 자신들이 [진한(辰韓)인의 후예]라는 것을
강하게 생각하고 있었을 것이다.
고대한국인들은 중국 땅으로도 퍼져서 원주민들에게 문명을 전하고 합해졌지만
특히 [함양, 서안(장안)]같은 곳은 고대한국의 상징인 피라미드를 많이 건립한 [특별한] 곳이므로
그 곳에서는 오랫동안 [진한(辰韓)]이라는 이름으로 정체성을 지키고자 하며
지금의 중국 [소수민족]처럼 살아간 사람들이 있지 않았나 싶다.
그러다가 진시황 때에 이르러 그들 중 상당수가 그들 선조의 원 고향인 남한 땅으로 이동한 것으로 본다.
[도제기마인물상 (국보 91호)]
가야, 신라는 대강 [경상도 토착민과 진한, 변한에서 온 사람들]로 이루어졌다.
평야가 많은 전라-충청-경기는 마한의 중심지 였으므로
[진한, 변한에서 온 사람들]은 비교적 평야가 적은 경상도로 갈 수 밖에 없었을 것이다.
그나마 마한이 받아준 것만 해도 그들로서는 다행으로 여길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위 [도제기마인물상 (국보 91호)]은 진시황의 장성 쌓기를 피해서
그들의 선조들의 고향 한반도로 온 사람들의 모습이 아닐까.
중국 함양(咸陽)에서 온 사람들은 경기-충청-전라보다는
대체로 주로 경상도로 간 것으로 본다.
경기-충청-전라는 평야지대가 많기 때문에 마한의 중심지 였을 것이고 그래서
위의 삼국지에 나오는 것처럼 [마한의 동쪽] 즉 경상도로 많이 간 것으로 본다.
이 사람들이 신라 건국의 한 축이 되었을 것인데
위 지도에서 보이는 것처럼 경남에는 [함양]이라는 곳이 있다.
경주 등 비교적 평야지대로 간 사람들은 그 곳에 원주민들이 많았을 것이기 때문에
주로 흡수 되는 경향이었을 것이나
지금의 경남 함양 같은 산지에는 원주민이 별로 없었을 것이기 때문에
그 곳에 자신들이 온 곳인[함양]이라는 이름을 붙일 수 있었지 않았나 한다.
물론 [원조 피라미드 지역]은 남한 지역
[밝은 앞날 되시기를]
[꿈은 이루어진다]
[꿈은 미래의 현실이다]
댓글
댓글 리스트-
작성자재문정원 작성시간 08.08.05 선생님 .부도지에서 마고성을 지금의 어디쯤이라고 생각 하시는지요 .황궁씨가 마고성 북쪽 천산으로 가서 복본을 하려 했다는데 그 천산이란곳이 전남 장흥 관산에 있는 지금의 천관산이 아닌가 싶기도 합니다 천관산에는 고인돌 지표조사에서 가장많은량의 고인돌이 보존되어 있다는것이 밝혀 졌을뿐 아니라 그곳 산자락 삼성재 성조골이란곳에는 세계에서 가장크고 가장 오래된 괸돌이 있으니까요
-
작성자하늘호수 작성시간 08.08.11 자기나라 역사를 대학에서 선택과목으로 하는 나라가 있으니 ....품격은없고 오직돈만 있으면 된다는생각을.....조상님부끄럽습니다.....좋은자료 잘보고있읍니다.
-
작성자청량산 작성시간 08.09.09 감동받았습니다. 정말 위대하십니다.
-
작성자산수유 작성시간 11.02.03 및의 만화는 엑박이군요;;^^ 글 잘 봤습니다.
그나저나 발굴된 ㅍ라미드들을 다 묻어버렸다니, 쥐약먹을 종자들 같으니. -
작성자월지국 작성시간 15.06.10 마한 이전의 나라가 진국 입니다. 한반도의 중심에 있었습니다.
진국으로 부터 마한 진한 변한으로 발전하고 마한은 백제로 진한 은 고구려로 변한은 신라로 변화 발전 합니다.
고인돌이 제일 많이 있고 문화와 문명이 발전하여 다른 지역에 전파 하였다는것에는 공감을 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