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숙모 면회 가는 날

작성자仁齊 김권섭|작성시간26.06.12|조회수26 목록 댓글 2

숙모 면회 가는 날

 

올해로 아흔다섯이 되신 숙모님이 요양원에 계신다. 내가 고작 두 살이던 해에 우리 집안으로 가마를 타고 오셨으니, 숙모님과 나 사이의 인연은 반세기를 훌쩍 넘어 한 세기에 가까워지고 있다.

1948년, 서슬 퍼런 시대에 시집을 오자마자 숙부께서는 군에 입대하셨다. 전쟁의 포화 속에서 숙부님이 제대하고 돌아와 첫 동생을 보기까지 꼬박 5년이라는 세월이 걸렸다. 품에 안을 당신 자식이 없던 그 적막한 유년 시절, 숙모님은 친정아버지의 생신 때마다 내 손을 꼭 잡고 친정길에 오르곤 하셨다. 그 사돈집 마당에서 나보다 네 살 많던 숙모의 여동생, 그리고 두 살 적은 조카아이와 함께 흙을 만지며 소꿉장난을 하던 기억이 아직도 눈에 선하다. 숙모님은 어찌나 말솜씨가 다정하고 좋으셨던지, 어린 나는 그 입담에 홀딱 반해 늘 숙모님 치맛자락만 졸졸 따라다녔다.

그렇게 쌓인 세월의 결은 자연스럽게 내 아내에게로 이어졌다. 아내는 시어머니보다도 홀로 남은 숙모님을 더 지극정성으로 챙겼다. 오죽하면 나의 형제자매들로부터 "왜 이리 숙모만 유별나게 챙기냐"며 서운함 섞인 따돌림을 받았을까. 이제 부모님도, 숙부님도 모두 흙으로 돌아가시고 세상에 남은 어른은 오직 숙모님 한 분뿐이다. 작년에 이어 올해도 면회를 가자고 넌지시 운을 떼니, 아내는 기다렸다는 듯 흔쾌히 옷개춤을 추며 동행을 약속했다.

 

노인들이 계신 곳에 무엇을 사 가야 할지 고민이 깊었다. 안꼬빵(단팥빵)을 사 가자니 재래시장에서는 구십 개를 맞추려면 이틀 전에 주문해야 한다고 손사래를 쳤고, 떡은 행여나 이 없는 노인들이 목이라도 멜까 걱정스러웠다. 과자는 아무래도 어른 대접에 가벼워 보였다.

결국 여름날의 서늘한 위로가 되어줄 수박으로 마음을 모았다. 동네 수퍼에서는 제일 큰 덩이가 5만 원이었는데, 청과상회에 가니 반값인 2만 5천 원이란다. 심지어 두 덩이를 사면 거마비까지 빼준다 하니, 횡재도 이런 횡재가 없다 싶어 이유 불문하고 덜컥 두 덩이를 샀다.

그러나 공짜 같은 횡재 뒤에는 혹독한 무게가 기다리고 있었다. 한 덩이는 커다란 배낭에 넣어 등에 짊어지고, 또 한 덩이는 끈으로 단단히 묶어 손에 들었다. 아내가 500미터 떨어진 주차장으로 차를 가지러 간 사이, 나는 차도 변에서 수박과 사투를 벌였다. 어깨는 내려앉을 듯 무겁고 손가락을 파고드는 끈의 고통에 몇 번을 길바닥에 주저앉았는지 모른다.

10분이 지나고 20분이 지나도 아내의 차는 보이지 않았다. 좁은 길에 사람과 차가 뒤엉켜 걱정이 차오를 때쯤, 저 멀리서 신경질적인 경적 소리가 울렸다. 길을 걷던 예순 남짓한 행인이 "요즘 세상에 시내 한복판에서 웬 경적이냐"며 아내의 차를 향해 잔소리를 퍼붓고 지나갔다. 그 서슬 퍼런 눈총을 함께 받으며 겨우 수박을 실어 나르는 내내, 무거운 수박만큼이나 면목이 없고 마음이 짓눌렸다.

