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전님 훈시 중에서
1989. 3. 15 (음 2. 8)
늘 말하는데도 도인들이 착각하고 옳게들 판단을 못 하는 것이 연운 체계입니다.
잘못하면 죄를 짓습니다.
방면에 문제가 생기는 원인은 늘 여기에 있습니다.
다른 데 있는 것이 아닙니다.
연원과 연운을 착각해서 그렇습니다.
우리는 연원도통(淵源道通)입니다.
수운가사에도 연원도통으로 되어있습니다.
수운은 범인(凡人)과 다릅니다.
수운가사는 우리 얘기지 다른 것이 아닙니다.
연원이라는 것을 간단하게 생각해서는 안 됩니다.
연원이란 포덕한 연줄이 아닙니다.
연원을 잘못 판단하여 선각이 아니면 도통하지 못한다는 식으로 말하게 되면 죄를 짓게 됩니다.
연원(淵源)이란 원 근본을 말합니다.
못 연(淵), 근원 원(源)으로, 못도 물이요, 원(源)도 물입니다.
못 연(淵), 근원 원(源)에는 삼 수(氵)가 있습니다.
진리의 근원은 물에 있습니다.
옛날 복희(伏羲) 때는 용마(龍馬)가 황하(黃河)에서 하도(河圖)를 지고 나와 거기에서 진리를 깨달았고, 우임금 때 신구(神龜)가 낙수(洛水)에서 낙서(洛書)를 지고 나와 주(周) 문왕(文王)은 거기에서 천지의 이치를 깨달았습니다.
하도ㆍ낙서에서 진리가 나왔습니다.
금산사의 금불(金佛)을 모신 자리에도 용추(龍湫)가 있습니다.
상제님, 정산님의 진리도 못, 즉 물에서 나왔다는 말입니다.
상제님께서 “내가 금산사로 들어가리니 나를 보고 싶거든 금산사로 오너라.”고 하신 것은 금산사의 미륵불을 믿으라는 것이 아니라 그 진리를 들으라는 말씀이고 양위 상제님의 진리로 들어오라는 말씀입니다.
두 분의 진리를 받아야 통합니다.
이것이 연원도통입니다.
연원도통이란 상제님ㆍ도주님 두 분의 진리에 도통이 있음을 말합니다.
포덕한 연줄로 운수를 받는 것이 아닙니다.
연원과 연운은 다릅니다.
오늘 갓 입도한 도인이라도 연원은 누구에게나 같은 것입니다.
중간이 끊어져도 연원은 끊어질 수가 없는 것입니다.
도인은 상제님의 도인이지, 임원의 개별적인 도인이 아닙니다.
만약 중간 줄이 썩었으면 잘라내고 다시 이어야 합니다.
그래야 밑에서 살지, 안 그러면 저 밑에 절단이 납니다!
줄이 복판이 썩었는데 썩은 것을 잘라서 줄끼리 이어서 쓰는 것은 당연지사입니다.
그래야 아래위가 다 살게 됩니다.
공에는 남을 포덕한 공도 있고, 키운 공도 있는 것입니다.
오히려 키운 공이 더 큰 것입니다.
이번에는 연원도통입니다.
그 원리를 믿는 것입니다.
연원을 착각하고 몰라서는 안 됩니다.
연원은 줄이 아닙니다.
아래가 잘되면 윗사람은 저절로 커지고, 위가 커지면 아래도 따라서 커집니다.
그러니까 서로 고맙고 감사하다는 것을 잊어서는 안 됩니다.
서로가 고맙고 감사해야 합니다.
이것이 해원상생입니다.
서로가 그저 고맙고 감사하다고 생각해야 합니다.
어느 방면이라도 서로 단결이 되어 잘해가면 누가 생각해도 속으로 존중하는 마음이 들어가게 되고 부럽고 두려운 생각이 들게 됩니다.
그러면 전체가 다 좋아지게 됩니다.
도인은 각자가 자기에게 맡겨진 일을 하면 되는 것입니다.
윗사람 때문에 못 크는 것은 없습니다.
위가 커지면 아래가 절로 커지고, 아래가 잘되면 위가 절로 커진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