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도인의 자녀 양육

작성자정명석|작성시간26.06.15|조회수30 목록 댓글 0

그리스도인의 자녀 양육

그리스도인 부모의 자녀 양육은 단순히 예의 바른 아이, 공부 잘하는 아이, 성공하는 아이를 만드는 일이 아닙니다. 성경적으로 말하면, 자녀 양육은 하나님께 맡겨 받은 영혼을 그리스도께로 인도하는 거룩한 청지기 사역입니다.

본문의 핵심은 에베소서 6장 4절입니다.

“또 아비들아 너희 자녀를 노엽게 하지 말고 오직 주의 교훈과 훈계로 양육하라.”

여기서 “아비들아”는 가정의 책임 있는 대표를 말하지만, 원리는 부모 모두에게 해당됩니다. 부모는 자녀의 주인이 아닙니다. 자녀는 하나님의 것입니다. 부모는 하나님 앞에서 자녀를 맡은 청지기입니다.

1. 자녀 양육의 최종 목적은 “그리스도를 알게 하는 것”입니다

부모가 먼저 분명히 알아야 할 것은 이것입니다. 자녀 양육의 목적은 자녀가 부모의 기대를 이루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알고, 그리스도를 믿고, 하나님께 영광 돌리는 사람으로 자라게 하는 것입니다.

웨스트민스터 소요리문답 1문은 사람의 제일 되는 목적을 이렇게 말합니다.

“사람의 제일 되는 목적은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고, 영원토록 그를 즐거워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부모는 자녀에게 이렇게 가르쳐야 합니다.

“너는 우연히 태어난 존재가 아니다. 너는 하나님 앞에서 살아야 할 영혼이다. 너의 인생은 네 욕심을 이루기 위해 있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기 위해 있다. 그런데 우리는 죄 때문에 하나님께 나아갈 수 없으므로, 반드시 예수 그리스도가 필요하다.”

자녀 양육의 중심에는 항상 그리스도의 복음이 있어야 합니다. 아이에게 도덕만 가르치면 바리새인을 만들 수 있습니다. 예절만 가르치면 사람 앞에서만 착한 아이가 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리스도를 가르치면, 아이는 자기 죄를 알고, 은혜를 알고, 십자가를 알고, 하나님 앞에서 사는 법을 배우게 됩니다.

2. 부모가 먼저 하나님 앞에서 살아야 합니다

신명기 6장 6-7절은 자녀 교육의 순서를 분명히 말합니다.

“오늘 내가 네게 명하는 이 말씀을 너는 마음에 새기고 네 자녀에게 부지런히 가르치며…”

먼저 부모의 마음에 말씀이 새겨져야 합니다. 그다음 자녀에게 가르쳐야 합니다.

부모가 하나님을 사랑하지 않으면서 자녀에게 하나님을 사랑하라고 하면, 아이는 부모의 말보다 부모의 삶을 더 깊이 봅니다. 부모가 예배를 가볍게 여기면서 자녀에게 예배를 중요하게 여기라고 하면, 아이는 혼란을 느낍니다. 부모가 분노와 욕심으로 살면서 자녀에게 거룩하라고 하면, 아이의 양심은 상처를 받습니다.

그러므로 자녀 양육은 부모 자신이 먼저 회개하는 자리에서 시작됩니다.

“주님, 내 자녀를 바꾸기 전에 나를 먼저 다스려 주옵소서. 내 말과 태도와 분노와 욕심을 십자가 아래 내려놓게 하옵소서. 내 자녀가 내 안에서 그리스도의 온유와 진실함을 보게 하옵소서.”

부모의 완전함이 자녀를 살리는 것이 아닙니다. 그러나 부모의 진실한 회개와 믿음은 자녀에게 큰 설교가 됩니다.

3. 자녀를 노엽게 하지 말아야 합니다

에베소서 6장 4절은 먼저 “노엽게 하지 말라”고 합니다. 이것은 단순히 아이를 화나게 하지 말라는 뜻만이 아닙니다. 부모의 잘못된 양육 방식이 아이의 마음을 낙심시키고, 하나님을 오해하게 만들 수 있다는 뜻입니다.

자녀를 노엽게 하는 방식은 여러 가지입니다.

