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듭난 사람의 표지

작성자정명석|작성시간26.06.08|조회수16 목록 댓글 0

그리스도의 영광을 전혀 보지 못하고, 그리스도의 아름다움에 전혀 끌림이 없고, 그분을 죄인의 유일한 구주와 보배로 전혀 알지 못한다면, 그런 상태를 성경적으로 거듭남의 증거라고 말하기 어렵습니다.

그러나 동시에 조심해야 합니다. 그리스도의 영광을 ‘완전하게’ 보지 못한다고 해서 거듭나지 않은 것은 아닙니다. 참 신자도 연약하고, 어둡고, 흔들리고, 죄와 낙심 때문에 그리스도의 영광을 희미하게 볼 때가 있습니다. 문제는 “얼마나 선명하게 보느냐”만이 아니라, 그리스도께 대한 영적인 눈이 열렸는가, 그분을 붙들고자 하는 새 마음이 생겼는가입니다.

성경은 이렇게 말합니다.

“어두운 데에 빛이 비치라 말씀하셨던 그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의 얼굴에 있는 하나님의 영광을 아는 빛을 우리 마음에 비추셨느니라.”
— 고린도후서 4:6

이 말씀에 따르면 거듭남은 단지 교회 지식을 얻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어두운 마음에 빛을 비추셔서 예수 그리스도의 얼굴 안에 나타난 하나님의 영광을 알게 하시는 일입니다. 즉, 거듭난 사람은 어떤 방식으로든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의 아름다움, 거룩, 은혜, 십자가의 사랑, 중보자의 영광을 보기 시작합니다.

요한복음 1:14도 말합니다.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 우리가 그의 영광을 보니…”

사도들은 단순히 예수님의 외모를 본 것이 아닙니다. 그들은 낮아지신 육체 안에 감추어진 독생자의 영광, 은혜와 진리가 충만한 영광을 보았습니다. 이것이 영적인 봄입니다.

그러므로 정리하면 이렇습니다.

첫째, 그리스도의 영광을 전혀 보지 못하는 사람은 영적으로 아직 눈먼 상태입니다.
그리스도를 단지 종교의 대상, 도덕의 모범, 문제 해결자, 복 주는 분 정도로만 알고, 그분의 인격 자체를 귀하게 여기지 않는다면 참된 생명의 증거가 약합니다. 거듭난 영혼은 비록 연약해도 이렇게 고백하게 됩니다. “주님, 저는 주님 없이는 살 수 없습니다. 주님이 나의 의요, 생명이요, 피난처요, 보배이십니다.”

둘째, 참으로 거듭난 사람은 그리스도의 영광을 ‘조금이라도’ 봅니다.
처음부터 깊고 풍성하게 보는 것은 아닙니다. 어린아이가 태어나면 처음에는 눈도 흐리고, 힘도 약합니다. 그러나 살아 있기 때문에 빛에 반응합니다. 마찬가지로 갓 거듭난 사람도 신학적으로 깊이 설명하지 못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의 마음에는 이전에 없던 새 반응이 생깁니다. 죄가 슬퍼지고, 십자가가 귀해지고, 말씀을 듣고 싶어지고, 그리스도께 나아가고 싶은 마음이 생깁니다.

셋째, 그리스도의 영광을 본 사람은 반드시 변화되기 시작합니다.
고린도후서 3:18은 “우리가 다 수건을 벗은 얼굴로 거울을 보는 것 같이 주의 영광을 보매 그와 같은 형상으로 변화하여 영광에서 영광에 이른다”고 말합니다. 참된 봄은 반드시 닮아감으로 이어집니다. 그리스도의 영광을 본 사람은 자기 죄를 미워하게 되고, 교만을 부끄러워하게 되고, 은혜 없이는 살 수 없다는 것을 배우게 됩니다.

하지만 여기서 중요한 목회적 분별이 필요합니다.

