쓰읍~ 이렇게 내 놓기 민망한 글 올리려니 무지 난감하네요;; 저 혼자 괜히 흥분해서 썻습니다. 유치해도 이해해 주세요.T^T
이마무라 쇼헤이 감독의 영화 검은 비(黑り 雨) 감상문
미디어 영상 대학 1학년
4558270 한혜림
근 석달 전만 해도 전 세계는 북한의 “핵 무기”보유 여부에 관해 들썩거렸었다. 나는 늘 핵 폭탄, 핵 무기라는 말들을 들어오면서도 정작 그것이 얼마나 인류를 처참하게 만드는 물체인지를 인지하지 못하고 있었다. 다만 1950년 일본 히로시마에 떨어진 원자폭탄이 우리나라를 해방시켜준 결정적인 계기가 되었다는 것 뿐, 그 외에는 핵 무기에 대해서는 정말 무지 했었다. 그러다가 어제 영상예술의 이해 수업의 과제로 대명동 캠퍼스까지 발품 팔아가며 가서 이마무라 쇼헤이 감독의 검은 비(黑り 雨)라는 영화를 보게 되면서 나는 공포에 질려버렸었다.
사실 지난 번 빔 벤더스 영화제를 보러 갔었을 때도, 나는 살짝 지루함을 느꼈으므로 이 영화 또한 그럴 것이라고 짐작하고 갔었기 때문에 별반 설레임을 느끼지 못했었다. 그러다 영화 초반부 원자폭탄이 터지면서 생기는 버섯구름들, 여기저기 덩그러져 있는 시꺼멓게 탄 신원조차 확인할 수 없는 시체들을 보면서 눈물이 차올랐다. 비록 영화상에서는 재현일 뿐이겠지만, 실제 1950년 8월 6일은 저런 아비규환의 히로시마였을 것 아닌가. 열기로 얼굴이 녹아 누군지 구별할 수 없는 사람들의 비명소리... “히로시마가 어디로 사라진거야”하고 울부짓는 사람들의 괴성들... 그것이 가장 충격적인 장면들이었다.
지금의 핵 탄두는 그때의 원자폭탄보다 50배의 위력이라고 하니, 더욱 더 몸서리를 치게 했던 영화였다. 모든 것을 다 파괴하고 죽어가는 가족들을 바라보아야 하는 히로시마 사람들. 그러나 몇 년후, 그 사람들은 피해야 할 존재로 몰락해버렸다. 극 중에서 폭심지에 있었던 부부 내외의 조카인 여인은 혼기가 다 되어 가도록, 시집을 가지 못하고 죽을 날 만을 기다릴 수 밖에 없었다. 그 마을 사람들 중 2차 폭발을 겪었던 사람들은 하나 둘 죽어나가면서, 절망하는 남자의 얼굴은 결코 잊을 수 없는 장면 중 하나였다. 그 상황에서 남자는 무슨 생각을 했을까. 원자폭탄이 터지면서 2차 폭발도 견디며 빠져나왔어도 원폭증이라고 하는 죽음의 병을 벗어날 수 없었던 자신과 가족들을 보면서 괴로워했을 그 주인공들을 보며, 그것을 보는 나 또한 괴로워졌었다.
영화가 거의 끝나가는 중에 이마무라 쇼헤이 감독은 “정의의 전쟁보다는 부정의 평화가 낫다”는 자신의 의견을 피력했다. 이 영화의 가장 주제되는 내용이기도 하지만, 난 이 의견에 동의하는 편이다. 제 1,2차 세계대전을 비롯 한국전쟁과 가장 최근에 일어난 이라크 전을 생각하며, 참담했다. 서로가 서로를 죽이고, 파괴하며 도대체 얻는 것이 무엇인가. 이권 다툼, 다른 종교를 이해하지 못해 생겨나는 전쟁들... 이것보다 인간의 목숨이 더 가볍단 말인가. 눈물이 나올만큼 통탄할 일들이다.