부모가 감정으로만 꾸짖을 때 아이는 분노합니다.
부모가 일관성 없이 오늘은 허락하고 내일은 정죄할 때 아이는 혼란스러워합니다.
부모가 형제끼리 비교할 때 아이는 열등감과 미움을 품습니다.
부모가 공부와 성공은 강조하면서 영혼은 돌보지 않을 때 아이는 하나님보다 세상을 크게 봅니다.
부모가 잘못했을 때 사과하지 않으면 아이는 권위를 폭력으로 배웁니다.
부모가 아이의 마음을 듣지 않고 명령만 하면 아이는 겉으로는 순종해도 속으로는 닫힐 수 있습니다.

골로새서 3장 21절도 말합니다.

“아비들아 너희 자녀를 노엽게 하지 말지니 낙심할까 함이라.”

부모의 권위는 자녀를 꺾는 도구가 아니라, 자녀를 그리스도께로 세우는 도구입니다. 권위는 사랑 안에서 사용될 때 복이 되고, 분노 안에서 사용될 때 상처가 됩니다.

4. “주의 교훈”으로 양육해야 합니다

“주의 교훈”이란 주님의 말씀으로 가르치는 것입니다. 부모의 기분, 세상의 기준, 학벌 중심의 가치관, 경쟁심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이 가정의 기준이 되어야 합니다.

아이에게 어려서부터 가르쳐야 할 핵심은 이것입니다.

하나님은 창조주이시다.
나는 하나님 앞에서 살아야 한다.
나는 죄인이다.
죄는 단순한 실수가 아니라 하나님을 거스르는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는 참 하나님이시며 참 사람이시다.
그리스도께서 죄인을 위하여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부활하셨다.
사람은 행위가 아니라 믿음으로 의롭다 하심을 받는다.
참된 믿음은 회개와 순종의 열매를 맺는다.
성령께서 말씀으로 우리 마음을 새롭게 하신다.
교회와 예배와 기도와 말씀은 은혜의 방편이다.

아이에게 성경 이야기를 단지 “착하게 살아라”로 끝내면 안 됩니다. 다윗 이야기를 하면서 “너도 용감해져라”만 말하면 부족합니다. 다윗보다 더 크신 왕, 예수 그리스도를 보여 주어야 합니다. 요셉 이야기를 하면서 “너도 꿈을 가져라”만 말하면 부족합니다. 악한 형들의 죄까지 섭리 가운데 사용하셔서 생명을 보존하신 하나님의 구속사를 보여 주어야 합니다. 유월절을 가르칠 때는 어린양의 피가 결국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가리킨다는 것을 말해 주어야 합니다.

아이에게 성경을 가르친다는 것은 단순히 지식을 넣어 주는 것이 아니라, 모든 성경이 그리스도께로 향한다는 것을 보여 주는 것입니다.

5. “주의 훈계”로 양육해야 합니다

“훈계”는 잘못을 바로잡고, 삶의 길을 교정하는 것입니다. 사랑 없는 훈계는 폭력이 되고, 훈계 없는 사랑은 방임이 됩니다.

잠언 13장 24절은 말합니다.

“매를 아끼는 자는 그의 자식을 미워함이라 자식을 사랑하는 자는 근실히 징계하느니라.”

그러나 성경의 징계는 부모의 분풀이가 아닙니다. 징계는 자녀를 수치스럽게 만드는 것이 아닙니다. 징계는 아이를 그리스도 앞에 세우는 사랑의 질서입니다.

징계할 때 부모는 먼저 자기 마음을 살펴야 합니다.

“내가 지금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훈계하는가, 아니면 내 자존심이 상해서 화내는가? 아이의 영혼을 사랑해서 말하는가, 아니면 내 뜻대로 움직이지 않아서 분노하는가?”

청교도적 양심론으로 보면, 부모는 자녀의 양심을 깨워야지 짓눌러서는 안 됩니다. 아이가 죄를 미워하고 하나님께 돌아가도록 도와야지, 부모의 눈치를 보며 숨는 아이로 만들어서는 안 됩니다.

그러므로 훈계 후에는 반드시 복음으로 데려가야 합니다.

“네가 잘못했다. 이것은 하나님 앞에서 죄다. 그러나 죄를 숨기지 말고 주님께 가지고 가야 한다. 예수님은 자기 죄를 인정하고 나아오는 죄인을 버리지 않으신다. 우리 같이 기도하자.”

이것이 그리스도인의 훈계입니다.