 

이튿날, 기차역으로 향하는 길에도 수박 두 덩이는 나를 끙끙 앓게 만들었다. 기차에서 내려 택시 승강장으로 걸어가는 그 짧은 거리마저도 젖먹던 힘까지 쥐어짜야 하는 고행길이었다.

겨우 도착한 요양원 현관 앞, 희끗희끗한 머리의 숙모님이 마중을 나와 계셨다. 면회실에 마주 앉아 해후의 대화를 나누는데, 숙모님이 불쑥 빛바랜 기억 한 자락을 꺼내놓으셨다.

 

"조카!, 자네 아들 돌 때 내가 아기 내의를 사가지고 갔던 거 기억하는가?"

 

내 머릿속엔 가물가물해 흔적도 없는 일이었다. 하지만 숙모님의 눈빛이 너무도 또렷해 그저 고개를 끄덕이며 고지들을 수밖에 없었다. 아, 사람은 자기가 행한 일 중 가장 소중하고 따뜻했던 순간은 결코 잊지 않는 법이구나. 비록 타인에게는 스쳐 지나가는 사소한 일일지라도, 누군가에게 베푼 작은 사랑은 평생의 마음 밭에 새겨지는 법임을 그 노년의 눈동자를 보며 깨달았다.

30분 남짓한 대화 끝에 숙모님의 기력이 해해질까 염려되어 자리를 일어섰다. 그런데 요양원을 나오며 문득 가슴 깊은 곳에서 헛헛한 서운함이 밀려왔다. 이 뙤약볕에 그 무거운 수박 두 덩이를 지고 메고 온 정성을 보았다면, 차 한 잔은커녕 물 한 모금 정도는 대접하는 것이 인지상정 아니던가. 여름날의 갈증과 피로가 겹치며 밀려오는 야속함에, 돌아오는 길 아내에게 툭 던지듯 푸념을 뱉어냈다.

 

"괜히 그 무거운 수박을 들고 가 고생만 바가지로 했네."

 

집으로 돌아오는 길, 배낭이 내려앉았던 어깨가 여전히 뻐근하다. 하지만 이내 생각해 본다. 내가 사 간 수박은 요양원의 목마른 노인들의 입술을 적셔줄 것이고, 숙모님의 가슴에는 당신이 베풀었던 옛날의 '아기 내의'처럼 또 하나의 잊지 못할 다정한 기억으로 남을 것이다.

등이 굽어가는 삶의 길목에서, 누군가를 위해 무거운 짐을 자처해 지고 갈 수 있는 기회가 우리에게 얼마나 더 남아있을까. 고단했던 수박 두 덩이의 무게는, 어쩌면 내가 숙모님께 갚아야 했던 마음의 무게였을지도 모르겠다. (2026. 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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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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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청석 임병식 | 작성시간 26.06.13 95세를 넘기신 요양원에 계신 숙모님을 뵈려 가셨군요.
    무거운 수박을 사서 끙끙댓을 모습을 그려봅니다.
    숙모님께서 아들의 옷선물을 기억하시는 것은 찾아와주신
    고마운 발걸음을 대신한 말이라고 생각됩니다.
    적적하신 어른께 좋은 선물이 되었겠습니다.
  • 작성자仁齊 김권섭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 작성시간 26.06.12 숙모님을 뵈러 가던 길의 고단함이 부끄럽지 않게, 聽石님께서 기뻐해 주시고
    또 이렇게 곁에서 그 마음을 헤아려 주시니 큰 위로와 보람을 느낍니다.
    작은 발걸음이었지만 숙모님께 잠시나마 온기를 전해드린 것 같아 다행스러운 마음입니다.
    따뜻한 격려의 말씀 마음에 잘 담아두겠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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