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기역 1485>전시회를 다녀와서
1950년 한국은행이 설립되었다고 전하는 6월 11일
매월 둘째 목묘일에 만나는 회원들 여섯 명이 퇴계로 천하장사 식당에서 만나
일주일전 치러진 6.3지방선거 이야기를 나누면서 오리해물탕으로 점심을 먹고 헤어져
한국국학진흥원에서 9월 27일까지 전시하고 있는 <안기역 1485>전시회를 다녀왔다.
<안기역 1485>는
교통과 통신이 발달하지 못 했던 시절 전국을 하나로 연결하는 방법으로
전국의 길(道)과 역(驛)을 연결하여서 정보를 전달하는 방법을 이용하였으며
1485년 경국대전이 완성되면서 역참(驛站)제도라는 국가질서 아래 펼쳐져서
수 많은 역들이 있었고 안동지역에도 찰방역(察訪驛)이었던 안기도(安奇道)와
7개소의 역이 있었으며 안동에 있었던 역들에 대한 자료를 전시하고 있었다.
풍기 창락도(昌樂道)와 함께 영남내륙을 통과하였던 안기도(安奇道)에서는
안기역을 포함 12개역을 관할하였고 남쪽으로 운산역을 거쳐 의성 철파역, 청로역으로,
동쪽으로는 금소역을 거쳐 길안 송제역, 청송 청운역, 문거역, 화목역을 거쳐 포항으로,
영양 각산역을 거쳐 영양과 영해로 이어져 동해안으로 정보를 전달하였으며
안동에는 안기도 관할의 안기역과 운산역, 금소역, 송제역 등 4개소와
창락도 관할의 안교역, 옹천역, 선안역 등 7개소의 역이 있었다고 한다.
안기역(安奇驛)은 소양관( 蘇襄館)으로
1361년경 복주성(안동성) 북쪽 10여리에 있었고
1370년 공민왕이 홍건적의 난을 피하여 안동으로 몽진하였을때
'안기'라 이름을 고쳐서 놋잔과 향로를 내려 주었으며
1395년 안동부 서쪽 5리로 옮겨서 찰방역으로 바꾸고
인신(印信)을 주조하였다고 전하며
1870년 정원은 인정 1,163명, 남자종 32명, 여종 7명, 일수 7명,
삼등마 14필, 마위 50걸, 복호(면세전) 146걸 59부,
임거목(세금) 22필 26자 7촌이었다는 것으로 보아 그 규모를 짐작되고
동헌 10칸과 내동헌 8칸, 통인방 1칸, 남청방 2칸, 공수청 3칸, 남행랑 6칸,
마구 3칸, 외심문 3칸, 인리청, 관청고 등이 있었던 소양관(蘇襄館)과
덕류관(德流觀), 유연정(悠然亭), 운안동천(雲安洞天),
매년 4월 7일 제향을 하던 공민왕 전자봉안지소(御眞奉安)인 전각(殿閣),
공민왕이 은잔 8조를 메립하였다는 은배수(銀盃藪),
공민왕의 조상을 봉안하고 매년 4월 8일 청룡, 백호, 주작, 현무, 중앙의
오토안마제를 지내던 청룡지소인 국왕신당(國王神堂), 백호지소인 소백당(小白堂),
주작지소인 조산(造山), 현무지소인 괴목총사(槐木叢祠), 중앙지소인 성황당(城隍堂),
사신과 손님을 영송하는 관사(館舍), 환곡을 저장하는 보민창(補民倉),
비공식 창고인 사창(社倉), 석불을 모셨던 원왕사(願往寺), 석수사(石水寺),
찰방(김형원. 이일원)의 공덕비가 있었던 비각(碑閣) 등 시설이 있었던
것으로 보아 안기역의 면적이 엄청 넓었던 것으로 추정할 수 있었다.
