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가 그리스도의 영광을 가르치지도 않고, 그리스도의 영광이 무엇인지도 모른다면?

작성자정명석|작성시간26.06.15|조회수21 목록 댓글 0

오늘날 교회가 그리스도의 영광을 가르치지도 않고, 그리스도의 영광이 무엇인지도 모른다면, 그것은 단순히 “설교 주제가 조금 약하다”는 문제가 아닙니다. 그것은 교회의 심장부가 약해진 것입니다. 왜냐하면 교회는 사람을 모으는 기관이 아니라,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영광을 보고, 믿고, 사랑하고, 닮아가게 하는 거룩한 공동체이기 때문입니다.



고린도후서 4장 5-6절은 교회의 설교 중심을 분명히 말합니다.

“우리는 우리를 전파하는 것이 아니라 오직 그리스도 예수의 주 되신 것과…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의 얼굴에 있는 하나님의 영광을 아는 빛을 우리 마음에 비추셨느니라.”

여기서 바울은 복음 사역의 중심이 사람, 목회자, 교회 성장, 분위기, 성공, 체험이 아니라고 말합니다. 중심은 오직 주 되신 그리스도입니다. 그리고 구원의 빛은 “예수 그리스도의 얼굴에 있는 하나님의 영광”을 아는 데서 비칩니다.



그러므로 교회가 그리스도의 영광을 모른다면, 교회는 복음의 빛을 잃어버리기 시작한 것입니다.



1. 그리스도의 영광이란 무엇인가

그리스도의 영광은 막연한 감동이나 종교적 분위기가 아닙니다. 그리스도의 영광은 하나님의 모든 아름다움과 충만하심이 성육신하신 아들 안에서 드러난 것입니다.



요한복음 1장 14절은 말합니다.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 우리가 그의 영광을 보니…”

그 영광은 단순한 능력의 영광만이 아닙니다. 그것은 은혜와 진리가 충만한 영광입니다. 곧 죄인을 구원하시기 위해 낮아지신 하나님의 아들의 아름다움입니다.

히브리서 1장 3절은 그리스도를 이렇게 말합니다.

“이는 하나님의 영광의 광채시요 그 본체의 형상이시라.”

그러므로 그리스도를 모르면 하나님을 바르게 알 수 없습니다. 그리스도의 영광을 보지 못하면, 하나님의 영광도 흐릿하게 보게 됩니다.



존 오웬은 『그리스도의 영광』에서 성도가 하늘에서 그리스도의 영광을 얼굴과 얼굴로 보기 전에, 이 땅에서 믿음으로 그 영광을 보기 시작한다고 설명했습니다. 그는 그리스도의 영광을 묵상하는 일이 신자의 위로와 거룩함과 죽음 준비의 핵심이라고 보았습니다.



출처: John Owen, Meditations and Discourses on the Glory of Christ, Works of John Owen, Vol. 1.



2. 그리스도의 영광을 모르는 교회는 무엇을 잃는가



첫째, 복음의 중심을 잃습니다.



복음은 단지 “예수 믿고 복 받자”가 아닙니다. 복음은 영원하신 하나님의 아들이 죄인을 위해 사람이 되시고, 율법 아래 나시고, 십자가에서 저주를 담당하시고, 부활하시고, 승천하시고, 지금도 중보하시며, 다시 오실 왕이시다라는 소식입니다.

고린도전서 2장 2절에서 바울은 말합니다.

“내가 너희 중에서 예수 그리스도와 그가 십자가에 못 박히신 것 외에는 아무 것도 알지 아니하기로 작정하였음이라.”

교회가 그리스도의 영광을 모르면 십자가도 단순한 감동 이야기로 전락합니다. 십자가의 핵심은 “예수님이 나를 사랑하셨다”에서 멈추지 않습니다. 십자가의 깊이는 거룩하신 하나님께서 자기 아들을 화목제물로 세우셔서, 하나님의 공의를 만족시키시고, 죄인을 의롭다 하신 영광입니다.



둘째, 설교가 도덕주의로 변합니다.



그리스도의 영광이 사라지면 설교는 이렇게 흐르기 쉽습니다.

“착하게 삽시다.”

“열심히 합시다.”

“긍정적으로 생각합시다.”

“상처를 이깁시다.”

“성공합시다.”

“교회에 봉사합시다.”



이 말들이 모두 틀린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그리스도 없이 말하면 복음이 아닙니다. 성도는 자기 힘으로 거룩해지는 사람이 아닙니다. 성도는 그리스도의 영광을 보고 변화되는 사람입니다.



고린도후서 3장 18절은 말합니다.

“우리가 다 수건을 벗은 얼굴로 거울을 보는 것 같이 주의 영광을 보매 그와 같은 형상으로 변화하여 영광에서 영광에 이르니…”

변화의 원리는 단순한 결심이 아닙니다. 변화의 원리는 주의 영광을 보는 것입니다. 성령께서 말씀 안에서 그리스도의 아름다움을 비추실 때, 성도는 죄를 미워하고, 그리스도를 사랑하고, 하나님께 나아갑니다.



셋째, 교회가 사람 중심이 됩니다.

