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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 책 나왔어요

[갈매나무] 일상의 질문에 답하는 짧은 철학책

작성자출판사 갈매나무(직원)|작성시간26.06.18|조회수31 목록 댓글 0

일상의 질문에 답하는 짧은 철학책

: 인간관계부터 커리어까지, 생각이 많은 나를 위한 철학 수업

크리스토프 크바르히 지음 | 장혜경 옮김 | 128*195 | 196쪽 | 18,000원 | 2026년 6월 30일

인문학 > 철학 | ISBN 979-11-24226-13-1 (03100)

 


 

■ 개요

 

일상이 던지는 ‘논쟁적인’ 질문에 어떻게 답해야 할까?

세네카와 소크라테스부터 니체와 한나 아렌트까지,

32인의 철학자가 삶의 질문에 답하는 법

 

“철학은 다르게 생각할 용기를 주는 활동이다!”

 

 

매일 똑같은 출퇴근길을 오가고, 습관대로 업무를 보고, SNS를 들여다보며 하루를 마무리하기까지, 반복되는 일상에 어떤 의미가 있는지 고개를 갸웃거려 본 경험이 있을 것이다. ‘잘 사는 삶’이란 무엇인지, 말이 안 통하는 사람과도 타협해야 하는지, 노숙자에게 돈을 주는 게 과연 도움이 되는지, 우리 하루는 매 순간이 질문의 연속이다. AI의 발전이 점점 가속되는 지금, 삶은 더 편리해졌을지 몰라도 질문은 더욱 심오해졌다. 문제는 우리가 이를 충분히 사색하고 대답할 시간적·정신적 여유가 부족하다는 점이다. 답이 없는 질문에 씨름하기보다, 오늘 저녁 식사 메뉴를 고민하는 편이 더 실용적이라는 생각도 든다.

바로 이럴 때, 사고를 한계까지 밀어붙이는 철학이 빛을 발한다. 극단적인 사례를 두고 토론하면서, 혹은 시험 삼아 질문을 거꾸로 던져 보면서 《일상의 질문에 답하는 짧은 철학책》은 우리가 그간 외면해 온 삶의 질문들을 새로운 시각으로 조명한다. 저자인 크리스토프 크바르히는 철학이 이론적 사유에 머물지 않고 실제 삶의 성공과 풍요에 기여하도록 애쓰는 실천 철학가로, 이번 책 역시 소크라테스, 쇼펜하우어, 헤겔 등 저명한 철학자들의 이론을 현대적으로 재해석해 냈다.

 

책은 ‘인간관계’(2장) ‘커리어’(3장) ‘사랑’(4장) ‘정치’(6장) 등 살면서 한 번쯤 고민해 볼 법한 주제들을 두루 다룬다. 게다가 글의 첫머리에 ‘예’ 혹은 ‘아니오’로 명쾌하게 답을 내려 준 후 철학적 설명을 덧붙이기에, 삶에 여유가 없거나 생각이 많아 머릿속이 복잡한 독자라도 ‘속 시원하게’ 읽어 나갈 수 있다. 질문에 따른 짧은 대답이라는 간단한 형식을 취하다 보니, 가벼운 마음으로 책을 펼쳤다가 상식을 뒤집는 내용에 놀라는 독자도 있을 것이다. 저자는 모든 것을 의심한 소크라테스처럼 질문 자체가 품고 있는 허점을 찌르고, 테제와 안티테제를 진테제로 극복한 헤겔처럼 대립하는 주장들을 조율해 나가는 등, 철학적 사고의 정수를 압축하여 보여준다.

