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시무역 : 조선시대 후기에 성행하던 사상(私商)의 밀무역.
공무역인 개시무역(開市貿易)에 대칭되는 말이다. 조선의 사신 일행이 중국에 파송될 때 중국의 회동관(會同館)에서 이루어진 회동관 후시, 압록강 의주(義州)의 중강(中江)에서 이루어진 중강 후시, 압록강 의주 맞은 편의 책문(柵門)에서 이루어진 책문 후시가 대표적이다. 또 함경도 경원(慶源) 등 북관(北關)에서 야인(野人)들을 상대로 행하여진 북관 후시, 부산 등의 왜관(倭館)에서 왜인들과 행하여진 왜관 후시가 있다.
이 중 특히 알려진 중강 후시는, 1593년(선조 26) 이후 공무역인 중강 개시의 이름으로 시작되어 사상의 출입을 금하였으나, 뒤에는 사상들의 암거래가 활발하여 중강 후시라는 이름으로 불리어 50년간 성행하였다.
중강 후시는 일단 폐지되었다가 현종 초에 장소를 옮겨 책문 후시라는 이름으로 행하여졌다. 당시 정부에서는 이를 금하였으나, 단속기관인 단련사(團練使)까지 이에 가담하여 단련사 후시라는 이름까지 생기자, 1755년 공인하였다. 정조 때에는 후시를 일체 금지하려 하였으나 효과가 없었으며, 책문 후시는 개항 때까지 계속되었다.
공무역인 개시무역(開市貿易)에 대칭되는 말이다. 조선의 사신 일행이 중국에 파송될 때 중국의 회동관(會同館)에서 이루어진 회동관 후시, 압록강 의주(義州)의 중강(中江)에서 이루어진 중강 후시, 압록강 의주 맞은 편의 책문(柵門)에서 이루어진 책문 후시가 대표적이다. 또 함경도 경원(慶源) 등 북관(北關)에서 야인(野人)들을 상대로 행하여진 북관 후시, 부산 등의 왜관(倭館)에서 왜인들과 행하여진 왜관 후시가 있다.
이 중 특히 알려진 중강 후시는, 1593년(선조 26) 이후 공무역인 중강 개시의 이름으로 시작되어 사상의 출입을 금하였으나, 뒤에는 사상들의 암거래가 활발하여 중강 후시라는 이름으로 불리어 50년간 성행하였다.
중강 후시는 일단 폐지되었다가 현종 초에 장소를 옮겨 책문 후시라는 이름으로 행하여졌다. 당시 정부에서는 이를 금하였으나, 단속기관인 단련사(團練使)까지 이에 가담하여 단련사 후시라는 이름까지 생기자, 1755년 공인하였다. 정조 때에는 후시를 일체 금지하려 하였으나 효과가 없었으며, 책문 후시는 개항 때까지 계속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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