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그리스도로 모든 것을 만족하는가?”

작성자정명석|작성시간26.06.08|조회수14 목록 댓글 0

“나는 그리스도로 모든 것을 만족하는가?”

“내 모든 동기가 그리스도의 영광으로부터 나오는가?”

이 질문 앞에서 참된 신자는 쉽게 “예, 그렇습니다”라고 말하지 못합니다. 오히려 이렇게 고백하게 됩니다.

“주님, 저는 그리스도만으로 만족해야 마땅한 자입니다. 그러나 제 안에는 아직도 그리스도 외의 것에서 위로와 인정과 안전과 기쁨을 찾으려는 죄가 남아 있습니다. 주님, 저를 불쌍히 여겨 주옵소서.”

1. 그리스도로 만족한다는 뜻

그리스도로 만족한다는 것은 세상 것들이 전혀 필요 없다는 뜻이 아닙니다. 가정, 건강, 물질, 관계, 사역, 교회, 평안은 모두 하나님의 선물입니다. 그러나 그것들이 내 영혼의 주인이 되어서는 안 됩니다.

그리스도로 만족한다는 것은 이런 뜻입니다.

“주님이 내게 계시면, 나는 모든 것을 잃어도 완전히 버림받은 자가 아니다. 주님이 나를 사랑하시면, 사람의 인정이 없어도 나는 비참한 자가 아니다. 주님이 나의 의와 생명과 소망이시면, 내 형편이 흔들려도 내 영혼의 기초는 무너지지 않는다.”

바울은 말합니다.

“그러나 무엇이든지 내게 유익하던 것을 내가 그리스도를 위하여 다 해로 여길뿐더러… 내 주 그리스도 예수를 아는 지식이 가장 고상하기 때문이라”
— 빌립보서 3:7–8

여기서 바울은 세상 자체를 악하다고 말한 것이 아닙니다. 그는 그리스도와 비교될 때, 그리스도 아닌 모든 것이 궁극의 자리가 될 수 없다는 것을 말합니다.

그리스도는 신자의 부가적인 위로가 아니라, 신자의 생명 자체입니다.

2. 그러나 신자 안에는 아직 혼합된 동기가 있습니다

우리가 솔직히 자신을 살피면, 모든 동기가 순수하게 그리스도의 영광에서만 나온다고 말하기 어렵습니다.

우리는 때로 하나님을 섬기면서도 사람에게 인정받고 싶어합니다.
말씀을 전하면서도 내가 옳다는 것을 증명하고 싶어합니다.
교회를 사랑한다고 하면서도 내 자존심이 상하면 쉽게 무너집니다.
헌신한다고 하면서도 속으로는 보상과 칭찬을 기대합니다.
주님을 위한다고 하면서도 내 이름이 사라지는 것을 두려워합니다.

이것이 죄가 남아 있는 신자의 현실입니다.

존 오웬은 『죄 죽임』에서 신자 안에 남아 있는 죄는 가만히 두면 반드시 역사한다고 설명합니다. 죄는 죽임당하지 않으면 우리를 약하게 하고, 우리의 순종까지 더럽히려 합니다. 그러므로 참된 신자는 자기 동기를 늘 말씀 앞에서 살펴야 합니다.

다윗도 이렇게 기도했습니다.

“하나님이여 내 속에 정한 마음을 창조하시고 내 안에 정직한 영을 새롭게 하소서”
— 시편 51:10

이 기도는 이미 하나님을 아는 자의 기도입니다. 참된 신자는 자기 안의 불순함을 보며 절망만 하지 않고, 정결하게 하시는 하나님께 나아갑니다.

3. 참된 신자는 “완전한 동기”가 아니라 “새로운 중심”을 가진 자입니다

중요한 것은 이것입니다.

참된 신자는 모든 동기가 완전히 순수해진 사람이 아닙니다. 그러나 참된 신자는 새로운 중심을 가진 사람입니다.

그 중심은 자기 영광이 아니라 그리스도의 영광입니다.
자기 의가 아니라 그리스도의 의입니다.
자기 만족이 아니라 그리스도 안에서의 만족입니다.
자기 이름이 아니라 주님의 이름입니다.

그래서 신자는 넘어져도 다시 묻습니다.

“주님, 이것이 정말 주님의 영광을 위한 것입니까? 아니면 내 자존심을 위한 것입니까? 이것이 주님을 사랑해서 하는 것입니까? 아니면 내가 인정받고 싶어서 하는 것입니까?”

이 질문을 하는 양심 자체가 은혜의 흔적입니다. 죽은 양심은 자기 동기를 의심하지 않습니다. 굳은 마음은 자기 속의 우상을 보려 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성령께서 역사하시는 마음은 자기 안의 불순물을 슬퍼합니다.

