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탄은 사람이 성경을 아예 못 읽게만 하는 것이 아니라, 성경을 읽어도 그 중심이신 그리스도의 영광을 보지 못하게 합니다. 그 방법 중 하나가 바로 인본주의적 사고, 곧 하나님 중심이 아니라 사람 중심으로 성경을 해석하게 만드는 것입니다.
고린도후서 4장 4절은 이렇게 말합니다.
“그 중에 이 세상 신이 믿지 아니하는 자들의 마음을 혼미케 하여 그리스도의 영광의 복음의 광채가 비취지 못하게 함이니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형상이니라.”
여기서 사탄의 목적은 분명합니다.
그는 사람들이 종교 생활을 조금 하는 것 자체를 가장 두려워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가 가장 두려워하는 것은 그리스도의 영광을 보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사람이 성령 안에서 그리스도의 영광을 보면, 자기 의가 무너지고, 죄가 드러나고, 십자가의 사랑에 붙잡히고, 참된 회개와 믿음으로 하나님께 돌아오기 때문입니다.
⸻
1. 사탄의 첫 번째 원리: 성경의 중심을 하나님에게서 사람에게로 옮긴다
성경의 중심은 인간의 성공, 위로, 가능성, 자존감이 아닙니다.
성경의 중심은 하나님의 영광과 그리스도의 구속입니다.
예수님께서 친히 말씀하셨습니다.
“너희가 성경에서 영생을 얻는 줄 생각하고 성경을 연구하거니와 이 성경이 곧 내게 대하여 증언하는 것이니라.”
— 요한복음 5:39
또 부활하신 주님은 엠마오로 가는 제자들에게 모세와 선지자의 글로부터 시작하여 자기에 관한 것을 풀어 주셨습니다.
“이에 모세와 모든 선지자의 글로 시작하여 모든 성경에 쓴 바 자기에 관한 것을 자세히 설명하시니라.”
— 누가복음 24:27
그러므로 성경을 바르게 읽는다는 것은 모든 본문에서 억지로 예수님의 이름만 붙이는 것이 아닙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거룩, 인간의 죄, 언약, 제사, 왕국, 심판, 회복, 성전, 제사장, 선지자, 왕, 새 창조의 흐름이 결국 그리스도 안에서 어떻게 성취되는지를 보는 것입니다.
그런데 사탄은 성경의 중심을 바꿉니다.
“하나님이 누구신가?”에서 “나는 무엇을 얻을 수 있는가?”로 바꿉니다.
“그리스도께서 무엇을 이루셨는가?”에서 “내가 어떻게 더 나아질 수 있는가?”로 바꿉니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에서 “내 삶이 어떻게 편안해질 수 있는가?”로 바꿉니다.
이것이 인본주의적 성경 읽기입니다.
겉으로는 성경을 말하지만, 실제 중심은 사람이 됩니다.
하나님의 영광보다 내 감정이 중심이 되고, 그리스도의 십자가보다 내 문제 해결이 중심이 되고, 회개보다 자기 위로가 중심이 됩니다.
⸻
2. 사탄의 두 번째 원리: 그리스도의 영광을 도덕 교훈으로 축소한다
사탄은 사람들이 성경을 도덕책처럼만 읽게 만듭니다.
예를 들면 다윗과 골리앗을 읽을 때, 인본주의적 사고는 이렇게 말합니다.
“너도 다윗처럼 용기를 가져라. 네 인생의 골리앗을 이겨라.”
물론 성도는 믿음으로 담대해야 합니다. 그러나 본문의 중심이 단지 “용기 있는 사람이 되자”로 끝나면, 그리스도의 영광이 가려집니다.
다윗은 단순히 용감한 소년이 아닙니다. 그는 하나님의 기름 부음 받은 왕으로서, 자기 백성을 대신하여 원수를 무너뜨린 대표자입니다. 이것은 참 왕이신 그리스도께서 자기 백성을 대신하여 죄와 사탄과 사망을 이기실 것을 보여 줍니다.
성경을 도덕 교훈으로만 읽으면 결국 결론이 항상 “네가 더 잘해야 한다”가 됩니다.
그러나 복음적으로 읽으면 결론이 먼저 “그리스도께서 이루셨다”가 되고, 그 은혜 안에서 “그러므로 이제 믿음으로 순종하라”가 됩니다.
이 차이가 매우 중요합니다.
인본주의적 성경 읽기는 사람을 격려하는 것 같지만 결국 사람을 자기 힘에 가둡니다.
그리스도 중심의 성경 읽기는 먼저 사람을 무너뜨립니다. “나는 구원자가 아니구나. 나는 내 죄를 이길 수 없구나.” 그리고 곧바로 그리스도를 보게 합니다. “주님이 나의 의요, 나의 대속자요, 나의 왕이시구나.”