 

“책에 담긴 물음들은 논쟁적이다. 그렇기에 상식에서 벗어나 다르게 생각할 가능성을 열어 준다. 철학은 독창성, 상상력, 다르게 생각하는 용기를 키워 주는 활동 아니던가. 이 점에서 이 책은 더없이 좋은 철학 교과서다.” _안광복 중동고등학교 철학교사, 철학박사, 《처음 읽는 현대 철학》 저자

 

책은 철학사의 흐름이나 사조를 따르기보다는 주제별로 구성되어 있으니, 내게 필요한 질문들을 그때그때 펼쳐 보아도 좋다. 핵심은 책에서 제안하는 철학적 사고법을 익히고, 나만의 해답을 찾아 나가는 것이다. 딱딱하게 굳어 있던 사고를 유연하게 풀어 주고, 독창성과 상상력을 독려하며, 다르게 생각할 용기를 주는 학문으로서 철학을 가까이 하다 보면, 어느새 더욱 자유로워진 사고와 함께 흔들리던 인생이 더 단단해지는 것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 추천사

 

순식간에 재미있게 읽었다. 잘 쓴 철학 교양서다. 철학적 사고는 감히 묻기 어려운 일상의 문제를 마주할 때 시작되곤 한다. “병든 반려동물 치료에 큰돈을 써도 될까?” “부모의 잘못은 무조건 용서해야 할까?” “놀며 시간을 허비해도 괜찮을까?” 책의 물음들은 누구나 일상에서 부딪혔을 법한 고민들이다. 그러면서도 선뜻 답하기가 주저된다. 자칫했다간 정 없고 정의감 낮으며 게으른 사람으로 여겨질까 봐서다. 하지만 죽음도 자연스러운 삶의 과정으로 받아들이는 생명 외경을 안다면, 가족 사랑에는 사회 정의와 다른 결이 있음을 안다면, 일에서 벗어나 목적 없이 자기다운 활동을 즐길 때가 진정한 자기 자신으로 거듭나는 순간임을 안다면, 움츠러들었던 마음이 활짝 펴지며 생각도 자유롭게 펼쳐질 테다. 책에 담긴 물음들은 논쟁적이다. 그렇기에 상식에서 벗어나 다르게 생각할 가능성을 열어 준다. 철학은 독창성, 상상력, 다르게 생각하는 용기를 키워 주는 활동 아니던가. 이 점에서 이 책은 더없이 좋은 철학 교과서다.

안광복 중동고등학교 철학교사, 철학박사, 《처음 읽는 현대 철학》 저자

 

 


 

 

■ 출판사 서평

 

 

 

살다 보니 〈나〉를 잃어 간다고 느낄 때 어떻게 중심을 잡을까?

: 세네카의 ‘자연적 삶’부터 니체의 ‘최후의 인간’까지

 

“끊임없이 자기개발을 해야만 잘 살 수 있을까?” “내 취향보다 유행을 따라야 성공하지 않을까?”(1장) 무엇이든 눈에 보이는 결과를 내놓아야 하고 타인의 인정이 성공으로 직결되는 사회에서 한 번쯤 이런 질문을 던져 봤을 것이다. 세상에 발맞춰 살아갈수록 나를 잃어 가는 듯 느끼면서도 멈추지 못한다. 이러한 상황이 지속되다 보면 “남들이 시키는 대로 살면 안 될까?”(3장) 하는 자포자기하는 마음까지 생겨난다.

책은 바로 이런 ‘나’에 관한 질문들에서 시작한다. 아무리 완벽해지고자 발버둥 친다고 해도, 그 모든 노력 속에서 나를 잃어버린다면 니체가 말한 “최후의 인간”이 될 뿐이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나를 되찾겠다며 당장 직장이나 학교를 그만둘 수도 없고, 뒤처지면 어쩌나 불안이 큰 사람들을 위해 저자는 ‘사랑’을 질문에 끌어온다. “내가 하는 일을 꼭 사랑해야 할까?”(3장) 답은 ‘아니오’다. 저자는 먼저 ‘사랑한다’와 ‘해야 한다’는 어울리는 말이 아니라는 데서 논의를 시작한다. 이어서 스토아 철학자인 세네카의 입을 빌려 자신의 본성에 맞는 삶이 잘 사는 삶이며, 이에 따라 “일을 사랑하느냐가 아니라 일이 사랑의 표현이냐가” 삶의 기준이 되어야 한다고 말한다.