6. 가정예배를 세워야 합니다

자녀 양육에서 가장 중요한 실제적 길 중 하나는 가정예배입니다. 길게 하지 않아도 됩니다. 그러나 꾸준해야 합니다.

가정예배는 가정을 작은 교회로 만드는 것이 아니라, 가정이 교회의 은혜 아래 살도록 돕는 질서입니다. 부모는 목사의 자리를 대신할 수 없지만, 가정 안에서 말씀과 기도의 책임을 져야 합니다.

가정예배는 이렇게 단순하게 할 수 있습니다.

성경 한 본문을 읽습니다.
아이의 수준에 맞게 짧게 설명합니다.
그 본문이 그리스도를 어떻게 보여 주는지 말합니다.
하루의 죄와 감사와 필요를 가지고 함께 기도합니다.
짧게 찬송합니다.

중요한 것은 완벽한 형식이 아닙니다. 중요한 것은 아이가 어려서부터 “우리 집은 하나님 앞에서 사는 집이다”라는 거룩한 분위기를 배우는 것입니다.

디모데후서 3장 15절은 디모데가 어려서부터 성경을 알았다고 말합니다. 그 성경은 그를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에 이르는 지혜”가 있게 했습니다.

7. 자녀의 마음을 복음으로 다루어야 합니다

부모는 행동만 보지 말고 마음을 보아야 합니다. 아이가 거짓말을 했을 때 단순히 “거짓말하지 마”로 끝나면 안 됩니다. 왜 거짓말했는지 보아야 합니다. 두려움 때문인지, 욕심 때문인지, 체면 때문인지, 책임을 피하려는 마음 때문인지 살펴야 합니다.

그리고 그 마음을 복음으로 다루어야 합니다.

거짓말의 반대는 단순히 정직이 아닙니다. 하나님 앞에서 사는 믿음입니다.
교만의 반대는 단순히 예의가 아닙니다. 은혜를 아는 겸손입니다.
게으름의 반대는 단순히 성실함이 아닙니다. 하나님께 받은 삶을 청지기로 사는 것입니다.
분노의 반대는 단순히 참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주권과 십자가의 용서를 붙드는 것입니다.

아이에게 행동 교정만 하면 잠시 바뀔 수 있습니다. 그러나 마음이 복음 앞에 서야 참된 변화가 시작됩니다.

8. 자녀를 세상 성공보다 그리스도의 제자로 길러야 합니다

오늘날 부모들은 자녀가 뒤처질까 두려워합니다. 그래서 공부, 직업, 돈, 안정, 성공을 가장 크게 붙들기 쉽습니다. 그러나 그리스도인 부모는 자녀에게 이렇게 가르쳐야 합니다.

“공부도 중요하다. 성실함도 중요하다. 그러나 그것들이 너의 하나님이 되어서는 안 된다. 네가 세상에서 높아져도 그리스도를 잃으면 모든 것을 잃은 것이다. 네가 세상에서 작아 보여도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가장 복된 사람이다.”

마태복음 16장 26절은 말합니다.

“사람이 만일 온 천하를 얻고도 제 목숨을 잃으면 무엇이 유익하리요.”

자녀가 좋은 대학에 가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하나님을 경외하는 것입니다. 자녀가 돈을 많이 버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정직한 양심으로 사는 것입니다. 자녀가 사람들에게 인정받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그리스도께 속한 사람으로 사는 것입니다.

9. 부모는 자녀의 구원을 자기 힘으로 만들 수 없음을 알아야 합니다

부모는 말씀을 가르칠 수 있습니다. 기도할 수 있습니다. 훈계할 수 있습니다. 본을 보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자녀의 마음을 거듭나게 하시는 분은 성령 하나님이십니다.

요한복음 3장 5절에서 주님은 사람이 “물과 성령으로 나지 아니하면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갈 수 없다”고 하셨습니다.

그러므로 부모는 절망하지도 말고 교만하지도 말아야 합니다. 아이가 잘 자란다고 부모가 자랑할 수 없습니다. 아이가 방황한다고 부모가 하나님의 자리를 대신해 절망할 필요도 없습니다. 부모는 은혜의 수단에 충성하고, 성령의 역사를 간구해야 합니다.

부모의 가장 깊은 기도는 이것입니다.

