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궁은 내명부(內命婦)의 정 5품 직위를 가졌습니다.
상궁에는 다음의 8개 종류로 구분합니다.
1) 제조 상궁(提調 尙宮)= 또는 "큰방 상궁"이라 부르기도 합니다. 상궁의 직분 상 그는 수 백 궁녀의 수장(首長)이 됩니다.
때에 따라서 그 권세나 권위가 영의정 보다 남부럽지 않을 때도
있었습니다.
상궁은 왕을 가까이 모시고 있기 때문에 이들이 정치의 이면(裏面)에서 주역(主役)을 맡을 때도 있었습니다.
제조 상궁은 한 사람 뿐이며, 그녀의 자격은 궁녀 가운데 가장 고참(古參)에 속하면서 그 임물 됨이 총명해야 합니다. 즉, 수 백
궁녀들을 통솔할 수 있는 자격을 갖추어야만 했던 것입니다. 인물도 빼어나게 예뻐야 했던 것은 사실입니다.
그 임무는 대전(大殿)의 어명(御命)을 받들고 내전(內殿)의 크고
작은 치산(治産)을 주관하여야만 합니다.
이들이 입는 옷은 무늬가 있는 옥색(玉色) 비단 저고리에 남 비단
치마를 입었으며 어엿 머리 위에 은 첩지를 달고 다녔던 것입니다.
어느 재상인들 사사로이 은근히 큰방 상궁에게 부탁해오는 일이
많았는데, 이런 청원(請願)은 어렵지 않게 성사될 수 있어서 제조
상궁이 누릴 수 있는 세도는 당당했다고 합니다.
2) 부 제조 상궁(副 提調 尙宮)= 위의 제조 상궁 차석(次席)이며
또는 아랫고(下庫: 阿里庫) 상궁이라고도 불렀습니다.
아랫고란 내전(內殿)의 곳간(庫間)을 의미하는 것이며, 이 곳간
속에서 왕의 사유 재산 목록에 들어있는 귀중품들이 들어 있는데,
의, 식, 주에 걸친 귀중품들이 포함되어 있는 것입니다.
왕의 반상기용(飯床器用)인 은 그릇, 자기(磁器), 각색 비단, 보석 등이 포함됩니다.
이 물품들이 모두 아랫고 상궁 손을 거쳐 출납(出納) 되었습니다.
3) 대령 상궁(待令 尙宮)= 또는 지밀 상궁(至密 尙宮)으로도 불렀습니다. 지밀 상궁은 왕의 곁에서 잠시도 떠나지 못하고 언제나
왕의 어명을 받들 자세로 대기하여 있어야 합니다. 그래서 지밀이란 이름이 나왔던 것입니다.
4) 보모 상궁(保姆 尙宮)= 왕의 자녀, 즉 왕자, 공주, 옹주, 군의
양육(養育)을 맡아보는 상궁으로서 그를 맡은 내인 가운데 우두머리입니다. 동궁)(東宮)에 두 명, 그 밖의 왕의 자녀 궁에는 각 한
명씩 있었습니다. 왕의 자녀들 어릴 적에는 "아지(阿只)라 불렀습니다.
5) 시녀 상궁(侍女 尙宮)= 시녀 상궁의 임무는 여러 가지가 있었는데, 언제나 궁중의 지밀에 항시 봉사하였습니다.
① 서적(書籍) 등을 관장하고 혹은 궁중 의식에 관계되는 의식(儀式) 때, 교명(敎命), 옥책(玉冊), 언서(諺書) 등을 낭독하고, 글의 정사(淨寫)를 맡았으며 나머지 봉계(奉啓)의 일을 맡았습니다.< '명성황후' 드라마 초창기에 완화군의 생모 영보당 이씨가
신분이 미천했을 적의 그녀의 신분을 두고 작가 정하연씨는 그녀를 "봉서 상궁(奉書 尙宮)"이라 불렀습니다. 그런데 상궁 가운데에서 이른 바 "봉서 상궁"이라 불리는 상궁 이름은 없습니다. 작가의 착각이든지, 아니면 스스로 꾸매댄 그런 것이었든지 는 모르겠으나 아마도 시녀 상궁 안의 관할에서 일을 보았던 미천했던 궁인이었던 것만은 사실인 것 같습니다.>
② 진연(進宴), 진찬(進饌), 회작(會酌)과 같은 크고 작은 잔치할
때, 좌우의 계청(啓請), 찬례(贊禮), 전도(前導), 승인(承引), 시위(侍衛)의 일을 거행합니다.
그러나 같은 임무의 뫼시는 대상에 따라 왕, 대왕대비, 대비, 왕비께는 계청, 찬례, 승인, 시위라 하고, 왕세자, 세자빈의 경우에는 승도(承導), 배위(陪衛), 찬청(贊請), 전인(前引)이라고 하였습니다.