웨스트민스터 소요리문답 1문은 이렇게 말합니다.

“사람의 제일 되는 목적은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고, 영원토록 그를 즐거워하는 것이다.”

이 말은 신자의 삶 전체를 꿰뚫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기 위해 지음받았고, 그 하나님을 즐거워할 때 가장 참된 만족을 얻습니다.

4. 그리스도의 영광이 동기가 된다는 것은 무엇인가

그리스도의 영광이 동기가 된다는 것은 단지 “주님께 영광”이라는 말을 자주 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것은 그리스도의 아름다움이 마음을 붙잡는 것입니다.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아들이시면서 종의 형체를 입으셨습니다.
영광의 주님이시면서 죄인들을 위하여 낮아지셨습니다.
죄 없으신 분이 죄인처럼 정죄받으셨습니다.
왕이신 분이 가시관을 쓰셨습니다.
대제사장이신 분이 자기 몸을 제물로 드리셨습니다.
선지자이신 분이 하나님의 뜻을 완전히 드러내셨습니다.
중보자이신 분이 하나님과 죄인 사이를 자기 피로 화목하게 하셨습니다.

이 그리스도를 볼 때 신자의 마음은 이렇게 움직입니다.

“내가 어찌 나를 위해 살겠는가? 나를 위하여 죽으시고 다시 살아나신 주님을 위하여 살아야 하지 않겠는가?”

바울은 말합니다.

“그가 모든 사람을 대신하여 죽으심은 살아 있는 자들로 하여금 다시는 그들 자신을 위하여 살지 않고 오직 그들을 대신하여 죽었다가 다시 살아나신 이를 위하여 살게 하려 함이라”
— 고린도후서 5:15

이것이 복음적 동기입니다. 율법주의적 동기는 두려움과 자기 의에서 나옵니다. 그러나 복음적 동기는 십자가에 나타난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나옵니다.

5. 그러면 우리는 어떻게 하나님께 나아가야 하는가

우리는 자기 동기가 완전히 깨끗해진 후에 하나님께 나아가는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동기가 더럽기 때문에 그리스도께 나아갑니다.

이렇게 기도해야 합니다.

“주님, 저는 주님만으로 만족한다고 말하지만, 아직도 사람의 인정과 세상의 안정과 내 뜻의 성취를 붙들고 있습니다. 주님, 제 마음의 우상을 보여 주옵소서. 그러나 저를 정죄 가운데 버려두지 마시고, 십자가의 사랑으로 제 마음을 녹여 주옵소서. 그리스도의 영광이 제 마음의 가장 큰 기쁨이 되게 하옵소서.”

신자의 길은 이것입니다.

먼저, 말씀 안에서 그리스도를 바라보아야 합니다.
둘째, 자신의 마음속 동기를 정직하게 살펴야 합니다.
셋째, 불순한 동기를 발견할 때 절망하지 말고 회개해야 합니다.
넷째, 그리스도의 피와 의를 다시 붙들어야 합니다.
다섯째, 성령께서 마음의 사랑을 새롭게 하시도록 구해야 합니다.
여섯째, 작은 순종 속에서도 “주님을 기쁘시게 하려는 마음”을 훈련해야 합니다.

6. 결론적으로

완성된 성도는 “나는 언제나 그리스도로만 만족합니다”라고 자랑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성숙한 성도는 이렇게 고백합니다.

“주님, 저는 아직도 부족합니다. 제 마음에는 그리스도 외의 것을 붙들려는 죄가 남아 있습니다. 그러나 저는 압니다. 그리스도만이 제 영혼의 참 만족이십니다. 그리스도만이 제 의이십니다. 그리스도만이 제 생명이십니다. 그리스도만이 제 영광이십니다. 그러므로 오늘도 제 마음을 주님께 돌이킵니다.”

참된 신앙은 완전한 자기 확신이 아니라, 그리스도께로 계속 돌아가는 믿음입니다.

그러므로 질문은 이렇게 바뀌어야 합니다.

“나는 완전히 그리스도로만 만족하는가?”
이 질문 앞에서는 회개해야 합니다.

그러나 동시에 이렇게 물어야 합니다.

“나는 그리스도 외에는 참된 만족이 없다는 것을 알고, 다시 그리스도께 돌아가고 있는가?”
여기에 은혜의 증거가 있습니다.

그리스도는 우리의 만족이시며, 우리의 동기이시며, 우리의 의이시며, 우리의 상급이십니다. 신자의 삶은 날마다 이 고백으로 돌아가는 삶입니다.

“주님, 제게 주님 자신을 주소서. 그러면 저는 모든 것을 가진 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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