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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고대사

마한 진한 변한 (버전2)

작성자白山사람|작성시간07.08.19|조회수2,989 목록 댓글 7

 

 

 [밝은 앞날 되시기를][꿈은 이루어진다][꿈은 미래의 현실이다]


백두산 천지

[영원히 살 것처럼 계획하고, 하루 살다 죽을 것처럼 실천하라.]

[ 이상 없는 현실은 무의미하고 현실 없는 이상은 존재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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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석관묘 주요 분포지

 

[석관묘(돌로 관을 만든 묘)]의 주요분포지는 위와 같다.

석관묘, 고인돌, 선돌은 고대 한민족의 상징이고 따라서 그 주요분포지가 일치한다. 

고조선 상징검인 [비파형 동검]의 분포도 이와 일치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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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천년전의 지구기온은 현재와 비슷했다.

당시는 남한 지역이 고대한국의 중심지.

그런데 지구기온이 차차 올라가서

6천~5천년전에 최고조에 이른다.

지구기온 상승에 따라 고대한국 중심지는 대동강, 압록강으로 올라간다.

후에 다시 지구기온이 차차 내려가면서

지금 한국의 수도는 한강에 있다.

 

[원조 고대한국문명 ] 즉 [마 문명] <- 관련글

 

고대에 문명이 북으로 전파되면서 마한, 진한, 변한의 [삼한]이 생겨난다.

원조 [진한]이 압록강을 중심으로 존재했다는 것은

발해가 처음에는 자신들의 나라이름을 [고려]라고 부르다가

나중에는 대진국(大震國)이라 부른 것을 보아도 알 수 있다.

대진국(大震國)이라는 이름은 [위대한 진한]을 뜻한다.

즉 발해는 처음에는 자신들의 나라이름을 고구려를 뜻하는 고려로 불렀고

나중에는 고조선의 진한을 뜻하는 대진국(大震國)으로 바꾼 것.

고구려가 고조선의 부활을 추구했기 때문.

이는 백제, 신라도 마찬가지.

 

[ 발해는 스스로를 고려(고구려)라 불렀다.] <- 관련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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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형동검 (劍) - 한국식 동검]

 

 

위 검은 흔히 [한국식 동검]이라 불리는 [세형동검]

대개 한반도 중부 남부에서 발견되기 때문에 [한국식 동검]이라 불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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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식 청동검(세형동검)의 조립식 구조 - 대구 출토 청동검의 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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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립된 세형동검(한국식 동검)의 한 예]

 

평안남도 성천군 백원리 9호 고인돌 무덤에서 발굴된 세형동검이

3천4백년전 것으로 드러나면서 세형동검은 더더욱 한국고유의 검으로 확인되었다. 

세형동검은 청천강 이남에서 주로 발견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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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형동검 영역은 [남방식 고인돌] 영역과 일치한다.

[남방식 고인돌]이란 관이 땅 속에 있는 고인돌을 말한다.

 

세계고고학계에서 한국이 고인돌의 나라로 유명하듯이

한국에는 세계고인돌의 반 이상이 있고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고인돌도 한국에 있고 (전남 화순 - 8천년전 것) 

[남방식 고인돌] 역시 한국고유의 것.

 

 


[남방식 고인돌 - 전남 순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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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남 창녕 유리(幽里) 고인돌

http://myhome.shinbiro.com/~kbyon/dolmen/kyuri.ht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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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남 화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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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남 화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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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방식 고인돌]은 주로 마한에서 발견되고 
[북방식 고인돌]은 주로 진한에서 발견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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ㅇ 남방식 고인돌 주요 존재지 - 마한
ㅇ 방식 고인돌 주요 존재지 - 진한
 
 
남방식고인돌이나 북방식고인돌이나 모두 그 근원은 황해평원과 한반도 남부에 있다 하겠다. 
 
 
 
[북방식 고인돌]
 
 
[비파형동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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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군왕검께서 마한과 진한의 합류지점인 대동강 지역에서
마한과 진한과 변한을 아우르는 [고조선연방]을 건국한다.
- 변한은 진한의 일부

 

 

 

 

비파형동검은 한반도와 만주 전역 에서 발견된다.

