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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루한 장마 뒤끝의 뜨거운 햇볕. 지표에서 증발한 습기가 몸과 옷에 척척 붙어 끈끈한 불쾌감이 스멀거리는 계절. 마른 볏짚처럼 바짝 달궈진 것도 아니고 온도 습도가 모두 높아 짜증나게 끈적이는 달, 7월말 8월초. 이때처럼 사람을 못 견디게 하는 기후도 없다. 장마 뒤 더위는 게다가 불결하고 징그러운 곤충의 천국이기도 하다. 파리 모기가 창궐하고 애벌레 구더기도 우글거린다. 사람 심기가 마냥 불편한 때다. 박테리아 등 병원성 균 역시 이즈음에 제일 기승을 부린다. 상한 음식으로 인한 식중독이 가장 많은 때이기도 하다. | |
식품위생에 각별한 안전을 기해야할 계절 '여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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꼭 34년 전, 77년 여름이 그랬다. 7월 상순 막바지엔 집중호우가 나라를 왕창 헤집었다. 안양천이 범람하고 서울 독산동 등의 산사태까지 겹쳐 무려 3백여 명이 죽거나 실종됐다. 경인 경수 철도가 물에 차 불통됐고 공식 집계한 이재민 숫자만도 6만 명을 훌쩍 넘었다.
언론사가 일제히 수재의연금 걷기에 나섰다. 대통령의 딸도 수해현장을 찾아 이재민을 위로했다. 그런데 묘했다. 수재민 돕기 운동이 한창인 가운데 기온은 그야말로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치솟기만 했다. 7월31일, 대구는 무려 39.5도를 기록했다. 그 사이 전국엔 비 한 방울 내리지 않았다. 그러니까 엄청난 물난리 끝에 유례없는 불볕 가뭄이 엄습한 것이었다.
식중독 균이나 각종 벌레들이 힘을 쓸 여건이 마련된 셈이다. 상한 음식을 먹고 병원을 찾는 사람이 늘었다. 보건당국은 거리 행상이 파는 아이스크림이나 냉차는 가급적 사먹지 말도록 시민들 주의를 환기시켰다. 포장음식도 유통기한이 지난 것은 아닌지 꼭 살피고 사용하라고 신신당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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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품 사먹기 무섭다…몇 달씩 묵혀 팔고 있으니.. 1977. 10. 6 [동아일보] 3면 | |
유명제과 사탕에서 구더기가..
'청바지 사탕'에 구더기 1977. 9. 23 [동아일보] 7면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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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 이쯤 되면 기억력 눈썰미가 좋은 독자는 벌써 눈치를 챘을 것이다. 그렇다. 그해, 1977년은 서울에서 사상 유례가 없는 학교급식 빵 식중독 사고가 나 7872명이 앓고 1명이 숨진 바로 그 해였다. 여름방학이 끝나자마자 터진 그 사고 직후 이번엔 또 연쇄적으로 끔찍한 식품사고가 터진 것이다.
77년 9월 16일 초등학생 식중독사고가 난지 꼭 나흘째인 9월20일. 경기도 안양시에 사는 박씨(43)는 동네 슈퍼마켓에서 산 유명제과 '청바지사탕'을 아이에게 주었다가 깜짝 놀랐다. 볼 일을 보다 문득 아이를 보니 사탕을 우물거리는 입가와 옷섶에 작은 벌레들이 기어 다니는 것 아닌가. 화들짝 놀라 입가를 털고 쓸어준 다음 아직 아이가 손에 쥔 사탕을 보고 박 씨는 더욱 기겁했다. 사탕 속에 작은 구더기와 알들이 우글거리고 있는 것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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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세상에 이럴 수가!" 기절할 듯 놀란 그는 당장 슈퍼마켓에 달려가 항의했다. 마켓 주인과 함께 그곳은 물론 근처 세군데 가게에 있던 '청바지사탕' 50봉지를 뜯어 살펴봤다. 정말로 기절초풍할 노릇이었다. 무려 12봉지의 청바지사탕에 구더기와 알이 있었다. 롯데제과 측은 "당장 내일부터 전국에 깔린 청바지사탕을 전량 수거하겠다."고 밝혔다. 그러나 이 사건은 '구더기 파동'의 시초에 지나지 않았다. 바로 이튿날 부산 남구청에서 또 구더기 과자를 발견한 것이다. | |
군대 위문품에서 검출된 구더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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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엔 군경에 보낼 위문품에서였다. 남구청은 관내 대연동 남부 슈퍼마켓에서 '꼬깔 사탕' 334봉지를 개당 90원씩에 사 다른 여러 물품과 함께 위문대를 만들던 중이었다. 그런데 위문대 옆에 뭔가 기어 다니고 사탕 포장지도 불결한 것 같아 자세히 살펴보니 구더기가 우글거리는 것 아닌가.