일 자체에서 오는 즐거움보다 스펙이나 돈을 먼저 따져 본 사람이라면, 자기표현으로서 일을 다시 생각해 보자는 책의 대답에 충격과 동시에 해방감을 느낄지도 모른다. 이외에도 이미 완성된 대답에 만족하지 않는 사람이 책임감 있게 사는 사람이라는 마르틴 하이데거의 “본래적 삶”이나, 아름다운 놀이와 마찬가지로 인간은 목표나 전략에서 벗어날 때 온전해진다는 프리드리히 폰 실러의 “놀이 충동”은 그동안 놓쳐 온 ‘나’에 관한 근본적인 문제를 부담 없이, 하지만 깊게 고민해 볼 수 있게 복잡한 머릿속에 길을 뚫어 준다.

 

“이제 다시 사랑이 등판합니다. 사랑은 내가 줄 수 있는 최고의 것이기 때문이죠. 일을 사랑하느냐가 아니라 일이 사랑의 표현이냐가 잘 사는 삶의 기준입니다. 내가 하는 일에 완전히 몰입하고, 일과 내가 둘이 아니며, 내 일에 책임감을 느끼고 열정을 다 바치는 거죠. 이 말은 또 그 모든 일을 할 때 자신을 너무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는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자기 일을 사랑한다고 자랑스럽게 말하는 사람은 대개 자기중심적입니다. 그러나 자기 일을 사랑으로 하는 사람은 충만하고 행복한 사람일 확률이 높습니다.” _본문 중에서 (68쪽)

 

 

 나를 지키면서 다른 사람과 공존하는 〈관계〉는 어떻게 가능할까?

: 쇼펜하우어의 ‘감정 철학’부터 마르틴 부버의 ‘나와 너’까지

 

사회적 동물인 인간은 모두 ‘관계’로 얽혀 있다. 누구도 혼자 존재할 수 없고, 모든 개인은 사회의 일부분으로 존재한다. 그래서 우리는 여러 사람을 만나면서 진정한 사랑과 우정의 의미를 고민하기도 하고, 타인과의 갈등을 어떻게 해결해야 할지 머리를 싸매기도 한다. ‘나’에서 시작한 질문이 “다른 사람과 공존하는 철학”(2장)을 지나 “사랑과 우정의 의미를 고민하는 철학”(4장), “당연하지만 당연하지 않은 부모 자식 관계 사이의 철학”(5장)까지 확장되는 이유다.

저자는 “말이 안 통하는 사람과도 타협해야 할까?” 혹은 “이유 없이 사람을 미워해도 될까?” 같은 질문들로 포문을 연다. 많은 사람이 “나 살기도 바쁜데……” 하며 넘어가는 질문들이다. 책은 남의 마음을 헤아리고 공감해야 한다고 말하면서도, 당위적인 설명으로 빠지지 않는다. 되려 “이유 없이 사람을 미워해도 괜찮다”는 다소 의아한 대답을 내놓으면서 호기심을 자아낸다. 상식을 뛰어넘는 대답에 처음에는 고개를 갸웃거릴지도 모른다. 그러나 쇼펜하우어의 “감정 철학”이 ‘미움’을 해석하는 방식이나, 에디트 슈타인의 “타인의 의식 경험”이 타인과 연결되는 매개로서 ‘몸’을 재해석하는 방식을 차근차근 따라가다 보면, 어느 새 책의 논리에 흠뻑 빠져들어 있을 것이다.