찰방(察訪)은 종6품 관직으로 임기 30개월 동안
왕의 명령이 담긴 공문서 전달에 필요한 시설이나 인원을 지원하고
관원들의 왕래및 지방관리의 부임 편의제공, 공물수송 업무를 수행하였으며
역을 방문하는 손님에게 말을 교체하고 쉴 수 있는 여유를 제공하며
마을공동체를 보살피고 길과 사람들의 흐름을 원활하게 하였으며
1600년대까지는 지역상황을 잘 알고 덕망이 있는 사람으로 추천되었으나
후대에는 단원 김홍도와 같은 화원이나 의관들도 부임하였다고 전한다.
안기역에서 우리나라의 역참제도에 대한 설명과 전국의 역참망도와
여러 선현들(주세붕, 권문해, 이택동)의 시(詩)와 전해오는 역사 이야기들과
퇴계선생이 찰방으로 근무중인 아들(寯)에게 보낸 편지글과
안동사람으로 찰방을 지내신 퇴계선생의 아들 이준(李寯),
의병장을 지내셨던 배용길(裵龍吉), 서애선생의 손자 류원지(柳元之) 등의
찰방교지도 볼 수 있었다.
안교역(安郊驛)에서는 채화정의 담락재(湛樂齎 단원 김홍도 글씨)현판과
강세황의 집에서 심사정, 최북, 김홍도 등 화가들이 참여한 그림인
균와아집도(筠窩我集圖),
경상도관찰사 이병모, 흥해군수 성대중, 봉화현감 심공저, 영양현감 김명진,
하양현감 임희락, 안기찰방 김홍도가 청량산에서 시와 풍류를 즐기며 남긴
청량연영첩(淸凉聯詠帖)이 전시되었고
금소역(琴召驛)에서는 葛庵李先生錦陽遺墟비와 편자박기(단원풍속도첩)를
볼 수도 있었으며
옹천역(瓮泉驛)과 운산역(雲山驛), 송제역(松蹄驛), 선안역(宣安驛)의
위치에 대한 기록들도 볼 수 있었다.
오늘은 한국국학진흥원 유교문화박물관 기획전시실 <안기역 1485>을 구경하면서
정보통신 시설이 없었던 시절의 통신전달 방법이었던 역참제도와
안동에 있었던 찰방역이었던 안기도(安奇道)와 7개 역에 대한 전시물을 보면서
그 동안 몰랐던 자료들을 많이 구경할 수 있는 기회가 되었으며
단원 김홍도에 얽힌 많은 이야기들도 전해들을 수 있는 기회가 된 것 같다.
안동시에서도 옛나이야가라식당에서 경북하이텍고까지 도로를 단원로로 지정하고
대원한숲타운 서편에 단원김홍도공원을 조성하여 매년 주민한마음축제를
개최하고 있다.
<안기역 1485>전시관을 나와 한국국학진흥원을 나서니
남쪽으로 안동호가 바라보이는 곳에 예술의 끼가 있는 <예(藝)끼마을>이 보였고
마을입구에는 마을주민들과 방문자들이 합심해서 조상들이 선성(宣城)을 쌓았듯이
예(藝)로 승화된 아름다운 미래를 쌓아가기를 바라는 표현을 한 보석탑과
예(禮)를 실행했던 성현(聖賢)들의 삶을 계승해서 과거와 현재의 삶을 살펴보고
더 나은 미래를 만들어 가기 위해 예(禮)와 예(藝)를 봇짐에 넣어
항상 몸에 간직하고 실행하는 희망이 넘치는 발걸음을 표현한 인물상이 있었으며
도로 건너편에는 오색의 조각품들을 아름답게 표현한 조형물도 보였다.
오늘은 퇴계로에서 512번 버스ㄹ르 타고 녹음이 짙어가는 전원을 구경하며
시원하게 불어오는 안동호의 바람을 맞으면서 한국국학진흥원을 찾아
<안기역 1485>전시회를 구경하면서 한나절을 보내게 되었다.
오늘을 함께하신 모든분들이 더 즐겁고 더 건강하시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