“주님, 내 아이의 마음을 열어 주옵소서. 내가 아무리 말해도 성령께서 역사하지 않으시면 아이는 그리스도의 영광을 볼 수 없습니다. 말씀을 들을 때 마음을 찔러 주시고, 죄를 깨닫게 하시고, 십자가의 사랑을 알게 하시고, 부활하신 주님을 믿게 하옵소서.”

10. 결론: 자녀를 그리스도의 품으로 데려가야 합니다

그리스도인 부모의 양육은 결국 이것입니다.

자녀를 부모의 품에만 묶어 두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의 품으로 데려가는 것입니다.

부모는 자녀에게 완전한 구주가 될 수 없습니다. 부모는 자녀의 죄를 대신 질 수 없습니다. 부모는 자녀의 양심을 깨끗하게 할 수 없습니다. 부모는 자녀에게 새 마음을 줄 수 없습니다.

오직 그리스도만이 참된 선지자로서 아이에게 하나님을 알게 하십니다.
오직 그리스도만이 참된 제사장으로서 아이의 죄를 씻으십니다.
오직 그리스도만이 참된 왕으로서 아이의 마음을 다스리십니다.

그러므로 부모는 매일 자녀를 보며 이렇게 기도해야 합니다.

“주 예수여, 이 아이는 내 것이 아니라 주님의 것입니다. 내가 사랑하지만 주님이 더 사랑하십니다. 내가 가르치지만 주님이 마음을 여셔야 합니다. 내가 훈계하지만 주님이 회개를 주셔야 합니다. 이 아이가 세상의 사람이 되지 않고 그리스도의 사람이 되게 하옵소서. 십자가의 사랑을 알게 하시고, 부활의 생명 안에서 살게 하시고, 평생 주님의 영광을 위해 살게 하옵소서.”

핵심 정리

그리스도인 부모는 자녀를 사랑하되 우상으로 삼지 말아야 합니다.
자녀를 훈계하되 분노로 하지 말아야 합니다.
자녀를 가르치되 도덕만이 아니라 복음을 가르쳐야 합니다.
자녀의 성공보다 영혼을 더 귀히 여겨야 합니다.
부모 자신이 먼저 하나님 앞에서 회개하며 살아야 합니다.
그리고 모든 양육을 성령의 은혜에 맡기며, 자녀를 날마다 그리스도께로 데려가야 합니다.

그리스도를 가르친다는 뜻은 무엇인가?

“그리스도를 가르친다”는 것은 아이에게 단순히 예수님 이야기를 알려 주는 것이 아닙니다. 또 단순히 착하게 살아라, 거짓말하지 말라, 부모 말 잘 들어라 하고 도덕을 가르치는 것만도 아닙니다.

그리스도를 가르친다는 것은 아이가 성경과 인생과 자기 마음을 볼 때, 결국 이렇게 알도록 돕는 것입니다.

“나는 죄인이다. 나는 내 힘으로 하나님께 갈 수 없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죄인을 사랑하셔서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셨다. 예수님은 참 하나님이시며 참 사람이시고, 나를 위하여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부활하셨다. 그러므로 나는 예수님께 나아가야 하며, 예수님을 믿고 사랑하고 따라야 한다.”

1. 그리스도가 누구신지 가르치는 것입니다

아이에게 먼저 예수님이 단순히 훌륭한 선생님이나 착한 분이 아니라는 것을 가르쳐야 합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아들, 곧 참 하나님이십니다. 동시에 우리와 같은 참 사람이 되셨습니다. 죄는 없으시지만,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해 사람의 몸을 입고 오셨습니다.

그래서 아이에게 이렇게 말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이신데 우리를 구원하시려고 사람이 되셨어. 우리처럼 배고프고 피곤하고 눈물도 흘리셨어. 그러나 예수님은 죄가 없으셨어. 예수님은 우리를 하나님께 데려가시는 구주야.”

이것이 그리스도의 위격을 가르치는 것입니다. 참 하나님이시며 참 사람이신 한 분 그리스도, 바로 그분이 우리의 구원자이십니다.

2. 왜 그리스도가 필요한지 가르치는 것입니다

아이에게 예수님을 가르치려면 반드시 죄를 가르쳐야 합니다. 죄를 모르면 그리스도의 십자가가 왜 필요한지 모릅니다.

그러나 죄를 가르칠 때 아이를 절망하게 만들면 안 됩니다. 죄를 지적하되, 반드시 그리스도께 데려가야 합니다.

예를 들어 아이가 거짓말을 했을 때 이렇게 말할 수 있습니다.

