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님의 한인격 안에서 두본성이 하신 일, 즉 신성과 인성이 하신 일이란?
예수님 안에는 두 인격이 있는 것이 아니라 한 인격, 곧 영원하신 성자 하나님이 계십니다. 그런데 그 한 인격 안에 참 신성과 참 인성이 혼합되지 않고, 변하지 않고, 나뉘지 않고, 분리되지 않게 연합되어 있습니다. 이것이 칼케돈 신조와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 8장 2절의 핵심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렇게 말해야 합니다.
“예수님이 하셨다.”
그러나 더 정확히 말하면, 예수님의 한 인격이 어떤 일은 인성에 따라 하셨고, 어떤 일은 신성에 따라 하셨습니다.
1. 예수님의 인성이 하신 일
예수님의 인성은 참된 사람의 본성입니다. 몸과 영혼, 인간의 지성, 감정, 의지, 연약함을 가지셨으나 죄는 없으셨습니다.
예수님은 인성에 따라 잉태되고 태어나셨습니다.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라고 했습니다. 영원하신 말씀이 변하여 사람이 된 것이 아니라, 참된 인성을 취하신 것입니다. 출처: 요한복음 1:14, 누가복음 1:35, 갈라디아서 4:4.
예수님은 인성에 따라 자라나셨습니다.
“예수는 지혜와 키가 자라가며 하나님과 사람에게 더욱 사랑스러워 가시더라.” 출처: 누가복음 2:52. 신성은 자라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영원히 완전하시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참 인성은 인간의 발달 과정을 실제로 지나셨습니다.
예수님은 인성에 따라 배고프고, 피곤하고, 목마르셨습니다.
광야에서 주리셨고, 사마리아 우물가에서 피곤하여 앉으셨고, 십자가에서 “내가 목마르다”고 하셨습니다. 출처: 마태복음 4:2, 요한복음 4:6, 요한복음 19:28.
예수님은 인성에 따라 슬퍼하시고 고민하시고 눈물을 흘리셨습니다.
겟세마네에서 “내 마음이 매우 고민하여 죽게 되었으니”라고 하셨고, 나사로의 무덤 앞에서 우셨습니다. 출처: 마태복음 26:38, 요한복음 11:35. 신성은 고통으로 무너지지 않습니다. 그러나 성자께서 취하신 인성은 참으로 고통을 느끼셨습니다.
예수님은 인성에 따라 순종하셨습니다.
“그가 아들이시면서도 받으신 고난으로 순종함을 배워서”라고 했습니다. 출처: 히브리서 5:8. 신성은 순종을 배워야 하는 부족함이 없습니다. 그러나 중보자로 오신 그리스도는 참 사람으로서 우리의 자리에서 율법 아래 순종하셨습니다. 이것이 그리스도의 능동적 순종입니다. 출처: 로마서 5:19, 갈라디아서 4:4.
예수님은 인성에 따라 고난받고 피 흘리고 죽으셨습니다.
신성은 죽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불멸하십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참 인성을 가지셨기에 몸과 영혼이 분리되는 참 죽음을 당하셨습니다. 출처: 누가복음 23:46, 히브리서 2:14, 베드로전서 3:18. 그러므로 십자가에서 죽으신 분은 단순한 인간 예수가 아니라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그러나 죽음은 그분의 인성 안에서 일어난 것입니다.
2. 예수님의 신성이 하신 일
예수님의 신성은 영원하신 성자 하나님의 본성입니다. 성자는 창조되지 않으셨고, 시작이 없으시며, 성부와 성령과 동일한 본질과 영광과 능력을 가지신 참 하나님이십니다.
예수님은 신성에 따라 영원 전부터 계셨습니다.
“태초에 말씀이 계시니라 이 말씀이 하나님과 함께 계셨으니 이 말씀은 곧 하나님이시니라.” 출처: 요한복음 1:1. 인성은 시간 안에서 취하셨지만, 신성으로는 영원 전부터 성부와 함께 계셨습니다.
예수님은 신성에 따라 만물을 창조하시고 붙드십니다.
“만물이 그에게서 창조되되… 만물이 그로 말미암고 그를 위하여 창조되었고 또한 그가 만물보다 먼저 계시고 만물이 그 안에 함께 섰느니라.” 출처: 골로새서 1:16-17. 또한 히브리서 1:3은 그가 “그의 능력의 말씀으로 만물을 붙드신다”고 말합니다.
