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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토산 산책

퇴계인문아카데미에서 경산 삼성현역사문화관을 다녀와서

작성자오토산|작성시간26.06.23|조회수6 목록 댓글 0

퇴계인문아카데미에서 경산 삼성현역사문화관을 다녀와서

 

2011년 반기문 유엔사무총장의 연임이 만장일치로 확정되었던 6월 18일

퇴계인문아카데미 회원님들이 경산으로 답사를 떠나서 반곡지를 답사하고

경산에서 태어나신 삼성현(三聖賢 : 元曉, 薛聰, 一然)의 역사기록이 있는

삼성현역사문화관을 찾아 갔다. 

 

삼성현역사문화관이 있는 주변의 삼성현역사문화공원에는

이야기정원, 어린이놀이터, 미로원, 유아숲체험원, 레일썰매장, 국궁장, 

야외공연장, 원효대사깨달음체험장, 허브동산, 무궁화동산, 꽃무릇동산,

경산사직단, 경산국제클라이밍파크, 경산콘텐츠누림터(VR), 중앙광장,

다목적운동공간, 새마을작은도서관 등 많은 시설들이 함께 있었다.

 

2015년 4월 개관한 삼성현역사문화관에서 해설사님과 함께

경산에서 태어나 한국 불교의 대중화를 이끈 원효대사(元曉大師 617~686),

이두(吏讀)를 집대성한 설총(薛聰 ?~?)선생, 삼국유사(三國遺事)를 저술한

일연선사(一然禪師 1206~1289)의 발자취를 돌아 보았다.

 

원효(元曉 617~686 속명 薛誓幢 또는 薛新幢)는

경산 불지촌 출생으로 만삭인 어머니가 길을 가다가 갑자기 진통을 느껴

밤나무에 남편의 옷을 걸어 장막을 치고 낳았다고 전하며 일찌기 출가하여

 다툼을 멈추고 한마음이 되는 화해(和解, 和會)와 불교이론을 하나로 조화해

더 높은 경지로 올리는 화통(和通, 會通)이 필요하다는 화쟁사상(和爭思想)을

펼쳤으며

 

650년 의상대사와 함께 당나라 유학길에 나섰다가 어느날 무덤가에 자면서

잠결에 마신 물이 해골물임을 알고 <어젯밤 캄캄할때는 그렇게 달콤했던 물이

오늘 아침에 눈을 떠 보니 이토록 더럽구나, 세상 모든 것은 오직 마음이

지어내는 것(一切唯心造)이로다>라고 깨닫고 서라벌로 돌아와 

 

화려한 사찰과 관념적인 교리 논쟁에 갇힌 귀족불교를 비판하며 파계하여

광대복장으로 저잣거리를 돌아다니며  '어디에도 거리낌이 없다'는 뜻의 

무애가(無碍歌)를 부르고 무애무(無碍舞)를 추며 다니다가 무열왕의 딸

요석공주와 만나 설총을 잉태시켰고 전국에 수 많은 사찰을 건립하였으며

1101년(숙종 6) 대성화쟁국사(大聖和爭國師)로 시호를 받았다고 전한다.

 

설총(薛聰 665년경~? 호는 氷月堂)선생은 파계승의 아들로 태어나

육두품(六頭品)의 신분으로 신분적 한계를 느껴 학문에 온 생을 바쳤으며

유교 경전을 통달하여 국학의 박사가 되어 많은 제자를 길러 내었으며

한자의 음과 뜻을 빌려 우리말을 기록하는 이두(吏讀)체계를 집대성하여

한자를 자유롭게 사용하지 못하는 하급관리들이 공문서 작성할 수 있도록

하였으며

 

삼국통일의 승리에 취해 급격히 사치스러워 졌고

주변에 아첨꾼들이 들끓었던 신문왕에게 꽃들의 왕인 모란(화왕)이 화려하고

아양을 떠는 장미(간신)를 곁에 두고 총애할 때 삼베옷을 입고 허리가 구부정한

할미꽃(백두옹출신)이 나타나 왕의 올바르지 못한 태도를 꾸짖는 내용의

화왕계(花王戒)를 전하며 올바른 정치를 간하는 조언지 역할을 하였으며

강수, 최치원과 함께 신라 3대 문장가로 알려졌고 후대에 최치원과 함께

동국18현(東國十八賢)으로 문묘(文廟)에 배향되어 사림의 거을이 되었다.

 

일연선사(一然禪師 1206~1289 속명 金見明)는

무신정원의 칼바람이 부는 시기에 태어나 몽골의 지배를 받던 9세에 출가하였고

22세에 승과에 급제하고 31세 三重大師, 40세 禪師, 53세 大禪師가 되었으며

55세에 禪月寺 주지이후 雲門寺주지 등 전국의 여러 사찰에서 활동하였으며

 충렬왕때에 국존(國尊)에 올랐고 중국의 효심이 깊은 승려 睦州 陳尊宿을 

사모하여 목암(睦庵)이라 자호하였으며 승려의 최고 위치였던 국존( 國尊)에서

물러나서도 어머니를 봉양하였고 삼국유사에도 효선편을 따로 편집하는

효자였다고 전한다.

 

삼국유사(三國遺事)는 1281년경 일연선사가 대몽항쟁이후 원간섭기에

고려의 자주성을 확립하고자 군위 인각사에서 신라, 고구려, 백제 3국의 

중요한 사건을 모아지은 역사책으로 우리민족의 시조를 단군으로 삼은

최초의 기록인 단군신화와 우리민족의 고귀함을 강조하고

중국과 대등하게 역사가 발전하여 왔다는 점을 밝히고자 하였다며

삼국사기에 전하지 않는 역사, 불교, 신화, 설화, 향가 등을 수록하여

1145년(인종 23) 왕명에 의하여 편찬한 김부식(金富軾 1075~1151)의

삼국사기(三國史記)와 함께 고대역사서로 전하고 있다.

 

1295년 보각국사(普覺國師) 일연(一然)을 기리기 위하여 일연의 하산소였던

군위 인각사에 문사 민지(閔漬)가 짓고 문인 죽허(竹虛)가 왕희지의 글씨를

집자한 보각국사비가 세워졌다고 한다.

 

해설사님은 단군신화와 홍익인간(弘益人間 널리 인간을 이롭게 하라)의

설명을 끝으로 삼성현역사관의 설명을 마쳤다.

 

우리는 상세한 설명을 하여주신 해설사님께 감사드리고

삼성현역사관을 나와서 점심이 예약된 정박사식당으로 출발하였다.

나오는 길에 어린이 놀이터에서 내일 단오절를 앞두고 그네를 타면서

올해의 모든 액운을 바람에 날려 버리는 회원님도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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