여기선 334봉지 중 33봉지가 문제였다. 곰팡이 심하게 슬었고 그런 데선 예외 없이 구더기가 나왔다. 구청은 검경에 수사를 의뢰하고 제과회사를 닦달했다. 제과회사는 "장마 끝에 더위가 온 탓에 과자류 변질이 우려돼 소매상에게 반품을 독려했으나 응하지 않다 일이 터진 것"이라고 변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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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꼬깔 사탕'에 구더기 1977. 9. 24 [동아일보] 7면 | |
식품 변질 사고 사후 수습에 분주 1977. 10. 6 [매일경제] 7면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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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가운데 부산 동래에선 빵에서 구더기가 나오자 제빵회사를 협박해 거금을 뜯어내려던 사람이 구속됐다. 그는 8월말 딸이 사온 '종소리 팥빵' 속에서 구더기가 나오자 회사에 항의, 1차로 2만원을 받아냈다. 그런데 그것으론 부족하다고 생각해 회사에 1천만 원을 요구했다가 경찰에 체포됐다.
그러잖아도 급식 빵 사고로 불안에 떨던 학부모들은 완전히 노이로제에 걸렸다. 아니, 학부모만이 아니었다. 온 국민이 스멀거리는 구더기의 악몽에 빠져 헤어 나오지 못하고 있었다. 그만큼 한번 터진 '구더기 식품' 공포는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지고 있었다.
삼양식품의 '칼국수' 스프에서도 구더기가 나왔다. 오리온제과의 '나나 쿠키' '알롱달롱 사탕'에서 역시 구더기와 알이 나왔으며 경주의 세 살배기 꼬마는 구더기사탕을 먹고 복통을 일으킨 뒤 심한 설사를 해 병원에 입원했다. 대전에선 시청구내 매점에서 산 '거북선' 담배에서 구더기가 나왔다. '오리온 피너켓' '해태 알사탕' '초코파이' '삼양라면'과 마산의 '마른안주' 포장에서 구더기가 기고 나방이 나왔다는 뉴스가 연일 신문사회면을 메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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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더기 파동에 전국이 '들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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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은 학교에서 유명제과의 CM송을 패러디해 불렀다. "XX바지, XX바지 사탕 알이 커졌네. 이유가 무엇인지 나는 알아요. 그 속엔, 그 속엔 구더기가 들었지 요…" YWCA, 한국부인회와 소비자 단체 등은 흥분하다 못해 공포에 떨고 있었다. "나라에서 옳은 식품을 가려주진 못할망정 아이들 입에 구더기를 밀어 넣는단 말이냐!"
이들 단체들은 거의 악을 쓰다시피 구더기 사탕 과자 빵 라면을 만들어 유통시키는 악덕업주를 처벌하라고 진정하고 나섰다. 야당인 신민당의 고재청 대변인도 특별성명을 냈다. "초등학교 불량 급식 빵 사건, 재벌급 롯데회사 제품 과자 변질사건, 삼양식품 구더기라면 사건은 모두 시민의 식생활에 중대한 적신호를 켠 사건인데도 당국은 머뭇거리고만 있다. 당장 일벌백계의 단속을 펴지 않는다면 야당이 가만히 있지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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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명메이커의 '구더기 충격'속에 불량식품 작년의 갑절 1977. 10. 4 [동아일보] 7면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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급기야 10월초 서울지검 부정식품단속반이 삼양 롯데 해태 크라운 등의 빵 라면 사탕과자 등을 수거해 성분분석에 나섰다. 보사부도 부랴부랴 "10월20일부터 '매우 이례적인' 가을철 유해식품 특별단속에 나서겠다."면서 "보사부 식품단속반 22명, 경찰 60명과 각 시도 공무원 등 모두 350명을 동원해 식품검사를 한다고 밝혔다.
