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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32년 백령도에 입도 한 사람들

작성자요해|작성시간26.06.21|조회수0 목록 댓글 0

아메리카 대륙에서 역사속에 신대륙을 발견했다는 빌미로 굴러온돌이  박힌들을 뽑아내던시기 

그여파에 밀려 강제적으로 중국대륙이나 한반도로 밀려나며 1700년 말기부터 약90년간 

한반도에 사람들을 실고 26회를 들어와 사람들을 이주시켰다

1832년 일부배는 중화동 포구로 들어와 중화동에 사람들을 내렸다  당시 선교사도 같은 배에 있었고

그사람이 귀출라이프선교사이기도 하다  그래서 허작이라는 사람이 교인으로 중화동에 

교회를 세우는데 기초가된 사람이고 나의 할아버지께서는 황해도 장산곳으로 갔다 다시 사항포 앞바다에 내려 

공동지 뒷산으로 올라와  공동지 넓은곳에 정착하게 되였다 

사람나르는 배들은 수십척이였으며  대부분 황해도 장산곳 넘어로 이주를 많이하고 

백령도 섬에 정착한 사람들은 수백명에 지나지 않았다 1832년에 입도한 사람들 외에도  정착민이 살고 있기도 하였다 

그러나 1832년에 들어온 사람들은 상위층에 사람들로 당시 백령도라는 지명도 없는 섬이였다 

백령도라는 이름은 1910년이후에 측량을 일본에서 하고 백령도 지명을 옮겨 놓은 것이다 

백령도 땅은 1832년까지는 고려였고 북아메리카와 같은 고려로 고려시대는 개성부에 속해 있는 땅이였다 

한반도에 조선을 갖다놓는 작업을 하므로서 세계조선명칭이 한반도를 위주로 왜곡시키며 

한민족 역사 말살정책을 주도적으로한 세계일루미티세력에 의한 주도적 계획이고  일본은 실행자였다 

지금일본도 1800년이후에 필리핀을 통해 미국에게 빼앗기자  그세력이 지금일본으로 대거 이주 하므로서

스페인이 바로 일본이다  당시 네들란드는 대만을 점령하고 네들란드 이름인 대만 지명을 옮겨놓고 

스페인은 일본지명을 지금에 일본열도에 넣어므로 일본이 점령하여 오늘날 일본이 되였다 

일본도 한반도에 인구가 급격히 늘어날시기 1924년부터 약3년간 같은 시기에 일본은 3600만명이 

일본열도에 인구늘어나고 한반도는 1500만명이 늘어난다  거의 이주민이 양쪽을 형성하게된다 

백령도에 1832년도 들어왔다는 증거는 중화동교회 비석에 자세하게 쓰여져 있고  나의 족보에나 가문에 

전해져내려오는 이야기들을 종합하면 미국에서 온게 맞는데 미국어디서 왔는 지는 연구중이다 

미국이 세종대왕의 나라 고려조선이였다 고려조선은 중국땅 절반과 동쪽으로 미국땅까지 1만리였고 키로는 5500키로였다 

이성계가 조선을 세웠다고 역사는 그렇게 말하나 사실과 다르다 이성계는 국호를 바꾸지 않았다 

정권만 바꾸고 그의 아들 태종이 이란에서 생겨난 명교중심으로 명나라가 크지며 대명조선이라하고 

동쪽땅은 고려 그대로 세종에게 물려주어 그게 천자국이고 명조선이 있기에 동쪽은 고려조선이 맞는다 

아시아와 북아메리카땅은 지금처럼 떨어져있던게 아니라 붙어있었고 한반도와 미국땅도 멀지 않았다 

1950년 이후에 두대륙이 떨어지게됨을 알아야 한다

우리가 명나라에게 하대 했다고 하는데 초기는 아버지가 명나라다스렸기에 세종에게 군권과 인사권을 주지않아 

명나라에가서 아버지로부터 재가를 받아야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명나라를 태종에 서자에게 물려주고

세종에게로와서 상왕할때는 명나라가 세종에나라에게 재가를 받아야했던 관계를 왜곡하는것이다 

명나라가 중국역사가 아니고 한국역사이고 청나라도 한국역사이다

청은 나라가 아니고 천자국을 보호하는 군권을 가진 청조선이고 고려조선에 부하국이였다 

청나조선에 조상은 고려에서 나왔으며 본래 신라왕족에 후예이다 

백령도를 설명하다보면 한국의 역사배경도 맞물려 알아야하므로 다양한 복잡성이 존재하에서

백령도섬이 백령도 이름을 달게된것도 사연이 깊은 관계이다 

1832년도에 백령도에 들어온 사람들 주측으로 당시부터 백령도에 마을이 확대 되였으며 1800년 후반에는 진촌이 

소재지로 행정이 펼처진 곳으로 일제 관리지역의 일부가 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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