“거짓말은 단지 엄마 아빠를 속인 것이 아니라 하나님 앞에서 잘못한 거야. 하나님은 진실하신 분이기 때문에 거짓을 기뻐하지 않으셔. 그런데 예수님은 이런 죄인을 위해 십자가에서 죽으셨어. 그러니 죄를 숨기지 말고 예수님께 가지고 가야 해.”

이것이 중요합니다.

그리스도를 가르친다는 것은 아이에게 죄책감만 주는 것이 아닙니다. 죄를 깨닫게 하되, 그 죄를 담당하신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보게 하는 것입니다.

3. 그리스도께서 무엇을 하셨는지 가르치는 것입니다

아이에게 예수님의 사역을 가르쳐야 합니다.

예수님은 우리를 위해 낮아지셨습니다. 하늘 영광을 가지신 분이 종의 형체를 입고 오셨습니다. 율법 아래 나셨고, 고난을 받으셨고, 십자가에서 죽으셨고, 무덤에 장사되셨습니다.

그러나 거기서 끝나지 않았습니다. 예수님은 죽음에서 부활하셨고, 하늘에 오르셨고, 지금도 우리를 위해 중보하시며, 장차 영광 가운데 다시 오실 것입니다.

아이에게 쉽게 말하면 이렇습니다.

“예수님은 우리 죄 때문에 십자가에서 죽으셨어. 그러나 죽음이 예수님을 이길 수 없었어. 예수님은 다시 살아나셨어. 그래서 예수님을 믿는 사람은 죄 용서를 받고 하나님 자녀가 되고, 마지막 날에 부활의 소망을 가져.”

이것이 복음의 중심입니다.

4. 그리스도의 세 가지 직분을 가르치는 것입니다

청교도와 개혁주의 신학은 그리스도의 사역을 선지자, 제사장, 왕의 직분으로 설명했습니다. 아이에게도 쉽게 가르칠 수 있습니다.

예수님은 선지자이십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알지 못하므로, 예수님이 하나님을 알려 주십니다.

“예수님은 우리에게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지 가르쳐 주시는 분이야.”

예수님은 제사장이십니다.
우리가 죄 때문에 하나님께 나아갈 수 없으므로, 예수님이 자기 몸을 제물로 드려 우리 죄를 씻으셨습니다.

“예수님은 우리 죄를 대신 지시고 십자가에서 피 흘려 주신 분이야.”

예수님은 왕이십니다.
우리는 죄와 욕심과 사탄에게 끌려가므로, 예수님이 우리 마음을 다스리시고 보호하시고 인도하십니다.

“예수님은 우리 마음의 왕이셔. 우리는 내 마음대로 사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 말씀을 따라 살아야 해.”

이렇게 가르치면 아이는 예수님을 단순히 과거의 인물로 배우지 않고, 오늘도 자기 삶을 다스리시는 살아 계신 주님으로 배우게 됩니다.

5. 성경 전체가 그리스도를 향한다는 것을 가르치는 것입니다

성경을 아이에게 가르칠 때 가장 조심할 것은 성경을 단순한 도덕책으로 만드는 것입니다.

다윗과 골리앗을 가르치면서 “너도 용감해져라”만 말하면 부족합니다. 다윗은 장차 오실 참 왕 예수 그리스도를 희미하게 보여 줍니다. 참 다윗이신 예수님은 죄와 사망과 사탄을 이기신 왕이십니다.

요셉 이야기를 하면서 “너도 꿈을 가져라”만 말하면 부족합니다. 요셉은 고난을 통해 많은 사람을 살렸습니다. 이것은 고난과 십자가를 통해 자기 백성을 살리신 그리스도를 바라보게 합니다.

유월절 어린양을 가르칠 때는 반드시 예수님께 연결해야 합니다. 어린양의 피가 이스라엘을 심판에서 건졌듯이, 예수님의 피가 우리를 하나님의 진노에서 건집니다.

그러므로 성경을 가르칠 때 아이에게 이렇게 질문할 수 있습니다.

“이 말씀은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 것을 보여 줄까?”
“이 말씀은 우리의 죄를 어떻게 보여 줄까?”
“이 말씀은 예수님이 왜 필요하신지 어떻게 보여 줄까?”
“이 말씀을 믿는 사람은 어떻게 살아야 할까?”