예수님은 신성에 따라 죄를 사하실 권세를 가지셨습니다.
중풍병자에게 “네 죄 사함을 받았느니라”고 하셨을 때, 사람들은 “오직 하나님 외에 누가 능히 죄를 사하겠느냐”고 했습니다. 출처: 마가복음 2:5-12. 예수님은 단지 선지자처럼 용서를 선언하신 것이 아니라, 하나님으로서 죄 사함의 권세를 가지신 분입니다.
예수님은 신성에 따라 바람과 바다를 꾸짖고 잠잠하게 하셨습니다.
제자들이 “이이가 누구이기에 바람과 바다도 순종하는가”라고 놀랐습니다. 출처: 마가복음 4:39-41. 이것은 창조주에게만 합당한 권능입니다.
예수님은 신성에 따라 자기 생명을 다시 취할 권세를 가지셨습니다.
“내가 내 목숨을 버리는 것은 그것을 내가 다시 얻기 위함이니… 나는 버릴 권세도 있고 다시 얻을 권세도 있으니.” 출처: 요한복음 10:17-18. 부활은 성부의 역사이면서, 성령의 역사이며, 또한 성자 자신의 신적 권능의 역사입니다. 출처: 로마서 6:4, 로마서 8:11, 요한복음 2:19-21.
예수님은 신성에 따라 자신의 인성을 붙드시고, 그 고난과 죽음에 무한한 가치가 있게 하셨습니다.
십자가에서 피 흘리신 것은 인성입니다. 그러나 그 피를 흘리신 분은 하나님의 아들이십니다. 그래서 사도행전 20:28은 “하나님이 자기 피로 사신 교회”라고 말합니다. 신성이 피를 흘렸다는 뜻이 아니라, 피 흘리신 그 인격이 하나님이시다라는 뜻입니다.
3. 그러면 십자가에서 정확히 무슨 일이 일어났는가?
십자가에서 죽으신 분은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그러나 신성이 죽은 것은 아닙니다.
죽음은 예수님의 인성 안에서 일어났습니다. 그의 참 몸은 찢기고 피 흘렸고, 그의 참 영혼은 아버지께 맡겨졌습니다. 그러나 신성은 죽거나 약해지거나 변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여기서 중요한 것은 이것입니다. 죽은 것은 인성이지만, 죽으신 분은 한 인격이신 하나님의 아들입니다. 그래서 그 죽음은 단순한 사람의 죽음이 아니라, 하나님의 아들의 죽음이며, 무한한 속죄의 가치가 있습니다.
존 오웬은 『그리스도의 영광』에서 그리스도의 영광을 말할 때, 성자의 인격 안에서 신성과 인성이 연합된 이 신비가 믿음의 가장 깊은 묵상이라고 설명합니다. 곧 우리는 십자가에서 단순한 고난 받는 인간만 보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본성을 취하시고 우리를 대신하여 낮아지신 영원한 성자의 사랑의 영광을 보아야 합니다.
4. 쉽게 정리하면
예수님은 인성으로 태어나셨고, 자라셨고, 배고프셨고, 피곤하셨고, 슬퍼하셨고, 순종하셨고, 고난받으셨고, 피 흘리셨고, 죽으셨습니다.
예수님은 신성으로 영원히 계셨고, 만물을 창조하시고 붙드시며, 죄를 사하시고, 기적을 행하시며, 죽음을 이기시고, 자신의 인성에 무한한 속죄의 가치를 주셨습니다.
그러나 이 둘은 따로따로 움직이는 두 인격의 일이 아닙니다. 한 분 예수 그리스도께서 두 본성에 따라 행하신 일입니다.
5. 성도에게 주는 복음의 위로
성도는 여기서 큰 위로를 받아야 합니다.
우리 주님은 신성만 가지신 멀리 계신 하나님이 아닙니다. 그는 우리의 살과 피를 취하셨습니다. 우리의 배고픔, 피곤함, 눈물, 시험, 두려움, 고통을 아십니다. 그래서 히브리서 4:15은 “우리에게 있는 대제사장은 우리의 연약함을 동정하지 못하실 이가 아니요”라고 말합니다.