부모 자식 사이의 철학을 다루면서도 저자는 “부모가 늙으면 돌보는 게 도리일까?”라는 질문에는 마르틴 부버의 걸작 《나와 너》를, “부모의 잘못은 무조건 용서해야 할까?”에는 소크라테스의 가족 질서를 끌어오며, 일상의 문제와 철학 사이를 자유자재로 넘나든다. 동시에 ‘돌봄’이라는 개념 자체를 다시 생각해 볼 것을 제안하기도 하고, 자식에게 진정한 ‘행복’을 주고자 하는 대부분의 부모가 놓치고 있는 지점을 알려 주는 등, 생각지도 못한 부분들에서 삶의 핵심을 파고든다.

 

“누군가를 (…)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단 하나의 인간으로 이해하기란, 그 사람을 하나의 역할에 못 박고 분류하여 그 역할에 맞게 대접하는 일보다 훨씬 어렵습니다. 후자는 인공지능도 할 수 있어요. 하지만 인공지능은 절대 우리를 개별적 인간으로 이해하지 못합니다. 그러자면 공감이 필요하니까요. 그러려면 타인의 의식을 경험해야 하는데, 그건 계산이나 합리적 추론으로 되지 않습니다. 느껴야 하죠.” _본문 중에서 (48쪽)

 

 

무질서한 〈세계〉에서 정치와 종교는 어떤 역할을 할까?

: 한나 아렌트의 ‘활동적 삶’부터 피타고라스의 ‘영혼 불멸’까지

 

나와 주변까지 두루 살펴봤다면, 시야를 넓혀 세계를 둘러볼 차례다. 저자는 먼저 정치의 역할을 묻는 데서 시작해(6장), 기후변화 시대에 인간의 터전으로서 지구와 더불어 산다는 것을 사유하고(7장) 마지막으로 지금 시대에 종교가 갖는 함의를 파고든다(8장). “투표 외에도 정치에 관심을 가져야 할까?”라고 질문하는 사람에겐 한나 아렌트의 “활동적 삶”을, “누군가는 굶어 죽는데, 음식을 남겨도 될까?”라며 죄책감을 느끼는 사람에겐 한스 요나스의 “생태학적 정언명령”을, “죽음 이후 삶이 존재할까?” 궁금해하는 사람에겐 피타고라스의 “영혼 불멸설”을 내놓는다.

개인이 바꿀 수 없는 현실 앞에서 무력감을 느끼는 사람이라면, 그럼에도 행동해야 하는 이유를 조목조목 파고드는 철학자들의 논리가 더욱 반가울 것이다. 가령 “노숙자에게 돈을 주는 게 도움이 될까?”(6장)를 고민하기에 앞서 “타인의 얼굴”을 먼저 들여다보면 누가 요구하거나 부탁해서가 아니라 자신의 인간성을 위해 행동하게 된다는 에마뉘엘 레비나스의 “무한책임론”은 논리적인 온정으로 용기를 일깨운다. 또한 영혼이란 살아가는 동안 스스로 작곡하는 하나의 노래와 같으며, 그 노래가 의미 있고 아름답다면 우리가 죽은 후에도 계속 살아남는다는 피타고라스의 “영혼 불멸설”은 영원한 삶을 갈망하기보다 완성된 삶을 추구하는 데서 오는 아름다움을 전한다. 이처럼 본질을 탐구하는 철학적 사유는, 시대를 뛰어넘어 살아남으면서 계속해서 우리 정신을 비춘다.

 

“진정한 의미에서 살아 있다는 건 무엇일까요? 디지털 시대에 인간 존엄성이 불가침하다는 근거는 어디서 올까요? 기후변화라는 도전에 맞서기 위해 우리는 어떤 사고방식을 가져야 할까요? 성공적이고 풍요로운 삶의 지침은 인간 본성을 깊이 있게 이해하는 데 있습니다. 이를 위해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부터 니체와 하이데거까지, 다양한 철학을 현대적으로 재해석할 필요가 있습니다.” _저자의 말

 

주어지는 정보를 그저 외우고 익히는 시대는 지났다. 이제는 자신만의 신성을 찾아 험난한 길을 떠난 마그데부르크의 메히틸트처럼, 아프리카로 향하던 여행길에 생명 경외를 깨달은 알베르트 슈바이처처럼, 전장 한가운데서 목숨보다 가치 있는 진리를 찾은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처럼 스스로 삶의 문제를 사유해야 할 때다. 나만의 가치관을 세우고 싶은 청소년부터 일상의 스트레스를 지혜롭게 관리하고 싶은 직장인, 자녀와 함께 비판적 토론을 해 보고픈 부모까지, 《일상의 질문에 답하는 짧은 철학책》이 모두에게 일상의 ‘논쟁적인’ 질문에 답할 기회를 열어 주길 바란다.

