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혁교회에 다닌다고 해서 자동으로 다 구원받는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동시에 참된 개혁교회의 말씀과 성례와 권징 아래 있는 것은 하나님이 사람을 구원하시고 자라게 하시는 귀한 은혜의 수단입니다. 문제는 “어느 교회 간판 아래 있는가”가 아니라, 그 사람이 참으로 그리스도께 연합되었는가입니다.
1. 개혁교회는 구원자가 아니라 은혜의 통로입니다
구원은 교단, 전통, 지식, 예배 참석, 직분, 오래 다닌 경력으로 받는 것이 아닙니다. 구원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피와 의, 그리고 그리스도를 붙드는 참된 믿음으로 받습니다.
예수님은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나더러 주여 주여 하는 자마다 다 천국에 들어갈 것이 아니요 다만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자라야 들어가리라.”
— 마태복음 7:21
여기서 무서운 사실은, 주님을 전혀 모른다고 말한 사람들이 아니라 “주여 주여”라고 부른 사람들 가운데도 버림받는 자들이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나는 개혁교회 다닌다”, “나는 바른 교리를 안다”, “나는 예배를 드린다”는 말만으로는 충분하지 않습니다.
개혁신앙의 교리는 우리를 구원하는 공로가 아닙니다. 그것은 우리를 그리스도께로 바르게 인도하는 등불입니다. 등불이 귀하지만, 등불 자체가 태양은 아닙니다. 교리가 귀하지만, 교리 자체가 구주가 아닙니다. 구주는 오직 그리스도이십니다.
2. 보이는 교회 안에는 참 신자와 거짓 신자가 함께 있습니다
개혁신학은 전통적으로 보이는 교회와 보이지 않는 교회를 구별합니다.
보이는 교회에는 세례 받은 자, 신앙고백을 한 자, 예배에 참여하는 자들이 있습니다. 그러나 그 안에는 참으로 중생한 자도 있고, 아직 마음이 새로워지지 않은 자도 있을 수 있습니다.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서 25장 2항은 보이는 교회를 말하고, 25장 1항은 보이지 않는 교회를 말합니다. 보이지 않는 교회는 “머리이신 그리스도 아래 하나로 모인 택자들의 총수”입니다. 다시 말해, 하나님 앞에서 참으로 구원받은 교회는 외적 명단이 아니라 그리스도께 속한 자들의 모임입니다.
가룟 유다는 예수님의 제자 공동체 안에 있었습니다. 말씀을 들었고, 기적을 보았고, 사도들과 함께 다녔습니다. 그러나 그는 그리스도께 속하지 않았습니다. 이것은 우리에게 두려운 경고입니다. 가장 거룩한 외적 환경 안에서도 마음이 그리스도께 굴복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3. 참된 구원의 표지는 바른 교리를 아는 것에서 멈추지 않습니다
바른 교리를 아는 것은 매우 중요합니다. 그러나 참된 믿음은 단순한 지식이 아닙니다. 참된 믿음은 그리스도께 마음을 맡기고, 그분을 의지하며, 그분의 다스림을 받는 것입니다.
야고보는 말합니다.
“영혼 없는 몸이 죽은 것 같이 행함이 없는 믿음은 죽은 것이니라.”
— 야고보서 2:26
이 말은 행위로 구원받는다는 뜻이 아닙니다. 참된 믿음은 반드시 살아 있는 열매를 낳는다는 뜻입니다. 나무가 살아 있으면 열매가 맺히듯이, 사람이 그리스도께 접붙여졌다면 그 안에 회개, 죄에 대한 슬픔, 은혜를 구하는 마음, 말씀에 대한 순종, 형제를 사랑하는 마음이 조금씩이라도 나타납니다.
물론 참 신자도 연약합니다. 넘어집니다. 죄와 싸우며 탄식합니다. 그러나 참 신자는 죄를 사랑하며 편안히 머물지 못합니다. 죄를 짓고도 아무렇지 않은 것이 아니라, 다시 그리스도의 피 앞으로 나아갑니다.
4. 거짓 확신은 자기를 방어하지만, 참된 확신은 그리스도께 피합니다
거짓 확신은 이렇게 말합니다.
“나는 개혁교회 다니니까 괜찮아.”
“나는 교리를 아니까 괜찮아.”
“나는 이미 구원받았으니 죄를 말하지 마.”
“나를 점검하라는 말은 듣기 싫어.”