그러나 그는 단지 우리와 같은 연약한 인간만도 아닙니다. 그는 참 하나님이십니다. 그러므로 그의 피는 죄인을 실제로 씻습니다. 그의 중보는 실패하지 않습니다. 그의 왕권은 무너지지 않습니다. 그의 사랑은 변하지 않습니다. 그의 부활 생명은 사망보다 강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렇게 고백해야 합니다.
“주 예수님, 주님은 나와 같은 참 사람이 되셔서 나를 대신하여 순종하시고 고난받고 죽으셨습니다. 그러나 주님은 또한 참 하나님이시기에 그 순종과 죽음은 내 죄를 완전히 속하기에 충분합니다. 내가 붙들 것은 내 회개와 열심의 크기가 아니라, 신성과 인성이 한 인격 안에 연합되신 중보자 그리스도입니다.”
예수님의 신성이 하나님의 진노를 감당하게 하시지 않았는가?
예수님의 신성은 하나님의 진노를 직접 고통당하거나 죽는 방식으로 받은 것이 아닙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신성은 그의 인성이 하나님의 진노 아래서 무너지지 않고 끝까지 감당하도록 붙드셨고, 그 고난과 순종에 무한한 가치와 효력을 주셨습니다.
정리하면 이렇게 말할 수 있습니다.
“그리스도께서는 하나님의 진노를 인성으로 받으셨고, 신성으로 그 인성을 붙드시며 그 고난에 무한한 속죄의 가치를 주셨다.”
1. 신성 자체가 진노를 당한 것은 아닙니다
하나님은 본질상 불변하시고, 죽지 않으시며, 고통으로 손상되지 않으십니다.
“나 여호와는 변하지 아니하나니.”
출처: 말라기 3:6.
“오직 그에게만 죽지 아니함이 있고.”
출처: 디모데전서 6:16.
그러므로 예수님의 신성이 십자가에서 약해졌다거나, 죽었다거나, 하나님으로서 진노에 의해 손상되었다고 말하면 안 됩니다. 그것은 신성의 불변성과 불멸성을 무너뜨리는 말이 됩니다.
예수님은 신성으로는 영원히 동일하신 하나님이십니다. 그러나 인성으로는 고난받고 피 흘리고 죽으셨습니다.
2. 그러나 신성은 인성을 붙드셨습니다
여기서 웨스트민스터 대요리문답 38문이 매우 중요합니다.
문: 중보자가 하나님이셔야 할 필요가 있었던 이유는 무엇입니까?
답: 중보자가 하나님이셔야 했던 것은, 그의 인성이 하나님의 무한한 진노와 죽음의 권세 아래서 가라앉지 않도록 붙드시고 지키시며, 그의 고난과 순종과 중보에 가치와 효력을 주시기 위함입니다.
출처: 웨스트민스터 대요리문답 38문.
이 말이 목사님 질문의 정확한 답입니다.
예수님의 신성은 진노를 “고통당하는 본성”이 아닙니다. 그러나 신성은 예수님의 인성을 붙드셔서, 그 인성이 하나님의 진노를 실제로 감당하게 하셨습니다.
즉, 십자가에서 예수님의 인성은 하나님의 진노의 무게를 실제로 느끼고 당하셨습니다. 그의 영혼은 심히 고민하여 죽게 되었고, 그의 몸은 찢기고 피 흘렸고, 그의 마음은 버림받음의 어두움을 통과하셨습니다.
“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나이까.”
출처: 마태복음 27:46.
그러나 그 인성은 혼자 버려진 인성이 아니었습니다. 그 인성은 영원하신 성자의 인격 안에 연합된 인성이었습니다. 그러므로 신성이 그 인성을 붙드셨고, 그 인성이 하나님의 진노 아래서 완전히 침몰하지 않게 하셨습니다.
3. 예수님은 인성으로 진노를 받으셨고, 신성으로 그 진노를 이기셨습니다
하이델베르크 요리문답 17문도 같은 내용을 말합니다.
문: 왜 그는 참 하나님이셔야 합니까?
답: 그의 신성의 능력으로 하나님의 진노의 짐을 그의 인성 안에서 감당하시고, 우리를 위하여 의와 생명을 얻어 우리에게 돌려주시기 위함입니다.
출처: 하이델베르크 요리문답 17문.