그리스도의 영광을 모르는 교회는 결국 사람의 영광을 찾게 됩니다. 목회자의 카리스마, 교회의 규모, 프로그램, 분위기, 음악, 인간관계, 정치적 성향, 성공담이 중심이 됩니다.



그러나 바울은 단호히 말합니다.

“우리는 우리를 전파하는 것이 아니라 오직 그리스도 예수의 주 되신 것…”

— 고린도후서 4장 5절

참된 교회는 목회자를 높이는 곳이 아닙니다. 교회 브랜드를 높이는 곳도 아닙니다. 참된 교회는 그리스도께서 얼마나 존귀하시며, 얼마나 아름다우시며, 얼마나 충분하신 구주이신가를 선포하는 곳입니다.



3. 그리스도의 영광을 모르면 성도는 어떻게 되는가



그리스도의 영광을 모르는 성도는 신앙생활을 하면서도 마음이 자주 메마릅니다. 왜냐하면 신앙의 힘은 단순히 의무감에서 나오지 않고, 그리스도의 아름다움에 붙들리는 데서 나오기 때문입니다.



죄를 이기는 힘도 여기서 나옵니다.



사람이 죄를 끊지 못하는 이유는 단지 의지가 약해서만이 아닙니다. 더 깊은 이유는 죄보다 더 아름다운 그리스도를 보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마음은 공허한 상태로 오래 있지 못합니다. 그리스도의 영광으로 채워지지 않으면, 세상의 영광과 육신의 욕망이 그 자리를 차지합니다.



그래서 사탄은 사람에게 먼저 큰 죄를 짓게 하기 전에, 그리스도의 영광을 보지 못하게 합니다.



고린도후서 4장 4절은 말합니다.

“그 중에 이 세상 신이 믿지 아니하는 자들의 마음을 혼미하게 하여 그리스도의 영광의 복음의 광채가 비치지 못하게 함이니…”

사탄의 중요한 전략은 성도에게 종교생활은 남겨두되, 그리스도의 영광은 보지 못하게 하는 것입니다. 예배는 드리게 해도 그리스도를 보지 못하게 하고, 성경은 읽게 해도 그리스도의 아름다움은 깨닫지 못하게 하고, 봉사는 하게 해도 그리스도를 사랑하는 마음은 식게 만듭니다.



4. 그리스도의 영광은 어디에서 가장 밝게 나타나는가

그리스도의 영광은 세 곳에서 특별히 밝게 나타납니다.



첫째, 그리스도의 위격에서 나타납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단순한 선생이 아닙니다. 그는 참 하나님이시며 참 사람이십니다. 한 인격 안에 신성과 인성이 혼합되거나 나뉘지 않고 연합되어 있습니다.



웨스트민스터 소요리문답 21문은 이렇게 고백합니다.

“하나님의 택하신 자의 유일한 구속자는 주 예수 그리스도이시니, 그는 하나님의 영원하신 아들로서 사람이 되셨고, 지금도 계속하여 하나님이시며 사람이신 한 위격 안에 두 구별된 본성을 가지신 분이시다.”

이것이 영광입니다. 영원하신 아들이 우리를 구원하시려고 참 사람이 되셨습니다. 무한하신 분이 유한한 육체를 입으셨습니다. 창조주께서 피조물의 자리까지 낮아지셨습니다.



둘째, 그리스도의 낮아지심에서 나타납니다.



세상은 높아지는 것을 영광으로 봅니다. 그러나 복음은 놀랍게도 말합니다. 그리스도의 영광은 낮아지심 속에서도 빛납니다.



빌립보서 2장 6-8절은 그리스도께서 하나님의 본체이시나 자기를 비워 종의 형체를 가지시고, 죽기까지 복종하셨다고 말합니다.



그리스도의 낮아지심은 실패가 아닙니다. 십자가는 패배가 아닙니다. 십자가는 하나님의 공의, 사랑, 지혜, 거룩, 긍휼이 한 자리에서 가장 찬란하게 드러난 영광의 자리입니다.



셋째, 그리스도의 높아지심에서 나타납니다.



그리스도는 죽음에 머물지 않으셨습니다. 그는 부활하셨고, 승천하셨고, 하나님 우편에 앉으셨으며, 지금도 우리를 위하여 간구하십니다.



웨스트민스터 소요리문답 28문은 그리스도의 높아지심을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심, 하늘에 오르심, 하나님 아버지 우편에 앉으심, 마지막 날에 세상을 심판하러 오심”으로 설명합니다.



그러므로 성도는 낮아지신 그리스도만 보는 것이 아니라, 높아지신 왕 그리스도를 바라보아야 합니다. 그는 지금도 교회를 다스리십니다. 그는 자기 백성을 끝까지 지키십니다. 그는 다시 오셔서 모든 원수를 발아래 두실 것입니다.



5. 그렇다면 그리스도의 영광을 모르는 교회는 참 교회인가



이 문제는 조심스럽게 말해야 합니다.

어떤 교회는 그리스도의 영광을 충분히 가르치지 못할 수 있습니다. 설교자가 부족하고, 교회가 미성숙하고, 복음의 깊이를 아직 잘 배우지 못한 경우가 있습니다. 이런 경우에는 정죄보다 개혁과 회복이 필요합니다.