그러나 참된 확신은 다릅니다. 참된 확신은 자기 의를 붙들지 않고 그리스도를 붙듭니다. 참된 확신은 죄를 지적받을 때 무조건 반발하지 않습니다. 마음은 아프지만, 하나님 앞에서 자신을 살핍니다.
고린도후서 13:5은 말합니다.
“너희는 믿음 안에 있는가 너희 자신을 시험하고 너희 자신을 확증하라.”
참된 신자는 이 말씀을 두려움으로 받습니다. 그러나 절망으로 받지는 않습니다. 왜냐하면 자기 안에서 구원의 근거를 찾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 안에서 구원의 근거를 찾기 때문입니다.
5. 그러면 참으로 구원받은 사람에게는 무엇이 나타나는가?
참으로 구원받은 사람에게는 완전함이 아니라 방향성이 나타납니다.
그는 죄가 없어서 구원받은 사람이 아닙니다. 죄를 미워하고 그리스도께 나아가는 사람입니다.
그는 넘어지지 않아서 구원받은 사람이 아닙니다. 넘어질 때마다 다시 주님의 피를 의지하는 사람입니다.
그는 자기 의가 많아서 구원받은 사람이 아닙니다. 자기 의가 무너지고 그리스도의 의를 붙드는 사람입니다.
그는 교리를 자랑하는 사람이 아닙니다. 교리가 가리키는 그리스도의 영광 앞에 낮아지는 사람입니다.
참된 개혁신앙은 사람을 교만하게 만들지 않습니다. 참된 개혁신앙은 사람을 더 낮아지게 합니다. 왜냐하면 개혁신앙은 인간의 전적 타락, 하나님의 주권적 은혜, 그리스도의 완전한 의, 성령의 새롭게 하심을 가르치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개혁교회를 다니면서도 마음이 높아지고, 죄를 가볍게 여기고, 자기 점검을 싫어하고, 그리스도의 십자가 앞에서 낮아짐이 없다면 심각하게 자신을 돌아보아야 합니다.
6. 그러나 연약한 성도를 정죄로 몰아가면 안 됩니다
중요한 균형이 있습니다.
“개혁교회 다닌다고 다 구원받는 것은 아니다”라는 말은 성도를 불안과 절망으로 몰아넣기 위한 말이 아닙니다. 이 말은 우리를 더 깊이 그리스도께 붙이기 위한 말입니다.
참된 성도는 자기 안을 들여다볼 때 절망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거기서 멈추면 안 됩니다. 자기 죄를 보았다면, 더 깊이 그리스도의 피를 보아야 합니다. 자기 무능을 보았다면, 더 깊이 성령의 능력을 구해야 합니다. 자기 마음의 부패를 보았다면, 더 깊이 새 언약의 은혜를 붙들어야 합니다.
에스겔 36:26에서 하나님은 말씀하십니다.
“또 새 영을 너희 속에 두고 새 마음을 너희에게 주되…”
구원은 사람이 자기 마음을 고쳐서 하나님께 올라가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죽은 마음을 살리시고, 돌 같은 마음을 제거하시고, 살 같은 마음을 주시는 은혜입니다.
7. 결론
그러므로 이렇게 말해야 합니다.
개혁교회에 다닌다고 다 구원받는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참된 개혁교회 안에서 선포되는 말씀은 사람을 참 구주이신 그리스도께로 부릅니다.
구원은 개혁교회라는 이름에 있지 않고, 개혁교회가 바르게 증거하는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습니다.
그러므로 성도는 이렇게 기도해야 합니다.
“주님, 제가 교회 안에만 있는 사람이 아니라 그리스도 안에 있는 사람이 되게 하소서. 제가 바른 교리를 아는 데서 멈추지 않고, 그 교리가 증거하는 주님의 영광 앞에 무릎 꿇게 하소서. 제 죄를 보게 하시되 절망하지 않게 하시고, 제 죄보다 크신 그리스도의 피를 보게 하소서. 제 마음을 새롭게 하시고, 참된 회개와 믿음의 열매를 맺게 하소서."
한 문장으로 정리하면 이렇습니다.
개혁교회 출석은 큰 복이지만 구원의 근거는 아닙니다. 구원의 근거는 오직 그리스도이며, 참으로 그리스도께 속한 사람은 자기 죄를 변명하지 않고 회개하며, 자기 의를 붙들지 않고 그리스도의 의를 붙듭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