그러나 지금의 사람들은 이런 경고를 무시한 채 또다시 정치적으로 핵 폭탄을 이용하여 여차하면 터뜨리겠다는 요량으로 인류를 위협하고 있다. 정말 바보 같은 짓이 아닐 수 없다. 원폭증으로 죽어나간 사람들을, 전쟁으로 죽어나간 사람들은 생각도 나지 않는 모양이다.
지금 핵무기는 1950년 8월 6일날 떨어뜨린 원자폭탄보다 약 50여배의 위력을 능가하고, 또 다른 신무기인 수소 폭탄까지 등장하였다. 예를 들어 서울 시청을 중심으로 1mt 급 핵폭탄 하나를 떨어뜨리면 반경 3km 이내의 모든 것은 폭발과 동시에 증발해버린다. 즉, 사람의 입장에서 설명해본다면 무언가 번쩍하는 것을 본 동시에 죽는다는 생각도 할 겨를 없이 이 세상에서 사라진다는 것이다. 그리고 7~9km 떨어진 곳, 가연성으로 된 모든 건물들은 타기 시작하며, 주위에 모든 사람들 또한 타들어간다. 이 지역의 사람들은 약 3도의 화상을 입으며, 1분 뒤에 다가오는 후폭풍을 기다리면서 죽어간다. 그리고 후폭풍이 시작되면 폭심지로 엄청난 양의 산소가 빨려들어가고, 이것을 견디지 못한 건물들은 반동강나버린다. 이 후폭풍은 지진 진도 약 7의 강도로 도시를 덮치고 여기에 노출된 사람들은 깔끔하게 두동강난다. 상상이나 가는 일들인가. 아마 직접보지 않으면 믿기지 않을 것이다. 아니... 직접 본다하여도 아마 자신의 눈을 의심할 것이다. 그리고 영화의 주요소재가 되는 검은 비는 낙진인데, 다량의 방사능 물질을 함유하고 있어 그것을 맞은 사람들은 서서히 죽어간다. 그러면, 이 세상은 이른 바 ‘산 자가 죽은 자를 부러워 하는 세상(The quick envy the dead)’으로 변하는 것이다.
이런 직접적인 예 외에도 영화에서 보는 것처럼 고통스러운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이 존재하게 되는 것이다. 한 데 어울려 살아가기 위해서는 이런 것들이 필수적이라고 말하는 전쟁광들에게 묻고 싶다. 국민들을 위한답시고 국민들의 피로 막대한 전쟁을 치러가며 결국 얻는 것은 무엇인가. 그리고 그것이 잃은 것 보다 더 가치가 있는가. 미국은 일본의 항복을 받아내기 위해 도쿄에 터뜨리지 않고 히로시마로 떨어뜨렸다. 그 결과로 천왕의 무조건적인 항복을 받아냈고, 덕분에 우리나라도 해방되는 기쁨을 누렸다. 하지만 이것은 결코 옳은 일이 아니었다. 잘못한 것은 그 나라의 수뇌부들이었음에도 국민들이 해를 당했다. 핵폭탄이 눈이 달려서 골라서 폭발하는 것도 아니며, 잘못이 있는 이들만 골라죽일 수 있는 것도 아니었다. 영화를 눈여겨 본 사람들은 알 것이다. 어린 아이가 까맣게 타서 엄마 품에서 죽어있는 모습들을... 녹아내린 얼굴로 가족들을 찾는 어린 학생의 모습들을... 마음이 아프다고만 하고 끝낼 문제가 아닌 것이다.