 


 

■ 저자 소개

 

지은이 크리스토프 크바르히

1964년 독일 뒤셀도르프에서 태어났다. 철학자이자 작가, 강연가, 플라톤 전문가다. 플라톤의 ‘대화편’으로 철학에 관심을 갖게 되었으며, 20세기 가장 영향력 있는 철학자이자 ‘철학적 해석학’의 창시자로 꼽히는 한스게오르크 가다머의 연구 조교로 일했다.

이론적 사유를 넘어 실제 삶에 철학을 적용하는 ‘실천 철학가’로서, 고전 서양 철학을 현대적 삶과 미래 지향적 세계관으로 새롭게 해석했다. 다양한 기업을 자문하고 대학에서 정치·예술·윤리·철학을 강의하면서 철학의 대중화에 앞장섰다. 2020년에는 각계각층 사람들이 한데 모여 대화하며 고대 그리스와 르네상스 시대와 같은 지적·정신적 부흥을 꾀하는 ‘신 플라톤 아카데미’ (akademie-3.org) 모임을 시작했다.

 

옮긴이 장혜경

연세대학교 독어독문과를 졸업하고, 동 대학원에서 박사 과정을 수료했다. 독일 학술교류처 장학생으로 하노버에서 공부했으며, 현재 전문 번역가로 활동 중이다. 《내가 누구인지 아는 것이 왜 중요한가》, 《우리는 여전히 삶을 사랑하는가》, 《침묵을 배우는 시간》, 《처음 읽는 여성 세계사》 등 많은 책을 우리말로 옮겼다.

 


 

 

■ 주요 내용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는 스토아 철학자였습니다. 스토아학파의 창시자들은 인간이 언제나 더 큰 체계에 끼어들어 있다고 가르쳤습니다. 인간은 큰 체계의 작은 일부분에 불과하다고 말이지요. 그들이 말한 체계란 가족·사회·국가·문화이며, 자연도 포함합니다. 우리가 존재하는 것은 다 이 큰 체계 덕분이기에, 자기 이익을 챙기기에 앞서 체계에 봉사하는 일이 더 가치 있고 중요합니다. _14쪽(Part.1)

 

나아가 그는 공감이란 타인의 몸을 인식하고 내 몸이나 신체 반응의 지식을 불러내어 상대가 어떤 기분인지를 추론해야만 가능하다고 설명했습니다. 그러니까 공감은 타인을 큰 관심으로 대하는 동시에 자기 몸에 섬세한 감각을 지닐 때만 가능합니다. _49쪽(Part.2)

 

쇼펜하우어는 “미움은 마음의 일이요, 멸시는 머리의 일이다”라는 말로 멸시가 미움보다 훨씬 나쁜 이유를 설명했습니다. 멸시는 의지의 행위예요. 항상 그럴만한 이유가 있고 합리적이죠. 미움은 그와 달리 온몸을 뒤흔들지만, 우리 자신도 그 이유를 모릅니다. 그러기에 미움을 받는 사람은 감정의 바람이 잦아들기를 기다릴 수 있지만, 멸시를 받는 사람은 그것으로 끝장이에요. _54~55쪽(Part.2)

 

