쉽게 상처 받는 마음의 뿌리
사람이 쉽게 상처 받는 데에는 여러 이유가 있습니다.
어떤 사람은 과거의 아픔 때문에 작은 말에도 크게 흔들립니다.
어떤 사람은 사람에게 인정받고 싶은 마음이 커서, 조금만 무시당한 것 같아도 마음이 무너집니다.
어떤 사람은 자기 생각과 기대가 강해서, 상대가 자기 뜻대로 반응하지 않으면 배신감과 분노를 느낍니다.
또 어떤 사람은 죄로 인해 마음이 자기중심적으로 굳어져서, 모든 말을 자기 공격으로 받아들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쉽게 상처 받는 사람을 무조건 정죄해서는 안 됩니다.
그러나 동시에 그 마음을 그대로 의롭다고 인정해서도 안 됩니다.
성경은 말합니다.
“노하기를 더디 하는 것이 사람의 슬기요 허물을 용서하는 것이 자기의 영광이니라”
— 잠언 19:11
참된 지혜는 모든 말에 즉각 반응하지 않습니다. 참된 신앙은 모든 상처를 마음속에 쌓아 두지 않습니다. 은혜를 받은 사람은 자신이 하나님 앞에서 얼마나 많이 용서받았는지를 알기 때문에, 다른 사람의 연약함도 십자가 아래에서 다시 해석하려고 합니다.
상처 받는 마음과 교만의 관계
쉽게 상처 받는 마음 안에는 때때로 숨은 교만이 있습니다.
“왜 나를 이렇게 대하지?”
“왜 나를 인정하지 않지?”
“왜 내 마음을 몰라주지?”
“왜 나에게 이렇게 말하지?”
이런 마음은 겉으로는 약해 보이지만, 깊은 곳에서는 자기 자신이 중심이 되어 있을 수 있습니다. 물론 모든 상처가 교만에서 온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상처가 반복적으로 분노와 불신과 단절로 이어진다면, 우리는 자신의 마음을 정직하게 살펴야 합니다.
청교도들은 죄를 단순히 겉 행동에서만 보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마음의 뿌리를 보았습니다. 존 오웬은 신자 안에도 죄가 남아 있으며, 그 죄는 마음의 생각과 감정과 의지를 통해 계속 역사한다고 설명했습니다. 그러므로 상처 받은 마음도 그냥 감정으로만 보지 말고, 그 안에서 불신, 자기 사랑, 분노, 쓴 뿌리, 사람 두려움이 어떻게 역사하는지 살펴야 합니다.
출처: John Owen, The Mortification of Sin, ch. 3–4.
참된 신앙은 상처를 사랑으로 바꾸어 간다
참된 신앙의 증거는 상처가 전혀 없는 것이 아닙니다.
참된 신앙의 증거는 상처 속에서도 주님께 순종하려는 마음입니다.
예수님은 말씀하셨습니다.
“새 계명을 너희에게 주노니 서로 사랑하라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 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
— 요한복음 13:34
여기서 기준은 “내가 상처받지 않을 만큼만 사랑하라”가 아닙니다.
기준은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 같이 사랑하라”입니다.
그리스도께서는 사랑받을 만한 우리를 사랑하신 것이 아닙니다. 죄인 된 우리, 하나님을 거역하던 우리, 은혜를 받을 자격 없는 우리를 사랑하셨습니다. 그러므로 복음은 우리에게 이렇게 말합니다.
“너도 이제 사람을 네 감정의 기준으로만 보지 말고, 십자가의 눈으로 보아라.”
물론 이것은 악을 방치하라는 뜻이 아닙니다. 반복적인 폭언, 학대, 조롱, 영적 폭력은 지혜롭게 분별하고 필요한 경계를 세워야 합니다. 그러나 단순한 말실수, 성격 차이, 장난스러운 표현, 내 기대와 다른 반응까지 모두 공격으로 받아들이며 마음을 닫는 것은 성숙한 신앙의 모습이 아닙니다.
참된 신앙은 불신이 아니라 사랑의 분별로 나아간다
성도들과의 관계에서 자주 마음을 닫는 사람은 이렇게 생각할 수 있습니다.
