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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들의 이야기

버마 아웅산 사건

작성자은경|작성시간26.06.09|조회수58 목록 댓글 1

버마 아웅산 사건은 사람의 잘못인가!


1983년 10월 9일 버마 아웅산에서 시체가 갈기갈기 꽃기어 처참한 죽임을 당한 15명의 고귀한 분들이
모두 장ㆍ차관으로서 개독교 신앙을 가진 장로 집사들로서 믿음이 충만했던 사람들이고,

살아난 단 한 사람은
기독교인이 보기에 사탄이라고 하는

독실한 불교인으로 이기백 장군입니다.
이기백 장군은 군법당을 신축할 때 가장 많이 후원한 장군으로 널리 알려진 열렬한 불교신자 였습니다.


(1993년3월 구포에서 무궁화 열차전복 78명 사망. 7월 아시아나 항공추락 166명 사망,
10월 서해 훼리호 292명 사망, 1995년 대구지하철 101명 사망)우리들의 이야기
범아 아웅산 이기백 장군(전 국방부 장관)은 1983년 아웅산 묘소 폭탄 테러 사건 당시 현장에서 중상을 입었으나, 극적으로 생존한 인물입니다.
​사건과 개금불사의 배경
​아웅산 테러: 북한의 폭탄 테러로 수행원 17명이 사망했으며, 이기백 장군은 파편이 전신에 박히는 치명상을 입었습니다.
​개금불사(改金佛事)의 인연: 생사의 갈림길에서 수술을 받던 중, 평소 그가 후원하며 정성을 다했던 불교와의 인연과 부처님께 금칠을 새로 올리는 개금불사의 공덕 덕분에 목숨을 구했다는 이야기가 불교계를 중심으로 널리 알려져 있습니다.
​신앙적 의미: 그는 생환 이후 독실한 불교 신자로서 활동하며, 본인의 생존이 단순한 행운이 아닌 불보살의 가호였다고 회고하곤 했습니다.

​비극적인 현대사 속에서 개인의 신앙과 기적적인 생존이 맞물린 대표적인 사례로 회자됩니다.이기백 장군과 관련된 **'계급 불사'**는 그가 아웅산 테러 현장에서 입고 있던 합참의장(대장) 정복과 관련이 깊습니다.
​당시 그는 폭발로 인해 온몸에 파편이 박히는 중상을 입었으나, 정복의 **두꺼운 견장(대장 계급장)**이 파편을 막아준 덕분에 심장 등 치명적인 부위를 보호할 수 있었습니다. 이후 그는 생환을 기념하고 감사의 마음을 담아 당시 입었던 군복을 군법당에 기증하거나 관련 일화가 호국 불교의 상징처럼 전해지게 되었습니다.

​이 사건은 군 내부에서 **'계급장이 목숨을 구했다'**는 전설적인 일화로 남아 있으며, 그가 독실한 불교 신자로서 국방부 내 법당인 원광사 건립 등에 큰 기여를 한 점과 맞물려 불교계에서도 높이 평가받고 있습니다.

이기백 장군은 전남 해남 대흥사 등 사찰의 개금불사(불상에 금칠을 다시 하는 일)에 시주하며 호국 불교의 정신을 기린 인물로 알려져 있습니다. 특히 임진왜란 당시 승병들의 활약상을 기리고 전통 사찰의 성보를 보존하는 데 큰 관심을 기울였습니다.1983년 아웅산 묘소 폭탄 테러 당시 합참의장이었던 이기백 장군은 전신에 파편이 박히는 중상을 입었으나, 부관들의 헌신적인 구조와 기적적인 회생으로 목숨을 건졌습니다.
​그는 생사의 갈림길에서 겪은 영적 체험과 독실한 불교 신앙을 바탕으로, 군 내 정신 전력 강화와 장병들의 정서적 안정을 위해 군법당 증설 및 포교 활동에 평생을 헌신했습니다.


1983년 10월 9일 미얀마 아웅산 묘소에서 북한의 비밀요원들이 전두환 대통령을 암살할 목적으로 일으킨 폭발 테러 사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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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은경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 작성시간 26.06.17 개독교 미련한 노예들은 성경책이 엉터리 인줄 모르고 성경책은 전세계 인들이 읽고 성경책을 믿는다고 합니다 .

    부처님 경전은 처음부터 현제까지 내용을 수정하거나 고친일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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