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구원의 확신이 있으니 내 죄와 내면을 점검하는 말은 듣고 싶지 않다”는 태도는 성경적으로 건강한 확신의 열매라고 보기 어렵습니다. 참된 구원의 확신은 죄를 말하지 못하게 막는 방패가 아니라, 오히려 그리스도의 빛 앞에서 죄를 더 정직하게 보게 하고, 더 깊이 회개하게 하며, 더 담대히 은혜의 보좌로 나아가게 하는 복음의 힘입니다.
1. 구원의 확신은 자기 점검을 거부하지 않습니다
성경은 분명히 말합니다.
“너희는 믿음 안에 있는가 너희 자신을 시험하고 너희 자신을 확증하라.”
— 고린도후서 13:5
바울은 성도들에게 구원의 확신을 빼앗으려고 자기 점검을 명한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참된 믿음이 있는 자는 그 믿음이 그리스도께 붙어 있는 믿음인지, 아니면 자기 확신과 종교적 습관에 기대는 것인지 살펴야 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자기 점검은 불신앙의 행위가 아닙니다. 참된 자기 점검은 이런 뜻입니다.
“주님, 제가 제 자신을 스스로 의롭다 하지 않게 하소서. 제 안에 숨은 죄와 자기기만을 드러내시고, 저를 다시 그리스도의 피와 의로 인도하여 주소서.”
다윗도 이렇게 기도했습니다.
“하나님이여 나를 살피사 내 마음을 아시며… 내게 무슨 악한 행위가 있나 보시고 나를 영원한 길로 인도하소서.”
— 시편 139:23–24
이것이 참된 확신을 가진 사람의 기도입니다.
2. 참된 확신은 죄를 작게 보지 않고, 더 미워하게 합니다
거짓 확신은 이렇게 말합니다.
“나는 구원받았으니 죄 이야기는 듣고 싶지 않다.”
그러나 참된 확신은 이렇게 말합니다.
“나는 그리스도의 피로 산 자이니, 내 죄를 가볍게 여길 수 없다. 내 죄가 나를 정죄하지는 못하지만, 내 죄는 나의 주님을 찌른 것이기에 나는 그것을 미워한다.”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참으로 아는 사람은 죄를 작게 보지 않습니다. 오히려 죄가 얼마나 무서운지 더 깊이 봅니다. 왜냐하면 내 죄를 용서하시기 위해 하나님의 아들이 낮아지시고, 피 흘리시고, 저주 아래 서셨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참된 확신은 방종을 낳지 않습니다. 참된 확신은 거룩한 민감함을 낳습니다.
요한일서도 이렇게 말합니다.
“만일 우리가 죄가 없다고 말하면 스스로 속이고 또 진리가 우리 속에 있지 아니할 것이요.”
— 요한일서 1:8
참된 성도는 “나는 죄가 없다”고 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내 안에 죄가 있으나, 그 죄를 덮는 그리스도의 피가 더 크다”고 고백합니다.
3. 죄를 지적받을 때 참된 확신의 반응은 무엇인가?
참된 구원의 확신을 가진 사람은 죄를 지적받을 때 대체로 이런 반응을 보입니다.
첫째, 즉시 분노하고 막아내기보다 하나님 앞에서 살펴봅니다.
“혹시 주님이 이 말을 통해 나를 깨우시는 것은 아닌가?”
둘째, 사람의 말이라고 무조건 받아들이지는 않지만, 성경 앞에서 검토합니다.
“이 지적이 성경적으로 맞는가? 내 양심이 하나님 앞에서 찔리는가?”
셋째, 죄가 드러나면 변명보다 회개로 갑니다.
“주님, 제 안에 이런 죄가 있었습니다. 저를 불쌍히 여기소서.”
넷째, 낙심으로 끝나지 않고 그리스도께 갑니다.
참된 확신은 “나는 끝났다”가 아니라, “나에게는 대제사장이신 그리스도가 계신다”로 나아갑니다.
다섯째, 죄와 싸우려 합니다.
존 오웬은 『죄 죽임』에서 신자는 성령으로 죄를 죽이는 삶을 살아야 한다고 강조했습니다. 죄를 그냥 두고 확신만 붙드는 것은 성령의 길이 아닙니다. 출처: John Owen, Of the Mortification of Sin in Believers, ch. 2.
4. 죄 이야기를 듣기 싫어하는 태도는 왜 위험한가?
예수님은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악을 행하는 자마다 빛을 미워하여 빛으로 오지 아니하나니 이는 그 행위가 드러날까 함이요.”
— 요한복음 3:20
죄를 말하는 모든 사람이 옳다는 뜻은 아닙니다. 때로는 사람이 정죄적으로 말할 수 있고, 무례하게 말할 수 있고, 사실이 아닌 말을 할 수도 있습니다. 그런 경우에는 분별해야 합니다.