쓰고 보니 감정적인 글이 되고 말았지만 한 가지 확실한 것은 어쨌든 전쟁은 안될 말이고, 핵 무기 또한 분해해야 한다. 나라가 불경기이다 싶으면 전쟁을 하는 짓은 용서할 수 없는 짓이다. 정의의 전쟁보다 부정의 평화가 낫다고 중얼거리던 주인공의 눈을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
이마무라 쇼헤이 감독의 영화 검은 비(黑り 雨) 감상문
미디어 영상 대학 1학년
4558270 한혜림
근 석달 전만 해도 전 세계는 북한의 “핵 무기”보유 여부에 관해 들썩거렸었다. 나는 늘 핵 폭탄, 핵 무기라는 말들을 들어오면서도 정작 그것이 얼마나 인류를 처참하게 만드는 물체인지를 인지하지 못하고 있었다. 다만 1950년 일본 히로시마에 떨어진 원자폭탄이 우리나라를 해방시켜준 결정적인 계기가 되었다는 것 뿐, 그 외에는 핵 무기에 대해서는 정말 무지 했었다. 그러다가 어제 영상예술의 이해 수업의 과제로 대명동 캠퍼스까지 발품 팔아가며 가서 이마무라 쇼헤이 감독의 검은 비(黑り 雨)라는 영화를 보게 되면서 나는 공포에 질려버렸었다.
사실 지난 번 빔 벤더스 영화제를 보러 갔었을 때도, 나는 살짝 지루함을 느꼈으므로 이 영화 또한 그럴 것이라고 짐작하고 갔었기 때문에 별반 설레임을 느끼지 못했었다. 그러다 영화 초반부 원자폭탄이 터지면서 생기는 버섯구름들, 여기저기 덩그러져 있는 시꺼멓게 탄 신원조차 확인할 수 없는 시체들을 보면서 눈물이 차올랐다. 비록 영화상에서는 재현일 뿐이겠지만, 실제 1950년 8월 6일은 저런 아비규환의 히로시마였을 것 아닌가. 열기로 얼굴이 녹아 누군지 구별할 수 없는 사람들의 비명소리... “히로시마가 어디로 사라진거야”하고 울부짓는 사람들의 괴성들... 그것이 가장 충격적인 장면들이었다.
지금의 핵 탄두는 그때의 원자폭탄보다 50배의 위력이라고 하니, 더욱 더 몸서리를 치게 했던 영화였다. 모든 것을 다 파괴하고 죽어가는 가족들을 바라보아야 하는 히로시마 사람들. 그러나 몇 년후, 그 사람들은 피해야 할 존재로 몰락해버렸다. 극 중에서 폭심지에 있었던 부부 내외의 조카인 여인은 혼기가 다 되어 가도록, 시집을 가지 못하고 죽을 날 만을 기다릴 수 밖에 없었다. 그 마을 사람들 중 2차 폭발을 겪었던 사람들은 하나 둘 죽어나가면서, 절망하는 남자의 얼굴은 결코 잊을 수 없는 장면 중 하나였다. 그 상황에서 남자는 무슨 생각을 했을까. 원자폭탄이 터지면서 2차 폭발도 견디며 빠져나왔어도 원폭증이라고 하는 죽음의 병을 벗어날 수 없었던 자신과 가족들을 보면서 괴로워했을 그 주인공들을 보며, 그것을 보는 나 또한 괴로워졌었다.
영화가 거의 끝나가는 중에 이마무라 쇼헤이 감독은 “정의의 전쟁보다는 부정의 평화가 낫다”는 자신의 의견을 피력했다. 이 영화의 가장 주제되는 내용이기도 하지만, 난 이 의견에 동의하는 편이다. 제 1,2차 세계대전을 비롯 한국전쟁과 가장 최근에 일어난 이라크 전을 생각하며, 참담했다. 서로가 서로를 죽이고, 파괴하며 도대체 얻는 것이 무엇인가. 이권 다툼, 다른 종교를 이해하지 못해 생겨나는 전쟁들... 이것보다 인간의 목숨이 더 가볍단 말인가. 눈물이 나올만큼 통탄할 일들이다.
