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금소총 제227화
공연히 헛걸음만 하다 (公然虛行) . 옛날에 한 사람이 있었는데 지극히 어리석고 게을렀다. . 마침 숙부가 세상을 떠났는데, 연락을 받고도 문상 갈 생각을 전혀 하지 않는 것이었다. . 그래서 아내가 하도 답답해서 이렇게 책망했다. "여보, 당신은 숙부님이 운명하셨는데도 문상 갈 생각을 안 하니 무슨 까닭입니까? . 어서 가서 문상을 해야지요." 그러자 이 사람은, "뭐 문상 같은 건 그렇게 급히 서둘 일은 아니잖아?" 하면서 역시 움직일 생각을 하지 않았다. . 아내가 여러 번 권하고 독촉하니 부득이 일어나 상가로 갔는데, . 미처 문상도 하기 전에 상주인 종제에게 묻는 것이었다. "종제! 숙부님이 생전에 쓰시던 갓은 어디 있는가?
평소 좋아 보여서 내가 가져다 쓰고 싶어 그런다네." . "아, 형님. 늦었습니다. 건넛마을 이서방이 탐을 내면서 달라기에 벌써 주어 버렸는데요." . "응, 그랬군. 그러면 숙부님이 쓰시던 여름 휘항1)은 어디 있는고? 내 가져다 쓰고 싶은데." 1)여름 휘항(凉揮項) : 목에 땀이나 옷이 달라붙는 것을 막기 위해 목뒤에 착용하는 것
"형님, 그것도 목수에게 주었습니다. . 통나무를 켜서 관을 짜느라 너무 수고가 많기에 주어서 보냈답니다." "목수에게 주었다고? . 그렇다면 숙부님의 낡은 진신2)은 어디 있지? 2)진신(泥鞋,니혜) : 비올 때 신는 기름 입힌 가죽신 그게 아직 멀쩡하던데 내가 신으면 좋겠어." "형님, 그 진신도 말입니다.
염습을 하느라 많이 애쓰신 동네 노인께서 가져가겠다고 하시기에 드렸습니다." 종제가 이미 남에게 모두 주어 버렸다는 말에, . 이 사람은 하나도 가져갈 것이 없다고 투덜대고 일어서면서, "그렇다면 오늘은 공연히 헛걸음만 했구나." 라고 말하고는 문상도 하지 않은 채 시무룩해 돌아가 버리는 것이었다. . 이를 본 조문객들이 혀를 차지 않는 사람이 없었더라 한다 출처: http://kydong77.tistory.com/15071?category=651358 [김영동교수의 고전& life]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