세네카는 스토아 철학의 전통을 따랐습니다. 스토아 철학의 기본 사상은 간단한 공식으로 요약할 수 있습니다. 잘 사는 삶이란 자연을 따르는 삶이라고 말이죠. 자연을 따르는 삶이란, 우리 바깥의 자연뿐 아니라 자신의 본성에도 맞는 삶을 말합니다. 즉 인생의 성패는 우리의 바람이나 사상·이상에 달린 것이 아니라, 구체적이고 실질적인 우리 존재, 즉 자연적 존재의 단순한 현실에 달려 있습니다. _67쪽(Part.3)

 

놀이가 의미 있고 아름다운 이유는 기능적인 일상 세계의 기준으로 보면 완전히 쓸모없기 때문입니다. 기능성과 유용성의 세상과 명확히 구분되는 다른 세상이 열릴 때 놀이는 비로소 아름다워집니다. 그래서 아름다운 놀이는 항상 경계가 있고 끝이 있어요. 끝없는 온라인 게임처럼 경계가 불분명해지면 놀이는 아름다움을 잃습니다. 놀이가 더는 완결된 전체일 수 없고, 의존을 불러오기 때문입니다. _78쪽(Part.3)

 

플라톤의 지혜는 이렇게 말합니다. 나하고 딱 맞는 다른 이가 언젠가 나타나기를 기대하는 짓은 아무 의미가 없다고요. 중요한 것은 그 한 사람이 내게 어떤 말을 해 주느냐입니다. 그의 존재 자체가 내게 성장과 발전의 욕망을 일깨우는지, 그의 곁에 있으면 내가 아직은 아니어도 앞으로 될 수 있는 존재가 되고 싶어지는지, 내 마음에 아름답고 의미 있는 잘 사는 삶을 살고픈 갈망이 일깨워지는지가 중요해요. _86쪽(Part.4)

 

선물의 가치는 상대에게 값진 말을 전한다는 점입니다. 사람을 성장시키거나 자극하고, 기쁨을 주는 무언가를 건네주지요. 물론 상대의 마음에 안 들 위험도 커요. 그럼에도 아무리 실패한 선물도 아무 말도 하지 않는 봉투보다는 낫습니다. 선물은 내가 상대에게 관심이 있음을 전하기 때문이지요. _122쪽(Part.5)

 

타자는 나보다 우선하기에 내게 중요한 존재입니다. 타자의 눈이 나를 향합니다. “눈은, 가릴 수 없는 눈의 언어는 가면을 뚫고 나온다.” 레비나스는 말했습니다. 타자의 “얼굴(Antlitz)”에서 나를 부르는 무한의 낯섦이 드러나기 때문이지요. 따라서 나는 타자에 대한 엄중한 “책임(responsabilité)”을 떠안을 수밖에 없고, 적선할 수밖에 없습니다. _145쪽(Part.6)

 

알베르트 슈바이처가 우리에게 요구한 것은 동물 사랑이 아니라 생명 외경입니다. 그의 말에는 우리가 동의할 이유가 수두룩해요. 동물 사랑과 생명 외경, 둘은 명백히 다릅니다. 생명 외경은 우리가 행동하고 결정을 내릴 때 생명 그 자체를 기준 삼으라고 요구합니다. 때론 이기적인 우리 감정을 기준으로 삼아선 안 된다고 말하지요. _157~158쪽(Part.7)

 

고대 그리스 신화에서 전해지듯, 영혼은 우리가 살아가는 동안 스스로 작곡하는 한 곡의 노래와 같습니다. 그 노래가 의미 있고 아름답다면, 우리가 죽은 후에도 계속 살아남을 거예요. 사람들의 추억에서, 우주의 기억에서 계속 살아 있겠지요. 그러니 영혼은 죽음의 순간에 예술 작품처럼 완성됩니다. _192~193쪽(Part.8)

 

 


 

 

■ 차례

 

1. 살다 보니 나를 잃었을 때 읽는 철학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와 ‘스토아 철학’
내 목숨보다 소중한 무언가가 있을까?


쇠렌 키르케고르와 ‘자신이 되기’
끊임없이 자기개발을 해야만 잘 살 수 있을까?