이는 한민족 전체가 단군임금을 지도자로 추대한 것을 보여준다 하겠다.

비파형동검은 고조선 임금(중앙정부)으로부터 지역(지방정부) 지도자에게 하사되는 신검. (지도자의 상징 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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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인돌도 그렇고 문명은 남한지역에서 시작해서
북한, 만주 지역으로 전파된다.
진한 역시 마한 사람들이 건너가서 만든 문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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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한 - 세형동검과 남방식 고인돌 주요존재지  

  진한 비파형동검과 북방식 고인돌 주요존재지  

고조선연방 - 포괄적 [ 세형동검+ 비파형동검] 지역 

 

 

후대에 고구려,백제,신라는 말 즉 언어가 같았다.

 

부여,고구려,백제,신라 모두 같은 말 썼다. <- 관련글(누르세요)

 

이를 보아도 마한과 진한은 원래 같은 민족이었고

단군왕검을 지도자로 추대하여 고조선연방(통일)을 이루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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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차차 중국 동해안은 고조선 영역에서 제외된다.

( 차차 중국에 합병된다.)  

 
 

고대 중국인들은 변한(韓) 변진()이라 많이 불렀다.

즉 변한(韓)은 진한(辰韓)의 일부로 생각했다.

진한(辰韓)사람들이 중국동부로 건너가서 된것이 변한(韓)이기 때문.

 
 

중국 고대책인 [산해경(山海經)]에 보면 

고조선에 대한 기록이 나온다.


" 동해의 안쪽, 북해의 주변에 나라가 있으니 조선(朝鮮)이라 한다.

하늘이 지극히 아끼는 그 사람들은 물가에 살고 사람을 존중하고 사랑한다."

[東海之內 北海之隅 有國 名曰 朝鮮 天毒 其人 水居 偎人愛之]

 

(여기서 [북해]란 [발해] 즉 [서해 위 바다]를 말한다.)

 

후대에 약 2천1백년전 한사군 때 변한 사람들이 한반도로 많이 들어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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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강) 한사군은 한반도에 없었다.  <- 관련글(누르시면 열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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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양에서 [낙랑 유물]이 발견되는 것도 그 이유로 본다.

변한의 한 지역이었던 [낙랑]사람들이 선조의 고향인 한반도로 되돌아와서  

대동강유역에서도 살고

현 함흥으로 추정되는 지역을 중심으로 [최씨 낙랑국]도 세운다.

- 호동왕자와 낙랑공주  

 

낙랑은 [고조선 연방]의 한나라였고 발해만 북부에 존재했으며

한4군 설치 때문에 다시 한반도로 돌아온 것으로 본다.

 

그런데 그보다 1백년전

진시황 때 한반도로 들어왔다는 진한(辰韓)인들의 기록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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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진한(辰韓)은 마한(馬韓)의 동쪽에 있다.

그곳의 노인들이 세대를 넘어 전하기를

'옛날 진역(秦役 : 만리장성 만들기에 동원 추정)을 피해 망명(亡命)하여 

자연스레 차츰 한국(韓國)에 왔다.' 한다.

마한(馬韓)은 그 동쪽 땅을 떼어내 주었다."

 

[辰韓在馬韓之東, 其耆老傳世, 自言古之亡人避秦役來適韓國 馬韓割其東界地與之]

 

- 출처: 삼국지 위서 오환선비동이전 (三國志 魏書 烏丸鮮卑東夷傳 韓(辰韓))

  

(이 삼국지는 소설 삼국지가 아니라 역사책 삼국지.

소설삼국지는 이 역사책 삼국지를 바탕으로 쓰여진 것.)

 

그런데 위 기록에서

[진한(변한)인들이 자연스레 차츰 한국(韓國:마한)에 왔다.(來適韓國)]

[마한(馬韓)은 그 동쪽 땅을 떼어내 주었다.(馬韓割其東界地與之)]

라 했듯이 

 

전쟁도 없이 그냥 받아들여서 땅까지 떼어준 것.