“나는 상처받기 싫어서 교제하지 않는 것이다.”
그러나 신앙적으로 보면 이렇게 물어야 합니다.
“나는 정말 지혜롭게 조심하는 것인가, 아니면 사랑하기 싫어서 피하는 것인가?”
“나는 상처를 피하는 것인가, 아니면 십자가의 길을 피하는 것인가?”
“나는 사람을 분별하는 것인가, 아니면 모든 사람을 불신하는 것인가?”
성경은 성도에게 분별을 가르칩니다. 그러나 동시에 사랑도 명령합니다.
“사랑은 오래 참고 사랑은 온유하며… 성내지 아니하며 악한 것을 생각하지 아니하며”
— 고린도전서 13:4–5
여기서 “악한 것을 생각하지 아니한다”는 것은 아무 잘못도 판단하지 말라는 뜻이 아닙니다. 상대의 모든 행동을 최악으로 해석하며 마음에 기록해 두지 말라는 뜻입니다.
참된 신앙은 사람을 무조건 믿는 순진함이 아닙니다.
그러나 참된 신앙은 모든 사람을 의심하는 냉소도 아닙니다.
참된 신앙은 그리스도 안에서 지혜롭게 사랑하는 것입니다.
쉽게 상처 받는 마음을 고치는 실제 길
첫째, 상처를 받은 즉시 사람에게 먼저 달려가지 말고 하나님께 먼저 가져가야 합니다.
“주님, 제 마음이 흔들립니다. 제가 지금 사실을 보고 있습니까, 아니면 제 감정으로 해석하고 있습니까?”
둘째, 상대의 말을 최악으로 해석하지 말아야 합니다.
상처 많은 마음은 작은 말도 크게 확대합니다. 그래서 사실보다 해석이 더 큰 고통을 만듭니다.
셋째, 내 안의 자존심과 인정 욕구를 회개해야 합니다.
상처의 뿌리에는 종종 “나는 이렇게 대접받아야 한다”는 마음이 숨어 있습니다.
넷째,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오래 바라보아야 합니다.
주님은 모욕을 받으셨으나 맞대어 모욕하지 않으셨습니다. 고난을 받으셨으나 위협하지 않으셨습니다. 오히려 공의로 심판하시는 하나님께 부탁하셨습니다.
“욕을 당하시되 맞대어 욕하지 아니하시고 고난을 당하시되 위협하지 아니하시고 오직 공의로 심판하시는 이에게 부탁하시며”
— 베드로전서 2:23
다섯째, 교제를 끊지 말고 은혜 안에서 천천히 배워야 합니다.
교회는 완전한 사람들의 모임이 아니라, 그리스도의 피로 용서받은 죄인들이 함께 성화되어 가는 공동체입니다.
결론: 참된 신앙은 상처를 품는 신앙이 아니라 십자가로 가져가는 신앙이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쉽게 상처 받는 마음을 그대로 방치하지 마십시오.
그 마음을 정죄만 하지도 마십시오.
그 마음을 그리스도께 가져가십시오.
주님은 상한 마음을 아십니다.
그러나 주님은 그 마음이 불신과 분노와 단절 속에 갇히기를 원하지 않으십니다.
주님은 그 마음을 십자가의 사랑으로 녹이시고, 성령의 은혜로 넓히시며, 성도의 교제 안에서 훈련시키십니다.
참된 신앙은 이렇게 고백합니다.
“주님, 저는 쉽게 상처받습니다. 그러나 제 상처가 제 왕이 되게 하지 마옵소서. 그리스도께서 제 왕이 되게 하옵소서. 사람의 말보다 주님의 사랑이 제 마음을 다스리게 하옵소서. 제가 받은 상처보다 제가 받은 용서가 더 크게 보이게 하옵소서. 십자가에서 저를 용서하신 주님처럼, 저도 사랑하고 용서하고 섬기게 하옵소서.”
이것이 참된 신앙의 길입니다.
상처 없는 마음이 아니라, 상처를 그리스도께 복종시키는 마음입니다.
닫힌 마음이 아니라, 십자가의 은혜로 다시 열리는 마음입니다.
사람 중심의 감정이 아니라, 그리스도의 사랑으로 다스림 받는 마음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