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후에 송점남(77) 어르신 등 유족 몇 분이 사무실을 방문하셨습니다. 고흥 대서면 안남리가 고향인데 일제 때 부친이 한 동네 사람들과 함께 만주로 끌려갔다 돌아왔다는 얘기를 들었는데, 실제 정부에 신고한 것은 아오지탄광으로 돼 있어 뒤늦게나마 사실을 바로잡고 싶다는 것입니다.
이모저모 들어보니 구체적 단서가 있는 것은 아니었습니다. 아마 정부가 국내로 동원된 피해자는 위로금 지급 대상에서 제외하고 있는 것 때문에 기록을 정정하면 달라지지 않을까 생각하는 것 같았습니다.
그렇게 억울해 할 일은 아닌 것 같다고 말씀드렸습니다.
기록을 정정하고자 하더라도 부친이 사망한 상태에서 만주로 동원됐다는 것을 증명할 단서가 있는 것도 아니고, 설령 만주로 끌려갔다고 하더라도 현지에서 사망하거나 행방불명된 경우가 아닌 한 생환자에 대해서는 위로금이 있는 것도 아니어서, 기록을 정정하더라도 실질적인 경제적 이익이 있는 것도 없다고 말씀드렸습니다.
또 광주전남 지역에서 일제 때 실제로 ‘아오지탄광’에 동원된 분이 다수 있으며, ‘만주에 다녀왔다’고 얘기한 것은, ‘아오지탄광’이 실제 함경북도 북단 두만강 경계 지역에 위치해 있기 때문에 통상적으로 “만주에 다녀왔다”고 얘기했을 개연성이 있고, 또 부친이 돌아와서 기침과 폐병으로 고생했다는 것으로 보면 ‘아오지탄광’으로 동원됐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으니, 이 문제로 더 매달릴 일은 아닐 것 같다고 말씀드렸습니다.
“설명을 듣고 보니 속이 시원합니다.”
사무실 오신 김에 이금주 회장님 기록물을 보여 드리고, 지난 억울한 피해자들의 아픔이 쉽게 잊히지 않도록 역사관 건립, 기록유산 등재 등 향후 시민모임의 계획에 대해서도 말씀드렸습니다. 또 이상업 강제징용 수기 ‘사지를 넘어 귀향까지’, ‘이금주 평전’을 전해 드렸습니다.
앞 전 사무실 방문하실 때 강제동원 피해자 구술집을 한 권 드렸는데, 날을 새 가면서 다 읽고, 여동생한테 읽어보라고 전해 줬다고...
송정남 어르신은 회원으로 활동하고 싶다고 하시길래, 회원이 되면 돈 나갈 일만 있지 실제 보상 문제에 어떤 도움을 드릴 수는 없다고 했습니다. 그랬더니 이렇게 말씀하시더군요.
“억울하게 고생하신 분들 어디 하소연할 데도 없잖아요? 역사관 만들어지면 아버지 이름 석 자라도 남기고 싶은 마음 뿐이에요. 좋은 일에 저도 같이 하고 싶습니다.”
충분히 마음이 읽혀졌고, 기쁜 마음으로 후원회원으로 가입해 주셨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