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도를 사랑하려면...

작성자정명석|작성시간26.06.08|조회수16 목록 댓글 0

그리스도를 사랑하려면 단순히 “사랑해야지”라고 결심하는 것만으로는 부족합니다. 말씀 안에서 그리스도의 사랑을 보고, 그 사랑을 마음에 담고, 자주 깊이 생각하여, 성령께서 그 사랑을 우리 애정에 새기시도록 해야 합니다.

그리고 그리스도를 사랑하는 묵상은 단순한 감정 훈련이 아니라, 말씀을 통해 성령께서 그리스도의 영광을 보게 하시는 은혜의 역사입니다.



1. 사랑은 “보는 것”에서 시작됩니다

사람은 알지 못하는 분을 사랑할 수 없습니다.
그리고 아름다움을 보지 못한 대상을 깊이 사랑할 수도 없습니다.

그래서 성경은 이렇게 말합니다.

“우리가 사랑함은 그가 먼저 우리를 사랑하셨음이라.”
— 요한일서 4:19

우리가 먼저 주님을 사랑해서 구원받은 것이 아닙니다.
주님께서 먼저 우리를 사랑하셨고, 그 사랑을 복음 안에서 보여 주셨습니다. 그러므로 신자의 사랑은 이렇게 시작됩니다.

“주님, 내가 주님을 사랑하려고 억지로 마음을 짜내는 것이 아니라, 주님께서 나 같은 죄인을 먼저 사랑하신 그 사랑을 보게 하소서.”

그리스도의 사랑을 보지 못하면 신앙은 쉽게 의무만 남습니다. 그러나 그리스도의 사랑을 보면 의무가 사랑으로 바뀌기 시작합니다.



2. 말씀을 통해 그리스도의 사랑을 마음에 담아야 합니다

그리스도의 사랑은 막연한 분위기가 아닙니다.
그 사랑은 말씀 속 사건과 약속과 십자가 안에 드러난 사랑입니다.

예수님께서 하늘 영광을 버리고 낮아지신 것, 죄인들과 함께하신 것, 병든 자와 상한 자를 불쌍히 여기신 것, 십자가에서 자기 몸을 내어주신 것, 부활하셔서 지금도 우리를 위해 중보하시는 것, 이것이 다 그리스도의 사랑입니다.

바울은 이렇게 말합니다.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사랑하사 우리를 위하여 자신을 버리사…”
— 에베소서 5:2

그러므로 묵상은 이렇게 해야 합니다.

“예수님께서 왜 나 같은 자를 위해 자신을 버리셨는가?
왜 나의 죄와 부끄러움을 아시면서도 나를 버리지 않으셨는가?
왜 나를 정죄하지 않고 자기 피로 씻으셨는가?
왜 지금도 나를 위해 아버지 우편에서 중보하시는가?”

이렇게 말씀을 붙들고 깊이 생각할 때, 마음은 점점 차가운 지식에서 따뜻한 사랑으로 옮겨갑니다.



3. 마음이 애릴 정도로 생각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어느 정도는 마음이 애릴 정도로 생각해야 합니다.
그리스도의 사랑은 너무 크기 때문에, 참으로 그 사랑을 보면 마음이 그냥 무덤덤할 수 없습니다.

“나를 사랑하사 나를 위하여 자기 자신을 버리신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바울이 고백합니다.

“나를 사랑하사 나를 위하여 자기 자신을 버리신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 안에서 사는 것이라.”
— 갈라디아서 2:20

여기서 바울은 교리만 말하지 않습니다.
그는 그리스도의 대속을 자기 영혼 깊은 곳에 적용하고 있습니다.

“그리스도께서 죄인을 사랑하셨다”에서 멈추지 않고,
“그리스도께서 나를 사랑하셨다”로 들어갑니다.

이것이 애정 있는 묵상입니다.
교리는 머리에만 머물지 않고, 양심을 찌르고, 마음을 녹이고, 의지를 움직입니다.



4. 그러나 감정 자체를 목표로 삼으면 안 됩니다

여기서 조심할 것이 있습니다.
우리가 추구해야 하는 것은 감정 자체가 아니라 그리스도 자신입니다.

