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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로운 수다방

말이 씨가되다.

작성자터치2|작성시간26.06.05|조회수43 목록 댓글 1

추실댁은 땀을 흘리며 아궁이에 장작을 넣고 가마솥의 조청을 젓는 바쁜 와중에도 선반 위의 엿가락 수량을 계산하느라 여념이 없었습니다.

아무리 생각해도 이해할 수 없는 상황이었습니다. 분명 이틀 전 판매하고 남은 서른세 개의 깨엿을 선반에 두었는데, 엿기름을 내러 잠시 집을 비운 사이 스물다섯 개밖에 남지 않았으니 기이한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방에는 열한 살 난 아들만이 있었고, 그 아들은 앉은뱅이라 손을 뻗어도 겨우 문고리밖에 닿지 않는데, 어떻게 엿가락이 줄어들 수 있었을까요.

추실댁의 삶은 순탄치 않았습니다. 시집와 보니 초가삼간과 산비탈밭 몇 마지기뿐인 지독히 가난한 집안이었고, 남편은 병약하여 추실댁의 뱃속에 아이를 남기고 이듬해 세상을 떠났습니다.

장례를 치른 후 유복자를 낳았습니다. 유복자 하나만을 의지하며 악착같이 살아갔지만, 두 해가 지나고 세 해가 지나도 유복자는 일어서지 못했습니다. 앉은뱅이 유복자의 다리를 고치기 위해 전국 팔도의 용하다는 의원을 찾아다니며 온갖 약재를 다 써 보았지만, 결국 밭뙈기만 잃게 되었습니다.

결국 추실댁은 엿장수를 시작했습니다. 깨엿을 만들어 소쿠리에 담아 머리에 이고 집집이 다니며 엽전과 곡식을 받으며 하루하루를 살아냈습니다.

유복자는 걷지는 못했지만 비상하게 똑똑했습니다. 여섯 살 때 서당에 보내자 두 달 만에 천자문을 떼고 석 달 만에 사자소학을 뗄 정도로 총명했습니다.

추실댁이 엿장수를 하느라 서당에 데려다주지 못하자, 집에서 독학한 글공부는 일취월장하여 사서를 파고들기 시작했습니다. 추실댁은 생계를 유지하는 것이 급선무였기에 다른 것을 생각할 여유가 없었습니다.

엿가락 수가 줄어든 것은 비단 이틀 전만의 일이 아니었습니다. 올여름부터 줄어들기 시작하더니 요즘은 더욱 빈번해졌습니다.

“나는 장에 다녀올 테니 집을 잘 보고 있거라.”

범인을 잡기 위해 추실댁은 대문을 나섰다가 골목에서 발길을 돌려 열어 놓은 장지문을 통해 몰래 부엌으로 들어가 문구멍으로 안방의 동태를 살폈습니다. 그런데 이럴 수가!

한 좌식 생활을 하던 아이가 주머니에서 실에 묶인 사슴벌레를 꺼내 벽에 붙이자, 사슴벌레는 단 냄새를 맡고 기어올라 엿 바구니에서 엿 한 가락을 잡았습니다. 이때 아이가 실을 잡아당겼습니다.

그 순간, 아이의 어머니가 문을 '쾅' 열며 "이런, 도둑놈!"이라고 소리치자, 놀란 아이는 거품을 물고 기절했습니다. 그날의 충격 이후 얼마 지나지 않아 아이는 걷기 시작했고, 몇 년 후에는 장안의 유명한 도둑이 되었습니다.

추실댁은 땅을 치며 후회와 슬픔에 잠겼습니다. 그때 "이런, 도둑놈!"이라고 할 것이 아니라 "정말 영리하구나. 하늘의 이치를 깨우칠 재주다"라고 말했어야 했다는 회한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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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아바 | 작성시간 26.06.05 차라리 사기꾼 이라고 했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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