⸻
3. 사탄의 세 번째 원리: 십자가를 감동으로만 만들고 대속의 영광을 가린다
십자가는 단순히 감동적인 사랑 이야기가 아닙니다.
십자가는 하나님의 공의와 사랑이 그리스도 안에서 함께 드러난 구속의 중심입니다.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에 대한 자기의 사랑을 확증하셨느니라.”
— 로마서 5:8
“하나님이 죄를 알지도 못하신 이를 우리를 대신하여 죄로 삼으신 것은 우리로 하여금 그 안에서 하나님의 의가 되게 하려 하심이라.”
— 고린도후서 5:21
사탄은 십자가를 보게 하되, 그 의미를 흐리게 합니다.
십자가를 보면서도 죄의 무서움을 보지 못하게 합니다.
십자가를 말하면서도 하나님의 공의를 보지 못하게 합니다.
십자가를 감동으로만 여기게 하고, 나의 죄책이 그리스도께 전가되었고 그리스도의 의가 내게 전가되었다는 복음의 영광을 보지 못하게 합니다.
그러면 십자가는 단지 “예수님이 나를 사랑하셨다”는 감정적 위로가 됩니다.
그러나 성경적 십자가는 그보다 훨씬 깊습니다.
십자가는 이렇게 말합니다.
“너의 죄는 하나님의 아들이 죽으셔야 할 만큼 무겁다.
그러나 하나님의 사랑은 그 아들을 내어주실 만큼 크다.
너는 네 의로 하나님께 갈 수 없다.
그러나 그리스도의 피로 담대히 하나님께 나아갈 수 있다.”
이것이 십자가의 사랑의 영광입니다.
⸻
4. 사탄의 네 번째 원리: 인간의 이성과 감정을 최종 기준으로 세운다
인본주의적 사고의 핵심은 이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나를 판단하는 것이 아니라, 내가 하나님의 말씀을 판단하는 자리로 올라가는 것입니다.
이것은 에덴동산에서부터 시작되었습니다. 사탄은 하와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의심하게 했습니다.
“뱀이 여자에게 물어 이르되 하나님이 참으로 너희에게 동산 모든 나무의 열매를 먹지 말라 하시더냐.”
— 창세기 3:1
사탄의 전략은 언제나 같습니다.
첫째, 하나님의 말씀을 의심하게 합니다.
둘째, 하나님의 선하심을 의심하게 합니다.
셋째, 인간 자신을 최종 판단자로 세웁니다.
오늘날도 마찬가지입니다.
“내가 이해되지 않으면 받아들이지 않겠다.”
“내 감정이 불편하면 이 말씀은 나에게 맞지 않는다.”
“내 경험과 다르면 이 교리는 너무 딱딱하다.”
“내 상처를 건드리면 사랑이 아니다.”
“내 죄를 지적하면 정죄다.”
물론 성경은 상처 입은 영혼을 무자비하게 짓밟지 않습니다. 주님은 상한 갈대를 꺾지 않으십니다. 그러나 참된 위로는 죄를 덮어 주는 것이 아니라, 죄인을 그리스도께 데려가는 것입니다.
인간의 감정과 경험이 말씀 위에 올라가면, 사람은 더 이상 말씀 앞에서 회개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말씀을 자기 마음에 맞게 편집합니다. 이것이 마음이 혼미해진 상태입니다.
⸻
5. 사탄의 다섯 번째 원리: 자기 의와 자기 연민을 동시에 사용한다
사탄은 두 가지 반대되는 길로 사람을 속입니다.
하나는 자기 의입니다.
“나는 그래도 괜찮은 사람이다. 나는 교회도 다니고, 봉사도 하고, 남들보다 낫다.”
다른 하나는 자기 연민입니다.
“나는 너무 상처받았다. 그러니 내 죄와 불신앙은 어쩔 수 없다. 하나님도 나를 이해하실 것이다.”
겉으로는 반대처럼 보이지만, 둘 다 중심은 자기 자신입니다.
자기 의는 십자가를 필요 없게 만듭니다.
자기 연민은 회개를 미루게 만듭니다.
자기 의는 그리스도의 의를 가립니다.
자기 연민은 그리스도의 위로보다 자기 감정에 머물게 합니다.
복음은 이 둘을 모두 깨뜨립니다.
십자가 앞에서 자기 의는 무너집니다.
“내 의로는 하나님 앞에 설 수 없구나.”
십자가 앞에서 자기 연민도 정화됩니다.
“내 상처보다 더 깊은 그리스도의 상처가 나를 살렸구나. 이제 나는 내 아픔을 핑계로 죄를 붙들 것이 아니라, 상처 입은 구주께 나아가야 하겠구나.”
