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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종 경기가 도입된 뒤 6.8㎏짜리 돌 원반이나 금속 원반을 멀리 던지는 경기는 가장 인기가 높았고, 기록이 좋으면 훌륭한 선수로 평가 받았다. 권투경기는 처음 손에 가죽 끈을 감았다가 둥근 쇠고리를 끈으로 주먹에 달고 했으며, 쇠주먹(Knuckle)을 끼기도 했다. 14㎞를 달리는 전차경기의 기수만 옷을 입었고, 승리의 영광은 전차 또는 말의 소유자에게 돌아갔다. 노예가 참여한 유일한 경마경기는 안장이나 등자 없이 맨발로 탔고, 노예의 주인에게 올리브관이 돌아가고, 선수에겐 무명 머리띠를 매어주었다.
우승자의 영광, 고대 올림픽의 종말

우승자는 영웅으로 추대돼 세 번 우승하면 올림피아 성림에 조각상이 세워졌다. 그리고 세금 면제와 선물, 명예가 뒤따랐다. 우승자가 도시국가로 돌아올 때 성벽 일부를 허물어 통과시키는 의식은 우승자를 보유한 도시가 적을 두려워하지 않는다는 용맹성의 과시였다. 우승자에게 나뭇잎으로 만든 관이 돌아갔는데, 올림피아는 올리브관, 이스트미아가 솔잎관, 피티아가 월계관, 네미아는 파슬리관이었다. 마라톤 우승자에게 씌워지는 현대 올림픽의 월계관은 피티아경기에서 온 것이다.
대표적인 영웅으로는 BC 6세기 레슬링에서 6번 우승한 크로톤 출신의 밀로(Milo)는 송아지를 매고 연습한 것으로 알려졌다. BC 408년 판크라티온 우승자 데살리 출신의 폴리다마스(Polydamas)는 맨주먹으로 사자를 때려눕히고, 한 손으로 전차를 세울 만큼 힘이 강했다고 전해진다. 타소스 출신의 데아게네스(Theagenes)는 권투, 달리기, 판크라치온 등에 출전해 1400번 우승관을 받았다고 한다.
여자는 선수로 참가할 수도 없었고, 경기도 구경할 수 없었다. BC 360년 로데스의 칼리파테이라(Kallipateira)는 남장을 해 자신의 아들이 출전한 권투경기를 몰래보다 아들이 우승하자 감격해 달려 나갔다가 여자신분이 들통 나 죽음의 위기를 맞았다. 하지만 그녀의 아버지 디아고라스(Diagoras)가 BC 464년 권투챔피언으로 널리 칭송받던 터여서 다행이 목숨을 건졌다. 오로지 올림피아 입장이 허용된 유일한 여자는 풍요와 농업, 결혼의 여신인 데메테르(Demeter)의 여제사장뿐이었다.
BC 2세기 중엽 로마제국이 그리스를 정복한 뒤에도 올림픽은 계속 열렸다. 그러나 고대올림픽의 종말은 기독교의 등장으로 역사 속으로 사라진다. 393년 로마 황제 테오도시우스(Theodosious) 1세는 기독교로 개종한 뒤 올림픽을 무종교로 간주하고, 로마 시민들에게 피해를 준다는 이유로 폐지를 명했다. BC 776년부터 AD 393년까지 제293 올림피아드를 끝으로 1069년의 역사가 마감됐다. 데오도시우스 2세는 불가사의한 그리스의 유적인 제우스와 헤라 신전을 해체해 올림픽의 흔적을 말살했다. 고대 올림픽은 고고학자 크루티우스의 1875년 발굴까지 땅 속에 묻혀 있었던 것이다.
참고문헌: 방광일 엮음, [아테네에서 아테네까지], (홍경, 2005); 허복, 오동섭, [올림픽 정치사], (보경문화사, 1985); 허복, [올림픽 경기사], (동양문화사, 1982); David Young, [From Olympia 776 BC to Athens], 2004; Christopher R. Hill, [Olympic Politics, Athens to Atlanta 1896~1996], (Manchester University Press, 1996)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