즉 마한과 진한은 서로 [아주 가까운 사이 (사실상 하나의 나라 - 고조선 연방)]였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런데 위 기록에 나오는 진한(辰韓)은 압록강 유역에 존재했던 [원조 진한]이 아니라

놀랍게도 멀리 중국 북서부 [함양 ( 서안(장안)의 서부)]에서 온 사람들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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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경대 출판 중국 고대사 교학참고지도집상의 "진장성(秦長城)" - 송준희님 제공)

 

위 지도의 중국 북서부 "진장성(秦長城)"이 바로 진시황이 쌓았다는 장성.

 

지금의 만리장성은 진시황보다 1천수백년 후대인 명나라때 중국 북부의 여러 성들을 연결해서 만든 것.

 

게다가 위 그림의 만리장성의 동쪽 부분은 사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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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나라때 완성된 만리장성은 그 동쪽 끝이 위 지도와 같이

발해만 북부 산해관(山海關)에서 끝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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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해관의 끝은 바다로 들어가 있다.

 

 

산해관(山海關)의 비밀 <- 관련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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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의 [함양]이라는 곳은 서안(장안) 옆에 있는데 진시황이 수도로 삼은 곳.

 

[진장성(秦長城)]은 중국 서북부의 호전적인 민족으로부터

진시황이 자신의 수도를 보호하기 위해서 세운 것.

 

그런데 [함양]은 그 전에 이미 고대 한국인들이 건너가서 수많은 피라미드를 세운 곳.

 

그래서 진시황 당시에도 많은 고대한국인들이 살고 있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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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 사진들처럼 함양과 서안(장안)에는 피라미드들 고대한국인들이 건너가서 만든

피라미드들이 많다. - 중국당국은 흙으로 만든 중국황제릉이라고 우기고 있다.

그런데 구글어스도 [피라미드]라고 설명하고 있다.

 

놀랍게도 이집트 대피라미드보다 밑면적이 더 큰 것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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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라미드의 전파]

 

고대한국 피라미드가 홍산, 서안(장안), 함양으로 전파되다. <- 관련글

 

 

피라미드의 원조는 황해평원에 있다고 보고

한강유역 -> 대동강 유역 -> 압록강 유역 -> 중국 등으로 전파됐다고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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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황당(聖皇堂)의 원조는 고대한국 피라미드 <- 관련글

 

 

[진한, 변한인들의 이동]

 

진시황 당시 중국의 함양에 살던 자신들이 [진한(辰韓)인의 후예]라는 것을

강하게 생각하고 있었을 것이다.

 

고대한국인들은 중국 땅으로도 퍼져서 원주민들에게 문명을 전하고 합해졌지만

특히 [함양, 서안(장안)]같은 곳은 고대한국의 상징인 피라미드를 많이 건립한 [특별한] 곳이므로

그 곳에서는 오랫동안 [진한(辰韓)]이라는 이름으로 정체성을 지키고자 하며

지금의 중국 [소수민족]처럼 살아간 사람들이 있지 않았나 싶다.    

 

그러다가 진시황 때에 이르러 그들 중 상당수가 그들 선조의 원 고향인 남한 땅으로 이동한 것으로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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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제기마인물상 (국보 91호)]

 

가야, 신라는 대강 [경상도 토착민과 진한, 변한에서 온 사람들]로 이루어졌다.

 

평야가 많은 전라-충청-경기는 마한의 중심지 였으므로

[진한, 변한에서 온 사람들]은 비교적 평야가 적은 경상도로 갈 수 밖에 없었을 것이다.

그나마 마한이 받아준 것만 해도 그들로서는 다행으로 여길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위 [도제기마인물상 (국보 91호)]은 진시황의 장성 쌓기를 피해서

그들의 선조들의 고향 한반도로 온 사람들의 모습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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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함양(咸陽)에서 온 사람들은 경기-충청-전라보다는

대체로 주로 경상도로 간 것으로 본다. 

경기-충청-전라는 평야지대가 많기 때문에 마한의 중심지 였을 것이고 그래서

위의 삼국지에 나오는 것처럼 [마한의 동쪽] 즉 경상도로 많이 간 것으로 본다. 

 

이 사람들이 신라 건국의 한 축이 되었을 것인데

위 지도에서 보이는 것처럼 경남에는 [함양]이라는 곳이 있다.