그러나 사실 이것은 말이 안 되는 발표였다. 바로 그해, 77년 정초에 식품위생을 총괄하는 신현확 보사부장관이 특별성명을 통해 "국민의 보건건강을 해치는 유해식품을 뿌리 뽑기 위해 12월까지 연중무휴, 특별단속을 벌이겠다."고 발표했었기 때문이다. 그는 보사 내무 법무 농수산부와 국세청 서울시 감사원 등 정부의 전 유관기관이 합동단속반을 편성해 제조업소 5천개, 제품 7천개에 대한 전수조사를 벌이겠다고 약속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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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이은 식품 파동에도 정부는 늑장대처
식품 위생법 강화 제자리 1978. 3. 9 [동아일보] 7면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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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그는 그 전해, 그러니까 76년 7월1일에도 같은 발표를 통해 "직을 걸고 불량 유해식품을 몰아내겠다."고 했었다. 이때는 차관을 본부장으로 하는 유해식품 대책본부를 보사부에 두며 전국 각 시도에 부정식품 고발센터를 설치해 "국민이 식품만은 안심하고 먹을 수 있게 하겠다."고 말했다. 이른바 '꽁피'(담배꽁초를 섞어 만든 커피) '방부제 막걸리'가 여론의 질타를 받자 부랴부랴 내놓은 대책이었다.
76년 여름과 77년 정초의 발표처럼 연중무휴, 특별단속반을 편성해 유해식품 정책을 폈더라면 구더기 사건은 일어날 수가 없는 것이었다. 국민건강을 위해 정부 전 부처가 힘을 합쳐 일하는 것처럼 말만 그럴 듯하게 부풀려 발표했을 뿐 실질적인 단속이나 사전점검 등은 게을리 하다 구더기 파동에 휘말렸다는 것이다. 전시행정의 본보기라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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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급식 빵 식중독사건과 구더기 파동이 연이어 일어났지만 보건위생 총책임자인 보사부장관은 전혀 문책 당하지 않고 꿋꿋이 자리를 지켰다. 물론 두 사건과 관련해 '피라미'만 사법 처리됐을 뿐 의미 있는 인사들 역시 민형사상 책임을 피해갔다. 당시의 보사부장관은 오히려 그 다음해 부총리, 경제기획원장관으로 영전해 갔다.
신문들은 "구더기도 식품이냐?" "아이들 건강, 책임지는 사람이 없다"는 푸념만 하고 있었다. 오히려 한 주부가 쓴 칼럼이 사람들의 심금을 울렸다. "누군가 이렇게 말한다. '그래도 한 달이면 잊어버려요. 그러고는 라면도 사탕도 다시 팔리게 될 거예요.'…구더기가 나오더라도 그래도 유명 메이커의 상품을 사오라고 말하지 않을 수 없는 우리는 오늘도 텔레비전 앞에서 문제의 상품을 권하는 유명메이커의 CM을, 아름다운 모델의 미소를 멍청히 바라보아야만 한다."
그래서 일까. 77년 그 난리를 치른 구더기 파동이 30년이 훌쩍 지난 요즘도 이따금 우리를 공포에 몰아넣는 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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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글 민병욱 / 전 한국간행물윤리위원장
- 1976년 동아일보에 입사해 편집국 사회1부장, 정치부장, 부국장, 논설위원을 거쳤다.
2009년 7월까지 한국간행물윤리위원장을 지냈다. 저서로는 <들꽃 길 달빛에 젖어>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