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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이야기

1919 년에서 1923년 까지

작성자여백(박효섭)|작성시간15.02.11|조회수29 목록 댓글 0

 

 

 

1919년 3 · 1 민족운동의 기독교적 '평화시위' 이후에 전국이 감옥으로 변하는 것도 보았다.

5만 명이 투옥되고, 7,000명이 살해되었던 것이다.

나는 1919년 당시 3,000여 일본 유학생 중의 한 명이었는데, 4년 후에는 유학생

1,000여 명과 다른 조선인 5,000명이 1923년의 관동대지진 때 학살당했다.

이 학살은 일본국민이 1918년의 그 엄청난 쌀폭동을 두 번 다시 일으키지 못하도록

경고하기 위해 자행된 것이었다.

왜냐하면 그 당시 일본국민들은 부패한 지도층에게 "천벌이 내린 것"이라고 떠들어댔기 때문이다.

나는 1920년에 만주에서 유랑생활을 하고 있었는데, 내가 떠난 지 불과 몇 주일 뒤에

일본군대가 독립군 활동에 대한 보복으로 6,000명 이상의 조선인(그 중에는 단 한 명을 제외한 내 친구 전원이 들어 있었다)을 학살하였다.

 

김산, 님 웨일즈의 '아리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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