그러나 만일 어떤 교회가 지속적으로 그리스도의 신성, 성육신, 대속, 부활, 중보, 재림, 주권을 흐리게 하거나 부정하고, 사람의 성공과 감정과 도덕만을 중심으로 삼는다면, 그것은 매우 심각한 일입니다. 그 교회는 교회의 외형은 가질 수 있으나, 복음의 본질에서 멀어지고 있는 것입니다.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 25장 4-5항은 지상 교회가 때로 더 순수하기도 하고 덜 순수하기도 하며, 어떤 교회들은 심하게 타락할 수 있다고 말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교회의 이름만 보고 안심할 것이 아니라, 그 교회가 그리스도의 복음을 바르게 선포하는가를 살펴야 합니다.



참된 교회의 중심 표지는 결국 이것입니다.

그리스도가 바르게 선포되는가.

죄인이 그리스도께로 인도되는가.

성도가 그리스도의 형상으로 변화되는가.

십자가와 부활이 교회의 생명인가.

하나님의 영광이 사람의 영광보다 높임을 받는가.

올바른 권징이 신실하게 시행되고 있는가.

올바른 성례가 시행되고 있는가.



6. 어떻게 다시 회복해야 하는가

첫째, 설교가 다시 그리스도의 위격과 사역으로 돌아가야 합니다.



성경의 모든 본문은 억지로 예수님을 끼워 넣는 방식이 아니라, 하나님의 구속 경륜 안에서 그리스도께로 향합니다. 누가복음 24장 27절에서 부활하신 주님은 모세와 모든 선지자의 글로부터 자기에 관한 것을 설명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설교자는 성도에게 단순히 “무엇을 하라”만 말해서는 안 됩니다. 먼저 “그리스도께서 누구신가, 무엇을 이루셨는가, 지금 우리를 위해 무엇을 하고 계신가”를 보여주어야 합니다.



둘째, 성도는 말씀을 읽을 때 그리스도의 아름다움을 구해야 합니다.



성경을 읽으며 이렇게 기도해야 합니다.

“주님, 제게 명령만 보이게 하지 마시고, 그 명령을 이루신 그리스도를 보게 하소서.

제 죄만 보이게 하지 마시고, 그 죄를 담당하신 그리스도를 보게 하소서.

제 부족함만 보이게 하지 마시고, 충만하신 그리스도를 보게 하소서.”



셋째, 회개도 그리스도의 영광 앞에서 해야 합니다.



참된 회개는 단순히 “내가 잘못했다”에서 끝나지 않습니다. 참된 회개는 “내가 이렇게 아름다우신 주님을 업신여겼구나. 이렇게 귀하신 피를 가볍게 여겼구나. 이렇게 선하신 왕을 내 마음에서 밀어냈구나” 하고 깨닫는 것입니다.



그때 성도는 절망으로 끝나지 않고 그리스도께 나아갑니다. 왜냐하면 그리스도의 영광은 죄인을 밀어내는 차가운 영광이 아니라, 회개하는 죄인을 품으시는 은혜의 영광이기 때문입니다.



넷째, 교회는 성찬에서도 그리스도의 영광을 회복해야 합니다.



성찬은 단순한 예식이 아닙니다. 성찬은 십자가에 달리신 그리스도의 몸과 피를 믿음으로 받는 은혜의 표와 인입니다. 떡과 잔을 통해 성도는 “나의 생명은 내 열심이 아니라, 찢기신 그리스도의 몸과 흘리신 피에 있다”고 고백합니다.



결론

오늘날 교회가 그리스도의 영광을 가르치지 않고, 그리스도의 영광이 무엇인지도 모른다면, 그 교회는 가장 중요한 것을 잃어버린 것입니다.

교회는 사람을 위로하기 전에 그리스도를 보여주어야 합니다.

교회는 사람을 움직이기 전에 그리스도를 높여야 합니다.

교회는 세상을 분석하기 전에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부활을 선포해야 합니다.

교회는 성도의 문제를 해결하기 전에 성도의 눈을 그리스도의 영광으로 열어야 합니다.



성도의 변화는 결국 여기서 시작됩니다.

그리스도를 보면 죄가 미워집니다.

그리스도를 보면 세상의 영광이 작아집니다.

그리스도를 보면 고난 속에서도 하나님께 나아갑니다.

그리스도를 보면 교만이 꺾입니다.

그리스도를 보면 섬김이 억지가 아니라 사랑이 됩니다.

그리스도를 보면 죽음도 마지막 절망이 아니라 부활의 문이 됩니다.

그러므로 교회가 다시 살아나는 길은 새 유행이 아닙니다. 더 강한 조직도 아닙니다. 더 자극적인 프로그램도 아닙니다.



교회가 사는 길은 이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얼굴에 있는 하나님의 영광을 다시 보는 것입니다.

그 영광을 설교하고, 예배하고, 믿고, 사랑하고, 닮아가는 것입니다.

그리스도께서 교회의 모든 것이 되시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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