이것이 성령께서 하시는 일입니다.
⸻
6. 사탄의 여섯 번째 원리: 성령의 조명 없이 성경을 다 안다고 착각하게 한다
고린도전서 2장 14절은 말합니다.
“육에 속한 사람은 하나님의 성령의 일들을 받지 아니하나니 이는 그것들이 그에게는 어리석게 보임이요 또 그는 그것들을 알 수도 없나니 그러한 일은 영적으로 분별되기 때문이라.”
성경은 지식으로만 열리지 않습니다.
문법을 알고, 배경을 알고, 신학 용어를 알아도 성령의 조명이 없으면 그리스도의 영광을 보지 못할 수 있습니다.
사탄은 사람에게 이런 착각을 줍니다.
“나는 이미 안다.”
“나는 오래 믿었다.”
“나는 교리를 안다.”
“나는 개혁주의를 안다.”
“나는 설교를 많이 들었다.”
그러나 그리스도의 영광을 실제로 보지 못하면, 지식은 사람을 낮추지 않고 교만하게 만듭니다. 교리는 그리스도께 무릎 꿇게 하지 않고 남을 판단하는 도구가 됩니다. 성경 지식은 회개의 빛이 되지 않고 논쟁의 무기가 됩니다.
참된 성령의 조명은 사람을 낮춥니다.
그리스도를 높입니다.
죄를 미워하게 합니다.
십자가를 붙들게 합니다.
성도를 사랑하게 합니다.
하나님의 영광을 삶의 목적으로 삼게 합니다.
존 오웬은 『그리스도의 영광』에서 신자의 큰 특권은 믿음으로 그리스도의 영광을 바라보는 것이라고 설명했습니다. 그리고 그 영광을 보는 것은 단순한 지적 이해가 아니라, 성령께서 말씀 안에서 그리스도의 아름다움을 영혼에 비추시는 은혜입니다.
출처: John Owen, Meditations and Discourses on the Glory of Christ, in The Works of John Owen, Vol. 1.
⸻
7. 사탄의 일곱 번째 원리: 성경을 자기 삶의 도구로만 사용하게 한다
사람 중심으로 성경을 보면 성경은 도구가 됩니다.
위로받기 위한 도구,
성공하기 위한 도구,
자기를 정당화하기 위한 도구,
남을 공격하기 위한 도구,
자기 계획을 승인받기 위한 도구가 됩니다.
그러나 하나님 중심으로 성경을 보면 성경은 주님의 음성이 됩니다.
그 말씀 앞에서 내가 판단자가 아니라 판단받는 자가 됩니다.
내가 주인이 아니라 종이 됩니다.
내 뜻이 중심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이 중심이 됩니다.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서 1장 5항은 성경의 권위가 교회나 사람의 증언에 의존하는 것이 아니라, 그 저자이신 하나님께 있다고 말합니다. 또한 성령의 내적 증거로 말미암아 우리는 성경이 하나님의 말씀임을 확신하게 된다고 가르칩니다.
출처: Westminster Confession of Faith, 1.5.
그러므로 성경은 내 욕망을 섬기기 위해 주어진 책이 아닙니다.
성경은 나를 그리스도께 복종시키고, 하나님을 알게 하고,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살게 하는 말씀입니다.
⸻
8. 사탄이 가리는 가장 큰 대상: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형상이니라”
고린도후서 4장 4절의 마지막은 매우 중요합니다.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형상이니라.”
사탄이 궁극적으로 가리는 것은 단순한 교리 하나가 아닙니다.
그는 그리스도 안에 나타난 하나님 자신을 가립니다.
그리스도를 보지 못하면 하나님도 바르게 알 수 없습니다.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보지 못하면 하나님의 사랑도 바르게 알 수 없습니다.
그리스도의 피를 보지 못하면 하나님의 거룩도 바르게 알 수 없습니다.
그리스도의 부활을 보지 못하면 하나님의 능력과 새 창조도 바르게 알 수 없습니다.
히브리서 1장 3절은 그리스도를 이렇게 말합니다.
“이는 하나님의 영광의 광채시요 그 본체의 형상이시라.”
골로새서 1장 15절도 말합니다.
“그는 보이지 아니하는 하나님의 형상이시요.”
그러므로 그리스도의 영광을 보는 것은 단지 예수님을 좋아하는 감정이 아닙니다.
그것은 하나님을 바르게 아는 빛입니다.
그 빛이 비치면 사람은 자기 중심에서 하나님 중심으로 돌아옵니다.
자기 의에서 그리스도의 의로 돌아옵니다.
자기 영광에서 하나님의 영광으로 돌아옵니다.
죄 사랑에서 거룩 사랑으로 돌아옵니다.