③ 각 종실(宗室), 외척들의 집에 내리는 하사품(下賜品)에 관한
업무를 관장, 규찰(糾察)하였는데, 그릇, 기타를 다스리는 외에
대소(大小) 사당(祠堂)들을 총관(總管)해서 곡읍(哭泣)도 이곳에서 담당하였습니다.
④ 왕비와 왕대비의 특사(特使)로 그 본댁(本宅: 친정) 큰 일에
어명을 받들고 나갑니다. 이때에는 사인교(四人轎)를 타고 그 집에 가서 "봉명 상궁(奉命 尙宮)"이라 해서 칙사(勅使) 이상의 대접을 받습니다.
그녀는 상좌(上座)에 앉아 극진한 공경을 받고 상(床)을 받되, 외상[獨床]을 받고 앉아 있는 것입니다.
6) 감찰 상궁(監察 尙宮)= 궁녀들의 근무 태도, 소행 등을 감시,
평가하는 임무를 맡아보았던 상궁입니다.
그 대상은 주로 원로(元老) 상궁을 제외한 젊은 내인들과 아직 어린 견습 내인(見習內人)들이며, 그들에게 벌을 내릴 때에 가볍게는 종아리 형[태형-笞刑-]으로부터 벌이 무거울 때에는 귀양까지
가도록 되어 있습니다.
각 전궁(殿宮)에 각 2명씩 감찰 상궁이 있었습니다.
7) 승은 상궁(承恩 尙宮)= 또는 특별 상궁으로 불렀습니다.
한 예로 고종의 후궁 중에 자녀를 낳은 궁인들, 즉 의친왕의 생모(生母) 장씨(張氏)나 완왕(完王: 완화군-完和君)의 생모 영보당(永保堂) 이씨, "육(堉)"의 생모 이씨,, "우(우=土禹합성 글짜)"의 생모 정씨(鄭氏) 등은 ,승은 직후에 상궁이 되었다가 후일
귀인이 된 분들입니다.
자녀를 낳지 못했던 삼축당(三祝堂) 김씨도 20대에 와서 상궁이
되었습니다.
8) 일반 상궁: 아무런 직함(職銜)도 붙지 않은 일반 상궁들이 처소마다 7~8 명씩 있어서 아래 내인들을 총관하였는바, 처소의 소관 업무에 총 잭임자 역할을 하였습니다. 이들 상궁을 "마마님"이라 존칭하여 불렀습니다.
** 그 밖의 내인(內人" 항아-姮娥-님-")= 관례(冠禮)를 치루고 성인(成人)이 된 궁녀를 "네o인"이라 하였습니다.
관례는 작은 아이 견습 여관(女官)으로 들어와서 15년이 경과되어야만 관례를 치룰 수 있었다고 합니다.
그러자면 4살의 갖난아이 쩍 부터 입궁(入宮)을 해야 한다는 것인데, 대개의 경우 18. 19세의 나이가 되면 관례를 치뤘다고 합니다.
이들 일반 내인들을 '소녀 내인' '아래 하녀(下女= 각심이, 비자-婢子-, 무수리-水賜-)들을 높여 이르되, "항아(姮娥)님"이라 불렀습니다.
이러한 궁중 안에서의 궁녀들 실수(實數)는 690여 명에 달했습니다.
이 숫자는 성호(星湖) 이익(李瀷)의 저술서 "성호사설(星湖僿說)"에 나오고 있는데,
" 지금 들으니 환관(宦官)이 335명이오, 궁녀(宮女)가 684명에 달하였다."
하는 그것입니다.
이 무렵 영조(英祖) 대의 실록 기록을 보면
" 六百宮人猶不足之說, 實非余心也"
이것은 영조 13년 4월에 급제한 이현필(李顯弼)의 직언(直言)을
듣고, 왕은 노하여 한 마디 했던 기록인 바, 이현필의 직언 내용은 공평치 못한 인사, 왕자녀를 위한 궁역(宮役), 사치(奢侈)의
경고(警告) 등을 논급한 것인데 그 가운데 '궁녀선입(宮女選入)'의 조건을 간(諫)한 대목이 있습니다.
" 6백 명이나 되는 궁녀가 있는데도 오히려 부족해서 또 뽑으려
하십니까?"
하였더니, 왕의 대답은,
" 실지로는 자전(慈殿: 대왕대비 김씨)에서 원하시기 때문"
이라며 그것도
"대왕대비의 만세(萬歲: 승하=昇遐) 후 에는 도루 내보내리라"
하는 답변이었습니다.
이 실록의 기록과 성호 이익의 그 기록과는 일맥 상통되는 궁녀의
숫자 상 개연성이 서로 맞음으로 해서 이 당시만 해도 궁녀의 숫자가 600여인을 넘나들었음을 알 수가 있습니다. 이 숫자는 한말에 이르기까지 드나드는 숫자의 가감(加減)은 없었던 것으로 보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