어떤 사람은 이렇게 말할 수 있습니다. “나는 그리스도의 영광을 잘 모르겠습니다. 그러면 나는 거듭나지 않은 것입니까?”
그 질문 자체가 반드시 불신앙의 증거는 아닙니다. 오히려 참된 신자는 자신의 어두움 때문에 탄식합니다. “주님, 제 눈을 열어 주옵소서. 제가 주님의 아름다움을 더 보게 하옵소서.” 이런 탄식은 성령께서 마음 안에서 일으키시는 거룩한 갈망일 수 있습니다.

그러나 반대로 어떤 사람은 그리스도의 영광을 보지 못하면서도 전혀 괴로워하지 않습니다. 말씀을 들어도 배우려 하지 않고, 죄를 지적받아도 고치려 하지 않고, 그리스도를 사랑하는 일보다 자기 자존심과 자기 유익을 더 사랑합니다. 그런 사람은 매우 위험한 상태입니다. 그는 종교는 가질 수 있어도, 그리스도를 보배로 아는 생명은 없을 수 있습니다.

청교도 존 오웬은 『그리스도의 영광』에서 신자의 영혼은 믿음으로 그리스도의 영광을 바라볼 때 위로와 거룩함과 하늘 소망을 얻는다고 가르쳤습니다. 그의 핵심은 분명합니다. 그리스도를 보는 것이 신앙의 생명이며, 그리스도를 보지 못하는 신앙은 껍데기 신앙이 되기 쉽습니다.

그러므로 이렇게 결론 내릴 수 있습니다.

그리스도의 영광을 전혀 보지 못하고, 보기를 원하지도 않고, 그리스도께 끌리지도 않고, 그분을 자기 죄인의 구주로 붙들 마음도 없다면, 그 사람은 거듭난 사람이라고 확신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자신이 너무 어둡고, 그리스도의 영광을 충분히 보지 못하는 것이 슬프고, 그래서 “주님, 내 눈을 열어 주십시오”라고 부르짖는다면, 그 영혼은 절망할 것이 아니라 은혜의 보좌 앞으로 나아가야 합니다.

기도는 이렇게 해야 합니다.

“주 예수님, 저는 주님의 영광을 너무 희미하게 봅니다. 제 마음은 어둡고, 제 죄는 강하고, 제 사랑은 차갑습니다. 그러나 주님은 죄인을 부르러 오신 구주이십니다. 성령으로 제 눈을 열어 주셔서 십자가에 달리신 그리스도, 부활하신 그리스도, 지금도 나를 위해 중보하시는 그리스도의 영광을 보게 하옵소서. 주님을 지식으로만 알지 않게 하시고, 제 영혼의 보배로 붙들게 하옵소서.”

목회적으로 성도들에게 이렇게 권면할 수 있습니다.

“여러분, 참된 신앙은 그리스도를 이용하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를 보는 것입니다. 참된 거듭남은 종교적 열심만 생기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가 아름답게 보이기 시작하는 것입니다. 여러분의 마음에 그리스도가 귀합니까? 십자가가 여러분의 죄를 찌르면서도 동시에 여러분의 피난처가 됩니까? 주님이 없으면 안 된다는 가난한 마음이 있습니까? 그렇다면 그 눈을 더 열어 달라고 구하십시오. 그러나 그리스도 없이도 괜찮고, 죄를 고치지 않아도 괜찮고, 말씀을 통해 자신을 바꾸고 싶지 않다면 두려워하십시오. 아직 영혼이 잠들어 있을 수 있습니다.”

결국 거듭난 사람의 표지는 이것입니다.

그는 그리스도의 영광을 완전하게 보지는 못해도, 그리스도 없이는 살 수 없다는 것을 알기 시작합니다.
그는 자기 의를 자랑하지 않고, 그리스도의 의를 붙듭니다.
그는 자기 죄를 숨기기보다 십자가 앞으로 가져갑니다.
그는 주님의 영광을 더 보고 싶어 합니다.

그 작은 갈망도 은혜입니다. 그러나 그 갈망이 전혀 없다면, 그 영혼은 지금 하나님 앞에서 진지하게 깨어나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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