그러나 지금의 사람들은 이런 경고를 무시한 채 또다시 정치적으로 핵 폭탄을 이용하여 여차하면 터뜨리겠다는 요량으로 인류를 위협하고 있다. 정말 바보 같은 짓이 아닐 수 없다. 원폭증으로 죽어나간 사람들을, 전쟁으로 죽어나간 사람들은 생각도 나지 않는 모양이다.
지금 핵무기는 1950년 8월 6일날 떨어뜨린 원자폭탄보다 약 50여배의 위력을 능가하고, 또 다른 신무기인 수소 폭탄까지 등장하였다. 예를 들어 서울 시청을 중심으로 1mt 급 핵폭탄 하나를 떨어뜨리면 반경 3km 이내의 모든 것은 폭발과 동시에 증발해버린다. 즉, 사람의 입장에서 설명해본다면 무언가 번쩍하는 것을 본 동시에 죽는다는 생각도 할 겨를 없이 이 세상에서 사라진다는 것이다. 그리고 7~9km 떨어진 곳, 가연성으로 된 모든 건물들은 타기 시작하며, 주위에 모든 사람들 또한 타들어간다. 이 지역의 사람들은 약 3도의 화상을 입으며, 1분 뒤에 다가오는 후폭풍을 기다리면서 죽어간다. 그리고 후폭풍이 시작되면 폭심지로 엄청난 양의 산소가 빨려들어가고, 이것을 견디지 못한 건물들은 반동강나버린다. 이 후폭풍은 지진 진도 약 7의 강도로 도시를 덮치고 여기에 노출된 사람들은 깔끔하게 두동강난다. 상상이나 가는 일들인가. 아마 직접보지 않으면 믿기지 않을 것이다. 아니... 직접 본다하여도 아마 자신의 눈을 의심할 것이다. 그리고 영화의 주요소재가 되는 검은 비는 낙진인데, 다량의 방사능 물질을 함유하고 있어 그것을 맞은 사람들은 서서히 죽어간다. 그러면, 이 세상은 이른 바 ‘산 자가 죽은 자를 부러워 하는 세상(The quick envy the dead)’으로 변하는 것이다.
이런 직접적인 예 외에도 영화에서 보는 것처럼 고통스러운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이 존재하게 되는 것이다. 한 데 어울려 살아가기 위해서는 이런 것들이 필수적이라고 말하는 전쟁광들에게 묻고 싶다. 국민들을 위한답시고 국민들의 피로 막대한 전쟁을 치러가며 결국 얻는 것은 무엇인가. 그리고 그것이 잃은 것 보다 더 가치가 있는가. 미국은 일본의 항복을 받아내기 위해 도쿄에 터뜨리지 않고 히로시마로 떨어뜨렸다. 그 결과로 천왕의 무조건적인 항복을 받아냈고, 덕분에 우리나라도 해방되는 기쁨을 누렸다. 하지만 이것은 결코 옳은 일이 아니었다. 잘못한 것은 그 나라의 수뇌부들이었음에도 국민들이 해를 당했다. 핵폭탄이 눈이 달려서 골라서 폭발하는 것도 아니며, 잘못이 있는 이들만 골라죽일 수 있는 것도 아니었다. 영화를 눈여겨 본 사람들은 알 것이다. 어린 아이가 까맣게 타서 엄마 품에서 죽어있는 모습들을... 녹아내린 얼굴로 가족들을 찾는 어린 학생의 모습들을... 마음이 아프다고만 하고 끝낼 문제가 아닌 것이다.
쓰고 보니 감정적인 글이 되고 말았지만 한 가지 확실한 것은 어쨌든 전쟁은 안될 말이고, 핵 무기 또한 분해해야 한다. 나라가 불경기이다 싶으면 전쟁을 하는 짓은 용서할 수 없는 짓이다. 정의의 전쟁보다 부정의 평화가 낫다고 중얼거리던 주인공의 눈을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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