⸻
9. 참된 성경 읽기의 원리: 성령 안에서 그리스도의 영광을 보아야 한다
그러면 우리는 어떻게 성경을 읽어야 합니까?
첫째, 성경 앞에서 먼저 겸손해야 합니다.
“주님, 제가 말씀을 판단하지 않게 하시고, 말씀이 저를 판단하게 하소서.”
둘째, 성경의 중심이 그리스도이심을 붙들어야 합니다.
“이 본문은 하나님의 성품과 인간의 죄와 그리스도의 필요성을 어떻게 보여 주는가?”
셋째, 성령의 조명을 구해야 합니다.
고린도후서 4장 6절처럼 하나님께서 마음에 빛을 비추셔야 합니다.
“어두운 데에 빛이 비치라 말씀하셨던 그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의 얼굴에 있는 하나님의 영광을 아는 빛을 우리 마음에 비추셨느니라.”
— 고린도후서 4:6
넷째, 적용의 중심도 나의 성공이 아니라 하나님의 영광이어야 합니다.
“이 말씀을 통해 내가 어떻게 더 편해질까?”가 아니라,
“이 말씀을 통해 내가 어떻게 그리스도를 더 믿고, 죄를 미워하고, 하나님을 영화롭게 할 것인가?”를 물어야 합니다.
다섯째, 십자가와 부활을 함께 붙들어야 합니다.
십자가는 죄의 죽음을 보여 주고, 부활은 새 생명의 능력을 보여 줍니다. 성도는 십자가에서 자기 죄를 장사 지내고, 부활하신 그리스도 안에서 새 삶을 살아갑니다.
⸻
10. 설교식으로 정리하면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사탄은 우리가 성경책을 손에 들었다고 해서 반드시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그가 정말 두려워하는 것은 우리가 성경 속에서 그리스도의 영광을 보는 것입니다. 그가 두려워하는 것은 십자가 앞에서 우리의 교만이 무너지는 것입니다. 그가 두려워하는 것은 그리스도의 피가 우리의 양심을 깨끗하게 하는 것입니다. 그가 두려워하는 것은 부활하신 주님께서 우리의 마음을 사로잡아 더 이상 세상과 죄의 종으로 살지 않게 하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사탄은 성경을 빼앗기보다 성경의 중심을 바꿉니다. 하나님 중심을 사람 중심으로 바꿉니다. 그리스도의 영광을 인간의 성공으로 바꿉니다. 회개를 자기 위로로 바꿉니다. 믿음을 자기 확신으로 바꿉니다. 순종을 자기 공로로 바꿉니다. 십자가를 감동적인 이야기로만 만들고, 그 안에 있는 대속의 피와 하나님의 공의와 사랑의 영광을 보지 못하게 합니다.
그러나 성령께서 마음에 빛을 비추시면 모든 것이 달라집니다. 그때 우리는 성경에서 단지 좋은 말을 보는 것이 아니라 살아 계신 그리스도를 봅니다. 그때 우리는 십자가에서 단지 고난을 보는 것이 아니라 나를 대신하여 저주를 담당하신 하나님의 아들을 봅니다. 그때 우리는 부활에서 단지 기적을 보는 것이 아니라 죄와 사망을 이기신 새 창조의 주님을 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말씀 앞에 이렇게 나아가야 합니다.
“주님, 내 인본주의적 생각을 깨뜨려 주소서.
내가 성경을 내 중심으로 읽지 않게 하소서.
내 감정과 경험과 욕망을 말씀 위에 두지 않게 하소서.
성령으로 내 마음의 눈을 열어 주소서.
예수 그리스도의 얼굴에 있는 하나님의 영광을 보게 하소서.
십자가의 사랑의 영광에 붙잡히게 하소서.
그리하여 내가 나를 위해 살지 않고, 나를 사랑하사 자기 몸을 버리신 그리스도를 위하여 살게 하소서.”
⸻
결론적으로, 사탄이 사람을 혼미케 하는 원리는 이것입니다.
그는 성경을 없애기보다 성경의 중심을 바꿉니다.
복음을 없애기보다 복음의 영광을 흐리게 합니다.
예수님의 이름을 지우기보다 예수님의 대속과 왕권과 아름다움을 보지 못하게 합니다.
그리고 사람으로 하여금 하나님 중심이 아니라 자기 중심으로 성경을 읽게 만듭니다.
그러나 성령께서 빛을 비추시면 사람은 그리스도를 하나님의 형상으로 보게 됩니다. 그리스도의 십자가에서 하나님의 거룩과 사랑을 보게 됩니다. 그리고 그 영광을 본 사람은 더 이상 자기 중심으로 살 수 없습니다. 그는 그리스도께 붙잡혀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삶으로 돌아서게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