 

경주 등 비교적 평야지대로 간 사람들은 그 곳에 원주민들이 많았을 것이기 때문에

주로 흡수 되는 경향이었을 것이나

 

지금의 경남 함양 같은 산지에는 원주민이 별로 없었을 것이기 때문에  

그 곳에 자신들이 온 곳인[함양]이라는 이름을 붙일 수 있었지 않았나 한다. 

 

물론 [원조 피라미드 지역]은 남한 지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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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시 송파구 석촌동에 있는 피라미드]
 
위 피라미드들은 [백제 토기]가 나왔다고 백제 때 것으로 되어 있는데
저 피라미드 자체가 백제 때 만들어진 것이라는 근거는 없다.
 
피라미드 문화는 백제보다 훨씬 더 전 것이라 봐야 할 것이고
백제는 거기에 이미 있었던 피라미드에서 천제를 지내는 등 했다고 본다.   
 
압록강변의 장군총, 태왕릉 역시 고구려때 만들어진 거라는 근거는 전혀 없고
고구려보다 훨씬 더 전에 만들어진 거라는 근거는 많다.
 
 
  
 
발굴기록 등을 보면 서울 송파구에만도 위 사진보다 훨씬 더 큰 피라미드들도 많았는데
보존하지 않고 다 묻어버렸다. 표본으로 이 3개만 남겨두었다.
 
특히 한강과 비교적 근거리의 집들, 길들 밑에는 (땅 속에) 
고대한국 피라미드들의 [기단석]들이 아직도 꽤 남아있을 것이다.
 
한강변의 피라미드들 중 백제 때 만들어진 것도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피라미드는 백제 훨씬 이전의 고대부터 한민족의 상징.   
 
피라미드 원조국이 이집트가 아니라
고대한국이라는 근거는 너무나 많다.
 
 
 
중국당국이 함양, 서안의 피라미드들을 흙무덤이라고 우기는 것도
그 피라미드들이 중국문화가 아니라 한국문화라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 
 
동북꽁정이 성공했다고 생각하는 순간
중국당국은 함양, 서안의 피라미드들을 중국 거라고 세계에다가 대대적으로 선전할 계획일 것이다.
 
하지만 상관없다.
피라미드도 황해평원 마문명과 남한지역에서 시작한 것이니
우리는 그 근거만 더욱 보강해 나가면 된다.
 
우리는 진실만 더욱 밝혀나가면 된다. 
그래서 시간은 우리 편.
 
  

 

 

[밝은 앞날 되시기를]

[꿈은 이루어진다]

[꿈은 미래의 현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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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댓글 리스트
  • 작성자재문정원 | 작성시간 08.08.05 선생님 .부도지에서 마고성을 지금의 어디쯤이라고 생각 하시는지요 .황궁씨가 마고성 북쪽 천산으로 가서 복본을 하려 했다는데 그 천산이란곳이 전남 장흥 관산에 있는 지금의 천관산이 아닌가 싶기도 합니다 천관산에는 고인돌 지표조사에서 가장많은량의 고인돌이 보존되어 있다는것이 밝혀 졌을뿐 아니라 그곳 산자락 삼성재 성조골이란곳에는 세계에서 가장크고 가장 오래된 괸돌이 있으니까요
  • 작성자하늘호수 | 작성시간 08.08.11 자기나라 역사를 대학에서 선택과목으로 하는 나라가 있으니 ....품격은없고 오직돈만 있으면 된다는생각을.....조상님부끄럽습니다.....좋은자료 잘보고있읍니다.
  • 작성자청량산 | 작성시간 08.09.09 감동받았습니다. 정말 위대하십니다.
  • 작성자산수유 | 작성시간 11.02.03 및의 만화는 엑박이군요;;^^ 글 잘 봤습니다.
    그나저나 발굴된 ㅍ라미드들을 다 묻어버렸다니, 쥐약먹을 종자들 같으니.
  • 작성자월지국 | 작성시간 15.06.10 마한 이전의 나라가 진국 입니다. 한반도의 중심에 있었습니다.
    진국으로 부터 마한 진한 변한으로 발전하고 마한은 백제로 진한 은 고구려로 변한은 신라로 변화 발전 합니다.
    고인돌이 제일 많이 있고 문화와 문명이 발전하여 다른 지역에 전파 하였다는것에는 공감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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