토마스 아퀴나스와 ‘자기 사랑’
내 몸인데 내 마음대로 해도 되지 않을까?


마르틴 하이데거와 ‘본래적 삶’
내 취향보다 유행을 따라야 성공하지 않을까?




2. 나를 지키면서 다른 사람과 공존하는 철학


게오르크 빌헬름 프리드리히 헤겔과 ‘변증법’
말이 안 통하는 사람과도 타협해야 할까?


임마누엘 칸트와 ‘진실성 의무’
악의 없는 거짓말은 괜찮지 않을까?


에디트 슈타인과 ‘타인의 의식 경험’
나 살기도 바쁜데 남의 마음을 헤아려야 할까?


아르투어 쇼펜하우어와 ‘감정 철학’
이유 없이 사람을 미워해도 괜찮을까?




3. 일하는 인간과 놀이하는 인간 사이의 철학


프리드리히 니체와 ‘최후의 인간’
남들이 시키는 대로 살면 안 될까?


루키우스 안나이우스 세네카와 ‘자연적 삶’
내가 하는 일을 꼭 사랑해야 할까?


한스게오르크 가다머와 ‘비판적 반성’
좋아하지 않는 사람에게도 시간을 써야 할까?


프리드리히 폰 실러와 ‘놀이 충동’
놀며 시간을 허비해도 괜찮을까?




4. 진정한 사랑과 우정의 의미를 고민하는 철학


플라톤과 ‘쿠겔멘시’
나만의 이상적인 ‘한 사람’이 존재할까?


카를 야스퍼스와 ‘신의’
성적으로 끌리지 않는데도 관계를 유지해야 할까?


만티네이아의 디오티마와 ‘에로스’
여러 사람을 동시에 사랑해도 될까?


아뇰로 피렌추올라와 ‘아름다움’
친구와 외모로 경쟁해도 될까?
5. 당연하지만 당연하지 않은 부모 자식 관계의 철학


마르틴 부버와 ‘나와 너’
부모가 늙으면 돌보는 게 도리일까?


소크라테스와 ‘가족 질서’
부모의 잘못은 무조건 용서해야 할까?


빌헬름 폰 훔볼트와 ‘인간 교육론’
소원을 들어주면 아이가 행복할까?


아리스토텔레스와 ‘관용’
선물로 돈을 주어도 될까?


6. 혼란스러운 사회에서 정치의 역할을 묻는 철학


한나 아렌트와 ‘활동적 삶’
투표 외에도 정치에 관심을 가져야 할까?


제러미 벤담과 ‘공리주의’
난민 문제에 굳이 목소리를 내야 할까?


플로라 트리스탕과 ‘노동자 연합’
타인의 권리를 위해 싸워야 할까?


에마뉘엘 레비나스와 ‘타자의 얼굴’
노숙자에게 돈을 주는 게 도움이 될까?


7. 인간의 불변하는 터전, 지구와 더불어 사는 철학


랠프 월도 에머슨과 ‘자연과의 합일’
자연은 그 자체로 인간에게 위로를 줄까?


알베르트 슈바이처와 ‘생명 외경’
병든 반려동물 치료에 큰돈을 써도 될까?


한스 요나스와 ‘생태학적 정언명령’
누군가는 굶어 죽는데, 음식을 남겨도 될까?


요한 볼프강 폰 괴테와 ‘자연철학’
채식을 해야 좋은 사람일까?


8. 과학이 종교가 된 시대, 신을 변호하는 철학


프리드리히 슐라이어마허와 ‘종교론’
종교가 있는 세상이 없는 세상보다 나을까?


마그데부르크의 메히틸트와 ‘신성’
자신의 영성을 직접 가꿀 수 있을까?


고트프리트 빌헬름 라이프니츠와 ‘예정 조화’
정해진 운명이라는 게 있을까?


피타고라스와 ‘영혼 불멸’
죽음 이후 삶이 존재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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