이렇게 하면 아이는 성경을 자기중심으로 보지 않고, 그리스도 중심으로 보게 됩니다.

6.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받아야 함을 가르치는 것입니다

그리스도를 가르친다는 것은 지식 전달로 끝나지 않습니다. 아이가 그리스도께 나아가도록 불러야 합니다.

아이에게 이렇게 말해야 합니다.

“예수님을 안다는 것은 이름만 아는 것이 아니야. 예수님께 네 죄를 가지고 나아가는 거야. 예수님이 너를 구원하실 수 있음을 믿는 거야. 예수님을 사랑하고 의지하고 따르는 거야.”

믿음은 단순히 “예수님이 계신다”를 아는 것이 아닙니다. 믿음은 죄인이 자기 의를 내려놓고, 그리스도를 붙드는 것입니다.

웨스트민스터 소요리문답 86문은 믿음을 이렇게 설명합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은 구원의 은혜이며, 복음에 제시된 그리스도를 우리가 받아들이고 의지하는 것입니다.

쉽게 말하면, 믿음은 “예수님, 저는 제 힘으로 하나님께 갈 수 없습니다. 저를 불쌍히 여겨 주십시오. 주님의 십자가와 부활을 의지합니다” 하고 그리스도께 나아가는 것입니다.

7. 그리스도를 사랑하고 따르는 삶을 가르치는 것입니다

그리스도를 가르친다는 것은 “예수 믿으면 천국 간다”에서 멈추지 않습니다. 참된 믿음은 반드시 순종의 열매를 맺습니다.

아이에게 순종을 가르칠 때도 복음과 연결해야 합니다.

“하나님 말씀에 순종해야 복을 받는다” 정도로만 말하면 율법주의가 될 수 있습니다. 바르게 말하면 이렇습니다.

“예수님이 먼저 우리를 사랑하셨어. 우리 죄를 위해 죽으시고 우리를 하나님 자녀 삼아 주셨어. 그러므로 우리는 예수님을 사랑하기 때문에 말씀에 순종하는 거야.”

순종은 구원을 얻기 위한 값이 아닙니다. 순종은 은혜 받은 자의 감사입니다.

8. 실제로 부모가 이렇게 말해 줄 수 있습니다

아이가 죄를 지었을 때:

“너는 잘못했어. 이것은 하나님 앞에서 죄야. 하지만 죄를 숨기면 안 돼. 예수님께 가지고 가야 해. 예수님은 죄인을 부르러 오셨어. 우리 함께 회개하자.”

아이가 두려워할 때:

“예수님은 부활하신 주님이셔. 죽음도 이기신 분이 너를 붙들고 계셔. 그러니 혼자라고 생각하지 말자.”

아이가 교만할 때:

“네가 잘해서만 된 것이 아니야. 하나님이 은혜를 주신 거야. 모든 좋은 것은 하나님께로부터 온단다.”

아이가 실패했을 때:

“실패했다고 네 가치가 없어지는 것이 아니야. 그리스도 안에 있는 사람은 하나님의 사랑 안에 있어. 다시 주님을 의지하고 일어나자.”

아이가 예배를 귀찮아할 때:

“예배는 억지로 종교행사 하는 시간이 아니야. 우리를 구원하신 하나님께 나아가는 시간이야. 예수님이 피로 길을 열어 주셨기 때문에 우리가 하나님께 나아갈 수 있어.”

결론

그리스도를 가르친다는 것은 아이에게 모든 것을 그리스도 안에서 보게 하는 것입니다.

죄를 볼 때는 십자가를 보게 하고,
두려움을 볼 때는 부활하신 주님을 보게 하고,
순종을 말할 때는 그리스도의 사랑을 보게 하고,
성경을 읽을 때는 그리스도의 영광을 보게 하고,
인생의 목적을 말할 때는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삶을 보게 하는 것입니다.

부모는 아이에게 이렇게 계속 말해 주어야 합니다.

“너에게 가장 필요한 분은 예수 그리스도이시다. 너를 가장 깊이 아시는 분도 예수님이시고, 너의 죄를 용서하실 분도 예수님이시고, 너의 마음을 새롭게 하실 분도 예수님이시고, 너를 끝까지 붙드실 분도 예수님이시다. 그러니 죄를 숨기지 말고, 두려워 도망가지 말고, 날마다 예수님께 나아가라.”

이것이 그리스도를 가르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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