그러나 성경적이고 사랑 있는 권면마저 “나는 확신이 있으니 듣고 싶지 않다”고 거부한다면, 그것은 건강한 확신이라기보다 자기방어, 교만, 혹은 거짓 평안일 수 있습니다.
잠언은 말합니다.
“훈계를 좋아하는 자는 지식을 좋아하거니와 징계를 싫어하는 자는 짐승과 같으니라.”
— 잠언 12:1
“자기의 죄를 숨기는 자는 형통하지 못하나 죄를 자복하고 버리는 자는 불쌍히 여김을 받으리라.”
— 잠언 28:13
참된 은혜는 책망을 무시하지 않습니다. 책망을 통해 자신을 무너뜨리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께 더 가까이 가는 길로 삼습니다.
5. 그러나 자기 점검도 복음 안에서 해야 합니다
여기서 중요한 균형이 있습니다. 자기 점검은 필요하지만, 자기 점검 자체가 구원의 근거가 되어서는 안 됩니다.
잘못된 자기 점검은 계속 자기 안만 들여다보다가 절망하게 만듭니다.
참된 자기 점검은 자기 안의 죄를 본 뒤, 더 빨리 그리스도께 나아가게 합니다.
구원의 확신의 근거는 내 감정의 안정이 아닙니다. 내 변화의 정도도 최종 근거가 아닙니다. 확신의 가장 깊은 근거는 그리스도의 완전한 의, 십자가의 피, 하나님의 약속, 성령의 증거입니다.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도 참된 신자는 구원의 확신을 가질 수 있다고 가르치지만, 동시에 그 확신은 말씀과 약속, 은혜의 증거, 성령의 증거 위에 세워진다고 말합니다. 출처: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 18장 1–3항.
그러므로 우리는 이렇게 말해야 합니다.
“나는 내 죄 때문에 그리스도를 떠나는 것이 아니라, 내 죄 때문에 더욱 그리스도께 달려간다.”
6. 참된 구원의 확신은 이런 사람을 만듭니다
참된 확신은 마음을 굳게 만들지만, 양심을 딱딱하게 만들지는 않습니다.
참된 확신은 담대하게 만들지만, 교만하게 만들지는 않습니다.
참된 확신은 평안을 주지만, 죄에 무감각하게 만들지는 않습니다.
참된 확신은 그리스도 안에서 쉬게 하지만, 죄와 싸우는 손을 멈추게 하지 않습니다.
참된 확신을 가진 성도는 이렇게 고백합니다.
“나는 죄인이지만 버림받은 죄인은 아닙니다. 나는 연약하지만 그리스도 밖에 있지 않습니다. 나는 아직 싸우고 있지만, 나를 위해 죽고 부활하신 주님이 나를 붙들고 계십니다. 그러므로 나는 죄를 숨기지 않고 주께 가져갑니다. 책망을 미워하지 않고, 그 책망을 통해 나를 거룩하게 하시는 주님의 손길을 봅니다.”
7. 목회적으로 이렇게 권면하면 좋습니다
성도에게 이렇게 말해 줄 수 있습니다.
“성도님, 구원의 확신은 죄를 보지 않는 확신이 아닙니다. 참된 확신은 죄를 보아도 절망하지 않고 그리스도께 나아가는 확신입니다. 성령께서 우리 안에 계시면 죄를 덮어두게 하지 않으시고, 죄를 빛 가운데 드러내어 그리스도의 피로 씻게 하십니다. 그러므로 죄를 말하는 것이 곧 정죄는 아닙니다. 사랑 안에서 죄를 살피는 것은 하나님께서 우리를 아들답게 다루시는 은혜의 방식입니다.”
히브리서도 말합니다.
“주께서 그 사랑하시는 자를 징계하시고 그가 받아들이시는 아들마다 채찍질하심이라.”
— 히브리서 12:6
사랑받는 자이기에 책망을 받습니다. 버림받았기 때문이 아니라, 아들이기 때문입니다.
결론
참된 구원의 확신은 이런 반응을 냅니다.
“나는 그리스도 안에서 안전하다. 그러므로 내 죄를 정직하게 볼 수 있다. 나는 정죄받지 않는다. 그러므로 회개할 수 있다. 나는 하나님의 사랑에서 끊어지지 않는다. 그러므로 책망을 두려워하지 않고, 그 책망을 통해 더 거룩하게 되기를 원한다.”
그러므로 죄를 듣기 싫어하는 확신은 조심해야 합니다.
그러나 죄 때문에 절망하는 것도 복음이 아닙니다.
복음적인 길은 이것입니다.
“죄를 보라. 그러나 죄만 보지 말라. 죄를 인정하라. 그러나 죄 안에 머물지 말라. 그 죄를 가지고 십자가 아래로 가라. 거기서 그리스도의 피를 붙들라. 그리고 성령의 도우심으로 다시 거룩의 길을 걸으라.”
이것이 참된 구원의 확신이 만들어 내는 아름다운 반응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