여기 표현이 중요합니다.
“신성의 능력으로”
“인성 안에서”
“하나님의 진노의 짐을 감당하셨다.”
그러므로 이렇게 말하면 바릅니다.
예수님은 인성 안에서 하나님의 진노를 당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신성의 능력으로 그 진노를 감당하셨습니다.
예수님은 한 인격으로 우리 대신 저주를 받으셨습니다.
갈라디아서 3:13은 말합니다.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저주를 받은 바 되사 율법의 저주에서 우리를 속량하셨으니.”
출처: 갈라디아서 3:13.
저주를 받으신 분은 단순한 인간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아들이신 그리스도입니다. 그러나 그 저주와 고난은 그의 인성 안에서 일어났습니다.
4. 신성이 하신 일은 세 가지입니다
첫째, 신성은 인성을 붙드셨습니다.
예수님의 인성은 참 인간의 영혼과 몸을 가진 인성입니다. 그 인성은 하나님의 진노 앞에서 실제로 고통을 느꼈습니다. 그러나 신성이 그 인성을 붙드셨기에 그리스도는 진노 아래서 무너지지 않고 끝까지 순종하셨습니다.
둘째, 신성은 그 고난에 무한한 가치를 주셨습니다.
예수님의 피는 인간의 피입니다. 그러나 그 피를 흘리신 분은 하나님의 아들입니다. 그래서 사도행전 20:28은 “하나님이 자기 피로 사신 교회”라고 말합니다. 신성이 피를 흘렸다는 뜻이 아니라, 피 흘리신 그 인격이 하나님이시다라는 뜻입니다.
셋째, 신성은 죽음과 진노를 이기는 능력으로 역사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죽음에 갇혀 계신 분이 아닙니다. 그는 “내가 내 목숨을 버릴 권세도 있고 다시 얻을 권세도 있다”고 하셨습니다. 출처: 요한복음 10:18. 인성으로 죽으셨지만, 신성으로 죽음의 권세를 이기시는 분입니다.
5. 그러므로 이렇게 말하면 안 됩니다
“예수님의 신성이 죽었다.”
이 말은 틀립니다.
“예수님의 신성이 고통을 받아 손상되었다.”
이 말도 틀립니다.
“성부가 성자의 신성을 미워했다.”
이 말도 틀립니다. 성부는 영원히 성자를 사랑하십니다. 십자가에서도 성부와 성자의 본질적 사랑은 끊어지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이렇게 말해야 합니다.
“성자께서 중보자의 자리에서, 우리 죄를 담당하신 보증인으로서, 그의 인성 안에서 하나님의 진노와 저주를 받으셨다. 그리고 그의 신성은 그 인성을 붙들고, 그 고난에 무한한 속죄의 가치를 주셨다.”
6. 이 진리가 주는 복음의 영광
목사님, 이것이 십자가의 깊은 아름다움입니다.
예수님이 단지 사람이셨다면 하나님의 무한한 진노를 감당할 수 없었습니다. 한 인간의 고난으로는 수많은 죄인의 죄를 속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이 참 하나님이시기에 그의 고난은 무한한 가치가 있습니다.
또 예수님이 단지 하나님이시기만 하고 참 사람이 아니셨다면 우리 대신 율법 아래 순종하고, 우리 대신 피 흘리고, 우리 대신 죽으실 수 없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이 참 사람이시기에 우리의 자리에서 고난받으셨습니다.
그래서 그리스도는 완전한 중보자이십니다.
사람으로서 우리 대신 진노를 받으셨고, 하나님으로서 그 진노를 능히 감당하시며 우리에게 완전한 구원을 이루셨습니다.
성도는 이 진리를 붙들어야 합니다.
“내 죄가 크지만, 그리스도의 인성은 나를 대신하여 실제로 고난받으셨다. 내 죄의 형벌이 무겁지만, 그리스도의 신성은 그 고난에 무한한 가치를 주셨다. 그러므로 내가 의지할 것은 내 눈물의 양이 아니라, 참 하나님이시며 참 사람이신 중보자 예수 그리스도이다.”
이것이 십자가의 영광입니다.
그리스도는 우리의 자리까지 낮아지신 참 사람이시며, 동시에 우리의 죄값을 완전히 감당하신 참 하나님이십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