어떤 사람은 눈물이 나야 은혜라고 생각합니다.
어떤 사람은 마음이 뜨거워야만 참된 신앙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참된 묵상의 목적은 “내가 감동받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를 더 믿고, 더 사랑하고, 더 순종하는 것”입니다.

감정은 귀한 열매일 수 있지만, 뿌리는 아닙니다.
뿌리는 말씀 안에 계신 그리스도입니다.

그러므로 이렇게 기도해야 합니다.

“주님, 내 감정을 억지로 만들지 않게 하소서.
그러나 주님의 사랑을 차갑게 지나치지도 않게 하소서.
말씀 안에서 주님의 사랑을 보게 하시고, 그 사랑이 내 마음을 붙잡게 하소서.”



5. 청교도적으로 말하면, 사랑은 ‘거룩한 사유’로 불붙습니다

존 오웬은 『그리스도의 영광』에서 신자가 그리스도의 영광을 바라보는 것이 영혼을 변화시키는 핵심이라고 설명합니다. 그는 고린도후서 3:18을 따라, 우리가 주의 영광을 바라볼 때 같은 형상으로 변화된다고 말합니다.

“우리가 다 수건을 벗은 얼굴로 거울을 보는 것 같이 주의 영광을 보매 그와 같은 형상으로 변화하여…”
— 고린도후서 3:18

토마스 굿윈도 그리스도의 마음을 설명하면서, 승천하신 그리스도께서 여전히 자기 백성을 향해 부드럽고 긍휼 많은 마음을 가지신 분이라고 강조했습니다. 이것은 신자의 마음을 담대하게 합니다. “주님이 나를 싫어하실 것이다”가 아니라, “주님은 상한 자를 불쌍히 여기시는 대제사장이시다”라고 믿게 합니다.

사무엘 러더퍼드는 그리스도의 사랑을 자주 묵상하며, 그 사랑이 신자의 마음을 사로잡아 세상의 사랑을 약하게 만든다고 말했습니다. 그의 편지들에는 그리스도의 아름다움에 대한 깊은 애정이 가득합니다.



6. 실제로 이렇게 묵상하면 좋습니다

먼저 말씀 한 구절을 붙듭니다.

예를 들어 갈라디아서 2:20입니다.

“나를 사랑하사 나를 위하여 자기 자신을 버리신 하나님의 아들.”

그리고 천천히 마음으로 묻습니다.

“주님은 누구신가?
하나님의 아들이시다.
그런데 그분이 무엇을 하셨는가?
자기 자신을 버리셨다.
누구를 위해 버리셨는가?
나 같은 죄인을 위해 버리셨다.
왜 그렇게 하셨는가?
나를 사랑하셨기 때문이다.”

그다음 이렇게 기도합니다.

“주 예수님, 제가 주님의 사랑을 너무 가볍게 여겼습니다.
십자가를 알면서도 마음은 자주 차가웠습니다.
주님의 피를 말하면서도 죄를 미워하지 않았습니다.
주님의 사랑을 들으면서도 제 마음은 세상 사랑에 쉽게 빼앗겼습니다.
성령님, 말씀으로 제 눈을 열어 주님의 사랑을 보게 하소서.
제 마음이 주님의 사랑 앞에서 녹게 하소서.
주님을 억지로 따르는 종이 아니라, 사랑에 붙들린 자녀로 살게 하소서.”



7. 결론적으로

그리스도를 사랑하려면, 반드시 그리스도의 사랑을 자주 보아야 합니다.
그리고 그 사랑을 말씀 속에서 보고, 마음에 담고, 깊이 생각하고, 기도로 다시 주님께 가져가야 합니다.

사랑은 한 번의 감동으로 유지되지 않습니다.
매일 그리스도의 사랑을 다시 보아야 합니다.
매일 십자가 앞에 다시 서야 합니다.
매일 “주님이 나를 먼저 사랑하셨다”는 복음으로 마음을 적셔야 합니다.

그러면 성령께서 차가운 마음을 녹이십니다.
딱딱한 양심을 부드럽게 하십니다.
의무로 끌려가던 신앙을 사랑으로 움직이게 하십니다.
그리고 마침내 신자는 이렇게 고백하게 됩니다.

“주님, 제가 주님을 사랑합니다.
그러나 제 사랑은 너무 작습니다.
주님께서 먼저 저를 사랑하신 그 사랑으로, 제 마음을 더 붙들어 주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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